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8
허무의 강물 위에서
수속을 다 마쳤고, 탑승 시간까지는 넉넉하게 여유가 있다. 공항 탑승구 앞에 앉았던 그 어느 때와도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떠난다는, 여행 그 자체로 이미 가벼워지고 설레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들뜨기보다는 가라앉아 있고, 가라앉은 마음은 묵직하다. 뭐라 딱히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참 낯선 감정이다. 일 년여의 시간을 네팔에서 보낼 예정이다. 들뜬 설렘은 없지만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은 있다. 이른 퇴직 후에 다른 삶을 구상하겠다는 남편의 결단 뒤에 좋은 우연이 따라왔다. 네팔에서 일하며 선교하는 후배와 닿아 가서 일도 하고 선교도 돕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몇 년 기한으로 남편 혼자 떠나려 했으나, 뒤늦게 급하게 나도 일단 일 년 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내 결정은 다소 우발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최 선생님 말씀처럼 우발, 우연... 이런 말은 버리기로 했다. 어이없이 사소한 일로 시작하여 마음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일상과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남편을 따라 네팔로 가기로 했다.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떠났다 돌아왔을 때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나이에 가당키나 한 시도인가. 꼭 붙들고 있어도 떨궈지고 퇴출될 판에 말이다. 그러나 떠나기로 했다. 이 떠남의 시작은 ‘어이없음’이고 끝은 ‘알 수 없음’이지만 어쨌든 나는 탑승구 앞에 있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의미를 부여해 보려 한다.
그렇다. 의미의 문제였다. 이 무너짐의 시작은 참을 수 없는 ‘의미 없음’이 낸 작은 균열이었다. 오랜 친구 하나를 잃었다.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다. 돌아보면 늘 하던 방식의 대화였는데 그 순간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내가 좀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운을 내라고, 웃음이 안 나와도 웃고, 안 먹혀도 먹으라고 했다. 같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불러준 적도 있다. 늘 그렇게 친절하게 챙겨주는 친구라서 고마운 친구인데 전에 없던 화를 내게 된 것이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제 엄마 얘기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니 매여있지 말라고 했다. 어느 지점에서 용수철이 튕겨 나갔는지 모르겠으나, 더는 들을 수 없노라 선언하고 친구의 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런 우발적 행동은 태어나서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최대한 차분히 말했지만, 속에서는 용암이 끓는 듯한 분노가 솟구쳤었다. 나도 이해되지 않는 내 행동이니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죄책감과 수치심에 견딜 수 없는 밤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때로부터 봉인이 해제된 느낌이라서 평소 불편해도 참았던 것이 참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불끈불끈 화를 내고, 상담치료 하며 내담자 앞에서도 인내심의 바닥이 금방 드러나곤 했다. 가족들이야 ‘갱년기인가보다’ 이해해주려 애쓰지만, 운전하거나 장을 보다가도 전에 없이 화가 난다. 가장 힘든 것은 예배와 설교이다. 전에도 그리 은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뎌지던 목사님의 설교를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꾸역꾸역 예배에 나가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온라인 예배로 타협하기 시작했고, 이즈음에는 다른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는 드렸다!”는 형식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친구도 잃고, 신앙도 잃고, 이러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기력이 끝 간데없어서 금세 ‘될 대로 되어라!’하는 식이 된다. 관계도 신앙도 하다못해 전에 좋았던 영화나 운동, 맛집을 찾는 것도 모두 의미 없게 느껴진다. 무슨 재미, 무슨 의미로 그리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이전의 내가 낯설기만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는데 최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아니, 최 선생님은 이때를 위해 미리 보내주신 그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허무의 강이 생에 들이칠 때가 있더라고. 모든 일에 의미를 따지며 살 수는 없지만, 영혼은 의미 없이 살 수 없어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체험하고 밝혀냈듯이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의미’예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영혼의 초대는 역설적으로 무의미와 허무의 감정에서 오는 것이고.
