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료 : 며칠 전 먹고 남은 오징어 볶음 양념을 냉장고에 숙성시킨 것, 몇 시간 전 현승이가 먹고 남은 닭가슴살 캔의 부스러기, 신라면 한 개와 스프, 냉장고에 굴러다니며 약간 건조된 가지 반 토막, 야채 박스에서 뒤엉켜 있던 양배추, 파프피카, 부추 몇 가닥.
 

* 방법 :
위의 재료를 적당히 잘 조합해서 씻고, 굽고, 볶아서 위의 사진과 같이 만든다.


*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상치 못한 남편의 전화.
'나 지금 출발. 집에서 밥 먹어. 채윤이는?' '뭐? 지금? 저녁을? 채윤이는 연습하고 늦게 오고, 현승이는 김포 갔는데. 그리고 집에 먹을 거 없어. 그러면 올 때 뭐 좀 사 와' '지금 비 많이 와서 아무데도 못 들러.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라볶기 같은 거 해 줘' '아, 진짜! 아무것도 없다고~오!'라고 말하면서 바로 잔머리 굴리면서 냉장고 스캐닝한다. 좋으면서 싫은 척 전화를 끊고 후다닥 일어나서 막 가지를 굽고, 라면을 삶아내고, 양념을 졸인다.


* 채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쓰는 글이 있는데 얘는 정말 놀이에 타고난 아이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놀잇감 삼아 가지고 노는 아이였다. 지난 주말에 잠깐 양평 나들이를 갔는데 눈에 띄는 풀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모르는 풀이 거의 없다. 이름은 몰라도 어릴 적에 다 가지고 놀았던 풀들이다. 내게 들풀은 소꿉놀이의 재료로 기억되어 남아있다. 소꿉놀이를 할 때 온갖 풀을 이용해서 그럴 듯하게 만든 요리들이 꽤 인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놀이의 신 채윤이의 피는 내게서 흘러가는 것들이 있다. 친구들과 놀면서 새로운 방식, 더 재밌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은 거의 내 담당이었다. 3 학년과 6 학년 때 두 번 심하게 나를 따돌렸던 여자 대장 아이 S가 더 오래 나를 따돌릴 수 없었던 이유는 놀이 아이디어 때문인지도 모른다. 


* 아직도 내가 그 시절 소꿉놀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원고를 붙들고 늘어져 있다가 남편의 전화에 후다닥 일어나 라볶이를 만드는데
열정이 마구 솟구쳤다. 되든 안 되든 있는 재료를 굴려서 접시에 담고 듣보잡 요리를 창작해내는 일이 이렇게나 재미가 있다. 약간은 초딩 입맛에 음식에 관한 선입견이 별로 없고,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고갱님의 기호가 받쳐줘서 되는 일이긴 하지만. 하이튼, 오늘 만큼은 여자라서 햄 볶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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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오늘 책 읽지 마"
새벽기도 갔다가 옷 갈아입으러 들어온 남편이 말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다정하면서도 짜증스럽게.
"오늘은 애들하고 집안 정리 좀 해. 당신은 학자가 아니야. 뭐든 대충하고 책 보려 요즘 집안이정리가 안 되고 있어. 너희들, 오늘 엄마랑 같이 다 정리해!"

이건 정말 정리되지 않은 집구석에 대한 불만인가,
아니면 책 읽을 여유없이 살고있는 삶이 공허해 속상해 죽겠는데, 
소파에 늘어져 책이나 보고 있는 여자에 대한 부러움을 지난 질투인가.

사실 엄마가 다녀가신 이후로, 그 주간 혼신의 힘을 다해 세 끼 밥을 하고나서
살포(살림포기) 상태였다.
원고 마무리 해야하는데 도통 글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테이블 밑에 벌써 언제부터 쌓여 있던 참고서적.
보지도 않으면서 치우지도 못한다.
쌓아두고 있으면 원고에 손을 놓고 있어도 조금 위안이 된다.
당장 하고싶은 건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연달아 죽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살림을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원고를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닌,
스마트폰 들고 교황방문과 세월호 뉴스 등을 들여다보며 늘어져 있는 어정쩡한 나날이다.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날에는 조금 시간이 팽팽해진다.

