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친군데.....명선이를 만나면 마냥 의지하고 싶어진다.
예전부터 그랬다. 결혼 전부터 명선이는 마냥 의지하고 싶은 친구였다.
20대 후반에 교회 청년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명선이. 명선이를 처음 만난 지 얼마나 지난 다음인지는 모르겠다. 청년회에서 춘천에 놀러가는 일이 있었다. 여러 대의 자가용으로 나눠 타고 갔었고 오는 길에 같은 차에 탔다. 그 때 내가 명선이에게 말하자면 사랑고백을 했는데.....
이렇게 했다.
'너는 사람이 참 담백한 것 같다. 니가 말하면 다 진실인 것 같고 신뢰가 가~' 이렇게.
그랬다. 명선이의 장점은 그런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걸러지지 않는 말이나 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객관적인 말을 한다. 당장 듣기 좋으라고 하는 허접한 위로가 없어서 명선이가 해주는 상담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로 혼란스러울 때는 명선이를 찾았다. 그럴 때 명선이의 객관적이고 담백한 말들은 내게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었다. 그러고보니, JP를 처음 만나 교제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늘 명선이가 함께 있었다. 헤어져서 죽을 것 같이 힘들던 그 순간에도 명선이가 곁에 있었다.
'맞아! 음악치료는 너한테 맞겠다.니가 한 번 해 봐' 이렇게 하는 말도 명선이가 하는 말이라서 무게가 있었다. 해서, 명선이의 이 말은 음악치료의 길을 가는데 주저함 없도록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수요예배에 찬양 인도 하면서 어떤 어른으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을 때도 명선이가 함께 있었다. 찬양인도 하는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마주 보고 앉아서 OHP 가사를 넘겨주면서 순간순간 내게 힘을 주었었다.
30의 고개를 함께 넘으면서 우리는 함께 결혼을 준비했다. 우리에게 적절한 사람이 어떨지에 대한 고민을 내 일 처럼 하고, 소개팅 한 것이 있으면 미주알 고주알 보고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했다.
난 늘 명선이를 생각하면서 이 찬양을 되뇌었다.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이 찬양으로 명선이를 축복했다.
어느 새 다섯 살 짜리 딸을 둔 아이 엄마들이 된 우리. 명선이는 볼 때 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다. 가끔씩 만나는 명선이는 '사모님' 이라는 호칭이 썩 잘 어울리고....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지 새벽기도를 빠짐 없이 하고, 불편한 시골 생활을 기꺼이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명선이를 지켜본 나는 명선이가 얼마나 독립적인 사람인 지 안다. 명선이의 자취하던 방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인간관계가 얼마나 깔끔하고 담백했는지, 자기관리가 얼마나 칼 같이 되었는지...... 그러면서 웬만한 사람들이 쉽게 그녀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의 명선이는.............
교회와 맞붙은 목사님 사택에 사는 사모님이다. 매주일 명선이 집에서 전교인이 식사를 한다. 주방에는 명선이 살림이 있고 또 교회 살림이 따로 있다. 집안의 가구 배치도 주일 점심식사가 용이하도록 하는 것을 최대한 고려해 놓은 듯 하다.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 그러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명선이네 세 식구가 사는 집'이라는 울타리 자체가 없는 듯 하다. 맞다! 울타리! 바로 그거다!
예전의 명선이는 울타리를 분명하게 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없어졌다. 이 부분에 생각이 닿으면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차올라와 눈을 통해 나오고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삶을 드리겠다고 결단할 수 있다. 삶을 드리겠다는 것은 뭔가? 탁 까놓고 말해서, 삶을 다 드릴 수 있다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보다 내게 익숙한 작은 습관을 고쳐 헌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래서 진정한 헌신은 후자가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명선이 자신도 대단치 않게 여길 헌.신. 내 눈에는 달라진 명선이 모습 속에서 바로 그 '헌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 헌신에 감동 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며칠 전 명선이를 만나고 온 이후로 감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을 얻었다.
명선아!
사랑해!
목사님과 너, 하민이를 위해서 매일 매일 축복하며 기도할께.
