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냄새(보다는), 향(이 낫겠네)에 자극되어 끌려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혼신을 다한 수련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까지 미션 클리어!

한 남편의 몸이 가렵기 시작, 

회장실인지 화장실인지에서 회장님인지 화장님이 자꾸 부르기 시작.

장염이다.

손가락 하나에는 염증이 생겨서 팅팅 부었다.

남탓 할 줄 모르는 탓이유?

한 번씩 호되게, 총체적으로 몸의 환란을 겪곤한다.

5년여 전에 현승이가 '아빠, 그거 열재앙애이야. 열재앙이야' 하던 일이 생각났다.


흰죽을 먹어야 한대서 흰죽을 끓였다.

엄마한테 배운대로 흰죽을 하얗게 주지 않고 꼭 부추를 넣게 된다.

다 된 흰죽에 쫑쫑 다진 부추를 한줌 넣어 섞는데

쌀이 탄수화물과 부추가 어우러져 어린시절 그 향이 난다.


엄마가 보고싶다.

다시는 주방에 서서 뭔가 만들 수 없는 엄마.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 꺼내는 것도 혼자 맡길 수 없는 엄마.


엄마의 요리하는 손을 그렇게 힘을 잃었지만

엄마가 가르쳐준 초록색 흰죽은 내 기억에, 내 레시피에 남아 있다.

아플 때마다 엄마가 해줬던 부추 넣은 흰죽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향은 치유이다.

전통있는 치유의 음식 초록색 흰죽이 남편 몸과 영혼에 힘을 불어 넣었으면.


엄마 생각,

남편 생각,

내 어릴 적 생각에 자꾸 울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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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이었던 E1,

남편이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할 때는 E1이가 목자(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부 교사도 하던 E1는 우리 채윤이의 담임 샘, 또 찬양팀 샘이었다.

남편이 매우 아끼는 후배이며 동료인 J강도사님과 E1이가 결혼했다.

E1이는 E2, E3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세월과 사건들이 이렇게 짧게 정리되다니!

속절 없다.

 

**

E1네 가족이 집에 왔다.

배터리 충전 따로 안 해도 에너지 무한 발산인 E2, E3 자매가 쿵쾅쿵쾅.

두 사내 아이를 키우는 아랫집으로 인해층간소음의 피해자로 사는 우리집이다.

쿵쾅쿵쾅 다다다다, 오늘은 제대로 복수해주었다.

꽃친 다녀와 피곤한 채윤이가 조용히 한 잠 하시고, 그새 눈이 부어 나오더니

층간소음을 잡아주었다.

실바니안 패밀리를 가지고 E2와 소꿉놀이를 해주니 조용해졌다.

 

***

채윤이 아빠가 고등부에서 가르친 E1이 자라서 채윤이의 선생님이 되었었다.

채윤이가 고등부가 되어 E1의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본다.

이것이 세월이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 올 날들을 오가며 목회자와 신학자와 설교자로 사는 이야기.

성대모사, 추억 꺼내기..... 로 데굴데굴 뒹굴며 웃기.

 

****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세월 찜닭'이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두 시간이면 웬만한 손님 식사 준비가 뚝딱뚝딱이었는데,

닭 두 마리 찜하고, 도토리묵 무침, 해물파전 만드는데 하루 종일 걸린 느낌이다.

실제 하루 종일 걸리진 않았다.

E1이가 목자하던 시절. 목자모임을 할 때 매번 12명 목자의 식사를 뚝딱 만들곤 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돌이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쌓인다.

그리워하고 추억할 뿐이다.

E2, E3처럼 귀여운 아기였던 채윤이를 추억하고,

E1과 목자라 불리던 다른 청년들과 울고 웃던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 몸을 추억한다.

 

질 수 없다. 결심했어.

 

내일이면 다시 어제가 되고 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 찜닭 졸였던 짭짤한 냄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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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 끓여보고,

냉이 된장국도 끓이고.