책에 대한 욕심,
원고에 대한 압박,
챙겨 봐야할 뉴스를 내려놓고 집안 정리에 나섰다.



 


한 주간 캠프 다녀온 현승이,
피정 다녀와서 바쁜 아빠,
수련회 후유증을 앓으면서 늘어져있는 채윤이,
다중이 페르조나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엄마.
넷이서 오랜만에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제대로 준비해보려고 망원시장에 갔다가 무청 다 떼내고 무만 있는 알타리 발견.
'김치 하긴 해야하는데...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게 알타린데...'
갈등하고 있는데,
"언니. 이거 다 털어서 만 원에 가져가. 이렇게 쪽파 천 원어치 넣어서 김치 해"
처음 보는 동생이 부추겼다.
옆에 있던 현승이가 낄낄거린다.
"엄마보다 훨씬 늙었는데 왜 자꾸 엄마한테 언니라고 해?"
처음 보는 늙은 동생의 간곡한 요청도 있고 해서 김치 하기로 결정. 
늦도록 수고하여 김치 완성했다.


상당히 맛있을 것만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다.
이 맛있는 김치의 숨은 공로자는 역시 현승이.
알타리와 파가 든 큰 비닐 주둥이를 묶으니 자루 모양이 되었다.
굳이 그걸 제가 들겠다고 우기더니  어깨에 떡 짊어지고 좋아한다.

"아~나, 이렇게 하는 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엄마, 나 머슴같지? 케케"
무를 다듬는데 옆에 와서,
"나 칼로 하는 거 하고 싶은데 뭐 좀 시켜줘" 한다.
쪽파 대가리를 자르라고 했더니
다듬는 것까지 해주었다.
중간에 눈 맵다고, 이럴 땐 썬글을 쓰고 하면 된단다.


또 하, 또 하..... 또 하루 멀어져간다. 
언제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또 하루 멀어져간다.
 


 

 

모든 빨간 고추장 양념은 떡볶이로 통한다.
모든 간장 양념은 궁중 떡볶이로 통한다.
그리고 모든 떡볶이 양념은 라볶이, 당볶이 양념으로 통한다.

피정 마지막날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나간 남편은 천안의 신대원 도서관이라고 메시지가 왔다.
한때, 지성을 불태웠던 곳에 가 있다고.
결혼하고 남편을 보면서 '내가 했던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심지어 내가 썼던 학위 논문은 그가 학기 중 써내는 리포트만도 못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신대원 시절, 시험을 앞둔 금요일이라 수업도 없었는데 일찍 올라와야 할 남편이 12시가 되어 집에 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집에 와서 한 말은 "밥 줘"였다.
잠깐 공부하고 올라올 생각으로 낮 12시에 도서관에 앉았는데 중간에 화장실 한 번 갔다 오고 밤 8시 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터미널로 가서 올라온 것이다.
개콘 만수르의 딸 마르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서워~ 사람 아니야~"

피정 마지막 날에 천안 갔다오면서 그때맹키로 "밥 줘" 떡하니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채윤이랑 둘이 여자끼리 냉장고에 있는 야채 다 꺼내 채썰어 월남쌈 해먹고 젓가락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여덟 시간 공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칭찬 스티커 많이 모아놨으니까 콜!
(피정 동안 채윤이 현승이와 각각 데이트, 나와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시간도 알차게 잘 보내고 칭찬 받아 마땅하니까)
어쩌다 생긴 오리 주물럭 코딱지 만큼 넣고,
떡은 없으니까 라볶이로,
월남쌈 먹고 남은 숙주 있어서 비벼 놓으니까 어머, 아삭하고 괜찮았다.
심플하고 맛있는 저녁, 또는 길고 알찼던 여름 피정 아이스 드립커피로 화룡점정.





