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가보고....'

'우리는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가고....이게 뭐야'

가끔 이렇게 남편 들으라고 일부러 신세 한탄을 한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정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길' 그것 때문이 아닐까?


여행이 좋고 들뜨는 이유는 고속도록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가 좋아서이고,

무엇보다 길을 따라가며 끝없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다.




 

남편 역시 여행 중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어디를 가서 좋은 것보다 이렇게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게 제일 신나'


그렇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길'을 따라 함께하는 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거 섬진강변인가? 어딘가를 지나면서 했던 얘기 같은데...'이러면서 나중에 말하게 되는 것도 참 좋다.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고나서,

그리고 임철우의 <봄날>을 읽고나서,

보성, 화순, 벌교, 구례, 주남....이런 곳의 지명만 들어도 마음이 찌릿찌릿한 것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나 역시 그 말로만 듣던 곳들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봤다는 것이다.




길을 따라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화개장터'에 까지 가보게 되었다.

여기서 산 단밤과 은행 구운 것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하루 하루 이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에

하늘로 돌아가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번 여행을 몇 개의 여행이 짬뽕된 느낌이다.

민들레 공동체과 소석원, 그리고 진주북부 교회에서의 2박3일은 '배우는 여행'이었다면.

중간의 1박2일은 '즐기는 여행'이었다.

결국 즐김, 배움, 가르침이 다 어우러진 것이 여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암튼, 우리 네 식구가 어디 가서 처음으로 우리 끼리만의 밤을 보내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여기 저기 많이 다닌 것 같은데 그 때마다 부모님을 위한 여행이었기에 여행보다는 효도 쪽이 무게중심이 있었다)


어떻게 가든 '보성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수요일 오전이었다.

남해에 들러 충렬사와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돌아보는 (남편 표현에 의하면)성지순례를 하고,

광양 제철소를 경유(이 때는 세 식구는 모두 자고 운전자만 살아 있었다),

순천 시내 파리바게뜨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샀다.


 
 

그리도 가보고팠던 보성차밭을 들러서 율포의 녹차해수탕도 들러줘야지~

현승이와 아빠는 남탕, 채윤이는 엄마와 여탕이 좋겠지만,

'니네 둘이 함께 있어야 놀 수 있잖아. 같이 엄마랑 가야겠네' 하고 두 아이를 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계속 운전하는 남편에게 좀 쉴 시간을 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남편은 빨리 씻고 나와서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다.


보성 차밭이 쫘~악 내려다 뵈는 언덕 위의 팬션으로 숙소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갔는데 1층 찻집에서 녹차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좋은 녹차를 마셔보니 처음으로 '녹차 향기'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동서현미 녹차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맑고 은은한 녹차향 말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별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나누는 이런 저런 얘기들.

내게 가장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은 어쩌면 이런 시간이다.

음악이 있고, 사방은 조용하고, 아무 방해없이 남편과 이런 저런 삶의 얘기, 아이들 얘기, 하나님 얘기를 나누는 시간.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녹차밭을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어젯밤에 사 둔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했다.



 


저렇게 녹차밭이 훤히 내다뵈는 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급히 짐싸서 나오기는 아까운일 아닌가?

햇빛 드는 창가에 앉아서 다이어리에 여행에 관한 기록들를 끄적이고,

책을 보고,

내일 있을 강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또 놀이에 빠져있고.

이것이 과연 안.식.이 아니겠나.



 

가족.

학교 다닐 때 학기 초만 되면 그런 조사를 한다.

"편부 편모 가정 손 들어봐!"

그나마 좀 나은 선생님을 그럴 때 눈을 감으라고 한다.사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붉어진 내 얼굴과 귓볼 같은 것을 본 친구들이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랑 동생 나. 이렇게 세 식구 사는 게 막상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는데도 '편모가정' 이런 말들은 당연히 불행하고

당연히 불쌍해야 할 것 같이 여겨졌다.


결혼을 해서 또 다른 가족이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 딸, 아들. 구색이 딱 맞는 가정이다.

외형적으로 구색이 딱 맞아서 좋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하듯 우리 부부에게 결혼은 '치유'였다.

많은 상처와 열등감, 외로움에 대한 치유였다.


다음 날 있었던 결혼 강의에서 이 얘기를 결론적으로 했다.

찬양 중에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하는 가사가 있다.

청년들이 지금의 가정에서 외형적으로 내적으로 받은 상처가 있다면 내가 만들 가정에 주실 복을 기대하면 기도하라고.

'따스한 따스한 가정'을 꿈꾸고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내 인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선물. 가족.

민들레 공동체에서 나와 어딘가를 간다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사전 지식이라곤 없었다.

 

어떤 사람이 '거기는 겨울보다 가을 단풍 때가 더 이뻐'하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까펜가? 아니면 무슨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확신을 했다. 아~ 카페구나.

바닥이며 담을 돌로 쌓아 만든 멋진 카페같은 곳인데 카페라 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후지고,

무엇보다 써빙을 보시는 분이 웬 할아버지라는 게 영 부적절했다.

커피들 한 잔 씩 들으라고 하시면서 물을 끓여 나오시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돌로 만든 의자에 죽 둘러 앉았다.

인솔해 가신 전도사님이 '할아버지 얘기 좀 들려 주세요'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얘기를 쏟아 놓으셨다.

 


 

얘긴즉슨, 여기 있는 모든 돌이 30여년 동안 할아버지 혼자서 옮겨다 놓으신 것이다.

저 많은 돌들을 옮겨다가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가족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병든 몸으로 이 산골에 들어 오셔서

움막을 하나 짓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셨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땅이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흙탕물이 되는데 돌을 몇 개 놓고 밟고 다녔더니 '거 좋네' 하시고는

시작하신 일이 여기에 돌을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50년이 된다는 것 아닌가?

혼자 그렇게 고독을 벗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 돌을 가족 삼아 살아오신 것이다.

