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하며 다 가져온다고 했는데 시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물건이 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 앨범은 꼭 가져와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버님 돌아가시곤 '어머님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날'을 추억하며 들춰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채윤 현승이 어떤 시기의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설에 가서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찍어왔다.
현승이 낳고 짧은 조리원 경유하여 엄마 집에 얼마간 가 있었다. 낯선 곳이 너무 힘들고 두려운 현승이는 세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지금까지 한결 같다. 처음 집, 내 뱃속에서 나오던 순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생애 초기에 그렇게 울어댔다. 그땐 몰랐는데, 저 성격에 터무니 없이 넓고 밝고 시끄러운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겠나 싶다.
그나마 사람 몸에 닿아야 울음을 그치는 통에 조리원에서도 친정에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어른들은 총 비상이었다. 돌아가며 안고 흔들고 몸에 붙이고 있어야 했으니. 엄마 집에서 머물던 시간 불편한 마음이 떠오른다. 내 몸이 힘들지만 늙은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것,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면서 종일 서 있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쓰였다. 채윤이를 보다 주저앉은 허리로 이미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엄마가 울었다. "엄마가 늙어서 조리도 제대로 못혀주고. 니가 찬물이다 손 담그게 허고 그려서 미안허다. 엄마가 늙어서..." 나도 뒤돌아 울었다. 늙은 엄마를 고생시키고 늙은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하고, 이런 내 처지가 가여워서.
이 사진은 그 시기 어느 때이다. 가슴에 남아 있는 사진이다. 다시 들여다보니 엄마가 젊었다. 이미 80이 가까운 연세였지만 젊었다. 신생아의 목을 받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팔에 힘이 있고, 아이와 눈 맞추고 어를 수도 있었고... 그러고 보면 늙을 때까지 늙은 것이 아니다. 산후조리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날, 엄마의 늙음이 그렇게 슬펐는데 젊은 늙음이었다. 우리 엄마는 평생 내게 '늙음의 걱정'을 운명처럼 안겼다. 평생 늙었던 엄마, 지금은 더 늙은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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