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종합비타민 먹어. 

엄마, 진짜 종합비타민 먹을 거지?

엄마, 종합비타민 먹어.... 내가 주문했어.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출간하고 났더니 갱년기 증상이 몸으로 제대로 오는 느낌이다. 글을 쓸 때와 달리 사람들을 만나 중년의 몸과 영성에 대해 '말'을 하고 보니, 역시나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네, 싶은 것이다. 정말 잠을 잘 자는데... 남편 안식월 여행으로 시차로 인한 불면증이라 생각했었다. 생각해 보니, 이거 갱년기 증상이네! 다른 증상으로 병원에 갔는데 "갱년기 증상이에요. 갱년기는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다 설명돼요. 종합비타민 드세요? 잘 챙겨 드세요."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노라, 종합비타민이든 뭐든 잘 챙겨 먹고 몸을 잘 돌보겠노라 공표했다. 그 말을 들은 현승이가 눈만 마주치면 종합비타민 타령을 하더니, 제가 알아보고 주문한 것이다. 

 

세심한 아들, 마음 따뜻한 아들 자랑은 아니다. 물론 남다른 따스한 성품이긴 하지만, 저 행동에 담긴 '분노'도 나는 안다. 몸이 자꾸 아프다는 엄마 걱정이 되어 죽겠는데... 병원도 잘 안 가, 꼭 필요한 것 챙겨 먹는 거도 잘 안 해. 말로는 늘 하겠다 하고 가겠다 하면서 실행은 안 해. 머리로 사는 엄마를 보는 답답한 아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고집스럽게 살던 방식을 고집하는, 말 안 듣는 노인 같은 엄마인 나다. 이런 것 챙겨 먹는 것이 내게는 사소해서 더 힘든데, 사소한 이 일을 성실하게 하기로 했다. 종합비타민 두 알 먹는 것을 기도처럼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현승이는 내게 내게 비타민 같은 아들이다. 아이가, 아니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깊고 따스할 수가 있지? 싶다. 자칭 엄마 중독자(https://larinari.tistory.com/2835)였던 아들이라 내게 유난하지만, 내게만 그렇지 않다. 현승이는 아빠나 누나, 친구들, 심지어 제게는 싫은 어른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연민의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 이 아이의 이 아름다운 존재의 빛깔을 비타민 정도로 소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기쁨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착한 아들보다 자기 존재를 먼저 돌보고 '되어야 할 자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종합비타민 두 알을 성실하게 먹을 예정이다.

 

 

지난 달 말에 모처럼 가족 여행을 했는데,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독특한 커피에 독특한 사장님을 만났다. 핸드드립 훈제 커피를 내리더니 어느새 기타를 잡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부르는 모든 노래가 현승이 음악 저장함을 턴 것처럼, 김현승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였다. 엄마 아빠 누나가 서로 "대박, 대박" 하면서 눈빛 교환하는데, 당사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읽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귀와 온 정신은 음악에 가 있었음)다. 까딱까딱하는 다리를 나는 보았지! 

 

현승아, 누구의 비타민이 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이 되어 살길. 그러면 그냥 너는 존재 자체가 세상의 비타민이야.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 감옥  (0) 2023.11.18
너네 엄마 금쪽이  (0) 2023.09.18
개강 첫 주 금요일  (2) 2023.03.04
세상의 모든 엄마  (0) 2022.10.13
지브리와 함께  (0) 2022.0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