식탁 위에 봄을 자꾸 올려 놓아보는데

아이들 눈에 그저 된장국일 뿐.

다시 돌아온 계절을 함께 느껴줄 중년 남자 사람은 집밥 먹을 일이 없다.


처음으로 마늘대를 사봤다.

봄나물 근처를 서성이다 발견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줬었는데.

아이들 반찬으로는 좀 아니지만 일단 한 번 사보자.

아, 엄마 생각난다.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 많이 생각난다.


꽃다운 백수 채윤이와 둘이 점심 먹는데 일단 샀으니 이단은 무쳐보자.

삼단은... 백수 채윤아 함 먹어 보자.

이게 뭐야?

파를 이렇게 그냥 먹어?

으흐......음. 딜리셔스~(데인저러스 아니고)

엄마, 너무 맛있어.

(밥 한 공기 먹고 거침없이 반 공기 더 먹고)

역시 내 딸 금사월 아니고 김채윤.


나도 맛있다.

봄의 맛이고 우리 엄마의 맛이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길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이

내게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봄바람과 함께 혀끝에 자꾸 맴도는 노래다.


삶을 둘러싼 막막함의 안개가 그리 쉽게 걷히지 않겠으나,

여전히 삶은 막막하고 답답하고 부조리한 것이 기본설정이겠으나

다시 찾아온 따스한 생명의 바람에 담긴 그분의 편지를 읽는다.

이 하루를, 이 봄을, 이 한 해를 견뎌보겠다.

여전히 견디고 있는 자들과 연대하여 소망을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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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맛 공룡 한 마리

 

엄마, 나 오늘 머리만 감을래.

촤아아아아아아아.....

위이이이이이이잉.....

엄마, 나 준비 거의 다 했어.

아침 뭐 먹어?

 

 

# 치킨맛 공룡 두 마리

 

그 엄마 벌떡.

부시시 부시시.

비틀비틀.

냉동실 안으로 고개를 먼저 디밀고 들어가 혈투를 벌인다.

티라노사우르스 열 마리 포획.

 

 

# 치킨맛 공룡 세 마리

 

엄마, 아직 멀었어?

나 오늘 시험 끝나고 소정이랑 옷 사러 갈 거야.

내가 맡긴 돈 가져간다.

 

 

# 치킨맛 공룡 네 마리

 

그 엄마 냉동실 야채밭으로 간 지 오래.

양상치도 뽑고, 시들시들한 배추 잎사귀도 몇 장 득템.

배춧잎보다 더 시들시들한 손놀림으로 티라노사우르스와 야채를 합체.

 

 

# 치킨맛 공룡 다섯 마리

 

위이이이이잉......

아빠 일어났니?

어, 언제 일어났는데. 머리 다 감았잖아.

김채윤, 너 8시에 나가야 해? 아빤 그 시간에 못 나가는데.

아오, 너 자전거 타고 다녀라.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 치킨맛 공룡 여섯 마리

 

다 먹지 마. 공룡은 좀 남겨 놔. 현승이도 먹어야 해.

정신실, 훌륭해. 힘 내. 정신실은 앞으로 작은 거인이 될 거야.

엄마 오늘 음악 수업 가?

김채윤 오늘 시험은 몇 점 맞을 예정?

20점은 아니야. 그래도 다 포기.

 

 

# 치킨맛 공룡 일곱 마리

 

현승아, 8시야. 일어나.

아, 너 오늘 10시 등교라고 했나?

엄마, 이리 와. 여기 누워있어.

안아줘. 등 긁어줘. 꼭 안아줘.

야, 엄마는 일어날래. 이러다 또 잠들겠다.

잠깐, 엄마 우리 10 분만 이러고 있자.

 

 

# 치킨맛 공룡 여덟 마리

 

엄마, 왜 내 돈 만오천 원 안 갚아?

오늘도 돈이 없어?

있네! 오, 오천 원 짜리 있다.