최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이다. “그럴 수 있어요!”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내 잘못으로 인한 친구와의 단절도, 순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실수도, 예배의 기쁨은커녕 신앙의 무기력에 빠지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교도에 가까운 무신론자였던 최 선생님을 복음의 빛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무의미함’이라시며 전에 들려주셨던 회심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셨다. 60대 초반, 갑자기 들이닥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의 소망을 잃었고, 몇 년 영혼의 어두운 밤, 그러니까 무의미의 강물에 떠밀려 다니다 스캇 펙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으로 천국의 소망을 만나셨다고. 그전까지 오직 쉬지 않고 학업 또는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쉬지 않고 달렸던 나날이라고. 이제 와 생각하면 그런 고난 없이 멈춰 세우지 못했을 성취 중독이었다고 하셨다.
허무의 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엄마 돌아가시고 마음의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애씀’이란 것이 되질 않았다. 애써서 짓던 미소, 애써 이해해보려 했던 것, 애써 괜찮은 척했던 것들 말이다. 내가 정말 애써서 해왔구나, 싶다. 최 선생님 말씀처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그리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 하나하나의 무게를 가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들이닥친 허무의 강물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가벼운 것들이다. ‘의미 무게’가 가벼운 것이다. 이런 것들은 걷어내고 가야 할 때가 있구나. 분별없이 모든 것을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다. 아니 이제 그럴 수가 없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통제 불능이 된 감정처럼 말이다. 모든 관계를 잘 할 수 없고,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기에 무겁지만 편안해졌다. 그 친구와는 한두 번 더 대화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안 보고 참으며 관계를 유지해왔는가를 확인했을 뿐이다. 늘 긍정적인 말만 하는 통에 뭔가 겉보기에는 좋은데 깊은 친밀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은 말, 칭찬만 골라서 해야 했기에 만나고 돌아오면 공허함이 밀려왔고, 불편감을 느끼는 나에게 화살이 가서 괜한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했었다. 뒤늦게 알게 된 내 마음이다. 더는 애쓰지 않기로 했다. 친구와는 소원해진 상태로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을 알지만, 패배감으로 괴롭다. 긍정적이고 착한 친구 하나를 품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다. 역시 나의 최 선생님께서 내 누추한 마음에 ‘의미의 옷’을 입혀주셨다.
추락하는 상승
그 정도면 정 선생도 할 만큼 했네. 세월이 그렇게 되었으면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야지. 부정적인 얘기는 도통 나눌 수 없는 친구가 무슨 친구야! 아, 우리도 언젠가 그 제주 공항에서 막 설전을 벌이지 않았소! 그때부터 내가 더 편해졌다며? 그게 진짜 친구야.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오. 그리고 아니할 말로 당신이 예수님이야? 모든 사람이랑 다 좋게 지내야 하나? 내가 싫은 사람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이도 있는 것이지. 무엇보다 추락이 상승이에요. 이 시기의 추락은 잘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상승이야.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중년 영성에 관한 책이 있잖우. 우리 말 책 제목이 『위쪽으로 떨어지다』인데. 원제가 더 멋지지. Falling Upward!
나도 읽었던 책이다. 최 선생님께 ‘중년 이후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던 그때이다. 추락하는 것이 은혜라고? 성공이 아니라 추락이? 물론 설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최 선생님께서는 생의 오후는 상승이 아니라 추락이 기본 설정이라고 말씀하셨다. 근육이 빠져 늘어지는 피부, 흐릿해진 시력과 기억력 같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었지. 충분히 알아들었고, ‘노화, 중년의 영성’에 대해 끝을 만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최 선생님 같은, 아니 최 선생님보다 더 매력적인 노인이 될 거라는 은근한 자부심도 생겼다. 나는 이미 꽤 괜찮은 중년이며, 당연히 괜찮은 노인이 될 거라 여겼던 것이다. 친구와의 결별, 그 균열로 시작된 마음의 무너짐으로 모든 게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그런데 추락은 정말 떨어져야 하는 것, 관념이 아닌 실재 상황이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위쪽으로 떨어지다』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 펼쳤는데, 이건 뭐 확인사살 같았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넘어지고 추락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여기에서 하고 있듯이 추락에 대한 글을 읽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얼마 동안은 실제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안내인’(Real Guide)한테 자기를 내어맡기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필수 과정이다.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116쪽
신앙의 오후