집에서 얼굴 마주하고 저녁 먹어본 지가 언제던가.
대통령보다 얼굴 보기 어려운 남편께서
바람처럼 나타나서 밥을 달래.
식사 주문은 미리미리,
이렇게 미리부터 주문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리 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갑자기 치고 들어와 밥을 달래.
냉장고는 비었고,
현승이만 어떻게 먹이면 될 것 같아 무방비 상태로 있었는데,
나는 밖에서 수다 중이었는데

밥을 달래.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원래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장을 본 후,
열나 집으로 뛰어와,
쌀과 콩나물을 한솥에 넣어 취사 누르고,
반찬도 없이 달래장과 콩나물밥 떡 차려놓으면,
끄~읕!

 

(결론, 나는 요리 유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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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오늘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명절 전날을 누렸어요.
남편과 두 말이 망아지를 데리고 합정 메세나 폴리스에서 조조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렸어요.
아침 아홉 시부터 <겨울왕국>을 누렸어요.
전에는 그저 설치예술에 불과했던 메세나 폴리스의 우산들은 오늘 본연의 임무를 누리더군요.
겨울비가 내리는데 전혀 춥지 않은 날이었어요.
영화관람 후 점심을 먹기 전 넷이 홈플러스와 망원시장으로 몰려다니며 장을 봤어요.
칼국수를 먹고 싶었으나 중2 딸이 콩나물국밥을 선택했기에 전 어쩔 수 없이 국밥을 먹었어요.
전 조금 화가 났어요.
쟨 지가 먹고 싶은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애야.
전 속으로 무지하게 욕을 했지만 애써 참았어요.



 



시댁에 가져갈 명절 음식 중 하나로 이번에는 전을 선택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특히 명절에 하는 전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혼 초에 7남매 맏이이신 아버님 덕에 명절에 전을 열 가지 이상 부치는 호사를 누렸기에
전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음식이었어요.
최근 몇 년 상황이 많이 바뀌면서 한가로운 명절을 보내다 보니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그리워졌어요. 
콩나물 국밥이 관철되어 기분이 좋은 채윤이가 낮잠 한 잠 때린 후에 일손을 보탰어요.
미나리를 죄 다듬고, 동그랑땡의 동그랑이를 혼자 다 만드는 호사를 누렸어요.
현승이는 밀가루를 묻히다, 히어로 팩토리를 만들다 하면서 멀티로 누렸어요. 
마지막에 남편과 마주앉아 사이좋게 전을 부치고 나눠 먹기도 했어요.
넉넉하게 준비한 동그랑땡과 시금치전은 친정에도 보냈어요.
전을 부치고 나머지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겨울왕국 OST가 무한 반복으로 집안을 채웠어요.
기름 냄새와 'Do you wanna build a snow man?'이 묘하게 어우러졌어요.

전 오늘 전을 부치며 여유로운 명절 전날을 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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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슬이,
요오물! 요물!
늙은 이모(라고 썼지만 은슬이는 주구장창 고모라 읽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포커스는 뻬찀, 마음은 은슬.


 



7개월 전 오헤어 공항에서 눈물로 헤어진 은슬이가 왔는데.....
얼굴 마주하니 꼭 어제 본 듯 마음이 가까우나
이 녀석은 그새 언어기능 장착한 요~오물 이 되어가지고 전혀 새로운 모습.
몇 시간 동안 늙은 이모 넋을 쏙 빼놓고 돌아갔다.




불과 또 얼마 전,

세상에서 제일 새침한 아기가 될 것 같은 조신한 표정으로
손싸개 발싸개 하고 나타났던 녀석이 말이다.