고독과 고난의 길이 천국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을 삶으로 배우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시다 결혼하신 지 8년이 되신단다. 결혼으로 따지면 우리랑 동기가 되시는 것이다.^^

결혼 8년차 답게 할머니랑 어젯밤에 티격태격 하셨단단. 할머님은 지금 방에서 성경을 읽으면 근신 중이라면 농담도

잘 하셨다.

 

저 많은 돌들을, 아니면 저렇게 큰 돌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옮겼단 말인가?

모두들 저걸 어떻게 옮겼느냐고 하는게 하루에 한 두 개씩만 옮겨도 30년이면 어떻게 되느냐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저 놈은 15년, 저 놈은 7년'이 걸렸다면서 엄청나게 큰 돌들을 가리키셨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과 연못 옆에 세워둔 경고문(!)이다.^^

 

오랜 고독의 시간 동안 고난도 개구리도 돌도 바람도 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자작곡의 노래도 많이 있으시단다. 디카를 동영상 모드로 돌려 놓고 '노래 좀 들려 주세요' 했다.

그랬더니 작품해설과 더불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가르쳐 주셨다.

 

'돌이 돌이 돌돌,

 돌이 돌이 사네

꽃도 꽃돌

꽃돌 사네'


어찌나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여행 내내 애들과 함께 불러댔다.

 

당신의 얘기를 다 풀어 놓으신 후에 '이렇게 힘든 삶은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라고 부르셨으니까 살지'

결국에 '소명'이다.

소석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남편과 했던 얘기다. 지난 밤 만난 김인수박사님을 생각면서

'이 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살고 계신 것 아닌가?' 즉 '소명' 얘기였다.

이 할아버지도 '소명'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 묵묵히 돌을 나르면서 삶을 가꾸라는...

그렇게 살다보니 결혼도 하고 지금처럼 행복한 날도 살아본다고 하신다.

 

'소석원(笑石園)'

돌들이 웃는 정원?

이 분이 사시는 동네 이름이 '鳴石마을'이란다. '우는 돌'들이 '웃는 돌'들이 된 것이다.

어디 이 할아버지의 인생이 '웃음'이 웃어지는 삶이겠는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웃고 계셨고,

돌들이 주인을 따라 웃고 있고, 소석원 곳곳에 유머와 웃음이 베어 있다.

 

부끄럽다.

울 일도 아닌 일에 가슴을 치며 울어대고, 분통을 터뜨리고, 억울에서 펄쩍펄쩍 뛰는 내 삶이 부끄럽다.

소석원 할아버지의 웃음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겠다.

그 소명이 무엇이든지, 고난이든지, 외로움이든지, 짓밟힘이든지...

소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결국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웃게 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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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오래되던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프로젝트였다.

예전에 복지관에 다닐 때였다.

채윤이를 보시던 엄마가 골다공증과 고혈압으로 쓰러지다시피 하시고 7개월 채윤이를 하남에 맡기고 사당동에서 살던 때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어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엄마를 봐도 채윤이를 봐도 눈물만 흘렀다.

'쉼'이 필요했다. 몸과 영혼이 쉬면서 찾아야할 것들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장염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열은 오르락 내리락...링거를 맞고 버티는 상황이었다.

또 설상가상. 8개월된 채윤이가 장이 꼬여서 한 밤을 지새우면 고양이 울음을 내며 고통스러워하다 입원을 했다.

 

바로 그 때!

서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내가 다니던 복지관이 완전 물에 잠기는 바람에 곡절 끝에 한 달 휴관을 하였다.

한 달이 아니라 한 40여일 되었던 것 같다. 즉, 40여일 휴가를 받게 된 것이다.

사람 사람마다 여러 다른 상황이었겠지만 그 때 그 40일은 분명 내게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휴가였다.

 

이번 여행도 그와 비슷한 셈이다.

원래는 금요일에 지리산에서 MBTI 강의와 결혼강의를 하는 계획이 있었고 목요일에 아이들 두고 남편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었다.

갑자기 월,화 이틀간 민들레 공동체 탐방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연락이 왔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 있었으나 일주일에 장거리 여행을 두 개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남편이 제안을 했다. 어차피 둘 다 지리산 근처니까 애들 데리고 일주일 동안 여행을 하자.

잠은 민들레 공동체에서 이틀, 지리산 수련회장소에서 하루, 그리고 찜질방에서 하루 자면 된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기에 그러겠노라 했다.

 


출발하면서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번 여행에 함께해주세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하고,

우리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회복되는 여행이 되게해주세요"




외향형이긴 하지만 감정형인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쌩판 모르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귀는 자리로 가는 것도,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더플더플 말을 건네고 하는 것도 내게는 꽤 불편하다

남편의 학교 동기들을 만나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그래서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민들레 공동체의 대표이신 김인수박사님이 정말 괜찮은 분이라니

(남편이 지난 학기에 한 번의 특강을 듣고는 그 분의 인격과 삶에 뿅 가버렸다)

나머지 것들은 훈련이라 여기며 공동체를 찾았다.

 

산책을 하고, 장작을 패 보고,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고,

그리고 한 30여 년 만에 '자치기'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가끔씩 '자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로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놀이의 정확한 순서가 생각나질 않았었다.

공동체에 사는 준규라는 아이가 자치기를 갖고 놀길래 같이 하다보니 그 순서가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그저 각자 또는 같이 마음 가는대로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꼈다.






저녁을 먹고 김인수박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를 요즘의 시대, 세계화, 도시...이것에 대한 대안을 '공동체'에서 찾았고 성공하신 분이다.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주옥같은 말씀들이다.

이 말씀이 주옥같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삶과 말이 다르지 않다는 것.

20년 동안 삶으로 살아낸 얘기를 하는데 어찌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공.동.체.

이 분이 하고 있는 공동체란 무엇인가? 같이 먹고 자고 서로의 삶을 평생 경제적으로 책임져주는 공동체이다.