엄마, 나 원래 시간에 나가서 우노 집에 가서 놀다가 학교 가기로 했어.

우노가 생일 선물로 건담 받았는데 만드는 거 도와달래.

알고 보니 우노도 건담 좋아하더라.

나 나간다.

 

 

# 치킨맛 공룡 아홉 마리

 

저 중생 셋 밥 먹일 의무가 없다면

오늘은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 비닐장판에 쩍 달라붙어 있어도 좋을 날.

'요즘 하늘은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건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쿵! 하고 찧을 것 같은데...'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 다 부르고 다음 곡 부릅니다.

'세상은 지옥이다'

이어서 부릅니다.

'너 요즘 왜 그래'

 

 

# 치킨맛 공룡 열 마리

 

밥 챙겨 먹일 중생을 셋이나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셋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공룡 때려 잡을 힘이 나고 살아갈 힘이 납니다.

다 좋은데... 오늘은  낮게 내려 앉은 하늘 좀 어떻게 당신 쪽으로 좀

끌어 올려주시고, 숨을 좀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십쇼.

사실 저는 당신 밲이 없습니다. 제 맘은 당신이 잘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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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채윤 현승 스스로 끼니 해결하기'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짜왕.

너구리 순한맛, 비빔면은 물론 후루룩국수까지 제치고 1위에 등극하였다.

두 아이가 먹어치운 짜왕이 몇 봉이더냐.

 

짜왕에 '삶은 요리', 엄마의 손길이 닿자 짜황제가 되었다.

짜황제를 왕족의 후예처럼 독상으로 누린 현승이.

아빠와 홍대 데이트 나간 누나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엄마 없이 혼자 밥도 잘 챙겨 먹는 형아가 되었으니 이에 칭찬하여 짜황을 수여함.

 

 

# 짜왕에 냉동해물 한 줌을 추가하면 짜황이 된다.

# 음식 사진은 반드시 밤 10시 이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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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매일 먹는 쮸쮸 말고 뭐 다른 쮸쮸 없어요?

뭔가 색다른 쮸쮸가 먹고 싶어요.

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제가 봐뒀던 게 있단 말이에요.

어, 합쩡동 띤띠리 이모네 찜딱이요.

그 쮸쮸 먹고 싶어요.

 

엄마 먹는 거만 봐도 내가 벌써 배부른 거 같아요.

얼렁얼렁 많이 먹어요.

오늘만 허락할게 커피도 마셔요.

이힛, 내일 아침 엄마 쮸쮸는 찜딱 쮸쮸다.

 

그리고 띤띠리 이모한테 꼭 일러두세요.

혹시라도 제 얼굴 도용한 찜닭 사진을 블로그에 걸고 싶으면

반드시 밤 11시 이후에 하시라고요.

제가 얼마 살진 않았지만 모든 게 다 때가 있더라고요.

음식 포스팅은 저녁 먹은 거 다 소화 됐는데 잠은 안 오는 밤 11시 이후가 딱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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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어려운 수학문제가 있다 치자. 오래 고심한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나만의 노하우를 발견했다. 긴 시간, 긴 사투 끝에 터득한 방법이다. 내가 알아냈다, 너한테만 가르쳐준다, 며 여기저기 떠벌이며 다닌다. 책도 써서 출간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냈냐며 부러워도 하고, 칭찬도 하지만 방법을 배우는 데는 그다지 관심들이 없다. 워낙 어려운 문제라 손도 대지 않겠다는 사람도, 문제가 어려운데다 팀을 이룬 짝꿍이 둔하다는 식으로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내가 풀어낸 방식이 나한테는 쉬운데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일반화 할 수는 없나 보다. 에라~ 나나 잘하자, 하는 식으로 시들해진다. 그러나 떠벌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뇌 구조가 비슷한지 유난히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난다. 이 문제 어려웠죠? 어차피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진짜 안 풀리는 지점에서 이 공식, 이 공식 이렇게 써봐요. 어, 알아듣는다! 잘 알아듣는다. 게다가 내 해법에 다른 아이디어까지 제공한다. 아아!

