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단 한 번도 똑같은 강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어제 오늘 비슷한 연령의 청년부 수련회에 똑같은 연애강의를 했다고 해도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강의안과 ppt의 순서를 완벽하게 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매번 조금씩 바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듣는 사람은 달라졌는데 나는 똑같은 얘기를 앵무새처럼 읊어대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텀이 있다면 그간에 공부한 것을 보충하여 강의안을 업데이트하고, 연일 같은 강의를 하게 된다면 구조를 바꿔서 ppt 순서를 뒤섞거나 정 바꿀 것이 없으면 폰트라도 바꿉니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제게 그랬습니다. '너는 새 것 흔(헌) 것이 없다. 옷을 새로 사주면 아껴서 입어야지 새 것만 그렇게 입느냐' 저는 새 것을 좋아합니다. 내 강의 한 번 듣는 청년들에게 나 역시 그들을 한 번의 소중한 만남으로 대하자는 고귀한 마음도 있지만 일단 제가 뭐든 새로워야 재미나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파는 장사꾼이라면 적어도 기계로 찍어내는 기성복이 아니라 단 한 벌의 맞춤옷을 팔자는 자부심 같은 것도 조금 있습니다.
때문에 강의하러 가는 길, 그 어떤 때보다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늘 떨리고요. 강의하러 가는 심장이 떨리지 않을 때가 강의를 접을 때일 것이다, 생각도 합니다. 경건이라기 보다는 '가난'이라고 해야겠네요. 마음이 한 없이 가난해집니다. 한 번의 연애강의가 도대체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는 책임 없어요. 한 번 막 쏟아놓는 강의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요. 당신이 하세요. 당신이 내 영혼도 데우고 저 사람들의 영혼도 데워서 뭐든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그리고 사랑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소망의 불을 붙이세요. 그게 내 몫이 아니라서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낙심이 되고 슬프고 한없이 가난해집니다. 내 책임 아닙니다. 당신 책임입니다.' 설상가상, 평소 듣는 일이 없는데 강의갈 때 찾아 듣게 되는 찬양이 뜬금포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 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은 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주시리
왜 이 찬양이 강의 갈 때마다 영혼에서 울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찬양 하다보면 자연스레 '하늘 소망'이 연이어 나옵니다. '나 지금은 비로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 많이 생각나 때로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안으시는....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연애강의 하러 가면서 이렇듯 비장한 찬양을 흥얼거리는 거 참 우습죠? 어쩔 수가 없습니다. 찬양하다보면 천국에 가 있는 그리운 얼굴들이 늘 생각나고, 이 길 끝에서 모두 만나 기쁘게 웃게 될 날을 그려보고. 왜 이러는 걸까요? 연애강의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슬프고 외로운 눈빛, 좌절이 가득한 눈빛에 마음이 늘 아픕니다. 두어 시간 소망도 주고 위로도 하고 따끔한 질책도 하고 가끔 웃겨주고 오면 이들의 삶이 무엇이 달라질까요? 설령 애인이 생기고 결혼을 한다한들 갑갑하던 생이 행복으로 돌아서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연애강의 한답시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걸까요? 생각이 여기 쯤 닿으면 아프고 외로운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동차 앞 유리에 등장하며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강의안이 있지만 강의안의 순서를 못 외우고, 못 외우기 때문에 강의안 없이 절대로 강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강의안을 보고 강의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갔던 강의에서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 제 가슴에 다시 박혔어요. "제가 뭐라고 여러분께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제가 하는 말이 정답도 아니고요" 강의 준비하는 제가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여보, 나이 서른이 되면 다 알아. 모르는 게 없어. 그러니 함부로 가르치지 않아야 해' 이 말에 세뇌된 탓일까요? 어쨌든 툭 나온 말을 다시 가슴에 담아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유난히 강의하면서 눈빛과 마음이 통하는 때가 있는데요. 오늘 강의가 그랬습니다. <큐티진> 독자들이기도 하고, 강의 요청을 해 온 자매 얼굴을 보기 전에도 마음에 들더니 오늘 보니 더 마음에 들더군요. 강의 마치고 담당 목사님, 부장 집사님 배웅을 받으며 주차장에 나왔고 출발하는데 이 예쁜 자매가 뛰어 나왔습니다. 쇼핑백에 간식을 가득 담아서 가시는 길에 드시라고 하면서요. 수련회 주제가 '응답하라 1994'라서 추억의 간식이 준비되었다네요.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울먹이며 갔던 길, 두 시간 만에 반대방향으로 운전하는데 아폴로 찍찍 빼먹으며 쫀대기 찢어 먹으면서 설탕가루 치마에 흘리고 난리났습니다. 하나님 목소리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야, 너 진짜 인간이 강의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진짜 너 인간이....' 예, 제가 상당히 분열적인 인간이구요. 며칠 후 다시 강의 가는 길엔 언제 쫀대기를 질겅질겅 했냐는듯, 그대로 천국 가서 하나님 만날 것처럼 감정에 복받쳐 '저 망망한 바다 위에.....'를 부르며 어느 수련회 장소로 갈 겁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렇습니다. 이런 제가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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