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아~아.
우쒸, 커피 준비하라고? 그럴 줄 알았어.
엄마 아빠가 딱 앉아 있는 폼이 딱 커피 마실 타임이 된 줄 알았어.
투덜투덜 군시렁군시렁.
엄마, 세상에 커피 내릴 준비를 이렇게 잘하는 6학년이 있을 것 같애?
칭찬을 더 하라고. 더 세게 칭찬을 해.
그리고 엄마 커피 가는 기계 제발 하나 사.
엄마도 귀찮잖아. 나도 진짜 귀찮고.
나는 약하게 볶은 커피가 정말 싫어. 안 갈려. 딱딱해.
음.... 오늘은 강볶음 커피구만. 마음에 들어.
물을 끓이고, 커피를 갈고, 컵을 데우고, 여과지 접어서 커피를 담고, 주전자에 물을 채우기까지! 커피 내릴 준비를 완벽하게 해주는 아들 현승에게서 낯설지 않은 눈빛이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한 3년 쯤 전에 봤던,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눈빛을 채윤이에게서 봤었지요. 살짝살짝 보이다 강해지고 그 눈빛이 얼굴 전체를 잠식하면 질풍노도의 그분이 완전히 임하셨다는 싸인이 됩니다. 채윤이 사춘기 떠난 자리에 현승이 사춘기가 임하고 있습니다.
커피人 생활 7,8 년 만에 전동밀 장만했습니다. 커피 갈아줄 고사리 같은 손도 끝날 위기이고. 마침 적절한 제품을 소개받기도 해서요. 전에 커피를 가르쳐주신 어떤 분께서 핸드드립 커피의 생명은 밀에 있다며, 꼭 칼리타 전동밀을 구입하라고 하셨지만 홈바리스타가 무슨 칼리타 전동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는데요. 칼리타는 아니지만 와, 분쇄가 커피맛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며 아침마다 커피맛에 새롭게 감동이네요.
그건 그렇구요. 저 전동밀이 배송되어 오던 날입니다. 누구보다 전동밀 구입을 기뻐하고 배송을 기다리던 현승이가 흥분하며 박스 개봉을 했습니다. 커피장 위에 자리를 잡아두고 보니 전원 꽂을 곳이 없습니다. "아빠 오면 멀티탭으로 연결시켜야겠다" 했더니 그걸 왜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냐며 어디서 멀티탭을 찾아다 그릇장 뒤로 해서 연결를 해놓는 겁니다. 현관 앞에 덜렁덜렁 나와 있는 전선을 보며 "아빠 오면 깔끔하게 벽에 붙여달라 해야겠다" 했더니 그걸 또 왜 아빠한테 해달라 하냐며! 스카치 테잎으로 바닥에 끙끙거리며 붙이는 겁니다.
"현승아, 그런데 이렇게 헐렁하게 대충 붙여놓으면 걸려 넘어져. 벽에 딱 붙여야지" 했더니 가~압짜기 발끈! 하면서 "아 그럼 아빠가 잘하니까 아빠한테 하라고 하든지이!!!!" 하더니 북북 테잎을 다 뜯어냅니다. (오메, 성질있다야) 질풍노도가 밀려오는 듯 하대요. 가만 뒀더니 씩씩거리다 콧김 몇 번 뿜어내더니 다시 앉아 아까보다 덜 어설프게 테이프질을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빠 손을 빌어 제대로 다시 고정시키고 싶지만 현승이 무서워 말도 못 꺼내고 그냥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오는 모양입니다.
남자인 듯, 아들인 듯, 남자가 되려는 아들.
* 본 글은 세 개의 자랑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자랑 1 - 전동밀
자랑 2 - 커피장 뒤 벽에 걸린 iami님의 하사품
자랑 3 - 끝도 없는 아들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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