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을 맞이해서 우리집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채윤이 고모가 제안을 했고, 만장일치로 손주들로 구성된 공연단이 나름대로 각자 연습,
당일 만나서 대충 맞췄지만 구색이 잘 맞은 공연입니다.
공연에 앞서 우리를 찡하게 만든 자막입니다.
어머님 표현에 의하면 몸이 힘들셔서 '진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달력을 붙여 만드신 우리 아버님표 자막.






당일 결혼식이 있어서 늦게 도착해보니 손주녀석들이 순서지도 만들어 놓고 연주회 분위기 굿입니다.
이 날의 코드는 '부끄러움'이었는데 식구들이 죄다 부끄러운 분들이라.....
어찌어찌 막내 아들인 채윤이 아빠가 사회를 보게 되어 어색한 오프닝을 합니다.






아버님 암진단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았고, 여러 모로 누구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막내 아들이지만,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아픔과 죽음에 직면하여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하며,
그 답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며 위로하는 자로 굳건히 서기 위해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출연진들이 다들 조금씩 부끄러워 하시는 것이 오늘의 코드랍니다.






자, 부끄럼 실내악단이 연주하는 파헬벨의 캐논입니다.
순수하게 편곡은 김채윤 양 입니다.
오빠의 베이스, 언니의 플륫, 현승이의 바이올린 나름대로 고려하여 편곡하고 본인은 반주를 넣어줍니다.







현승이가 연주하는 <미뉴엣> 반주는 김채윤이 '왜 내가 반주를 다 해야 하냐!'며 나가 떨어지셔서
부득불 엄마의 어설픈 반주 찬조가 되었습니다.
김현승이 중간에 틀린 이유는 보면대의 고정핀이 악보를 가려서 입니다.
연주를 마치고 김현승이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믿어주십쇼.







부끄러움 종결자 혜인언니의 <사계> 연주입니다.
연주회 내내 식탁 의자에 앉아서 야윈 등만 보여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슴이 뭉클하고 한 구석이 그저 묵직하고 아플 뿐입니다.







요즘 한창 연습 중인 슈베르트 즉흥곡을 연주하는 김채윤입니다.
그랜드 피아노 아니면 연습하기도 싫다면서 학원 가서 연습하면 안되냐고 까탈을 부리시는데,
헛개비 같은 헐렁헐렁한 디지털 피아노 건반으로 황공하옵게도 연주를 해주십니다.
자주 틀리는 건 악기 탓이라고 해두죠.

 







모든 식구들이 모두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범식이 형아와 현승이의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남다릅니다.
아니, 할아버지의 두 손주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고 하는 게 맞을지요.
엄마를 두고도 할아버지의 살뜰한 손에 자란 범식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연주합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우리 아버님을 지으신 그 하나님의 손길이 쇠약해지신 그 몸 또한 귀히 보시고 있는 줄 믿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76년의 긴 인생길을 달려오신 아버님.
그 인생길 구비구비에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어버님, 두렵고 힘드시지요?
아버님 좋아하시던 얼큰한 음식 못 드시는 생각에 얼큰한 건 먹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먼저 매워져요.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고, 아버님의 고통 앞에 무력할 뿐이지만.
기도해요.
아버님을 지으신 그 손길이 아버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붙드시길요.
그리하여 우리 앞에 놓인 내일이 어떠하든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발을 내디딜 수 있기를요.




 

 

 

 

연주회가 끝나자 아버님께서 종이 한 장을 또 꺼내시더니 세로로 붙이십니다.
이 날은 김종필 아빠의 생일이기도 하였던 터.
우리 아버님 이런 분 이시죠. 손으로 뭘 만드시길 좋아하시고, 만드시되 꼭 집에 있는 걸 활용하시지요.
그리고 말 없이 세심하시지요.







우리 가족 작은 음악회는 이렇게 아버님의 막내 아들 사랑으로 끝이 나네요.
이후에는 아버님이 쏘신 치킨과 피자로 초딩 생일축하 같은 파티가 있었다지요.


아버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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