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번째 노래
가끔씩 내 인생의 첫 번째 노래, 첫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 어떤 이유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재미와 의미를 다 누리는 삶이라는 자부심의 힘이 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도 않았었으니 조금 정서적 과장을 하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운명 같은 만남으로 음악치료사가 되었다라고 혼자 소설을 쓰기도 한다. 성악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형편 상 그것은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음.악.치료사이다. 음악과의 운명 같은 만남은 생애 첫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앙심이 좋은 엄마는 늘 나를 안고 찬송가를 불러줬다.(고 하셨다.) 우리 큰 아이를 키워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그려볼 수 있었다. 생후 한 달이 안 된 아이를 안고 친정엄마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셨다. 그리 잘하는 노래도 아니었고, 가사는 물론 음정도 엉망인 노래들이지만 그 모습은 적잖이 감동이었다. 내게 음악이 운명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결국 운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생애 첫 노래도 그러했을 것이다. 눈맞춤은 커녕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인 나를 안고 엄마는 노래하셨을 것이다. 품에 안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노래하셨을 것이다. 가끔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란 말인가, 감동에 겨워 목이 메었을지도 모른다. 나 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억을 해내진 못하더라도 이런 엄마의 노래가 무의식 어느 구석에 살아있을 것이다.
음악 하는 엄마, 내 아이의 음악치료사 되기
지난 세 번의 지상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음악치료 대상 중 지적장애, 정신질환, 노인질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음악치료의 대상은 발달장애, 신체장애, 여러 감각장애는 물론 일반의료 분야, 장애나 질병이 없는 일반인까지 폭넓다. 왜 아니겠는가. 음악은 언어 그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기에 장애와 비장애, 질병과 건강의 상태를 아우를 수 있음은 당연하다. 또 우리는 음악이 사람의 신체, 심리, 사회적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음악치료의 대상 가운데 음악적 자극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결과을 얻을 수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아기들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음악적인 자극을 흡수하는 힘이 크다. 음악적 자극뿐이겠는가. 뇌세포가 활발히 형성되는 시기이고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떤 자극이든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시기라고 한다. 장애 아동든 정상발달 아동이든 막론하고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어리면 어릴수록 더 크리라는 것이다. 음악치료사들 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맘, 무슨 맘, 해도 뮤직맘이 최고다! 아기에게 노래불러주는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없다.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연재글 ‘음악치료의 세계’ 마지막 회인 오늘의 주제는 ‘엄마의 노래’이다. 음악을 전공한(아니 굳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음악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엄마들이 자신의 아기들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음악치료적 팁을 드리려고 한다.
지금 여기서 아이와 함께 뮤직에 샤워하기
음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엄마들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 손을 잡고 문화센터를 찾고, 장애를 가진 아기를 휠체어에 태워 음악치료실을 찾는다. 교사나 치료사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음악활동이 아이의 발달에 유익을 끼친다고 할 때,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 하는 엄마가 해주는 음악놀이야 말로 더 없는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음악은 집과 유치원, 학교, 일상생활 어디에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음악’이라는 멋진 도구를 손에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손에 들려진다면, 그리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엄마에 의해서 잘 사용되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놀잇감이 없을 것이다. 아니 너무 바빠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짧은 엄마라도 그 시간을 음악을 가지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엄마는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심장박동과 따뜻한 목소리로 최초의 소리를 제공한 당사자이다.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자장가를 들려주면서 아이를 재우고 달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온 과정을 눈으로 지켜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함께 자랐던 엄마는 누구보다 아이를 제일 잘 안다. 엄마 치료사,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음악놀이는 엄마 자신에게도 같은 유익을 줄 것이다.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예를 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화를 내기는 어렵다. 아이와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듣는 동안에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어렵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음악으로 논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아이의 부정확한 음정이 거슬리거나, 박자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하며 하는 것 자체도 즐거움일 수 있다. 음악과 함께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어머니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 엄마가 음악의 매력과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아이도 함께 행복감을 느끼며 누릴 것이다. 따로 시간을 떼에 놓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으로 음악활동을 끌어들이는 것이 좋다. 다음의 노래와 활동을 재료삼아 더 풍성한 음악놀이로 응용하시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노래’를 아이와 함께 부르실 수 있기를.