이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의 오후, 진짜 안내인에게 나를 맡기기 위해서 추락을 추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인가 보다. 네팔로 떠나는 것은 기꺼이 운전석에서 쫓겨나겠다는 의지이다. 이렇게 결정하니 이쪽저쪽 다 막힌 막다른 길에 서 있지만 벽 너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작은 희망이 생겼다. 신앙생활이 더 문제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아니 하나님과 멀어진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개근상, 요절 외우기, 성경퀴즈... 교회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는 착한 주일학생이었고, 젊을 때는 교회 언니였고, 권사님들 눈에는 ‘사모감’이었다. 밖에서는 몰라도 교회에서만큼은 요즘 말로 하면 ‘찐 인싸(insider)’이다. 그런데 어쩐지 식어가고 있다. 어떤 설교가 불편해도 전에는 은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되질 않는다. “은혜로, 은혜로...” 좋은 얘기만 하는 구역 모임도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친구에게 폭발한 것처럼 또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모습이 이전의 내 모습이기에 더 혐오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이전의 내가 싫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을 더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선한 말, 좋은 감정만 보여주면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며 살아온 나 아닌가. 그런 노력으로 평생 교회 인싸를 놓치지 않았고.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들이 한 번씩은 신앙의 위기를 겪던데, 나는 그것도 없었다. 내겐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착한 사람,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 방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허울 좋은 껍데기,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예배를 나는 은근히 얼마나 좋아했던가. 교회 봉사 부담 없이 보내는 시간이 솔직히 얼마나 홀가분했던가. 무의미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다 그럴듯한 옷들이 벗겨져 나갔다. 이 역시 더 깊은 신앙생활을 위한 과정이라고 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최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라고 알아듣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네팔 행은 하나님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참 좋아하는 찬양 가사인데. 신앙의 오후를 지나 다다르는 인생의 끝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 과정으로서의 여행이었으면 싶다.
나같이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은 모태신앙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요? 성격이든 신앙이든 처음엔 튼튼한 틀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요. 리처드 로어 식으로 말하면 컨테이너를 먼저 만들어야지. 정 선생 같은 사람은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튼튼한 컨테이너를 만든 거야. 이제 거기 담을 것을 분별해야 하는 신앙의 오후를 맞은 거지. 영원한 것, 불타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을 분별하여 담는 시기가 신앙의 오후에 할 일이 아니겠소. 이제까지 열심히 해왔던 것까지 부정하지 마. 신앙적 열정이 사라진 것도 결국 좋은 일이에요.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여 어른 신앙이 될 거야. 과정이야, 과정! 좋은 끝에 다다를 거예요.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집 근처로 오셔서 만났던 그때부터 선생님께 집중 케어 받은 느낌이다. 그즈음 친구와 그 일이 있었고, 마음 다해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추락은 추락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다른 가능성을 꿈꾸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비정상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해 주셨다. 이렇듯 ‘의미’의 길을 열어주셨고, 의미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셨다. 탑승구 앞 이 시간은 최 선생님과 함께 한 3 년여 시간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실패감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돌아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 그 알 수 없음의 시간조차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최 선생님 덕분이다. 꼭 가야겠냐고, 여기서 선생님과 더 많이 얘기하며 길을 찾자며 많이 섭섭해하셨다. 문자 메시지도 있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요즘은 줌(zoom) 상담도 한다며 앱도 깔아드렸다. 그런 것 필요 없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하긴 선생님께는 ‘몸으로 만나는 것만 진짜!’니까. “정 선생 돌아오면 나는 여기 없을 수도 있다고!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네팔 다녀와서 후기 들어주시고 애프터서비스 해주실 거면서...” 아무렇지 않게 응대했지만 예리한 칼로 후벼지는 슬픔이 지나갔다. 선생님 말씀처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시니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헤어지는 슬픔에 더해 가불해 가져온 영원한 이별까지. 슬픔을 가눌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떠나야 한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 어쩌면 꼭 잡고 의지했던 최 선생님 손조차 놓아야겠다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탑승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선생님께 전화 한 번 드릴까? 충분히 인사 나눴지만, 문자 메시지라도 드려야 할 텐데. 도통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다시 뵐 수 있을까, 다시 뵐 수 있겠지? 스마트폰에서 선생님과 연결된 노란 창을 열었다 닫았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머나! 열린 메시지 창으로 선생님 쪽에서 보내신 메시지가 뜬다.