은슬이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신공에 각성이 되어 잠을 못 들고 있다.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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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고요.
우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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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라는 생선이다.
어렸을 적에 거의 유일하게 먹었던 생선이다.
아버지가 비린내를 싫어해서 도통 밥상에 생선이 올라오질 않았는데
박대는 비린내 없는 생선이라(고 엄마 아버지가 그랬다) 선택받은 거였다.
꾸들꾸뜰 말린 걸 연탄불에 굽기도 하고, 조림도 했다.
아버지가 참 맛있게 드셨고 동생과 나도 덩달아 싸우면서 맛있게 먹었었다.

박대를 잊고 지냈다.
어릴 적 먹던 박대는 도대체 왜 싹 사라졌을까? 한 두 번 생각했던 것도 같다.

어느 해 시부님과 안면도 여행을 갔다가 좌판에 놓인 박대를 보았다.
'꺅, 이거!!!!!!! 저 어릴 적 먹던 생선이예요!!!'
이게 싹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살던 서해, 서천 인근에서 많이 잡히던 것이고,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생선이었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며느리 추억 돋아서 완전 흥분하니까 어머님이 박대를 사셨었다.
그때 이후로 가끔 서해 쪽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사다 먹기도 했었다.

어제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에미가 좋아하는 그거 뭐냐. 그거 생선.....
박대가 들어왔다며 갖다 먹으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몇 년 전 안면도의 어시장에서 박대하고 처음 안면을 트셨고,
나의 '꺅' 이후로 '박대=채윤이 에미'라는 공식을 가지게 되셨다.
그 전까지 어머니는 박대라는 존재를 모르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박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박대는 어머니께 와서 생선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 박대가 내 손에 왔고,
현승이는 '납작한 생선'이라며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다. 

사실 저 납작한 생선 박대는 교회 아래 꽃밭이 있는 목사관,
거기서 익살꾼 남매가 늙은 엄마 아버지를 웃기면서 살던,
네 식구가 함께 하던 그리운 밥상의 메타포이다.
루시드폴의 고등어처럼.
박대는 내게 그냥 박대가 아니다.

그런 박대가 우리 어머니에겐 듣보잡 생선이었으나
어느 날 나의 '꺆'에 어머니 또한 박대와 연루되신 것이다.
인생이란,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루된 관계란 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60평생 알지도 못해던 생선이 어머니 삶에 의미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다.

내게 연루된 모든 관계를 좀 더 겸허하게 바라봐야지 싶다.
저 이름조차 우스운 박대가 내게 이렇듯 엄청난 의미인 것처럼
사람 사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청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연루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미가 내게 와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에미가 좋아하는 그 생선' 정도가 된다해도, 이것은 정말 엄청난 삶의 신비 아닌가.


(심지어 생면부지의 박대기 기자도 내게 와 눈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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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한 저력이나
기본 양념 같은 것 없이
그냥
고추장
라면스프
정도로 막 만든 라볶이.

그 위에 영양부추 한 줌 올려서
있어 보이게 만드는
눈 가리고 아웅식 요리.


어제와 다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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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묵은지 아끼지 않고 팍팍 써서 김치찜을 만들었다.
얼치기 주부 15년 만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묵은지는 보물이라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만나도 고등어를 만나도 밀가루를 만나도 밥을 만나도 요리가 되니 말이다.
묵은지는 늘 시어머니께서 조달해주셨었다.
집에서 손대접이 많았던 시절에는 엄청 신경 써주시더니
요즘은 도통 묵은지를 풀지 않으셨다.
급기야 김장을 위해서 봉하마을에 절인배추 주문을 하다가 묵은지 판매하는 걸 보고
주문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 무슨 장난의 운명이란 말인가.
주문하자마다 시누이가 묵은지 한 통을 싸주고,
올케 또한 '언니, 우리 묵은지 많아요. 나눠드릴게요.'란다.
정말 부자가 된 기분으로 오늘 돼지갈비 두 근에 김치 세 포기 넣고 김치찜 했다.