너랑 친구인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해.
예전부터 그랬다. 결혼 전부터 명선이는 마냥 의지하고 싶은 친구였다.
20대 후반에 교회 청년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명선이. 명선이를 처음 만난 지 얼마나 지난 다음인지는 모르겠다. 청년회에서 춘천에 놀러가는 일이 있었다. 여러 대의 자가용으로 나눠 타고 갔었고 오는 길에 같은 차에 탔다. 그 때 내가 명선이에게 말하자면 사랑고백을 했는데.....
이렇게 했다.
'너는 사람이 참 담백한 것 같다. 니가 말하면 다 진실인 것 같고 신뢰가 가~' 이렇게.
그랬다. 명선이의 장점은 그런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걸러지지 않는 말이나 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객관적인 말을 한다. 당장 듣기 좋으라고 하는 허접한 위로가 없어서 명선이가 해주는 상담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로 혼란스러울 때는 명선이를 찾았다. 그럴 때 명선이의 객관적이고 담백한 말들은 내게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었다. 그러고보니, JP를 처음 만나 교제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늘 명선이가 함께 있었다. 헤어져서 죽을 것 같이 힘들던 그 순간에도 명선이가 곁에 있었다.
'맞아! 음악치료는 너한테 맞겠다.니가 한 번 해 봐' 이렇게 하는 말도 명선이가 하는 말이라서 무게가 있었다. 해서, 명선이의 이 말은 음악치료의 길을 가는데 주저함 없도록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수요예배에 찬양 인도 하면서 어떤 어른으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을 때도 명선이가 함께 있었다. 찬양인도 하는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마주 보고 앉아서 OHP 가사를 넘겨주면서 순간순간 내게 힘을 주었었다.
30의 고개를 함께 넘으면서 우리는 함께 결혼을 준비했다. 우리에게 적절한 사람이 어떨지에 대한 고민을 내 일 처럼 하고, 소개팅 한 것이 있으면 미주알 고주알 보고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했다.
난 늘 명선이를 생각하면서 이 찬양을 되뇌었다.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이 찬양으로 명선이를 축복했다.
어느 새 다섯 살 짜리 딸을 둔 아이 엄마들이 된 우리. 명선이는 볼 때 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다. 가끔씩 만나는 명선이는 '사모님' 이라는 호칭이 썩 잘 어울리고....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지 새벽기도를 빠짐 없이 하고, 불편한 시골 생활을 기꺼이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명선이를 지켜본 나는 명선이가 얼마나 독립적인 사람인 지 안다. 명선이의 자취하던 방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인간관계가 얼마나 깔끔하고 담백했는지, 자기관리가 얼마나 칼 같이 되었는지...... 그러면서 웬만한 사람들이 쉽게 그녀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의 명선이는.............
교회와 맞붙은 목사님 사택에 사는 사모님이다. 매주일 명선이 집에서 전교인이 식사를 한다. 주방에는 명선이 살림이 있고 또 교회 살림이 따로 있다. 집안의 가구 배치도 주일 점심식사가 용이하도록 하는 것을 최대한 고려해 놓은 듯 하다.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 그러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명선이네 세 식구가 사는 집'이라는 울타리 자체가 없는 듯 하다. 맞다! 울타리! 바로 그거다!
예전의 명선이는 울타리를 분명하게 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없어졌다. 이 부분에 생각이 닿으면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차올라와 눈을 통해 나오고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삶을 드리겠다고 결단할 수 있다. 삶을 드리겠다는 것은 뭔가? 탁 까놓고 말해서, 삶을 다 드릴 수 있다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보다 내게 익숙한 작은 습관을 고쳐 헌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래서 진정한 헌신은 후자가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명선이 자신도 대단치 않게 여길 헌.신. 내 눈에는 달라진 명선이 모습 속에서 바로 그 '헌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 헌신에 감동 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며칠 전 명선이를 만나고 온 이후로 감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을 얻었다.
명선아!
사랑해!
목사님과 너, 하민이를 위해서 매일 매일 축복하며 기도할께.
너랑 친구인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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