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엄마, 아빠, 누나 저까지 네 명의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누나는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누나 성격은 저와 정반대로 외향적이고 밝습니다. 저랑 누나는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우지만 다른 남매들에 비해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잘 챙겨주는 남매입니다


아빠는 무겁고 깊은 사람입니다. 저의 고민을 절대로 가볍게 들으시지 않고 항상 의외의 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항상 진지할 것 같은 아빠가 가끔은 유머러스하게 농담도 많이 하시는데 그다지 재밌지는 않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저랑 가장 웃음코드가 잘 통하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저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해주시고 항상 밝은 분위기를 주십니다. 이런 엄마가 한 번 화내면 정말 무섭습니다.


저는 가족이 정말 편하고 식구들이 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근데 왜인지 모르게 가끔 식구들을 벗어나면 좀 편해지고 해방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는 기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지 않고 인생의 'pause' 버튼을 누르고 1년을 지냈다.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 친구들'과 함께 일 년의 방학을 가진 현승이가 다음 행보를 정했다. 갭이어 이후 그대로 집에 남아 혼자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획득하고, 혼자 입시 준비를 하고 대학생이 된 누나의 길을 따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고, 대입 학원에 불과한 분당의 일반 고등학교에 가기는 싫다고 했다. 고민 끝에 누나 채윤이가 툭 던진 '소명중고 있잖아' 라는 말 한 마디가 첫 이정표가 되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인맥 라인까지 총동원 하여 알아본 학교는 지금으로선 현승에게 딱 맞는 학교이다. 입학전형 마감일을 코 앞에  두고 폭풍 준비에 돌입하여 접수를 마쳤다. 


입학원서 서류에는 현승이가 쓰는 가족소개 란이 있는데. 바로 거기 쓴 짧은 소개 글이다. 몇 문장으로 정리된 아빠, 엄마, 누나의 캐릭터가 흥미롭지만 엄마 눈에 볼드체로 강조되어 들어온 부분은 마지막 단락이다.  "근데 왜인지 모르게 가끔 식구들을 벗어나면 좀 편해지고 해방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반가운 문장이다.  제대로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읽혀 고맙고 반갑지만, 어쩐지 가슴 한 곳이 텅 비어 찬바람이 휘잉 지나는 느낌이다. 



일기와 시에 비춘 현승이 가족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011년 일기이니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기이다. 아홉 살! 현승이가 어릴 적에 참 좋아했던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도 떠오른다. 아무튼 이렇다.


우리 엄마는 중독이 2가지 있다. 1개는 엄마 핸드폰에 있는 과일 짜르기 게임 중독이고 또 하는 패이스북 중독이다. 매일 식탁에 않으면 패이스북 아니면 과일 자르기 게임을 하한다. 아빠는 자기 중독이다. 아침에 엄마가 깨워도 잘 안 일어난다. 어쩔 때는 내가 학교를 간 다음에 깰 때도 있다. 나는 엄마 중독이다. 매일 엄마를 안은다. 엄마가 좋다. 우리 누나는 춤을 추는 게 중독이다. 매일 우리 방에서 춤을 춘다. 그럴 때 누나를 보면 너무 웃기다. 


덕분에 엄마는 과일 짜르기 앱을 바로 지우고 과일 짜르기 중독에선 벗어났으나 그 이후에도 다양한 중독에 빠져 여전히 허우적대는 중이다. 다른 식구들의 중독은... 흠... 내 알 바 아니다. 



2015년 1월에 쓴 시이니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가족의 캐릭터를 인식하는 눈이 조금 깊어졌달까, 아니면 더욱 주관적이 되었달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현승 특유의 반어법을 사용한 돌려까기 기술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돌려까기는 열일곱인 지금의 현승이가 다양한 장면에서 흔히 쓰는 기술이다.) 


우리 아빠는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다.

그래서 이름이 김병약(病弱)

 

우리 엄마는 글쓰는 걸 싫어하고

잠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름이 정원고(原稿)

 

우리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머리가 좋다.

그래서 이름이 김무식(無識)

 

나는 었떤 일에도 긍정적이다.

그래서 이름이 김절망(絶望)

 

사실 우리집은 거꾸로 가족이야. 

 

* 괄호 안의 한자는 편집자인 엄마가 삽입.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기억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말할 때마다 개정판으로 다시 쓰인다. 아홉 살, 열두 살, 열일곱 살의 눈으로 보는 가족의 모습은 이렇듯 다르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한 인생이 무르익고 성숙하여 자기만의 빛을 낸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생애 초기, '자아'를 형성한 토양이었던 가족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더더욱 그러할 것. 스무 살, 서른 살, 쉰의 현승이 글에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지고 담길까. 현승이가 자기 자신의 되어 가는 서사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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