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오후 4시, 간절한 마음 보태려고 먼 길을 갔다. 탄핵 표결이 진행되는 역사적 장소에 가장 가까이 있었는데, 인터넷 불통으로 정작 감감무소식의 시간이 되었다. 소원을 말해 봐, 다시 만난 세상… 노래 맞춰 구호를 외치며 기다렸다.
침묵,
그리고 이백 네 표!
기쁨의 함성!
이 순간을 예견하고 카메라를 높이 들고 있던 아빠가 찍은 영상에 불쑥 올라와 담긴 2000년 생 20대 채윤이의 주먹이다. 2002년 경선과 대선 승리, 2003년 탄핵 반대 시위, 2014년 이후 세월호 집회, 2016년 촛불… 등 엄마 아빠 따라다니며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아이이다. 저 주먹, 볼수록 감동이다.
말로만 듣던 계엄이 내 현실로 일어났고, 이 와중에 아들은 군대에 가 있다. 불의, 이 명백한 악 앞에서 눈앞의 사리사욕만 따라 집단행동하는 정치인만큼이나, 무속에 빠져 무분별하게 무력을 휘두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정권을 거룩한 신앙의 언어로 어정쩡하게 편들고 있는 종교인들이 더 답답하다. "거짓과 혼란의 땅 대한민국에 우리 예수님을 어떻게 오시나요?" 대림기간 내내 기도 아닌 기도였다. 김영봉 목사님의 "성탄 유감"이라는 글을 보았다. 위로가 된다.
성탄 유감
명백한 악을 보고도
그 악을 두둔하는 종교는
얼마나 역겨운가
악에 고개 돌리고
하늘 이야기만 하는 종교는
또 얼마나 한심한가
편견과 아집의 감옥에 갇혀
진리를 독점한 듯 확신하게 하는 신앙은
얼마나 해로운가
하늘의 것만에 붙들려
세상사에 눈 감게 하는 신앙은
또 얼마나 기만적인가
종교가 최음제가 되고
신앙이 환각제가 되어
악을 두둔하고 선전하는
거악이 되었다.
이천 년 전 그 종교가,
그 신앙이
그분을 세상 끝으로 밀어낸 것인데
오늘도 그분은 여전히
바깥에서 서성이신다.
빛이 왔으나
어둠이 그 빛을 거부하고,
사랑이 왔으나
미움이 그 사랑을 삼키고,
진리가 왔으나
거짓이 그 진리를 덮는다.
종교는 번성하고
신앙인들은 목소리 높이고 있는데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구원에서 멀다.
성탄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하게 들린다.
-김영봉 목사님 페이스북에-
20대 여성인 딸은 시대가 키웠고, 엄마 아빠가 키웠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아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고유한 존재로 키우셨다. 어릴 적에는 아빠의 무등을 타고 광장에 나갔고, 이후에는 스스로 민주주의와 역사에 질문하고 배우면서, 책을 읽고 아빠와 토론하면서 민주시민인 자기 자신이 되었다. 광장에 모인 20대 여성들을 죄다 자신이 키운 것처럼, 자신의 이념이 키운 것처럼 말하는 글들을 보았다. 현상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을 꼭 필요한 일이지만, 광장에 모인 응원봉 하나하나는 각기 고유한 하나의 신념이며 고유한 인생의 빛이다. 그 응원봉에 숟가락(아니 마이크) 얹어 밥벌이, 아니 인기벌이 하는 듯한 논평들에 속이 안 좋아진다. 여의도 집회에서 나올 때 귀에 울리던 노래 가사가 "오늘 밤은 삐딱하게"였는데. 마음이 자꾸 삐딱해진다. 매년 하는 송년 글쓰기, "홀로 글로 송구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기억, 기록, 기도"이다. <세상을 위한 기도문> 낭독으로 글쓰기를 마치는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기도의 문장 일부이다. 혼란한 세상, 삐딱한 마음이지만 이 마음 그대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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