 

시중에 나와 있는 성격유형 도구로는 웬만하면 다 정반대로 나오는 남편과 마음 맞춰 사는 일이 참으로 난해하지만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수학문제 같은 여정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공감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I-message 화법, 이런 걸 대놓고 써보진 않았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어떻게 어떻게 대화하고 기도하며 잘 넘어왔다. 한고비를 넘어 남편을 이해하게 될수록 남편에게 비친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다름 아닌 마음공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부부생활에 대한 설교꺼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아무 데나 들이밀지 말자는 마음이다. 위의 비유가 그런 얘기다. 그런데 어제 만난 커플은 '척하면 착'이고, '어하며 아'여서 통하는 느낌이 짜릿했다. 젊은 커플 앞에서 결혼 17년 차 목사님 부부가 신나게 서로 디스하고, 디스를 당하면서 좋아라 낄낄거렸다. 늦게 집에 들어왔던 채윤이가 아침에 이러더라니까. '엄마, 어제 엄마 아빠 엄청 큰 소리로 웃는 거 골목까지 다 들렸어'   

 

연애와 결혼에 관한 강의를 하고 다니지만 '이 강의 하나로 이들의 연애나 결혼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회의감이 있다. 어제 같은 대화를 하고 나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꽤 자랑스러워지고 충천하는 자신감이 회의감을 콱 눌러버리기도 한다. 사실 요 며칠 남편이 미워지는 사이클이었는데 젊은 커플 앞에서 '장소팔 고춘자 식 만담으로 디스하기'를 하고 났더니 급 사이클 전환이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스파게티 해. 스파게티' 자꾸 이런다. 뭐라? 스파게티? 주부 9단이며 요리의 신인 내가 자신 없는 메뉴가 둘 있으니 스파게티와 나물인데 말이다. 채윤이 표정과 말투 그대로 '뭔 똥소리야?' 몇 번 무시했는데도 계속 '스파게티 해'한다. 무슨 심보야? 그럼 스파게티 한번 해 봐? 하는 순간 얼마 전에 홍제동 수진 여사가 가정교회 모임에서 했다는 냉 스파게티 생각이 나서 도전했다. 감자 수프도 만들고 마늘 바게트도 만들지는 못하고 엄선하여 샀다. 그렇게 신메뉴 탄생한 것이 바로 저 위의 비주얼 장착 샐러드 스파게티. 남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무식한 말이라도 일단 듣고 봐야겠구나, 싶었다. 아아, 그게 아니라 무슨 계시 같은 걸 받은 걸까? 갑자기 이렇게 고백하면 푼수 같아 보이겠지만, 김종필과 결혼하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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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박 12일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그가 돌아왔다.

점심준비 하기 싫어서 공항으로 태우러 나간다 했건만,

버스 타고 들어오겠다고.

 

그렇다면 열무냉면이다.

 

와, 역시 한국음식이 최.....

아니고 정신실이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어.

최고야!

 

여보, 김치말이 국수 정말 잘 먹었어.

(열무냉면이거든요!)

 

터키 그리스 커피잔, 커피잔,

터키 이브릭, 이브릭,

노래를 불렀더니 히히.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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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봄나물 좀 캐던 소녀였다.

교과서에선 '냉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나숭개'라구 불렀다.

나숭개는 뿌리 째 뽑아야 했다.

나숭개 캐고 쑥 캐느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등짝이 따땃해지는 것이 봄의 기운이었다.

봄이면 하루는 나물을 캐러, 또 하루는 진달래를 꺾으려 다녔다.

웬일인지 나는 나물을 뜯는 속도가 느렸다.

친구들 바구니에 나숭개가 수북해져가는데 나는 아직도 한 줌이다.

어찌어찌 바구니를 채워 집에 돌아왔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내가 캐온 나물이 저녁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 날 아침상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캐 온 나물을 그대로 갖다 버렸다.