<묻고 대답하는 노래>
준비물 : 없음.
방법 : 노래를 충분히 익힌 후에 어떤 내용이든 묻고 대답할 수 있다. 엄마가 질문부분을 노래하면 아이가 대답하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아이가 말로 대답하도록 하고 엄마가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를 불러준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 라고 엄마가 노래를 불렀을 때 아이가 ‘다영이’라고 말로 대답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다영이예요.’라고 엄마가 노래 만드는 것을 모델링한다. 반복하면 아이가 스스로 바로 노래로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상황에 따라 어떤 질문도 가능하다. 과자를 사러 갈 때 ‘채윤이는 무슨 과자 먹고 싶나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라고 물을 수 있고, 기분이 어떤지, 지금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등. 묻고 대답하는 노래가 익숙해지면 엄마와 아이 사이 둘만 아는 비밀통로처럼 흥미로운 소통방식이 될 수 있다.
<피아노-테니스공 즉흥연주>
준비물 : 피아노, 테니스공 4개.
방법 : 엄마와 아이가 두 개의 테니스공을 양손에 쥐고 테니스 공으로 피아노 즉흥연주를 하면서 교류한다. 아이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하는 미러링(mirroring)을 해주거나, 아이의 연주를 따라하되 리듬을 조금씩 변형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리듬이나 연주방식을 모델링해주기도 한다. 연주가 끊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역동성을 금방 느낄 수 있어서 연주만으로 아이와 역동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
<사랑해 사랑해>
준비물 : 없음
방법 :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엄마가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만 해도 좋다. ‘사랑해’라는 말은 늘 하고 싶지만 말로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붙여서 아기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아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잘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로 새겨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이의 이름을 넣어 축복의 말을 들려줄 수 있는 노래라면 어떤 노래든 좋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노래할 수 있다면 엄마를 향해서 노래를 불러주고 스스로 스킨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면 안아주세요, 사랑한다면 간질러줘요, 사랑한다면 윙크해줘요.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탬버린 탬탬탬>
준비물 : 탬버린
방 법 :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함께 노래하면서 ‘탬탬탬’ 부분에서 아이가 탬버린을 연주하도록 대준다. 엄마는 탬버린을 높이 올렸다가 낮은 곳에도 놓아주면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도망 다니고 아이는 박자에 놓치지 않게 ‘탬탬탬’ 부분을 치기 위해서 엄마를 잡으러 다니는 방식으로 놀이를 할 수 있다.
<섬 집 아기-트라이앵글>
준비물 : 트라이앵글
방 법 : 트라이앵글은 엄마가, 채는 아이가 들고 ‘섬 집 아기’ 노래를 부른다. 마디의 첫 번째 박에서 트라이앵글을 칠 수 있도록 엄마가 그 박자에 대주도록 한다. 단순한 활동이지만 어디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말로 하지 않아도 엄마가 조절해줄 수 있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느끼며 함께 소리를 내는 것이 트라이앵글의 공명만큼이나 정서적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색깔창문>
준비물 : 여러 색깔의 셀로판지
방 법 : 셀로판지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도록 아이 눈 앞에 대주고 노래를 부른다. 가사 속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고, 아이가 익숙해지면 스스로 가사를 넣어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큰 아이들과는 가사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 나눠 볼 수 있다.
An die music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치료’의 세계를 안내하던 이 연재글을 마친다. 짧지 않은 글이었지만 음악치료 세계의 숲을 제대로 보여드리지도, 그렇다고 나무를 세세히 알려드리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음악치료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치료 속에서 음악이 사람보다 앞서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은 철저하게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존재한다. 제럴드 무어(Gerald Moore)가 그의 반주인생 내내 자신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늘 신경 썼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음악치료사는 어떤 의미에서 음악 소리가 사람의 소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그가 자신의 고별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An die music’을 들으며 글을 맺는다.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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