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자가 아무리 훌륭하고 씨가 아무리 좋아도 작황을 결정짓는 것은 '토양의 상태'이다.
지난 세월 무수한 씨앗이 내 마음에 내려앉았을 것이고 무수한 씨앗이 거기 죽었을 것이다.

1. 마음의 경직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편식성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 정말 맞는 통찰인 것 같다. 같은 예수를 믿는데도 그렇게도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말씀을 듣되(말씀이 꼭 설교나 큐티를 통한 묵상이 아니어도....일상을 통해 들리는 모든 소리) 편식을 하는 문제로 내 마음의 토양이 피폐해져가는 것 같다. 그래서 편식의 세월이 오래될수록, 즉,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말이 안 통하고 진리가 흘러들어갈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말씀 묵상을 하면서도 두렵고 떠림으로 경계해야 할 일이 '편식' 인 것 같다. 부디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면서 나이들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귀가 넓게 열려 일상에서 들리는 말씀을 고루고루 잘 들으면서 내 마음의 토양을 가꿨으면 좋겠다.

2. 씨앗을 받아 풍성한 수확을 내려면 땅을 갈아야하고, 흙덩이를 부수어야 하고, 성장을 저해하는 숨을 돌멩이를 하나하나 제거해야 하며, 양분을 빼앗는 잡초를 일일이 뽑아 내야 한다.
부단히 내 두 번째 마음을 돌아보는 것.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야'라고 말하는 환경미화용 마음이 아니라 숨은 진짜 마음. 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부단히 회개하고 고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내 마음의 토양을 갈고, 돌멩이를 제거하는 과정의 전제일지 모르겠다. 멈출 수 없는 작업이다. 풍성한 수확을 내기위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3. 과실에 필요한 무기물을 공급하려면 토양 내부와 주변의 어떤 것들은 목숨을 바쳐야 한다. 토양을 비옥케 하는 분해된 유기물을 '부식토(humus)'라고 한다. '겸손(humility)'이라는 말도 그것과 상관이 있다. 겸손이란 '낮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과정이다. 그 분은 우리를 낮추신다. 직접 밑바닥에 데려다 놓으실 때도 있다.
두 번째 마음을 가끔씩 돌아다 보고 회개하는 과정이 없이 나 자신에게 속는 날이 오래 지속되면 하나님이 직접 밑바박에 내려 놓으시는 날이 있을 것이다. '겸소하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지 않는다면 친구와 가족과 공동체를 동원해서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시며 마음의 쓰레게들을 크게 정리하실 날이 있을 것이다. 때로 그런 사랑으로 다가오실 날에도 멍청하게 나자빠져 있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마음에 들려오는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 된다.

내 삶의 진정한 목표는 내 마음의 토양을 가꿔서 끊임없이 그 분의 말씀을 잘 받아내고 가꿔서 수확을 내는 것. 그 수확이 풍성할 때 내가 행복해지고, 내 가족이 행복해지고, 나를 아는 이웃이 행복해지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땅의 어떤 약한 자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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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글씨는 켄 가이어의 <묵상하는 삶>에서 발췌.

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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