이것을 위해 먹을 것을 비롯해서 전기까지도 자급자족을 하신다.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저걸 타고 패달을 밟으면 전기가 만들어지는 발전기 자전거다.

이것과 풍력발전 등등으로 전기까지 자급자족할 뿐 아니라 조만간 남는 전기를 한전에 팔 수도 있다한다.


그러나.

먹고 입고 사는 것이 해결된다고 어디 공동체가 굴러가는 것이더냐?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의 문제, 즉 '관계문제'에서 발이 꼬이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고 어설픈 질문을 해봤으나 그리 힘겨워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느낄 수 있는 인격의 아우라가 분명 있었다.

사람들 때문에 힘든 것이 왜 없을까만은

'부름심'에 충실한 삶을 살려할 때,

'자기'가 비워지고 또 비워졌을 때는 다른 눈과 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가르치다니요? 우리가 뭘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저 살라고 하신 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절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둘이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겠다고 하는 신대원생에게 그렇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성경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요...

여러분의 설교로 사람들이 정말 뭘 배우게 될까요?"

그렇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남편이 목사가 되고 설교를 할건데 설교를 통해서 정말 뭔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가끔씩은 평신도로 앉아 있는 나도 여러 설교들을 무시하고 귀를 막을 때가 있다.

 

문제는 삶이다.

이 분의 말씀이 하나 하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진한 삶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뭘 가르치겠다'는 의식이라곤 없이 그저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낸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설교가 교역자로서의 특권의식에서 나오지 않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감시하리라.

도시 교회에서의 대안을 무엇을까 하는 질문에 교회 속 교회, 즉 소그룹 공동체를 언급하셨다.

삶은 결코 사람들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

교역자는 성도들과 일정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든지,

목사나 사모는 자신의 삶의 얘기를 성도들과 할 것이 아니라 교역자들 끼리만 나누는 것이 미덕이라든지,

이런 의식이 남편과 내게 둥지를 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이 있는 설교는 위해서는 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함께 기도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의 귀까지 쫑긋 세우고 말씀에 집중했던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거기 베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 박사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통찰이 마음에서 울렸고 그것 역시 성령님의 울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방이다.

여기 들어가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선뜻 행동에 옮기질 못했다.

언젠가 여기에 다시 가서 오랜 시간 머물고 또 저기 앉아 기도하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까?




 

나는 이상하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걸 잊는다.

아니면 이런 순간에 카메라를 드는 건 너무 수선을 떠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박사님 얼굴은 담아오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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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부터 어저께지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금요일에 지리산에서 MBTI 강의와 결혼 강의가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과 둘이 목요일에 내려가기로 했었는데 갑지가 월,화에도 지리산 근처에서 일정이 생겼습니다.

남편 신대원의 '농촌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공동체 탐방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민들레 공동체'라는 곳인데 학기 중에 남편이 거기 대표되시는 분께 특강을 듣고는 완전 뿅가서 왔더랬습니다.

생각과 삶이 너무 멋진 분이라고...

대안학교도 시작한다니 채윤이 초등학교 가는 마당에 여간 끌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공동체 탐방도 따라 가겠노라 했습니다.


남편이 아예 애들 데리고 내려가서 일주일 그 쪽 여행을 하면 어떻겠냐 했습니다.

방학이라 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일을 하고 있는터라 어떨까 했는데 다행이 스케쥴 조정이 되고

정말 좋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여행을 제안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이 넘게 정서적 터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저를 위한 배려였지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내리라 마음 먹고 아이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


한 두 편의 글로 다 말할 수 없는 좋은 것들로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만남,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만남들,

환대와 섬김,

우리들만의 노래와 이야기,


넘치는 위로가 된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먹은 밥이 체해서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 먹고 일찍 자야했지만 그것까지도 감사한 여행의 일정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여행 마지막 날에 남편과 함께 결혼 강의하면서 남편이 그런 결론을 내리더군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주신 선물이 바로 아내'라고요.

남편, 아이들, 사람들, 소명, 은사...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선물들을 다시 리필 받아서 돌아온 느낌입니다.^^


그 선물 얘기를 하나 하나 정리해두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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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  정혜신, 개마고원



>>호감 vs 비호감


중학교 1학년 때 일기장에 그런 짓을 했었다. 일기장 한 페이지 가운데 줄을 그어 영역을 나누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분류해서 적었다. 막 자기 정체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춘기에 관계중심적인, 관계지향적인 기질에 어쩌면 그리도 충실한 놀이를 하였는지…. 호감이냐, 비호감이냐. 요즘 들어 많이 듣게 되는 이 용어는 자주 써 먹게 된다. 쓰면서 ‘아~ 참 쓰기 좋은 말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누구는 좋아. 누구누구는 싫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저런 스타일 완전 비호감이야’라고 표현하면 어쩐지 좀 덜 유아적으로, 보다 세련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딱 두 집단으로 나눠서 ‘호감, 비호감’으로 분류할 수는 없어도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호감, 비호감’의 잣대로 사람들을 가른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조차도 그 분류의 절차며 결과를 뚜렷하게 표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호감’이라면 몰라도 어떤 사람을 ‘비호감이다. 싫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은 인격적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이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알고 있다. 성인이 된 나는 알고 있다. ‘좋은 사람(good object)’ 과 ‘나쁜 사람(bad object)’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는 좋음과 그렇지 않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내 마음 한 켠에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어서 내게 비호감이면 ‘나쁜 사람’일 확률이 많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건너편