 

 

많은 양이다.
김치찜을 앉히면서 사람 사는 게 가까운 곳에 마음까지 가까운 벗이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했다.
나 오늘 김치찌 많이 한다. 저녁 준비 하지말고 식구들 다 우리집으로 퇴근해.
라고 전화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이웃을 두고 사는 게 사람 사는 것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페북을 열었는데 명일동 K언니가 밥하기 담벼락에 싫다며 칭얼거리셨네. 
에헤, 이건데! 말이야.
그럼 쓰레빠 끌고 우리집으로 와.
이런 게 되어야 하는데.

 

 

여하튼 김치찜은 죽여주게 맛있게 되었고,
부자간에 마주앉아 김치 두 포기를 뚝딱 해치우더니 '시네마 불금'을 위해서
부랴부랴 나갔다.


 


살코기 좋아하는 우리 배트매은 이렇게 김치에 고기 한 점 씩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잘도 받아 (처)먹으시고.
이따 늦은 밤에 피아노 연습으로 진을 뺀 우리 반지성주의자 딸이 와서 두 공기 쯤
싹싹 비워줄 기세다.
어찌됐든 아주 그냥 뿌듯하다.

 

 

된장이 떨어진 차에 봉하장터에서 주문하려 했더니 품절이다.
최근에 나를 감동시킨 감옥 다녀오신 정봉주님이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에다 주문을 했다.
맛있는 된장도 묵은지 만큼이나 완소 아이템이다.
재래식 된장 떨어져서 마트에서 파는 것만 넣고 찌개를 끓이니 아주 그냥 달착지근해가지고 맛대가리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사는 일이 기본이 되어 있어야 되더라.
묵은지에 된장에 기본 만땅 채우니 좋네.
이래저래 음식적 저력을 노무현 대통령님 덕으로 꽉꽉 채웠다.
으이그, 야속하신 분. 
(결론은 버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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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내미 웃기는 거,
그까이꺼!


"채윤아, 이 덮밥 이름이 뭔 줄 알어?"
"불고기 덮밥?"
(옆에 있는 현승이)
"제육덮밥이야."


"아니야. 이 덮밥의 이름은요~ 샤이니 컴백 덮밥이야."
샤이니 팬 언니 얼굴이 갑자기 샤이니해지면서....
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 기회를 이용해
"너 사진 찍어도 돼? 샤이니 컴백 덮밥이랑 같이?"
그래가지고 오랜만에 모델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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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 일어나 봐.
냉채족발 좀 해줘.
내~가 먹고 싶대?
병철이가 먹고 싶대잖어. 병철이가.


여의도에서 불꽃놀이 한다고 뻥뻥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나는 토요일 밤에
늦게 귀가하신 김준현 아니 김종필 씨가 저러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병철이가 먹고 싶다니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냉채족발은 못하고,
아쉬운대로 오리파냉채를 만들었습니다.
훈제 오리를 끓는 물에 넣어 기름기 쏙 빼서 파채와 함께 새콤, 달콤, 매콤하게.

이 시간이면 음식 포스팅하기 딱 좋은 시간.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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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져가서 랩을 벗기고 가운데 날치알만 놓으면 되도록 준비했습니다.
내일 가져갈 추석 음식 1.
최대한 가서 손이 가지 않도록 아예 접시에 담았습니다.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고 오려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식구들이 다 양이 적고 먹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명절이든 부모님 생신이든 차려놓은 것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게다가 명절 아침에 뜬금없는 데리야끼 닭봉 조림은 또 뭐랍니까.
여하튼 추석 음식2입니다.
어차피 남을 음식,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그나마 낫겠어요.


 

 

이번 추석엔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마음에 비가 내립니다.
추석 며칠 전부터 비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40여 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일런지도 모르겠네요.

지난주에 양화진 문화원에서 있었던 소설가 공선옥 선생님 강의를 들었는데요.
어린 시절에 선생님에게 오해를 받았대요. 친구 돈을 훔친 것으로요. 이에 분개하여 학교에 찾아오신 (소아마비로 인해서 몸이 불편하신) 엄마를 보고는 친구들이 놀렸다는 거죠.그 순간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해요.
'너희들 나중에 내가 다 글로 써버릴 거다.'

