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담아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젊은 시절에 유치부 설교로 봉사한 적이 있다. 그때 경험으로 알아낸 것이 있다. "귀담아 듣는 아이가 있구나!" 지능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는 아이가 따로 있었다. 그랬던 아이 얼굴이며 이름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렇게 진지하게 듣는가.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들은 대로 해보려는 하는데, 그 아이들이 꼭 그랬다.
청년 시절부터 평생 '소그룹'이란 것을 하며 살았나보다. 주어지는 소그룹이 없을 때는 조용히 만들어내곤 했다. 그때그때 내 일상의 갈망과 닿는 작은 모임을 어떻게든 만들었다. ("내 인생의 소그룹"으로 따로 글을 하나 써야지 싶네.) 교회가 가정교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젊은 부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모여서 밥 먹고, 얘기하고, 기도하던 시절은 여러 모로 찐이었다. 그때 결혼 후 잠시 머물다 네팔로 떠난 태훈 윤선을 보내며 남편과 나눴던 말이 생각난다. "아깝다, 정말 같이 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들을 줄 알지? 우리 모임에 함께 있으면 참 좋겠다. 아깝다, 아쉽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소그룹을 하는 연구소를 차렸다. 내적 여정, 꿈 모임, 글쓰기 모임... 모두 영성생활을 배우고 나누는 소그룹이다. 이쯤되면 "내 인생의 소그룹"으로 글 한 편이 아니라 책을 한 권 써야 하는 것인가. 연구소의 모든 영성 그룹은 '서로 잘 듣는 그룹'이다. 결국 잘 듣는 수련을 통해 치유되고 성장하는 것 아닌가 싶다. 들어주는 척, 말고. 진심으로 듣는 것은 '존재'의 문제라서 존재 안에 여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듣는 훈련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훈련이다. 눈동자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랬구나...." 정도의 공감 그 이상이고. 좋은 말 대잔치는 더더욱 아니다.
올초부터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참여하고 있다. 아침마다 들으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성경말씀으로 여기며, 내게 하는 말씀으로 들으려고 한다. '말씀묵상 밴드 참여의 변'은 또 한 편의 글로 쓸 계획이고. (나는 말이 많고, 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들은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포스트잇에 적어서 휴대폰 뒷면에 붙이고 다닌다. 이것은 렉시오 디비나를 사랑하시는 학교 교수 신부님께 전수받은 방법이다.
유치부 아이들에게 설교하던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때 그 아이들의 표정과 눈동자를 떠올리며 지금 여기서 새롭게 배운다. 하나님 앞에 선 내가 그 아이들 같은 태도여야 하겠구나, 매일 아침 마음의 창을 닦는다. 잘 들어주는 사람, 존재로 들어주는 치유자가 되고 싶은데. 잘 듣기 위해 내 마음에 투명한 여백을 만드는 일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구나... 이미 알았던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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