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아!

끝내 어정쩡하게 굳은 얼굴로 널 유치원 현관으로 밀어 넣고 들어왔다.

널 들여보내고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엄마 자신의 표정을 생각해 보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엄마의 표정을 들여다 보았단다.

무뚝뚝해 보이고, 경직돼 있고,긴장돼 있고.... 이게 너를 대하는 엄마의 요즘 표정이더구나.


'엄마 다림질 하는 동안 스타킹 신고 있어'하는 말에 여전히 빈둥대면서,

'엄마! 어디가 앞이예여? 한 줄 있는데가 앞이예여? 두 줄 있는데여?' 하는 너한테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어. 아침 내내 엄마는 경직돼서 농담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고 너는 언제나 처럼 까불고 능청 떨고, 깐죽거리고...


생각해보면 니 말을 여유있게 농담으로 받아치면서 유치원 갈 준비를 하면 너도 엄마도 행복해질텐데...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발단은 경직된 엄마의 태도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실은, 할머니 보시는 아침 드라마에 빠져서 밥을 못 먹는 널 보면서 이미 엄마는 마음이 단단해졌어. 너를 탓할 일이 아니지. 누구라도 싸우는 소리가 나는 텔레비젼에서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루의 시작을  어른들 싸우는 소리, 너로서는 이해도 할 수 없는 갈등관계를 가지고 울고 불고 소리 지르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하게 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단다.

그러면 여지 없이 엄마는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에 불평을 하게 되고, 또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 한탄을 하게 된단다. 엄마로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말이다.


오늘 아침 그 스트레스가 결국 여느 때처럼 채윤이 한테 터져버린 것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엄마가 스스로 감정 조절을 못하고 게다가 그 감정을 채윤이한테 폭발해 버리다니...


유치원 가는 길에 마음을 풀고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지만 잘 안됐단다. 그래서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즐겁게 지내' 한 마디 하고 돌아섰다. 텔레비젼을 틀지 않는 게 방법이지 틀어 놓고 보지 말라고 하는 게 방법이 아닌 것처럼, 이미 황폐해진 엄마 마음인데 사랑 어린 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


빨리 분가하도록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언제 될 지 모르는 분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데...오늘 엄마의 숙제란다. 오늘 아침과 같은 상황을 잘 극복해낼 방법을 모르겠어. 예전에 잘 될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방법을 잊어버렸어.


채윤이에게 편지라도 한 장 남기고 출근하고 싶은데....

(이럴 때는 채윤이가 빨리 글을 읽을 수 있게되면 좋겠다 싶구나)

암튼, 채윤이를 위해서도 엄마가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겠구나 싶다. 이렇게 메마를 마음으로야 어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니. 하루 종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살께. 메마른 마음에 풍성한 사랑이 은혜로 부어지기를...저녁 때 만날 때는 아주 여유있고 넉넉하고 밝은 표정으로 채윤이를 안아 주도록 할께.


미안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엄마가...

200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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