몇 년에 한 번, 마음먹고 시작한 어떤 사람과의 대화에서 죽사발이 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최근에 ‘대화로 죽사발 되기’를 다시 한 번 경험했다. 마음먹고 어떤 대화를 할 때는 ‘내가 이 정도 표현해 주면 이 정도 반응이 나오겠지’ 하는 식의 그림은 누구나 그릴 것이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점에서 예상치 못하는 반응을 보일 때, 그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흔하지 않은 경험이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대화를 만들어낸 주범은 대부분 ‘나의 시나리오’ 상의 문제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상대방과 대화의 장에 나가기까지 내 머릿속에서 그려졌던 그림이 상당히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에 대한 ‘나 중심적인 해석’이 잘못된 시나리오를 제작하게 되고, 그 시나리오를 들고 대화를 시작하면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는 ‘사람은 참으로 다르다. 내 맘 같은 사람이 없다’라며 무성의하게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는다. “내 맘 바꿔 넘(남) 맘 생각혀 봐라”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께 많이 들었던 얘기다. 내 맘을 바꿔서, 그대로 온전히 바꿔서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산의 이쪽에 서 있는 내가 산등성이 저 쪽에서 이 산을 바라보며 산세를 그리고 있는 상대방과 같은 산모양을 본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말이다. 나는 나를 뛰어넘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본다고 하지만 ‘객관화’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님을 관계나 대화의 실패를 통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 서른여덟 명, 남의 속마음


나는 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의 행동 뒤에 숨은 동기를 추측한다. 추측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내 추측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내 추측이 오답임이 밝혀질 때, 그리고 그 판단착오에 대한 벌을 고스란히 ‘관계의 삐걱거림, 관계의 틀어짐’으로 받아야 할 때 나는 정말 당혹스럽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의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총 38명 남자와 여자들의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름 하여 ‘심리평전’이다. 저자 자신의 사람에 대한 ‘호감/비호감’의 취향을 온전히 뛰어 넘을 수는 없다 하여도 읽다보면 ‘전문가의 손길(눈길?)’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38명의 사람들, 대충 알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는 사람이라 할 수도 없는 유명인사의 행동과 행동 뒤에 숨은 동기를 인식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내가 그렇게도 다다르고 싶었던 산등성이 저 쪽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다. 서른여덟 명의 타인을 이렇게 저렇게 씹어(?)보면서 소화를 시키고 나니 완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 덩어리가 남았다.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서 자연스럽게 드는 호감, 비호감의 정서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내게 비호감이면 더 생각해 볼 여지없이 ‘안 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내 유아적인 버릇을 딱 짚어주고 있다. 저자는 ‘현실감각’이라고 정의하며 설명하는 이것이 내게는 ‘성숙한 관계 맺기를 위한 1단계 과제’라고 여겨진다.


‘감이 없다는 게 별거 아니다. 다른 현실이란 있을 수 없고 내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만 현실이라고 우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려면 타인의 행위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싶은 상황만 보지 말고 나와 타인의 전체적 현실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다’<사람vs사람>에서.


>> 참고서를 참고하고, 교과서 저자에게 가기


예수님은 우리를 관계 속으로 부르셨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라고 배웠다. 나날이 기도가 뜨거워지고, 전도에의 열정이 불타오르고, 믿음의 진보가 느껴지는데 ‘관계’는 제자리걸음이라면 한 번 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성숙한 관계는 정혜신의 말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현상학적으로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행동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는 인지력’이 전제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신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정신과 의사의 심리비평에 그치지 않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때 첫 걸음을 떼기 위한 도입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문제가 척척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대충 나와 어떻게 다른 것도 알겠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선의의 해석’을 하도록 하자. 이 책의 행간에서 건져 올린 또 하나의 처방이다. 선의의 해석을 해도 여전히 용납되지 않는 비호감의 문제는 우리를 ‘이렇게 다르게 만들어 놓으신’ 그 분께 가져간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그 산을 만드시고, 그 산 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시는 그 분의 손에 궁극적 열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 파산 그리고 망상


혼신의 힘을 다해 정성을 쏟아 부었던 공동체와 사람들로부터 내침 당했다고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깜깜한 절망의 벽이었다. 청년부의 대모(大母)로 온갖 궂은 일 마다 않고 사람들 섬기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소그룹 모임의 교재가 마르고 닳도록 읽고 요약하고 또 정리하며 주일을 맞는 리더였으며, 조원들의 생일을 하나하나 정성으로 챙겼으며, 수련회 때는 20여 명 청년들의 식사를 도맡아 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힘들어 하는 후배들과 밤이 깊도록 기나긴 전화로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 주었다. 아~ 그만하면 정말 완벽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 아니었던가.


나와는 직접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 문제에 휘말렸다. 그리고 서서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신화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돕겠다는 의도로 누군가에게 했던 어떤 말들이 오해와 곡해가 덧붙여져서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한 번 봇물이 터지자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내게 들리는 나에 대한 얘기는 그저 악한 것뿐이었다. 그 때가 되도록 신앙의 위기라고는 별로 겪어보지 못했던 범생이 크리스천이었기에 내게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이제 남은 건 '최종 부도 처리' 이것뿐인 것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동체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교제하던 형제와 짧은 교제 후 헤어져서 질퍽거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범생이 크리스천에게는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안 나가거나 청년회를 당분간 쉬는 선택은 없다. 주일마다 나가서 예전처럼 모든 걸 다 하지만 내 영혼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주일 모임을 마치고 사람들이 에프터로 우~ 몰려가면 혼자 집으로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망상에 빠졌다. '모두 모여서 내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그 자리에 따라 가지 못한 나를 보면서 고소해 할 거야….' 망상은 말 그대로 망상! 근거 없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화되고 확대 되었다. 공동체의 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망상과 고립감이 짝을 이루어 나를 공동체 밖으로 더 멀리 더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 두려움과 두려움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책이 손에 잡힌다는 것이 내게는 큰 은혜다. 바로 그러한 영적 파산의 위기에서 래리 크랩의 『격려 상담』(두란노)을 손에 들게 되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차오르는 고통을 잊어보자는 생각에 아무 거나 골라잡은 것이 제목도 고리타분한 이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개의 단어가 내 시각과 지각과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관.계. 그리고 두.려.움. 이 두 단어가 주일은 물론 매일 시시각각 공동체 사람들을 향해서 망상에 사로잡힌 나의 심리적 영적 상태를 명쾌하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친구들과 후배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빠져 혼미해져 있었고, 이제껏 내게는 따뜻한 둥지 같은 '안전한 관계'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모든 것을 잃었다 느끼고 있었다.


