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보려고 강에 나갔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

봄이 오긴하는 것 같은데 하늘은 무겁고 내려앉았고 바람은 거셉니다. 무엇엔가에 이끌려 다시 강에 나갑니다. 오전에 모임 하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마음의 소리들을 잠재우고자 강을 찾은 것이겠지요.

중학교 영어 시간에 'Look at the bright side' 라는 말을 배우고 거기 한참 꾲혀있었지요. 긍정적인 면을 보자. '물컵에 아직 반 잔이나 남았네. 이러는 게 좋지. 에잇, 반 밖에 안 남았네 하는 게 좋냐?' 이런 선생님의 말씀에도 큰 배움을 얻었지요.
날이 갈수록 진실은 밝은 쪽에만 있지 않고(그렇다고 그 이면에만 있는 것도 아니겠지) 밝은 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찾아진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마음의 여정, 영적인 여정은 특별히 그러합니다.

이렇게 에둘러서 말하는 버릇 고쳐야하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겁니다.

암튼 오늘 모임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충 자신을 소개하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얘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집단여정이라는 걸 하면서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중에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유도 얻지만 한편 방학 내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함부로도 하고 상처도 주고 그러다보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내 어린시절 상처 돌아본다 어쩐다 하면서 지금 내 아이들에게 충분히 수용적이지 못하고요. 그리고 저는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이사를 오는 통에 음악치료 할 곳을 적절하게 찾을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많구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얘기하시는 분이 이러십니다. '저희 가정은 천국입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매끼 따뜻한 밥 해서 나누고 그렇게 지내는 내내 행복했구요.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를 합니다'

그 분의 나눔이 진실이라는 것도 알고, 내 얘기에 연이어 나왔다 할찌라도 내 얘기와 빗대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들으면서, 듣고나서 내 속에서 이러는 겁니다. '어? 나도 행복하다면 행복한데... 나도 방학동안 애들한테 따순밥 해주고 좋은 때도 있었는데. 그리고 딱히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저 분이 저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되게 믿음도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분의 고백이 백 번 진실이어도 저는 그런 나눔이 불편합니다. 일단 정말 본인이 행복해도 그 안에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믿기 때문에 무엇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대체로 신뢰가 잘 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약함을 고백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유독 공동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에 꽂혀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모여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고, 그렇게 내보일 때 누구도 판단하거나 섣불리 설교하고 가르치지 않으며 수용해주는 그런 공동체 말이지요. 사로잡혀 있는 만큼 기대가 높고,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많이 합니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가가고 싶으니, 이것은 얼마나 높은 이상입니까.

남편에게 넋두리 하며서 그랬습니다. '하긴 내가 원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나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거야. 다들 나처럼 목마르지만 방법을 모르겠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그랬더니 남편이 '맞아. 여보. 당신이 목마른 누군가의 목을 축여주면 당신의 목마름은 하나님이 채워주셔. 그게 답인것 같아'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를 꿈꾸며 삽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부터 나는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 좋은 것 밝은 것만 드러내기 원하는 사람, 우울하고 어둠에만 빠져있는 사람,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듣는 척만 해주는 사람, 지적인 사람, 머리 쓰기 싫어하는 사람, 진지한 사람, 경박한 사람 모이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일 겁니다. 나 역시 그런 어떤 사람 중 하나이고요. 이미 왔으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처럼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는 내가 꿈꾸고 남의 마른 목 축여주는 순간 이미 임하는 걸 볼 것이고, 이렇게 가는 길 끝에서 그 분의 품에 안길 때 아름답게 완성되겠지요.

2012년, 척박한 곳에서 다시 한 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꿔봅니다.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얻고 잃고 다시 얻다  (6) 2012.03.18
하늘과 구름과 새와 나무  (7) 2012.03.14
즐겁게 안식할 날  (2) 2012.03.04
페북 생각  (10) 2012.03.03
설교자, 권위자  (0) 2012.02.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