정 선생님, 이 시간쯤이면 비행기를 탔으려나. 잘 다녀와요. 정 선생 올 때까지 살아 있어야겠소! 떠나는 사람한테 마지막까지 노인네 심술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구려. 실은 정 선생이 나를 살렸어요.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 심술 맞은 고집불통 노인네야. 내 인생 내놓을 것이 없다오. 어쩌다 내가 예쁜 사람 만나서 복을 누렸어요. 질문해주고 들어주는 정 선생 덕에 내 인생 돌아보게 되었어요. 이래저래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남은 인생 아들에게고 제자들에게고 폐나 끼치지 말자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참 부끄러운 인생인데 말이유. 정 선생 덕에 내 80년 인생이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유일한 피붙이 아들과도 데면데면한 사이라오. 80 평생 남은 게 없어. 늙어 혼자 사는 이 외로움이 다 내 죗값이고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형벌이라 여겼다오. 정 선생 만나서 의미를 찾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 선생도 네팔에서 좋은 시간 보내다 와요. 줌인가 뭔가 그거 정 선생이 휴대폰에 깔아준 거, 자꾸 연습해보고 있어. 가서 줌으로 전화해요. 건강하게, 밥 잘 챙겨 먹고. 다시 볼 때 살 좀 푸덕지게 쪄 가지고 오면 좋겠구먼.
아,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 메시지 읽으며 눈물이 줄줄 흐르다 ‘줌으로 전화해요’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딴 것 모른다고, 소용없다고, 무슨 휴대폰으로 상담을 하냐며 그렇게 역정을 내시더니만 말이다. 그래,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선생님과 나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다. 이 땅의 짧은 소풍을 마치고 천국에서 꼭 만나기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데, 잠시 헤어짐이 대수랴! 이렇듯 마음으로, 영혼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선생님의 솔직한 메시지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우리의 연결이 영혼으로 느껴졌다. 짧은 답신을 보냈다. “탑승 직전이에요, 선생님. 추락하는 정신실, 더 추락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상승합니다! 다시 땅에 닿으면 줌으로 전화 드릴게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하트 백 개!”
네팔 살이를 꿈꾸며 기대되는 것이 하나 있다. 가서 염색 끊고 화장 끊고 살아보려 한다. 염색하지 않으면 머리가 백발인데, 두어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이라는 것으로 나이를 가리고 있다. 화장도 그만하고 싶은데, 젊을 때부터 해온 관성이 있어서 상담이나 강의 갈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유난히 눈가에 주름이 많아서 “관리 좀 하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그 말에 가끔 흔들리기도 하는데 그 유혹도 깨끗하게 접을 수 있겠다. 최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저녁놀이 그렇게 눈에 들어왔었다. 선생님 댁 거실은 그야말로 ‘노을 맛집’이었지. 그래서 내 인생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그려보곤 했었다. 가만히 밤의 시간으로 물러나는 시간 말이다. 최근 번역된 책 『나이듦의 철학』에서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은 저녁놀을 가리켜 불꽃, 저항이라고 했다. 밤의 시간을 향해 순순히 물러나고 스러지는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호소를 담은 마지막 저항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 불타는 저녁 하늘이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은 아닌 것도 같다. 그래, 결국 금세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고 밤이 찾아오겠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마지막 호소, 저항이란 걸 한 번 해보자. 네팔에 가서 백발 휘날리며 히말라야로 넘어가는 노을을 마주하리라. 백발에 비친 노을빛으로 주황색 염색을 해보리라. 생, 노을이 물드는 시간! 열정적으로 삶을 놓아버리는 시간을 마주해 보리라.
<시니어 매일성경> 2023 11+12월 호 기고글
* 3년간의 연재를 마치는 마지막 글입니다.
'기고글 모음 >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사랑, 애도 (3) | 2023.09.02 |
---|---|
존엄한 죽음, 그 불가능의 가능성 (3) | 2023.07.01 |
치매, 기억, 감정 (2) | 2023.05.01 |
아버지 너머 하나님 아버지 (4) | 2023.03.01 |
사춘기 오춘기 육춘기 (2)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