래리 크랩은 조근조근 내 자존심을 한 올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진단해주고 치료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가득 차 있다고. 그런데 그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만 그 두려움을 가장하기 위해서 농담, 때론 침묵, 논리적인 토론, 속이는 눈물 같은 것들을 고안해 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실은 영적인 위기를 느끼면서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지금의 나'만이 두려움에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나'도 그러했고, 지금 나를 빼놓고 에프터 하고 있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힌트를 주었다. 그렇구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핵심적인 감정이 두려움이라니…. 그렇다면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두려움 덩어리, 나 외의 모든 '너'도 두려움 덩어리.


>>> 출발지 사랑, 도착지 두려움


이 책은 내내 '다른 사람을 어떻게 격려할까?' 하는 내용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비결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격려를 받는 것인지, 아니면 책에 빠져 내 문제가 잊혀지는 것인지 모를 진통제 같은 효과가 있었다. 읽고 곱씹어 보니 그것은 단지 진통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끝없는 두려움의 분명한 해결책과 해결 책임자를 찾아내니 진통제 아닌 치료제가 거기 있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두려움은 누구의 몫인가? 바로 나의 몫이다. 사람들의 농담과, 경직된 말투와, 지나친 친절함과, 헛웃음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발견해 격려하라고 하나님이 부르셨다. 그것을 위해서 '관계'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내 두려움은 누구의 몫인가? 그것은 내 이웃의 몫인가? 내 옆에 있는 지체들을 향해 내 두려움을 감당해 달라고 해야 하는가? No! 내 두려움은 하나님 몫이다.


이런 통찰을 얻고 난 후에 나는 부도 직전의 영적인 상태를 털고 일어났다. 마음의 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려 있던 이불을 털어 개켜놓고, 커튼을 열어 햇볕을 맞아들이고, 창문을 열고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고립됐다고 느끼던 내 고통과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니 얼마나 든든한가? 이제껏 날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서 두려웠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보는 투시력(^^)이 생겼고, 그것을 터치할 방법을 알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커지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팁을 얻었다. 내가 그렇게도 열심히 섬겼던 사람들이 어찌하여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나를 배신했는지 말이다. 이 일을 경험하기 전에도 나는 사람들을 격려한다고 말을 하고 많은 액션을 취했었다. 그런데 그 말과 액션들이 많은 경우 격려의 모양은 입고 있었지만 진정한 격려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두려움을 겨냥하기는 했으나 나의 두려움에서 출발한 격려는 진정한 격려가 되어 사람의 영혼을 만질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소명으로 나눠주신 이 '격려'는 내게서는 '사랑'이라는 활에서 쏘아져서 내 형제의 '두려움'을 겨냥하여 다다라야 하는 것이다.


다시 나는 새로운 액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불성실한, 사랑이 없는 리더라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맡겨진 사람들에 대한 솟아오르는 사랑으로 조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엽서를 보내고 성경공부를 준비하게 되었다. 내 부족한 사랑으로 그들의 두려움에 닿기를 기도하면서….

2006/12/29
        
정신실 내년 1월호 부터 <큐티진>에 '藥이 된 冊'이라는 꼭지로 쓰는 글.
쓸 때는 늘 고통스럽지만 결국 글은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라는 과정이 된다.
'쓸 게 없어요' 하고 엄살을 하는데 늘 멍석을 깔아주시며 격려해 주시는 서목자님 덕에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는 기회를 얻게 된다. 서목짠님! 감사합니다! (06.12.29 17:30) 댓글수정삭제
정신실 2월호 글을 쓰다가 진도가 안나가서 이러구 있음. (06.12.29 17:30) 댓글수정삭제
정운형 잘썼음. 2월호도 기대 됨. (06.12.30 13:14) 댓글삭제

예전에 복지관에서 풀타임 근무 할 때.

성대결절로 두 주 병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목을 절대 안 쓰는 게 약'이라고 의사가 말했는데....

맘껏 노래할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서글펐다.

무엇보다 '목소리로 먹고 사는 직업'인데 이러다 노래도 못하고, 음악치료도 못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살짝 불안했던 기억도 난다.


성탄절이 되기 전 금요일부터 강행군을 했다.

금요일 아침 7시 30분에 시어머니 검사예약이 되어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어머니 병원을 모시고 다녀왔다.

그리고 저녁에 어린이집 송년발표회 행사를 진행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네 시간에 걸쳐 찬양대 연습을 하고,

주일아침 8시에 교회 가서는 역시 찬양대 연습과 예배, 그리고 저녁 7시에 성탄절 행사를 하며 또 찬양을 했다.

월요일 성탄절 점심에 찬양대 회식으로 식사를 할 때까지 거의 밥다운 밥을 먹지를 못했다.

덩달아 애들도 한 이틀을 밥구경을 못하고 엄마를 따라 다녔다.ㅜㅜ


성탄절을 보내고 목도 함께 보냈나보다.

목이 사실 안 좋기 시작한 건 한 달이 되었다.

오랫만에 아이들 노래 연습을 시키려니 모든 게 예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할 때 같지가 않았다.

신호가 이미 왔음에도 목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가버리 목에 목감이 까지 걸렸다.


어제 남편이 수요찬양을 인도하면서 싱어로 서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목이 최악인데 노래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같이 서지 말고 의자에 앉아서 혹시 괜찮으면 마이크 대고 노래를 해달라고 하였다.

조금씩 소리가 갈라지면서 20여분 찬양을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 치료하면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질 않는다.

목소리 나오지 않으면 무기를 잃은 것 아닌가?

마지막 치료를 하고 나오면서 고개가 저절로 떨궈지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몸과 마음에서 힘이 주~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병원에 가면 '성대결절' 진단이 나오겠고, 방법은 안 쓰는 방법이라 할텐데....

