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꽂혔다.
지난 겨우내 옆에 끼고 있던 <사랑의 각성> 탓일 수도 있고,
에니어그램과 함께한 작년 1년의 여정의 종착점이 '사랑' 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는 내 평생 그렇게도 닮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나의 그 분의 별명이 '사랑'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의 심장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쉽고, 그러면서 어려운 길은 '사랑' 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난 사랑에 꽂혔다. 사랑에 꽂혀서 매일 내 사랑을 점검 중이다.
어떤 사람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 지를 감별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사랑인지, 사랑하는 척하는 지를 아주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하면 지는 거다. 사랑하면 제압할 수 없고, 사랑하면 힘을 행사하거나 밀어 붙일 수 없다. '다 너 위해서 그러는거야. 나중에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될거야'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부모는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사랑하면 힘이 빠진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진짜 사랑하게 되면 언제든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근처를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사랑하면 가장 약자에게 약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관에게 하는 깍뜻하고 따뜻한 태도가 진짜 사랑인지 가늠해 보려면 그 사람이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는 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어떤 장사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정말 친절하게 서비스하는데 그게 직업정신인지 사랑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검증되지 않을까? 약해지고, 유순해지고, 겸손해져서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게 있다면 그 대상에게는 사랑하는 척 하기가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내 사랑과 친절이 진짜인지 알려면 내게 가장 약한 사람에게 대하는 방식을 봐야겠다.
내게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강의를 통해 만나는 학생들, 음악치료나 음악교육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엄마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 청년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를 관리할 수 있다. 남편이 '제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웃으면서 태어났어요' 라고 할 만큼 난 웬만한 일에 허허롭게 웃어줄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랑의 제스춰로 대할 수 있다. 나를 가장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은 채윤이다. 내 자식이고, 겉은 아니지만 속은 나를 쏙 빼닮아서 그 속에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겠는 존재. 동생 현승이보다 성격이 쿨해서 웬만한 일에 잘 삐지거나 상처도 안받는 듯 보이는 채윤이. 말 안 듣고 뺀질거리고 끝까지 이유와 변명을 들이대며 매를 부르는 존재 채윤이. 어려서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하더니 갈수록 내 맘대로 안 되는 채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최대한 허용해주고, 존중해주는 태도 채윤이나 현승이 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헌데 두 아이들, 특히 채윤이와의 관계라면 얘기가 틀려진다. '엄마 방법이 더 옳아' 라며 강요하고, 외면하고, 굳은 표정으로 아이의 진심을 안 받아주고, 통제하는 게 내 모습이다. 경직된 표정으로 채윤이의 잘못을 꾸짖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청년들에게 밝은 미소 지으며 '어서 와. 저녁은 먹었어' 하는 내 모습을 제3자다 되어 관찰할 때 난 주저앉고 싶다. 내게 가장 약자인 채윤이게 한결같이 가 닿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려서의 채윤이나 지금의 채윤이는 사실 달라진 것이 없는데 채윤이를 향한 내 욕심이 달라진 걸 인정한다. 어려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이뻤지만 지금은 엄마인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도구로 삼고 싶은 욕심 말이다. 좀더 인사를 잘 해서 예의 바른 애가 되어줬으면, 뭐든지 잘 하는 애가 되어줬으면, 자기 일을 성실하게 스스로 잘 하는 아이가 되어줬으면......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해 줬으면 하고 말이다. 사람을 도구화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사람을 생기나게 하고 살맛 나게 하는 것이라면 힘으로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은 그 반대다.
매일 매일 채윤이에 대한 내 태도, 그것으로 나는 내 사랑을 점검한다. 채윤이에게 친절하고, 오래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내 유익을 구치 않는 태도로 한결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어설픈 사랑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청년들을, 그리고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척 하는가?
사랑하면 지는 거다. 가장 약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지는 거다.
지난 겨우내 옆에 끼고 있던 <사랑의 각성> 탓일 수도 있고,
에니어그램과 함께한 작년 1년의 여정의 종착점이 '사랑' 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는 내 평생 그렇게도 닮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나의 그 분의 별명이 '사랑'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의 심장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쉽고, 그러면서 어려운 길은 '사랑' 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난 사랑에 꽂혔다. 사랑에 꽂혀서 매일 내 사랑을 점검 중이다.
어떤 사람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 지를 감별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사랑인지, 사랑하는 척하는 지를 아주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하면 지는 거다. 사랑하면 제압할 수 없고, 사랑하면 힘을 행사하거나 밀어 붙일 수 없다. '다 너 위해서 그러는거야. 나중에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될거야'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부모는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사랑하면 힘이 빠진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진짜 사랑하게 되면 언제든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근처를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사랑하면 가장 약자에게 약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관에게 하는 깍뜻하고 따뜻한 태도가 진짜 사랑인지 가늠해 보려면 그 사람이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는 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어떤 장사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정말 친절하게 서비스하는데 그게 직업정신인지 사랑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검증되지 않을까? 약해지고, 유순해지고, 겸손해져서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게 있다면 그 대상에게는 사랑하는 척 하기가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내 사랑과 친절이 진짜인지 알려면 내게 가장 약한 사람에게 대하는 방식을 봐야겠다.
내게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강의를 통해 만나는 학생들, 음악치료나 음악교육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엄마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 청년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를 관리할 수 있다. 남편이 '제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웃으면서 태어났어요' 라고 할 만큼 난 웬만한 일에 허허롭게 웃어줄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랑의 제스춰로 대할 수 있다. 나를 가장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은 채윤이다. 내 자식이고, 겉은 아니지만 속은 나를 쏙 빼닮아서 그 속에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겠는 존재. 동생 현승이보다 성격이 쿨해서 웬만한 일에 잘 삐지거나 상처도 안받는 듯 보이는 채윤이. 말 안 듣고 뺀질거리고 끝까지 이유와 변명을 들이대며 매를 부르는 존재 채윤이. 어려서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하더니 갈수록 내 맘대로 안 되는 채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최대한 허용해주고, 존중해주는 태도 채윤이나 현승이 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헌데 두 아이들, 특히 채윤이와의 관계라면 얘기가 틀려진다. '엄마 방법이 더 옳아' 라며 강요하고, 외면하고, 굳은 표정으로 아이의 진심을 안 받아주고, 통제하는 게 내 모습이다. 경직된 표정으로 채윤이의 잘못을 꾸짖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청년들에게 밝은 미소 지으며 '어서 와. 저녁은 먹었어' 하는 내 모습을 제3자다 되어 관찰할 때 난 주저앉고 싶다. 내게 가장 약자인 채윤이게 한결같이 가 닿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려서의 채윤이나 지금의 채윤이는 사실 달라진 것이 없는데 채윤이를 향한 내 욕심이 달라진 걸 인정한다. 어려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이뻤지만 지금은 엄마인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도구로 삼고 싶은 욕심 말이다. 좀더 인사를 잘 해서 예의 바른 애가 되어줬으면, 뭐든지 잘 하는 애가 되어줬으면, 자기 일을 성실하게 스스로 잘 하는 아이가 되어줬으면......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해 줬으면 하고 말이다. 사람을 도구화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사람을 생기나게 하고 살맛 나게 하는 것이라면 힘으로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은 그 반대다.
매일 매일 채윤이에 대한 내 태도, 그것으로 나는 내 사랑을 점검한다. 채윤이에게 친절하고, 오래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내 유익을 구치 않는 태도로 한결 같을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어설픈 사랑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청년들을, 그리고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척 하는가?
사랑하면 지는 거다. 가장 약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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