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처음 분당으로 이사 왔을 때 "서울 간다" "서울 갔다 왔더니 피곤하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충청도나 경상도도 아니고 바로 옆이 서울인데, 굳이 "서울 간다"고들 하시네. 서울 어디냐에 따라 서울에서 서울 가는 거리보다 여기서 서울 가는 거리가 더 가깝기도 한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분당을 거점으로 하여 2년에 한 번씩 분당으로부터 멀어지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계속 분당이 거점이라면 몇 년 후에는 평택이다...) "아, 서울 가는 게 이런 거구나!"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멀구나... 서울이... 일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일이 아니어도 한 번씩 만나고픈 사람이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서울은 가야 할 곳이다. 이래저래 적응하고 보니, 광역버스 권으로 최적의 장소가 있다. 최적의 장소에 최적의 카페가 있고, 인근이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다. 서울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거의 오직 한 카페에 간다. 아주 딱이다.
 
사람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해져 돋보기를 쓴지 벌써 몇 년이다. 가까운 것이 보이지 않는 눈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멀리 보라!"는 그분의 메시지라 받아들이고 가까운 것을 흐릿하게 보며 살려고 한다. 눈과 귀가 밝은 태생이라 뭐든 참 잘 들리고 잘 보이고, 빠르게 판단이 되는데. 이게 걸림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까운 것들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바로 어제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받아들이며 살려고 한다. 멀리 보는 눈으로 이생의 끝에서,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만날 하나님 나라를 더욱 가까이 살 때가 된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려는 노력 대신 보이는 만큼만 보려고 한다. 사람 마음에 민감한 태생이지만 보이지 않는 동기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힘을 빼고, 빼고 또 빼려고 한다. 누구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러려고 한다.
 
장소
서울만 가면, 서울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면 늘 가는 카페 근처의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늘 가던 곳은 지하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딱 마음에 드는 곳이다. 지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막히더라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는 편인데, 늘 가던 카페가 지하라서 별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편의 때문이었다. 나의 편의도 있지만, 만나는 분들의 편의가 더 많이 고려된 것이기도 하다. 만나러 어디든 오겠다는 분들을 멀리까지 오게 할 수 없어서 내가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게 다다를 수 있는 최적의 서울이었다. 마침 여러 조건들이 좋았지만, 지하 카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 약속 장소를 정하는데 "거기는 커피가 맛있어서 좋고, 전망이랑 분위기는 건너편의 **도 좋아요."라는 톡을 보았다. "아, 전망과 분위기를 고려할 수도 있겠구나!" 대단한 깨달음도 아닌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아주 편의도, 전망도, 분위기도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었다.
 
기도
가까이 있는 이들을 흐릿한 눈으로 보는 게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타고난 에로스 에너지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눈과 귀와 마음이 무한으로 열린다. 말하자면 잔소리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남편, 아이들에게 나는 잔소리쟁이이며 간섭쟁이이다. 나는 이제 이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일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런 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좀 분산시키는 것도 좋지. 그 누구라도 오늘 지금 새롭게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도 열정이 향하는 사람이 있다. 500년도 전에 살았던 아빌라의 데레사가 내겐 그러하고, 많은 저자들이 그러하다. 때로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내게 '기도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내 이 넘치는 마음의 에너지가 닿고 싶은 곳은 그분의 마음이다. 그분이다.
 
기도가 맺어준 먼 동네 새 친구를 만나
새로운 카페를 알게 되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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