ㅜㅜ

200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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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렇게 기다리던 독립이요, 이사이건만 홀가분한 마음보다 마음 한 켠 묵직한 것이 참 이상하다.


그간 참 많은 마음 고생, 몸 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의 눈물'이 시시때때로 시야를 흐린다.

채윤이가 7개월이 되던 때부터 일곱 살이 되고, 이제 여덟 살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아이들 양육을 도와주신 부모님. 특히 아버님.

'내가 다시 선택하라면 부모님께 애들 안 맡긴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지만...

두 아이가 이렇게 자라는데 수훈상을 드리자면 역시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시다.


두 애들이 유아기를 보내고 부모로서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반의 책임은 아버님이 다 져 주셨다.


꼭 애들 문제가 아이어도 암튼 결혼하고 사당동에서 살던 20여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고 봐야하는데...

어머니 말씀처럼 '이제 더 멀리 살 일' 남았다.


그런 저런 일들을 돌아보면서 운전하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감사'라는 단어 외에는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제 아마도 어머니랑 살면서 마지막이 될 김치를 했다.

올 해는 절대 김장 하시겠다고 하셨던 어머니 결국 어제까지 세 번의 김장을 하셨다.

'엄마! 할머니가 김장하게 빨리 건너오래' 하는 채윤이 말에 이제 습관이 된 '김치하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기쁘게 건너 서 백김치를 담궜다.(이제 낼 모레면 제대니까!ㅎㅎㅎㅎ)


조금 전에 어머님가 건너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시다가.

7년이 되도록 너랑 나랑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참 잘 참고 살았다.

너도 힘든 것이 있었을 거고, 나도 그렇지만 참 지혜롭게 잘 참고 살았다.

하셨다.

7년 동안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며느리랑 살았다는 것이 어머니께는 큰 자랑이다.


가끔 어머님 친구분들 만나면 '같이 사는 며느리가 그렇게 착하다고 어머니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하신다.

같이 사는 며느리와 잘 지내는 건, 같이 사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며느리에게 자부심이 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함께 살면서 눈물로 보낸 밤이 적지 않은데...

결국 어머니의 연약한 점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그 때 그 때 말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찬양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으로 다시 어머니 사랑하기 위해 일어나고

또 일어나곤 했었다.


이사를 하면서 그 세월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지낸다.

감사의 편지와 함께 기억에 남을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2006/12/5
      
박영수 이글 쓰면서 또 눈물 바람 했겠지?
시부모건 친정부모건, 출가후 부모님과 함께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감사와 기대 두 마음으로 지금 행복한 순간이네.
새로운 환경과 함께 좋은 일들이 마구 펼쳐지길.....

(06.12.05 11:50) 댓글삭제
조기옥 저는 쥔장님 마음 백번천번 이해된다고 하면 내 마음도 느껴질까요...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겠네요..
저두 짐싸는데 한 힘되는데요.. 힘만 쎄서리...ㅎㅎ 맘만이라도 보태드릴게요. 힘내서 여영차 이사 잘 하세요~~ (06.12.05 13:17) 댓글삭제
정신실 짐은 포장이사 하니까 마음 보태주시는 일이 최곱죠.^^
제 마음 백 번 천 번 이해되시는 것이 마음 깊이 느껴져요.
말로 표현된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몽녀님! 어뜨케 아셨대요?
하이튼 빨르시다니까!ㅎㅎ
(06.12.05 21:24) 댓글수정삭제
조기옥 이사짐 센터 직원이 젤로 싫어하는 집 --->>> 책 많은 집^^
아마도 그럴걸요^^ (06.12.06 10:19) 댓글삭제
정신실 이사하는 날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책꽂이 앞에 서서 '후유~' 하고 한숨 쉬는 거 본 적 있어요.ㅎㅎㅎ
신경질 나서 그러는지...책을 저~엉말 아무데나 꽂아서 정리해요.
그러면 책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남편하고 둘이서 하루 걸리는 일이예요.
이번에는 남편이 책 정리하시는 분께 꼭 부탁한다고 하더라구요.
'아~자씨! 순서대로 빼서 순서대로 꽂아주시면 안될까요?'
제 생각엔....아자씨께 너무 무리한 부탁인 것 같아요.^^
(06.12.07 09:37) 댓글수정삭제
이금미 목녀님! 이사축하드려요.^^ 언제하시나요?
늘 행복하고 즐겁게 사시는 것 같아요.^^ 채윤이, 현승이가 행복의 비밀이겠지요?ㅋㅋ
저도 2월이면 둘째아이 엄마가 되네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좀 여유롭게 아줌마답게 살려고 합니다.ㅋㅋ 한 1년정도는 유아로 또 정신없겠죠.ㅋㅋ 좀 걱정되는게... 그게.. 둘째도 아들이라는 사실..헉~
좀 많이 걱정이 되네요. 딸을 무지 기다렸는데.. 딸같은 아들이 나올지..ㅋㅋ
암튼 신혼때 질풍노도의 시기에 함께 해주시고 도움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제 진짜... 분가하셔서 행복한 시간 더 많이 가지세요. 화이팅! (06.12.15 13:30) 댓글삭제
정신실 오~~오, 금미자매!
같이 하진 못하지만 늘 생각나고 궁금하고 보고싶고 그래요.
두 아이가 동욱이를 많이 그리워 하고요...
둘째 소식을 들었는데 배가 많이 불렀겠구나. 올 한 해 지내보니 작년에 이수전도사님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 들어요. 금미자매로 그렇고.
방학 때 동욱이 데리고 꼭 한 번 놀러와요. 사진으로는 가끔 보지만 많이 자란 동욱이 너무 보고싶고..
두 사람도 보고 싶어요. 꼭꼭꼭이예요! (06.12.15 14:37) 댓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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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사할 때가 되니까 어머니가 어머니 살림에 대한 생각이 많으시다.

