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과일박스 귤 사이로 계란 한 알이 끼어 있는 것이다.
내가 이제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하는구나.
냉장고에 휴대폰 넣기.
보온병에 뜨거운 커피 담아서 또 냉장고에 넣기.
노화하는 나의 뇌야, 냉장고를 부탁해.
어제 저녁에 손님 식사준비 하다 계란 몇 알 들고다녔던 기억.
그래, 한 알은 과일박스에 고이 넣어두었구나.
나중에 치매가 오더라도 MRI 찍을 필요도 없다.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보면 될 거야.
삶은 빨래가 냉장고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초를 켜서 넣어둘 수도 있겠다.
냉장고야, 나의 뇌를 부탁해.
★★
깜깜하도록 한강에서 놀고 들어온 현승에게 고해성사할 요량으로
현승아, 이거 봐. 엄마가 미쳤나봐.
엄마, 이 계란 내가 여기 놓은 거야.
왜~~~~~~~~~~애애?
그냥, 여기 귤만 있고, 계란 박스에 계란만 있는 게 싫어서.
좀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헐) 냉장고야, 안심해. 내 뇌는 아직 괜찮아.
★★★
엄마, 그런데. 엄마한테 제안을 하나 해도 돼?
뭐? 제안해.
음.... 국이나 찌개를 할 때 말이야. 조미료를 좀 쓰면 어때?
특히 콩나물국 끓일 때는 조미료를 좀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싫다는 얘기는 아니고. 건강에 좋긴 하지만 너무 물 같애서.
(확!) 냉장고야, 살림을 부탁해, 나 가출할 거야.
★★★★
엄마, '운영'이란 말 알아?
회사를 운영하다, 할 때 쓰는 말이잖아.
그런데 예전 교회에 있을 때는 '운영'이란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거든.
여기 교회는 '운영'이란 말이 딱 맞는 것 같애.
뭔가 착착 돌아가는 '운영'이란 말이 적절한 것 같애.
원래 교회에는 운영이란 말이 안 어울리잖아.
그런데 여기 교회는 딱 맞아.
(ㅎㄷㄷ대형교회의 생리를 한 단어로! 천잰데!) 냉장고야, 이 아들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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