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대 음악치료 대학원 홈페이지에 가면 '최고로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는 제목의 칼럼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음악치료라는 학문을 들여오고 음악치료 대학원을 만들고, 음악치료사를 양성해낸 교수님이 쓰신 것입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치료로 뭔가 대단한 것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저는 음악치료대학원 2기이기 때문에 공부하던 시절에 직업에 어떻게 창출될 지에 대해서 안개 속 같았습니다
그 때 마다 교수님의 약간은 선동적이 구호 한 마디로 희망에 부풀곤 했었지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숙대 음치대학원 홈피에 가면 저런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가서 봤습니다. 스포츠에 워낙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그 대단했다던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경기에 대한 기억이 전무합니다. 남편이 어렸을 적에 핸드볼 선수였다는 것 정도의 관심으로 영화를 보러 간 것입니다.
연장전에 연장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이기겠지? 해피앤딩을 해주겠지?' 남편이 그랬습니다. '글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데 그렇게 할라구. 실제에서는 졌잖아' 이러는데 처음으로 이게 실화를 근거한거구나 알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무식하다니깐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슬프게 끝나면 도무지 거기서 며칠을 헤어나오질 못하는지라 이기기를 바랬습니다. 마지막 연장전 직전에 가 까칠하던 감독이 선수들에게 그랬습니다. '여러분, 약속 하나 합시다. 혹시 이 경기에서 지더라도 울지맙시다.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요.
그리고 결국 문소리가 넣은 마지막 패널티킥(이거 이름 맞나?^^;)이 실패해서 지게 되었습니다. 하필 영화 속에서 그렇게도 지지리 일이 안 풀리던 문소리가 실패의 골을 던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한 마지막 골이 들어가던 장면이 인상깊게 그려져 있습니다. 골이 어떻게 들어가서 상대편 골키퍼가 어떻게 막아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승부차기를 할 때처럼 카메라가 공을 따라가지 않고 카메라는 계속 문소리를 비치고 있었습니다. 골이 안 들어간 것은 문소리 뒤에 있던 상대편 선수들이 좋아라 부둥켜 안는 것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사운드도 다 죽였습니다. 그저 흐릿하게 보이는 상대 선수들과 문소리의 표정이 골의 운명을 보여주었습니다.
참 인상이 깊었습니다. 빚에 찌들고 남편은 자살을 기도한 상황에서 마지막 던지 자신의 골로 경기에 지고 말았는데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미 경험했다고요. 이제 영화는 끝났고 문소리는 금메달의 포상금도 못 받을테고 이미 끌어다 쓴 돈을 갚을 수도 없는데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다고요?
남편의 지난 학기 성적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 성적입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한 문자만 줄을 서 있는 성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난 학기는 여러가지 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없어서 거의 '학점 포기' 선언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참으로 은혜다' 하는 말에 남편이나 저나 백 배 공감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것 알지만 남편보다 탁월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것 같아. 원 없이 공부하고, 이렇게 좋은 학점으로 보상을 받고....' 남편이 그럽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남편이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며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지난 2년 동안 경험한 은혜는 사실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남편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미 경험했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인정하며 감사하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대해서는 '받은 복을 세어보아'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일인 지모르겠습니다.
이미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믿으며 모든 성공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참 목회자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고로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말도 좋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미 경험했다' 이것도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려가며 '최고의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사는 삶은 별로 땡기지가 않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지만 두 아이로 인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과분할 만큼 누렸다고 믿으며, 그것만으로 두 아이에게 고마워하며 살고 싶습니다. 결혼 8년 동안 내 부족함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도 기다려준 남편으로 인해서 최고의 사랑을 이미 받았다고 믿으며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입도 뻥끗하지 않던 녀석이 내 기타 소리만 나면 활짝 웃으면서 뭔가 소리를 내보려고 입을 오물거리는 그 모습으로 감격하여 가슴이 뭉클하던 그 순간에 저는 이미 음악치료사로서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이 나이에 뭔가를 차려야 하지 않을까, 공부를 더 해서 이제는 더 영향력이 있는 위치로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내려놓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웬만한 설교를 들을 것보다 더 많은 도전과 묵상을 건져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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