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 아빠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느린 사람에게만 보인다'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연상되어 별 다섯 개 상메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 담긴 그의 깊은 마음은 느낄 수 있다. 느리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의 아쉬움, 자신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나마 느린 일상을 사는 채윤이로 인한 대리만족 같은 것이지 싶다. 느리게 사는 채윤이는 그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는 것 같다. 엄마 아빠, 현승이를 보고, 한강변 여유로운 산책길을 보고, 평일 낮 지하철의 풍경을 보고, 꽃친 친구들의 말과 그 이면을 보고, 교회 친구의 속마음을 보고, 머리 컬러링의 디테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현승이 얼굴의 여드름을 보고,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을 본다. 무엇보다 채윤이는 이웃을 본다. 강도 만나 피 흘려 쓰러진 이웃을 본다. 느린 삶을 사는 채윤이에게 꽃친의 다양한 놀이는(궁금하면 파란 글씨 클릭!) 울고 있는 이웃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놀이'란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킨 모든 활동을 말한다.) 세월호의 미수습 언니, 다윤이 언니의 엄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고 쓴 글이다. 허락을 받고 공개한다.
벌써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텐데 나한테는 꽤 긴 시간이었다. 2년 적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는 마치 한 달 전 같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에 대해 나는 덤덤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고, 노란 리본은 누군가의 시선을 바라며 달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다윤이 언니 어머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와 그 가족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거 같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거 그 이상으로 세월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2주기인 만큼 독서모임에서도 세월호 관련된 책인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월호에 탔던 한 사람 한사람의 이야기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그저 세월호 생존자와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와서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번 2주기 때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이럴 때만 되면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온다. 근데 그 게시물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거보다 비판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이럴 때만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닌데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 때마다 올라오는 세월호 영상들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너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지만 그렇게 피케팅 하고 해봐야 달라지는 거는 없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쳐다봐주고 리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그 순간 만큼은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일 년 안식년을 하며 가졌던 소박한 바램이란 채윤이가 채윤이 다워지는 것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채윤이가 자기다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자 '자기'가 제 혼자만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표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채윤이의 '자기'가 확장되고 있다. '나'가 되는 '너'가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너'들이 이 시대 울고 있는 '너'들이다. 채윤이가 세월호에서 잃은 언니 오빠들, 그들의 가족이라는 타자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느끼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는. 이것은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최선의 가치이다. 굳이 하나님 사랑, 예수님 희생이라며 설교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실 수 없는 고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거창한 것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적으로 100번을 듣고 입으로 줄줄줄 말할 수 있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더욱 확장된 나로 보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채윤이 방은 피아노와 키보드 한 대로 꽉 차있다. 그대로 채윤이의 오늘이며 꿈이다. 채윤이 책상과 피아노 위에는 보물찾기 쉽게 숨겨놓은 형국으로 노란리본과 노란리본 뱃지가 흔하다. 이 역시 채윤이의 마음인 것 같아서 뭉클하고 뿌듯하다. 내가 키워내고 싶었던 아이는 이런 아이이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아이들이 많아져서 결국 이런 어른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세월호 관련 (공개)일기 다음 글인 난민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꽃친을 통해 한 박자 쉬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해준다.
"꽃친 하기 전에는 나한테만 신경 쓰느라 이웃에게 관심 갖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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