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랑 소원해졌다. 생각해보니 엄마 돌아가시고 지낸 몇 개월이 결정적이다. 4, 5월이 되도록 몸에 한기가 느껴져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따뜻한 차를 마셨다. 한 잔 마시고 나며 몸이 좀 따뜻해졌고. 그렇게 핸드드립 커피와 멀어지던 즈음, 교회에 캡슐커피 메이커가 생겼는데. 편리하고 커피 맛 좋고, 라떼까지! 이제 좀 편히 살자, 편하게 살 때가 됐어, 하고 남편의 알바비를 갈취하여 한 대 들였다. 채윤이가 제일 좋아했다. 카페 부럽지 않은 라떼를 마실 수 있으니. 그런데! 무릇 망대를 세우려는 자는 미리 비용을 계산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너무나 취약하여, 기계 사는 초기 비용만 들이면 커피는 싸게 마실 줄 알았으니... 커피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캡슐 주문을 자꾸 미루게 된다. 집에 커피 없는 날이 허다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저자...

요즘은 카누를 마신다. 어쩌다 한 잔 마셨는데 이거 괜찮네, 세상 좋아졌네, 인스턴트 커피, 장난 아닌데, 싶었고. 핸드드립 커피 마시듯 굳이 접시를 받쳐 격을 갖춰 마신다. 요 며칠 찻잔 픽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몇 년 전에 봉하마을 노란 가게에서 사 온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조국을 위한 기도가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나는 정치적 존재이다. 단 한순간도 정치적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치적 입장도 분명하다. 정치 참여는 우선 기도의 참여이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현승이를 임신한 몸으로 하루 금식기도를 감행했던, 그런 열성 분자이다. 정치적 입장이든, 신학적 입장이든 ‘입장’은 깊이 넣어두는 편이다. 듣는 편이다. 사람 사람이 나 정도는 다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터라. 넣어둔 입장과 열성은 기도로 연소시키겠노라, 생각한다. 대선정국을 바라보면 어이는 없고 할 말은 많지만 그냥 기도한다. 카누 한 잔 마시며 정치적인 기도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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