염소 똥이 있는 곳에서 캐온 것이라는 둥,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나물 뜯으러 간 것을 단지 소꿉놀이 취급을 하고 잘 놀았으니 됐다는 식이었다.

주부가 되고 보니 야생의 냉이(나숭개)로 된장국을 끓이면 그 향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봄내음이다.

 

주로 나숭개를 캐고,

가끔 달래도 캤다.

달래는 흔하지 않아서 수북한 나숭개 더미에 몇 쪽을 얹어갈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거였다.

어느 날 나물을 캐러 갔는데 달래가 지천인 것이었다.

오메 오메, 이게 달래구나!

살살살살 어르고 달래서 동그란 뿌리까지 제대로 채취해서 집에 가지고 갔다.

역시나 그게 요리가 되어 먹은 기억은 없지만

어디서 이렇게 달래를 많이 캐왔느냐고 칭찬은 받았던 것 같다.

 

어떻게 밝혀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알고 보니 야생 달래가 아니라 어느 집 밭이었다.

밭에 키운 달래를 여자애 몇 명이서 알뜰살뜰 뽑아 나눠간 것이다.

엄마가 그 집에 사과를 했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주인의 마음이 쉽게 달래졌다면 이처럼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진 않고.

 

장을 보다 달래를 보면 일단 천 원어치라도 달래고 보는 편이다.

달래 간장을 만들어 도토리묵에 끼얹어 내놓고 비빔밥도 해주곤 하는데

이느무 차도식(차거운 도시 식구)들은  내 이런 사연에 도통 관심이 없다.

달래 한 묶음을 사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멸치 반 물 반,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될까, 싶도록 멸치를 빡빡하게 넣어 육수를 냈다.

정선 오일장에서 사 온 표고버섯 가루도 듬뿍 넣었다.

양평의 개척자들 공동체에 강의하고 선사 받은 된장으로 진하게 끓였다.

그리고 달래를 수북하게 얹었다.

국물이 끝내준다.

 

기억 속에만 아련한 고향 생각,

어릴 적 나물 뜯으러 다니던 생각,

엄마가 내가 뜯어온 나물을 장난인 줄 알았던 기억.

갑자기 고향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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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스테이크를 달라하면 대리석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시니

그때에 신실이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보소서 주여 여종이 여기 있나이다

제가 스테이크 달라는 아들에게 대리석을 구워 먹게하였나니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하던 일을 하라 하시니라

 

신실이 대리석을 들기름에 들들 구웠더니 맛은 고소하고

밭에서 나는 소고기 같았더라

김가네 족속들이  말하되 두부라 이것은 두부라 하더라

이에 종필이 이르

남자 중에 내가 복이 있으며 내 입이 복되도다 하니라

폭풍흡입 후에 서로 창화하되

느끼하다 느끼하다 느끼하다 하니

 

신실이 일어나 나가 멸치를 잡아 국물을 내고

신김치 국물을 섞어 도토리 김치국수를 말아내니라

이에 김가네 족속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멸치 두 마리와 도토리묵 다섯 조각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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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샤브샤브.

모르고 보면 '음, 뭐지?' 

견적 안 나오는 아트 같은 요리는?

(요새는 아무리 견적 안 나봐도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

밀페유 - 천 개의 잎(프랑스어) 나베 - 전골(일어)의 조합이란다.

2주 만에 제대로 집밥 먹는 남편을 위한 요리 아니고 아트다.

 

 

 

 

 

 

팔팔 끓여 놓은 육수가 냉면 말아 먹게시리 식었는데.....

기다려도 기~이이다려도 님 오지않고......

셔터 소리만 찰칵찰칵......

그.런.데.

띠로리~

요리 이름을 외워지지도 않는 밀페유나베 대신 키친아트로 바꾸라는 계시?

그래, 앞으로 니 이름은 키친아트다.

