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전 진단을 받으신 이후 병원과 집안에만 계시던 아버님이 드디어 바람을 쐬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약속은 돼있었지만 주일날 교회 가시려 나서셨다가 기운이 없으셔서 다시 들어가셨다는
말씀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기운을 내서 나가시겠다고 하시고,
양평 쪽으로 가자고 하시고,
처음으로 고기를 드시겠다고 하셔서 반갑고도 기뻤습니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아버님의 힘겨운 발걸음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하늘이 저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아버님과 함께 있음을 즐기라'고요.






분위기 띄우시려고 '평생 니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있어야지' 하시다가,
'어머니, 아까 가스검침기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시던데 평생 그런 일 아버님이 다 해주시고...
어머니 공주로 사신 거예요' 하면서 며느리 아버님편이죠, 아들 아버님편이죠.
본전도 못 건지신 어머니.






'난 믿음이 있어 강하다'고 하시지만
아버님 곁에서 누구보다 몸과 마음 고생이 심하실 어머니입니다.
가족 모두 걱정과 염려 속에서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들이 드러나 서로를 찌르기 쉬운 어려운 때입니다.
두 분이 함께 살아오신 세월을 감사하시며, 서로에게 못했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며 더 영원한
장래를 약속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한 때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기도 했을 막내아들 입니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약해지신 아버님을 마음의 무등, 영혼의 무등을 태워드릴
차례입니다. 막내아들이 사랑의 사람으로 잘 준비되었기에 아주 조금 아버님의 손을 잡아드리며
힘이 되어드릴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은 단단해졌고, 더 큰 사랑에 눈을 떠가고 있으니까요.



 



아버님 진단을 받으셨을 때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아득하여 깜깜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저는 이제 아버님 앞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울며 외면하지만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먼저 죽음을 손님처럼 받아들인 후에,
지금 아버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오늘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우리 넷이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푸르름 속에서 대추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는 이 좋은 시간들을 말이예요.






슬픔이 오면 슬퍼하되, 슬픔으로 오늘을 허비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버님께 이 아름다운 세상에 소풍 오셨다 본향을 돌아가시는 기쁨을 함께 일깨우며
저 또한 그렇게 삶을 살겠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과의 데이트!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歸天  (12) 2011.06.11
아버지와 죽음  (14) 2011.06.03
할아버지 힘 내세요! 작은 음악회  (12) 2011.05.13
둘이 하나 된 지 12년  (17) 2011.05.07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23) 2011.01.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