내 맘에 한 노래 있어 6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Come home, Come home.
‘집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집을 떠나본 사람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출퇴근용 떠남일 수도 있다. 바쁜 일정으로 끼니를 거르거나 계속 매식을 해야 할 때 ‘집에서 밥 먹은 지가 언젠지’하며 집밥 생각이 난다. 긴 시간 집을 떠날 수도 있다. 난생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시작하며 ‘자주 독립 만세! 룰루랄라!’ 하겠지만 독립 시작, 집밥 그리움도 시작이다. 해외에 혼자 나가 있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간절한 집바.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원초적인 감각인 식욕으로 대변되는 존재의 깊은 곳의 그리움이 아닐까.
긴 겨울이 끝난 건가, 날이 좀 따뜻하네, 싶으면 어느 새 목련 꽃봉오리가 촛대처럼 올라와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촛대 끝이 벌어져 있고, 그러기 시작하면 대기표 받고 있던 봄꽃이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한다. 생명력 가득한 이 짧은 나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나리의 연호를 받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부담 되던 강의와 원고가 끝나 마음은 여유롭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잔 덕에 몸은 한껏 가벼웠다. 모처럼 안팎이 모두 평안한 순간이다. 만개 직전의 노란 개나리 길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고 느낀 순간, 가슴 저릿하면 내 속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집에 가고 싶어요. 주님’ 이게 무슨 소리? 집으로 가고 있는 길인데 말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옛집이 그리운 탓이었을까? 아니다. 옛집이 아니다. 그저, 바로 그 집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다양한 층위의 갈망이 있다. 그 갈망이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어 간다. 심리영성가들은 그 갈망을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욕구로 구분하곤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몸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것은 신체적 욕구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정서적인 충족감을 갈망하는 심리적 욕구도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몸도 마음도 다 편한데 뭔가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보다 진실한 것, 보다 깊은 관계에 대한 갈망. 이것은 단지 심리적 욕구 그 이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 영적인 존재로서의 목마름이다.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 부족할 것 없는 순간에 밀려오는 그리움, 고독감, 공허감은 나를 영적 목마름으로 이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찬송 가사의 ‘죄 있는 자’란 회심하기 전, 예수님을 알기 전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매일 매 순간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는 나, 사랑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꽃길을 걷다 한숨처럼 밀려 나온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는 ‘오라, 오라’하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내 영혼의 답가일지 모르겠다. 흔히 영성을 정의하기를 ‘인간 마음속의 진실한 갈망, 즉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속의 갈망이 이끄는 영혼의 여정’이라고 한다. 집밥은 단지 밥이 아니라 엄마와 가족이 있는 따뜻한 곳인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고픈 목마름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다. 위 찬송가를 영문 가사로 불러보니 후렴의 'home'이 얼마나 큰 따스함으로 다가오는지. Come home, come home. 작은 소리로 여러 번 불러본다.
Come home, come home. You who are weary come home.
Earnestly, tenderly Jesus is calling. Calling all sinner, come home
“집으로 오렴. 내가 여기 있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이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건만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이다. “예수님, 좀 기다리세요. 자꾸 귀찮게 하지 마시고 주일날 예배 때 만나요. 다음 수련회 저녁 기도회 시간에 만나요. 이 외로움, 분노, 실패감, 지질한 감정들 다 정리 되는대로 당신께 갈게요.” 이러는 대신 3절을 노래하며 바로 지금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 하려나’ 주님이 만나자고 하는 곳과 장소는 죽어서 가는 저 천국만이 아니다. 신변 정리 다 하고, 웬만한 죄는 좀 털어내고, 한 듯 안 한 듯 비비크림 발라 영적인 화장을 마친 후가 아니다. 바로 지금 그분을 만나러 내 마음 깊은 곳 갈망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날이 오랜 후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원한 집(4절)’에서 두 팔 벌려 영접해주시는 그분과 헤어짐 없는 만남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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