 

 

 

 

 

아트를 건져 먹고,

아트 국물에 국수 끓여 먹고,

볶음밥 해먹고,

순식간에 남은 건 이것.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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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 시에 하나,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연속해서 둘. 강의가 몰려있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날 만드실 때 '따까리 마인드'를 약소하게 탑재하신 탓으로 이럴 때 아이들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하루종일 집에 있게 된 현승이의 세 끼 식사는 이러했다. 

 

# 아침

 

'엄마 곧 나가야 한다. 너희 둘이 알아서 계란 프라이 하고, 베이컨 굽고, 빵이랑 먹어'

엄마 닮아서 따가리 마인드 부족한 채윤이가 재빨리 업무분장을 했다. 

'김현승,  니가 베이컨 잘 굽지. 나는 그거 못하니까. 니가 베이컨 맡고 내가 계란 할게'

화장하고 있는데 베이컨 타는 냄새에 '왜 벌써 뒤집냐고~오?' '아, 어찌라구~우' 싸우는 소리에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그들을 아침을 먹었다.

 

# 점심

 

피아노 연습을 가야하는 채윤이는 가서 언니들과 먹는다고. 10시 강의를 마치고 현승이랑 점심을 먹으려고 서둘러 집에 왔다. 며칠 전부터 가고 싶다던 동네 일본라멘 집에 가려는 생각이었다.  이 녀석 전화기도 안 들고 친구들과 놀러 나가서 행방불명. 배가 고픈데 밥도 없고, 일단 나는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 먹고 났는데 어슬렁거리고 들어왔다. 점심 어떻게 하겠냐니까 라면을 먹겠단다. 일단 내 마음이 여유가 없으니 라면 외에 줄 것이 없었다. 그렇게 현승인 점심을 먹었다.

 

# 저녁

 

채윤이는 늦에 올 거고, 마침 남편과 함께 하는 강의라서 현승이만 남겨두고 나가야 했다. 외삼촌 집에 버스타고 가네, 강의에 따라가네 하다가 집에 남기로 했다. 친구랑 놀다가 '주리주밥'이라고 착한 아줌마들이 하는 동네 김밥 집에서 참치김밥을 사갖고 와서 저녁으로 먹겠단다. 세 끼를 다 이렇게 먹이는 게 짠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강의 마치고 돌아오니 밤 10 시가 되었다. 그 사이 채윤이도 들어와 있다. 저녁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채윤이는 연습하다 언니랑 햄버거를 먹었단다. ㅠㅠ 현승이는 김밥을 안 먹고 식탁 위에 있던 식빵을 먹었단다. '저녁으로 먹으니까 하나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두 개를 먹었어. 엄마. 그리고 쨈도 아주 듬뿍 발랐어. 잘 했지?' 아이씨, 갑자기 미안함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아이고, 가엾은 내 새끼들. 하루 종일 대체 뭘 먹은 거야' 했더니 이 녀석들 아랫입술 말려들어가면서 히죽히죽 하는 게 내심 좋은 것 같다. 현승이가 '엄마 밥을 너무 못 먹었다. 내일 아침엔 꼭 엄마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애. 알았지?'  다음 날 아침. 일찍 교회 간 부녀는 어쩔 수 없었고, 따순 밥에 계란말이에 배추국에 현승이와 밥을 먹었다. 저녁에는 김장김치 얻어 온 것도 있고해서 보쌈을 했는데 세 식구가 정말 정말 맛있다며 폭풍흡입을 해서 행복했다. '여자라서 햄볶아요'

 

 

세 끼 밥 먹는 문제는 보통일이 아니다. 이 엄청난 일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과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 과한 감정은 내게도 가족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좋은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일의 원칙을 세워가고 있다.

 

 

1.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배고프면 뭐든 찾아서 먹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 라면을 끓이는 것은 기본, 계란 프라이 하기(스크램블 에그나 삶은 계란으로 변주도 가능), 빵 구워 먹기, 과일 깎아먹기(깎기 싫으면 깨끗이 씻어먹기), 김밥 사다먹기, 국수 포장다 먹기. 등등.

