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산책은 미루고 있는데, 고맙게도 직박구리가 찾아와 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오질 않으니, 이 열정 넘치는 애인은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옮겨 앉으며 마음을 전하다 후루룩 또 날아가 버린다. 이 애인은 항상 더 소중한 애인의 메시지를 끌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베란다 화분 걸이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자주 새가 날아든다. 여름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조심조심 맞아야 하고. 이즈음엔 좀 요란을 떨며 사진을 찍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날아든 새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JP가 새와 나를 함께 찍는다. 바보! 날 보지 말고 새를 봐야지. 정신실 밖에 모르는 바보... ㅎㅎ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쪽으로 난 창 앞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붉은 노을이 하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러면 그 앞에서 멈추고 바라보며 편지를 읽어야 하고. JP는 또 그런 나를 찍는다. 전방 후방이 사랑이다. 시편 104편이 우리 집 앞뒤에 펼쳐져 있다.
 
윌리엄 배리 신부의 말이 백 번 옳다. 느껴서 인정하는 옳음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렇게 하늘이 내게로 온다.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으나 거의 모든 사람이 가을 단풍잎에 내리쬐는 햇살에 황홀해하고 석양이나 일출에 깊은 경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만든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그 예술가와 관계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관상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에 관심 가지기를 바라며, 그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고, 그 작품 앞에서 웃거나 한숨짓거나 기쁨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보이는 것을 즐긴다. 예술가가 하느님이실 때 그 의사전달은 찬미의 기도라 불리어지며 찬미의 기도는 "기도 용어"로 가다듬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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