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 학교 학부모 활동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올 해 녹색 어머니 교통지도를 하게 되었다. 2학기 개학날로부터 사흘을 섰는데....
꼴랑 사흘 하루 40분 서서 녹색어머니 한 번 해보고 건져올린 생각 주절거리기. 시작.
마음의 성장, 인격의 변화.
이것이 30대에 음악치료를 하면서,
아니다. 20대에 기독교세계관을 공부하며 이원론을 접하면서,
아니다. 청소년기에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처음 고민할 때부터....
그 때부터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런 질문과도 통한다.
'믿음이 좋은데 왜 인격은 이 모양인가?'
'기도를 한다는데 왜 이리 견고한 진같은 완고함 덩어리인가?'
'하나님을 목터져라 부르짖는데 왜 사랑이신 그 분이 느껴지질 않나?'
등등...
이런 질문들이 결국 내게는 다 '마음의 성장'으로 통한다.
때문에 내게 마음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고, 모든 것이다.
내 마음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는 관점, 나에 대한 의식은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흘 동안 하루 하루 달라지는 자의식의 변화에 마음의 여정을 비추어보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pre 녹색
녹색 어머니를 한단 얘길 들고 가족들의 이바구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빠는 '현승이 너 인제 클났다. 니네 엄마 녹색 하면 인제... 니 친구들 오면 손 흔들고, 민영아 안녕! 하면서 난리부르스 칠텐데 챙피하겠다'로 시작해서.
채윤이는 '아우, 생각만해도 웃겨. 옷이 엄마한텐 다 클텐데....' 이러고.
결국 집을 나서는데 현승이는 '엄마, 이따 나 보면 손 흔들지마. 진짜야. 진짜 손흔들면 안돼. 그냥, 살짝 소리내지 말고 나 쳐다보고 웃기만 해. 알았지. 진짜야!' 다짐을 했다.
+1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는 녹색어머니에다가 워낙 학교하고 담 쌓고 살아서 '나는 학교에 대해서 모른다' 의식에 충만해서 너무 긴장이 됐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옷과 모자가 들어있다는 캐비넷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 쪽팔림을 무릅쓰고 대표엄마에게 문자를 찍어서 '전송'을 누르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캐비넷.
암튼, 파란 제복을 꺼내 입고, 명성교회 앞 사거리로 가서 깃발을 찾아들었다. 아우, 신호등 색깔 바뀔 때마다 깃발을 옆으로 옮기는데 이거 절도 있게 해야할 지, 슬쩍 해야할 지 부터 시작해서 버스지날 때 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저 애들 축복하는 기도나 해야지. 하면서 이 뻘쭘한 상황을 나름대로 극복해보려는 어설픈 노력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딱 현승이 밖에는 못 봤고 애들은 다 똑같은 얼굴인 것 같고, 현승이 친구들이며 우리 동네 애들을 하나도 못 봤다. 출근하는 아가씨들, 애들 데려다주는 아줌마들 하고 눈 마주치면 바로 눈깔고 뻘쭘과 쪽팔림 속에서 40분을 보내고 첫날을 마쳤다.
온통 우스꽝스런 내 모습만 가득한 아침, 1일차.
+2
제복도 집을 가져왔겠다. 어제 한 번 서봤겠다. 아침에 나가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서 있기 시작하는데 지나는 아이들을 보니깐 그 누구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 뿐이랴 행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횡단보도 옆에 있는 전봇대처럼 등교길에 늘 있는 녹색아줌마였다.
어제는 그렇게 나로 충만하여 등교길 명성교회 앞 사거리가 온전히 파란 옷 입은 나로 가득찼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긴장이 풀리면서 바로 옆에서 공사를 하는 포크레인 구경에 정줄을 놓기도 했다. 신호등 색깔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내게 어떤 여자 아이가 '아줌마! 빨간불인데요' 하면서 친절한 지적을 해 줄 지경이 이르렀다.
커다란 등교길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식한 2일차.
+3
한결 여유가 생겼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더 홀가분하기도 했다.
어제 그 포크레인도 없으니 신호등도 보고 애들도 하나 하나 보곤 했는데, 세상에 아는 애들이 그렇게 많네. 그 애들과 따듯한 눈인사도 하고, 신호등 한 칸 남았을 때 뛰는 아이들 마지막 건널 때까지 눈으로 지켜봐주기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정줄을 잡고 서 있으니 현승이 친구 민영이가 '아줌마, 현승이 갔어요?' 하면서 먼저 알아보고 말도 시켜주었다. 삼 일째 비로소 불필요한 긴장와 미약한 존재감에 대한 위축을 넘어서 힘빼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온통 나/아무것도 아닌 나'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찾은 조금 균형잡힌 자의식의 3일차.
세상보다 큰 나,
커다란 세상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는 미미한 나.
이 '두 나'를 모두 '나'로 통합시켜 잘 받아들일 때 홀가분해지고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썰은 끝나고 뱀의 발)
아놔, 김현승 이 자식! 손 흔들지 말라고(요란스럽게 인사해서 주의가 자기에게 쏠리도록 하지 마라) 다짐에 다짐을 해놓고는. 저 쪽에서 오는데 눈이 딱 마주쳐서 난 약속대로 살짝 웃어줬는데.... 이 녀석 소화전 뒤에 딱 들어가 숨어 있다다 파란불 바뀌니까 탁 튀어나와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신발주머니 든 손 살짝 흔드는둥 마는둥 하며 도망가네. 내가 뭘 어쨌다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