 

2. 엄마가 늘 식사를 담당해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무한 유세를 떨어서 '감사'를 세뇌시킨다. 매 끼니 다르고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 늘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무거운 장을 봐야하는 것, 맛있은 걸 먹으려면 비싼 재료를 사야한다는 것, 밥하는 게 힘든 노동이라는 것 등을 늘 주입시킨다. (여기에 얻어먹는 입잡이 같은 아빠가 유세에 동참하면서 엄마를 띄워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

 

3. 시간이 되고 에너지가 될 때, 특히 아이들이 뭔가를 먹고싶다고 말하는 음식이 있을 때 그것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준다. 채윤이 같은 경우 특히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써서 내주면 완전 하나님 보듯 엄마를 보면서 경외감을 내비친다. 이렇게 포인트 쌓아서 평소에 형편껏 먹고 사는데 쓰기.

 

 

사실 나에게도 '엄마 밥'이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이 내 엄마가 되어 해주는 엄마 밥, 금방 한 밥에 뜨끈한 국과 김치만 있어도 좋은 엄마 밥을 좋아한다. 사실 엄마 밥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라기보다는 따스함이 고파서 먹는 것이다. 

 

 

* 이 주제와 관련해서 전에 썼던 두 개의 글이 있네요.

 

<밥하는 아내 신문 보는 남편>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1

 

<나의 성소, 씽크대 앞>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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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 투 동막골> 이장님이 그러셨다 '뭘 많이 멕이야지'

사람 마음 얻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주일 저녁엔 남편에게 뭘 맛있는 걸 멕이면서 동시에 감동을 멕이고 싶다.

말보다 밥상으로 백 마디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나름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카레라이스를 찐하게 만들어서 찐한 감동을 먹일 요량으로 장을 보러 나갔다.

손수레를 끌고 털레털레 걸어서 망원시장에 갔다.

감자와 당근과 송이버섯을 사려고 했었는데.....

도토리묵이 눈에 딱 들어오면서 마음 속에서 도토리묵 무침! 하는 계시가 왔다.

일단 한 바퀴 돌며 생각하자 싶어서 걷는데 메밀전병 굽는 곳에서 발길이 딱 멈춘다.

그래, 메밀전병에 도토리묵이면 팔당에 있는 식당 '강마을 다람쥐' 메뉴 그대로구나.

 

 

 

 

 

혼을 담은 양념장을 만들어 도토리묵을 무치고 메밀전병과 사골 배추국으로 차렸다.

메밀전병을 본 남편이 '어, 이거 어디서 본 던데..... 이걸 만들었어? 와~'

속이고 놀릴 꺼리가 없어서 걱정인데, 스스로 낚여주니 이 기회를 놓치랴.

'맛이 어때? 내가 한 번 따라서 만들어봤는데'

'우와~ 맛이 똑같애. 대단하다'

이런, 쉬운 남자 같으니라구.

 

 

 

 

이왕 도토리로 저녁을 먹었으니 가을 느낌 물씬 나게 디저트로 연시 하나 씩.

뇌를 텅 비우고는 먹어가며, 아이패드로 런닝맨 봐 가며, 낄낄거려가며....

다람쥐 네 마리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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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마흔 다섯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마흔 일곱에 내 동생을 낳았다.
철들고 또렷한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늙었었다.
그래서 늘 엄마가 죽을까봐 걱정이었다.
헌데 내 나이가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나도록 살아 계신다.
고맙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나 음식이 그립다.
그러나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무엇보다 가끔 부부가 함께 집을 비워야할 때
엄마가 와서 다 큰 아이들과 하룻밤 정도 주무시고
학교 가는 걸 챙겨주실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는 친정엄마를 가진 내 또래 아줌마들이 부럽다.
이것도 내겐 꿈이다.
화요일은 동생이 하는 논술수업 듣는 작은 아이 데리고 친정에 가는 날이다.
저녁 먹고 가라는 올케의 말에
'집에 가서 큰 애 밥 줘야해.
언제 가서 밥 하냐? 반찬도 하나도 없는데. 에고 귀찮아' 했다.
집에 오는데 올케가 불룩한 종이백을 줬다.
김치, 한 끼 먹을 국, 밑반찬이 들어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노모 모시고 줄줄이 비엔나 세 아들 키우느라 여력 없는 주분데....


