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해? 김치 내려?
응, 더치 김치!
오, 장인 정신! 하하하, 기여워!

김치말이국수를 위해 김치를 내렸다. 찬 김칫국물을 천으로 만든 친환경 여과지로 한 방울 한 방울... 그렇게 여섯 시간쯤 내리려고 했으나. 장인 정신이 부족하여 인내하지 못한다. 베보자기로 옮겨 손으로 쥐어짜는 방식, 그러니까 고종이 처음에 "양탕국"이라 부르며 마시던 커피 드립의 방식일지 모르겠다.

 

실은 손에 김칫국물 한 방을 안 묻히고 걸러보려는 야심 찬 계획이었으나, 늘 이렇다. 결국 여기저기 묻히고 튀고 손으로 쥐어짜기 되는 것. 김치통 바닥에 남은 국물을 버리지 못한다. 엄마가 늘 그랬다. 그게 아까워서 그 국물에 동태찌개를 끓여서 혼자 먹곤 했다. 동태는 제일 싼 생선이고, 우리는 입에 대지 않았으니까. 그런 엄마가 이해도 안 되고 구질구질해 보였는데...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워서 이렇게 되었다. 김칫국물을 버리지 못한다.

단지 우리 엄마 무언의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김치 나눔을 받곤 하는데, 김치 담그는데 드는 노동과 양념과 정성을 생각하면 허투루 먹을 수가 없다. 국물까지 아껴 먹는 것이 도리 같이 느껴진다. 그러고 싶다. 그래서 냉장고엔 김칫국물 담긴 유리그릇이 항상 여러 개다.

 

결국 여기저기 붉은 국물 묻히고 하면서 튀기고 하면서 완성이다. 오늘 더치김치는 하우스 블렌딩으로 파김치, 익은 겉절이, 백김치 국물 블렌딩이다. 산미가 좋고, 바디감은 매우 약해서 느끼한 속 달래기 딱 좋다. 여과지는 베보자기, 드리퍼는 칼리타 102. 저녁에 라끌렛 먹고 소면에 말아 들이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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