손님이 오시면 우리집에 오셔서 우리 찻잔으로 차를 대접하시거나,

우리 압력밥솥을 갖다 쓰시거나,

암튼 필요할 때마다 갖다 쓰실 살림이 하나 더 있으셨는데 그게 없어지니 말이다.


살림을 좀 사고 바꾸고 하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보다.


"은옥이(시누이)가 저~기 어디 이천인가 곤지암으로 그릇 사러 가자고 하드라. 이쁜 것이 엄청 많다고"

"그래요? 언니가 바쁜데 언제 이천까지 그릇 보러 갔대"

하고 말았다.


며칠 후 시누이를 만났다.

"야! 니가 가보라고 해서 2001 아울렛 가봤는데 그릇 이쁜 거 엄청 많드라" 이런다.

그렇다면 혹시...

"언니 혹시 어머니한테 2001 아울렛에 그릇 사러 가시자 했어요?"

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니끼니.

어머니가 '이천'이라 하신 곳은 '이천일 아울렛!'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이천 옆 '곤지암' 까지 붙이신 어머니.

ㅋㅋㅋㅋ


이사하기 전에 이천인지 곤지암 가서 이쁜 그릇좀 사다드려야 쓰겄다.


       
조기옥 푸하하하~~ 넘 재미나요~~
아파트 이름이 외래어로 바뀌는 이유가 어른들 못찾아 오게 하는거라더니..
이렇게 재밌게 버무리시는 어머님... 넘... 멋져요~ (06.12.05 13:11) 댓글삭제
정신실 이런 거 디게 많아요.
조마루 감자탕 ---> 마루조나 감자탕
또 많은데..ㅎㅎㅎ (06.12.05 21:25) 댓글수정삭제
이선영 저두 있어요!
어머니: 오카리나->오카나, 리모콘->거시기
친정엄마: 뜨인돌 교회->박힌돌 교회 (06.12.05 21:45) 댓글삭제
조기옥 뜨인돌 교회->박힌돌 교회... 넘 넘 잼나요~ 저두 많을텐데 지금 기억이 안나네요~~
음... 울 어머님이 실수를 줄이고 계신계야...ㅎㅎ (06.12.05 22:38) 댓글삭제
김종필 ㅎㅎㅎㅎ 다 재밌네요. ^^ (06.12.06 10:05) 댓글삭제
정신실 우리 엄니는 리모콘만 거시기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 모든 것은 다 '거시기'지.ㅎㅎㅎ

예전에 한영교회 앞에 '하늘의 별처럼, 들의 꽃처럼' 이라는 까페가 있었는데....
청년부의 어느 선배 어찌나 신앙이 좋은지 이렇게 부르더라.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ㅋ (06.12.07 09:38) 댓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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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멸치를 넣고 팔팔 끓여 멸치 육수를 만든다.

2. 신김치를 송송 썬다.

3. 어묵, 양파, 대파를 알맞게 썬다.

4. 육수에 김치, 양파, 어묵을 넣고 끓인다.

5. 대파를 넣고 소금간으로 마무리 한다.


국을 다 끓이고 국그릇에 덜어 사진을 찍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어머니: 지금(10pm) 밥 먹을라고?

   나   : 아니요.

어머니: 그럼 뭣할려고?

   나   : 이거 찍어서 컴퓨터에 올려서.. 제 홈페이지에다가..

어머니: 사진은 뭣하러 찍는감?

   나   : 요리 방법 올리고..  아무튼 신실언니 따라하는거 있어요.

어머니: ...  (갑자기 수현이를 향하여) 수현아~ 이쁜사람~ 복덩

          어리~ 세계박사~     

     

출처 : [이선영님 미니홈피]우현.수현.선영.운형.옥금이네
작성자 : 이선영
작성일 : 200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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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고열로 입원해서 걱정했던 한 달 된 조카, 우현이 건강하게 퇴원하여 감사

 

♥ 주말에 짧게 만나는 남편이지만 짧은 시간동안 깊은 대화로 아쉬움이 없으니 감사.

 

♥ 시간과 여유가 없음에도 주일 봉사 마치고 넉넉하게 함께 해주는 남편의 사랑으로  감사.

 

♥ 유치원에서, 또 이제 피아노며 학습을 시작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엄마가 말로 하는 격려와 가르침을 흘려 듣지 않고극복해 가는 채윤이로 인해서 감사.

 

♥ 가장 따뜻함으로 엄마를 안아주는 현승이의 위로로 인해서 감사.

 

♥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밝음과 유머로 극복하고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공경해주는 올케 선영이로 인해서 감사.

 

♥ 일주일이 이렇게 빨리 지남감을 감사.

 

♥ 매일 기도할 마음을 주셔서 감사.

 

♥ 이사갈 것을 생각하셔서인지 훨씬 더 부드러워지시고, 무엇보다 '며느리 운전해~'를 덜 하시는 시어머니로 인해 감사.

 

♥ 찬양할 때마다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감사.

 

♥ 오늘 가장 힘들게 일하는 날이지만 순간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감사.

 

♥ 매일 들어와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클럽, 따뜻한 관심으로 글을 읽어주는 귀한 사람들로 인해서 감사.

 

 

 

 

20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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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이사는 늘 부모님과 얽혀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결혼 후 첫 신혼집을 결정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신혼집을 얻는 문제로 고심하다가 부모님이 가지고 계셨던 낡은 건물로 들어가기로 결정를 했더랬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아이들 양육문제 등으로 이사에 대한 주도권이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지질 않았습니다.
 
채윤이 학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올 겨울 쯤에는 진짜 부모님과 떨어져서 교회 쪽으로 이사를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로 마음을 확정한 것은 지난 여름.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남편이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사하는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돈 문제도 아니고,
어디로 갈 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제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번의 이사는 특히 부모님과 완전히 독립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현승이 안 보시면 하루라도 그냥 지날 수 없는 분이 아버님이시기 때문이고,
어머니 역시 늘 아니라고 하시지만 채윤이 현승이 그리고 막내 며느리 곁에 두고 함께 지내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암튼, 두 분의 낙은 특히 아버님의 삶의 낙은 현승이인데....
 
