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이었습니다.
도통 다른 교회 예배를 경험할 수 없는 목회자에게는 금쪽 같은 날이라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교회 몇을 물망에 올렸다가 최종 선택한 곳이 양화진에 있는
100주년 기념교회였습니다.
시간이 그닥 늦지도 않았는데 본당에는 못들어가고
어느 별관에서 스크린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쉬워서 이재철목사님 설교 CD를 몇 장 사왔습니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교회 옆 성당을 한 두 장 찍었습니다.
2.
많은 이유로 예배가 기쁨의 자리가 아니라
일주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가 된 지가 오래였습니다.
주일이 아닌 날에 기도와 일상 속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아주 또렷이 보이는데
예배의 자리에만 가면 하나님은 먹구름 뒤 푸른 하늘처럼 숨으시고
도통 하늘 향기를 느낄 수 없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버지 앞에 안기라는 사랑의 메세지 대신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실 태도를 만들라. 긍정적이 돼라.
의심하지 말라'는 메세지가 귀에 쟁쟁합니다.
더욱이 내 안의 참소하는 자의 목소리는
'니 탓이다! 니 탓이다! 니 탓이다!'를 외치면 더욱 옥죕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질식하여 쓰러질 것 같은 메마른 영혼으로
이재철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강해를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외울 만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하나님이 보이고
묵은 땅 처럼 딱딱해지 마음이 보드라워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늦게 어렵사리 목회의 길에 들어선 이상 이재철 목사님 같은 설교를 하고, 이재철목사님 같은 목사님이 돼. 난 그렇게 기도할거야'
3.
10월말로 교회 사임만 결정됐을 뿐 앞으로의 행보가 정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책없이 그만두는 젊은 사역자 부부를 애정어린 걱정으로 바라보셨고,
여러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뒤흔들고 또 뒤흔들어대는 여러 일들에도
남편의 선택이 일신의 편안함, 성공, 높은 자리와는 반대 쪽이라는 걸 알기에
깊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우리 부부처럼 까칠한 사람들이 부교역자로 갈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두렵기도 서럽기도하여 비로소 꽉 쥔 주먹을 풀고 어린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앞은 광야였습니다.
4.
우연인지 필연이지 젊은 시절 신앙과 인생의 큰 길을 안내해주신 스승님께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자를 구한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어려운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한영교회 마지막 인사하기 전 날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같은 교단도 아니고,
한 번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5.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예배드린 지 3주째.
매우 예전적이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예배의 형식에 몸이 적응을 해갑니다.
아,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근거립니다. 언젠가 나는 늘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라고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아무 헤아림 없이 나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지난 몇 년 간의 눈물에 대한 위로입니다.
6.
합정동에 이사와서 생각보다 좋은 일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지내줘서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새로 온 교회 안에 상식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 상식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 이게 상식이었지!
교회를 가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지만 참 좋습니다. 이게 상식이니까요.
몇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조용하지만, 그렇게 잘 나는 눈물 한 방울 없었지만,
나의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느껴졌던 그 예배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반전일까요?
몇 년 전 어느 주일에 깔렸던 복선 결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