유난한 무기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2013년 추석과, 몇 년 전의 추석과, 40여 년 전의 어느 날을 글로 써버릴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글로 쓸 수 있는 그 날에는 여러 걸음 물러선 자리에 설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옆에 선 나무도 보이고 그 뒤의 배경도 함께 보일 거라 믿습니다.


블친 여러분,
추석 연휴 평안한 시간들 보내시길요.
고향을 찾는 정겨움, 가족 간의 따뜻한 정, 부모님의 사랑.......
이런 훈훈한 수식어들이 떠다니지만 정작 TV에 나오는 그런 가정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들 가족을 생각하면 조금씩 불편하고 아프고 화나고 부담되고 그럴 거예요. 그런 사람들끼리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저도 어떻게든 잘 지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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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어떤 지적인 것에 관한 용어들은 한없이 흘려버리고,
'자기화'하는 중딩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 있잖아. ㅓㅕㅏㅒㅑ... 그래가지구 폼플랫에서~어. 몰라? 폼플랫 몰라?
엄마가 그걸 몰라? 기차 타는 데 있잖아. 폼플랫. 아..... 맞다. 플랫폼인가."
이런 중딩이 먹는 것의 이름을 잘못 기억하거나 부르는 건 통 못 봤다.


며칠 전부터 '항정살, 항정살'하면서 꼭 그게 먹고 싶다니.
예부터 그런 말이 있다.
"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그냥 돼지고기도 아니고, 삼겹살도 아니고 어쩌면 이름도 어려운 항정살일까?


그래. 이왕 먹고 싶다고 입을 뗐으면 확실하게 먹어줘야 하는 거다.
양으로 치면 아빠 정도 먹어 주고,
깻잎, 콩나물, 무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서 쌈으로 싸고,
마지막 남은 한 점까지 깨끗하게,
콩나물 국물에 찍어서 먹어주는 거다.
그래야 하는 거다.
잘 먹어서 정말 예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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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해물 부추전을 해줬는데 아주 그냥
애를 쓰면서 먹는다. 최대한 (좋아하는) 오징어가 많이 있는 쪽을 잘라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청양고추는 피해 가려는 것이다. 헤집고 고르며 두 녀석이 접시를 싹 비우고 났다. 설거지 하며 생각하니 이놈들 오징어 골라 먹고 고추 골라내느라 평소 싫어하던 호박과 양파를 막 먹어댄 것이다. (안 보여서 그렇지 호박이 엄청 들어갔음. 으흐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단순하게 좋은 거 좋아하고 싫은 것 싫어하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좋은 호박도 먹고 살게 되지 않겠나. 좋은 걸 좋아하는 것도, 싫은 사람 싫어하는 것도 괜한 죄책감에 제대로 해보질 못한다. 내가 좋은 걸 하면 이기적인 것 같고,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하나님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라 버리고 없애야만 하는 것 같아서. 싫은 것 안 싫어하려고 애를 쓰다 더 꼬여버린 일과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부터 '싫구나!' 인정하고 들어갔으면 오히려 쉬웠을 것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설겆이 하던 내 마음 같진 않으실까. '요 녀석들, 마음껏 골라 먹어라. 니들이 골라봤자다! 이놈들아' 큭큭거리며 귀여워하시는. 예수님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좋은 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을 싫어하는 아이 같은 단순함이라도 누리며 살 일이다. 아이 같은 내게 하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니가 나를 도우면 얼마나 돕는다고 그리 애를 쓴다냐. 내가 너를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거라. 편식해도 좋다. 행복하게만 살거라.' 그러면서 내가 헤질러 놓은 아버지 나라의 식탁을 치우시며 큭큭거리신다. '짜식, 호박 먹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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