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지 두어 주가 지났습니다.
이번 이사에서는 이삿짐 정리보다 더 어려운 게 마음의 정리였답니다.

풀타임 사역을 준비하면서 남편도 자신도 그렇지만 제게 은근히 강조했던 것이 '낮은 곳으로' 였습니다.
사역자가 어떤 의미로든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끝!이다.
'낮은 곳으로'의 영성은 헨리나웬에게 배운 것이었고, 3학년 말에는 저 역시 '낮은 곳으로'의 영성을
마음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풀타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너무 좋은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들 크고 깨끗한 집을 마다하겠습니까만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여보! 당신 정도의 부교역자 수준에서 전국을 통틀어서 아마도 우리는 상위 1%의 집에서 사는거야.'

도대체 집안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집은 그야말로 내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어디둬야 할지 모른다니요.

예전 집 거실을 제가 사랑했습니다.
새 둥지 처럼 작고, 아늑하고, 음악이 있고, 책이 있고요.
거실에서 오디오를 바라보고 앉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고, 차분해지고, 묵상하게 되곤했습니다.
볕이 많이 들지 않아서 빨래를 빠닥빠닥하게 말릴 수 없다는 것 외에는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 온 집에서 남편도 그렇게 바라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고,
베란다를 방으로 어르고 달래서 책상 놓고 살았던 채윤이에게도 방이 생겼습니다.
'칫! 나만 내 공간이 없어졌어' 하면서 엄청 투덜댔습니다.
'안방도 거실도 주방도 다 엄마 꺼잖아' 하는데 그럴수록 불만은 더 커집니다.
이사오면서 거실에 양쪽으로 책꽂이를 놨는데 도대체 이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저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지 안정이 되어야 말이죠.
그걸 가지고 며칠을 투덜거렸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탁자를 쭈욱 밀어서 베란다 쪽으로 붙이고
앉아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와~ 앞이 탁 트인 게 갑자기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책이 저절로 술술 읽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집이 문제가 아녜요. 꼬인 내 마음이 문제죠. 마음이 꼬이고 불만이 가득차면 창의성이
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은 새롭게 하시는 영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 놓고 그 분을 바라면 새로운 눈이 열리고 새롭게 되지요. 아주 조금 문을 여는 것 조차도 내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책상 위치 조금 바꾸니 복잡해서 말로 표현이 안된다고 여겨졌던 상황과 마음이
조금씩 단순해집니다.

확 트인 시야처럼 마음의 창문도 조금씩 더 열리기 시작하고요.
이제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껏 누리며 저 자리를 그 분과 만나는 새로운 자리로 만들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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