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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붙들 수 없는

larinari 2018.08.20 20:55



창가 낮은 책꽂이 위의 초록이들.

폭염 속 동사(凍死) 위기를 넘긴 기특한 화초들이다.

밤낮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어컨 바로 옆에 줄을 서 있던 친구들.

스치로폼 독자리로 냉기 차단벽을 만들고 애를 썼더니 살아 남을 놈들은 살아 남았다.

장하고 기특하다, 내 새끼들.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매만져주었다.


가끔 슬쩍 건드렸는데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

멀쩡하게 파릇한데도 가지에 붙들고 있던 힘이 다 빠졌단 뜻이다.

아, 이 녀석 아프다는 뜻이다.

누렇거나 메마른 기색 없는데도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는 건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가장 아끼는 두 녀석이 그렇다.


좁디 좁아서 가만히 서 있어도 짜증이 밀려오는 주방이지만

주방 탁자 명당 자리로 옮겨 에어컨과 분리시켜 놓았다.

적당한 볕이 있고, 더 자주 눈을 맞출 수가 있다.

어,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지나쳤는데 얘가 뚝 떨어지네.

이제 식구들도 알아차린다.


언뜻 보기에 아직 멀쩡하지만

결국 하나 둘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름대로 붙어 있으려 애를 써봤을 텐데, 저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겠지.


건강한 화초들을 손으로 쓱 훑어본다.

끄떡 없고 쨍쨍하다.

아픈 화초도 그리 해보고 싶지만, 그리 했는데 다들 끄떡 없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지만

손을 갖다 대지 못한다.

우수수 죄 떨어져 버릴까하여.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붙들 수 없다.

제가 붙들고 있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도와줄 것이 없다.

무력함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애써도 안 되는 것인데, 

내가 하면 될 줄로 알고 나를 볶고 남을 볶았던 때가 있었다.

고장난 의지에 뒤틀린 자기확신을 곁들여 내가 다 하고,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건장하던 녀석이 툭 떨어지는 것 하나도 돕지 못하면서 말이다. 

애초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하니 안도감이, 심지어 자유로움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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