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나 화요일 책모임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곶감이 들려 있는 때가 있다. 많이도 아니고 네 개 정도. 집 처마에 곶감을 말리고 있는 집사님께서 아마도 익을 때마다 몇 개씩 챙겨 가져오시는 것이다. 앙증맞고 정겹다. 하나하나 익어가는 곶감을 하나하나 챙기는 손길, 아니 그전에 하나하나 일일이 따고 깎고 매다는 손길이 느껴진다. 제 속도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곶감이 되어가는 그 고유한 시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간과 손길을 느껴지니 마음이 보인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보이는 것이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 차거운 마음은 스쳐 지나면서도 느껴진다. 하물며 곶감이라는 物이 눈앞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게다가 곶감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니 몇 배로 크게 다가온다. (호랑이를 물리친, 무섭도록 맛있는 곶감이 아니냐고!) 집사님은 한결같이 우리 네 식구에게 각각, 곶감을 아니 따뜻한 마음을 건네곤 하셨다.  

 

토요일 여의도 국회 앞으로 가기 위해 원고에 매진 중이다. 매진한다고 진도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최대한 앉아 있는 중이다. 진득하니 앉아 있는 나를 대접해야겠어서 간식을 좀 정성그럽게 챙겨봤다. 곶감과 함께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 담은 머그잔은 도자기 공예가인 내 동갑내기 집사님의 작품이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셨고, 잠깐의 인연이었다. 같은 동네 사는 덕에 컵과 그릇 여럿을 선사받았다. 집사님의 작품에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담을 때마다 떠올린다. 어떤 때는 선명하게 어떤 때는 스치듯 흐릿하게. 이 역시 시간과 손길이 담긴 마음이다. 전문가의 손길이다. 돌아보면 추웠던 날의 작은 온기였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되게 하는 말과 손길과 몸짓과 물건을 선물이라 부른다. gift, 또는 은혜.

 

아가서를 묵상하고 있다. 오리게네스와 여러 교부들, 신비가들이 왜들 모두 아가서 주석을 남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아가서에 이렇게 풍성히 담겨 있구나! 남편과 함께 하는 묵상이라, 부부만이 아는 길고 깊은 비밀 같은 사랑의 언어가 더 와닿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을 어쩌면 이렇게도 육체적인 사랑의 묘사로 잘 그려냈을까! 보이지 않는 영혼, 보이지 않는 마음이 보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보이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 깊이 스며있다. 마음과 몸은, 영혼과 몸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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