결국 방학이 끝나기 전에 말씀 드리기로 한 계획은 지켜지질 못했습니다.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남편이 쉽게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닥달하기도 해지만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에 올라온 남편이 주중에 묵상한 말씀을 얘기하면서,
"여보! 아브라함과 룻이 헤어지는 부분 묵상을 했는데....룻은 당시 가장 좋은 땅 소돔으로 갔잖아. 아브라함은 스스로 선택권을 가지지 않고 상황에 따르며 인도하심을 받았잖아. 그 이후의 룻과 아브라함의 행로를 보면서...
우리도 아브라함 처럼 이사하는데 인도함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여러 가지로 답이 안 나오지만, 그리고 어디로 갈 지부터 다 막막하지만 기도함으로 인도함을 받자"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러겠노라하고 별다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구했습니다.
 
10월 중순이 지나서 이제는 이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주말에 남편이 올라오면 말씀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에 갑자기 여기서 밝힐 수 없는 문제가 부모님께 발생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이사얘기 하는 게 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 되겠다.
암튼,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 드리리고 했습니다.
 
남편이 올라온 토요일에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말씀 드리기로 하고 꽃게찜을 했습니다.
식사 준비를 다 하고 부모님 댁에서 막 식사를 하려는데...우리 집 주인이 찾아온 것입니다.
보일러 공사비 줄 것이 있고 또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요.
우리 집으로 건너와 얘기를 들어보니 '너무 미안하게 됐지만 12월 중에 집을 좀 비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2월 중순은 우리가 사실 이사하고 싶었던 시기입니다. 할렐루야~~~
저희 부부는 좀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 순간에 주인이 나타나서 이런 제안을 할까?
 
주인이 가고 부모님께 얘기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주인이 나가라 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두 분 다 노발대발 하십니다.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았는데...버티고 살면 주인이 할 수 없는거다. 하시면서요.
그래서 '실은 저희가 벌써부터 이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채윤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사를 해야지.
아니면 1년 다니고 전학을 시키는 건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교회 사역을 위해서도 교회 가까이 가야할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잠시 싸~ 해졌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
 
막상 집을 알아보니 전세 값이 너무 올라서 교회 근처로는 꿈도 못 꾸게 되었습니다.
하남으로 가기로 했지만 아예 전세가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돈도 적고 게다가 전세대란이네 뭐네 하면서 나온 집도 없으나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집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죠.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하남에 사는 은강이 엄마가 딱 우리가 가진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을 구해가지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순조롭게 계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2월 18일에 하남에 백조현대로 이사합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위험부담을 안고 30평대의 새 아파트에서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24평을 살면서 22평으로 가려니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헌데, 30평대 살다가 그 다음은 어떨까 싶으니 깨끗이 마음을 접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더 낮은 쪽으로 향하여 살아야지 높은 것을 향하다보면 마음의 불행은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암튼, 사실 마음은 쫌 그러네요.
지금보다 방이 하나 적고, 거실도 더 작고...
채윤이가 학교를 가는데 공부 방 하나 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베란다 바로 앞이 상가 문방구라서 창문을 열면 아이들 쭉 앉아서 오락하는 모습이 전경인 것도 그렇습니다. 재정적인 문제도 아주 깔끔하지는 않구요...
모든 것이 퍼펙트하고 불편한 게 없는 상황,
정말 그건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합니다.
 
이번 이사과정을 통해서 기도하며 믿음으로 기다릴 때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확실히 경험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어린 채윤이와 현승이도 함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06.11.18

휴일에 늦잠을 자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다.

휴일이면 빨리 일어나서 하루를 길게 보내고 싶다.


남편이 출근하는 유일한 날이다.


아침으로 떡국을 끓이고,

식사를 하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설겆이를 하고,

설겆이를 하면서 칫솔로 배수구를 윤이 나게 닦고,

행주를 삶고,

창문과 현관문까지 열어 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빡빡 걸레질을 하고,

빨래비누 척척 발라서 걸레를 빨고,

그 사이 다 돌아간 빨래를 하나 씩 털어서 널고...


난 이런 일이 보람있을 뿐 아니라( 하고나면 깨끗해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일 자체가 재밌다.


집안 일 자체가 차~암 재밌다.

할 수만 있다면 김치도 내 손으로 담궈보고 싶다.

(어머니 취향으로 말고....ㅎㅎ)


이 사이 거실로 햇살이 찾아들고,

거실 가득 93.1의 음악이 가득 채워지는 건 기본.


일을 마치고는 당연히 커피 한 잔 해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돈된 거실에 앉아서 말씀을 읽고 책을 읽는다.


나는 전업주부 체질 아닐까?

200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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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라 참 좋네요.


부모님이 하루 여행을 가셔서 앞집이 비어 있으니 더 좋은가?ㅎㅎㅎ


금요일은 남편이 오는 날이라서 좋은가?


요즘은 하루하루 지내는 게 참 힘들다고 느껴지는데...


오늘은 '그래도 금요일이니까 참 좋다'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됩니다.


그래봐야, 금방 월요일이 되겠지만요.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나? 하는 날에도 날아갈 듯 좋지 않고,


이런 저런 일이 마음을 후벼파는 날에도 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나마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기도 속에 산다는 것.


남편이 전도사가 되고,


덩달아서 내가 사모가 된 이후 가장 아니 유일하게 감사한 건 기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고 배워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요즘 같은 시기에는 훨씬 더 힘겨웠을텐데....


그나마 마음에서 쉬이 흔들리지 않는 묵직하고 듬직한 것 하나가 들어있는 느낌입니다.


조금 있으면 발레 간 채윤이가 오고,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마중하러 강변역으로 갑니다.


일상의 버거움과 일상 속의 작은 설레임이 교차하는 금요일 저녁이네요.


아무튼, 입에서 자꾸 맴도는 말은 이것.


Thanks God It'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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