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다음 날 아침, 현승이 뺀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었다.
거실 창 한 쪽으로 노란색 무엇이 부딪쳐 머문다.
하아,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햇빛이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도종환 님의 싯구와 함께 정말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저렇듯 책꽂이에 머무는 햇빛과 놀아본 적이 언제던가.
블로그 뒤져보니 마지막 날의 기록이 남아 있다.
합정동 집에서 이사 오던 날 아침에 찍은 사진이 마지막이다.
분당동 거실엔 책꽂이와 햇살이 입맞추는 장면이 없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더 추웠고 더 어두웠다.
쏟아지는 빛이 없어서였다.
빛은 그저 있는 것이고 기도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이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적 현실은, 갑과 을이 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햇빛이 멀기만 한 2년 여를 보냈다.
작년 겨울은 동면하는 짐승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지냈었다.
그러다 어깨가 굳어버려 오십견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잘 버틴 2년이다.
춥고 어두워 슬프긴 했지만 언젠가처럼 절망하진 않았다.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젊은 날 불렀던 노래, 남편과 내가 함께 좋아하는 이 노래가 혀끝에 맴돈다.
이사 온 다음 날 만난 햇빛에 눈물이 난 것은
내 피부에 닿지는 않았어도 여전히 어딘가를 한결같이 비추고 있었음을,
여전히 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관 앞에 내 집의 이름표를 대놓고 붙였다.
내 집은 빛이 있으나 없으나, 온기가 있으나 없으나
누구보다 내게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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