연로하신 친정 엄마, 이제 돌봄만 필요한 엄마에게 받고 싶은 걸 올케에게 받은 것 같다.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넘치는 저녁인데.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방쁩이 읎네.

(라고 페북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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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이어 이번에도 (어머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한 접시 사면 된다고 하시는) 전을 메뉴에 넣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나이가 들어 자연이 좋아지고,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가 땡기는 것과 같은 매커니즘인가? 몸살 끝에 막 지져낸 생선전이 먹고 싶기도 했고, 기름 달구는 냄새를 막 피우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일하는 걸 보면 나는 뭐할까? 나는 뭐할까? 하고 달려든 두 녀석들이 밀가루도 묻히고 계란도 입히고 쟁반에 한지도 깔고 시끌벅적하게 조수 노릇을 하더니 막 나온 생선전을 맛있게도 먹는다. 느끼할 땐 이게 딱이라며 블루레모네이드 한 잔 타서는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종가집 명절체험 제대로 했었다. 송편 한 말을 빚고나면 전을 부쳐야 하는데 끝도 없는 지글지글이었다. 열 종류가 넘는 전을 부치는 동안 어머님과 작은 어머님 한 분은 탕국이며 나물과 기타 음식을 하셨고, 전의 마지막은 잡채에 들어갈 야채볶기로 끝이 났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명절 음식 준비는 작은 어머니들, 며느리들, 시집 안 간 시누이들까지 손이 여러 개인데도 오후 4시나 지나야 끝나곤 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 때는 그러고나면 팔 다리 허리 아파 죽는다고 남편 안마기를 당당하게 돌리기도 했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이래저래 각자 명절을 보내는 분위기가 되고 이제 모이는 인원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전이나 부치고 간이나 보던 막내 위치에서 명절 음식의 반을 책임져야 하는, 어떤 때는 거의 다를 책임져야 하는 중견 며느리가 되었다. 몸살 끝 부실한 몸으로 막중한 책임감으로 음식 준비를 하다보니 '그때가 좋았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시키는대로 하면 되던 그때. 이젠 음식 해놓고 생색을 내기도 민망한 중견 며느리 아닌감. '그때가 좋았지'는 잠깐의 감상이긴 하다. 명절에 전을 왜 하는지 모르던 그때보다 전의 맛을 알게 된 지금이 좋다. 청년들을 만나면 그들의 탱탱한 피부와 무한 가능성의 미래와 자유가 부럽지만 '돌아가고 싶어?'하면 고개가 저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먹은 나인데, 어떻게 헤쳐온 인생인데.(흡) 다시 젊어지고 싶진 않다. 


남편에게 '여보, 나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봐' 하고 자답했다. '초로(初老)의 여인!' (케케) 눈가의 주름, 쳐진 피부에 많이 적응이 됐지 싶다가도 어느 새 주름이 부끄럽다 느껴지기도 한다. 약간 애매한 이 나이가 지나서 흰머리나 주름과 더욱 한몸 이루는, 조금 더 늙은 나이가 되면 좋겠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은 초로의 나날을 그리다 전이 좋아진 낯선 애매한 중년을 즐기지도 못하고 보내버릴라.  몸살 끝 내 손으로 부친 동태전을 맛있게 먹고 입맛이 돌아왔다. 전을 좋아하게 된 내 입맛이 은근 자랑스럽다. 암튼 이제부터 내 장래희망은 초로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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