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샘밈, 배슈민이 나를 싫어해요."

오늘 내 귀를 정화시킨 이 한 마디.

입이 쭉 나와서는 제 담임 선생님에게 하는 고자질이었다.

으흐흐흐흐흐흐.

나를 싫어해요! 나를 싫어해요! 나를 싫어해요!

이 고자질 너무 맘에 들어.

나도 고자질 하고 싶다.

하난님, 쟤가 나를 싫어해요.

우띠, 쟤가 나를 싫어해요.

그리고 입을 쭉 내밀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고 싶다.

너어어, 우리 하난님한테 다 일러줄꺼야. 너.

빨리 나를 좋아해. 좋아하라규!

싫어?

싫으면 시집 가서 시아버지 구두 닦아라! 퉤퉤퉤.

 

췻!

너는 나를 싫어할 자유가 있지만

나는 니가 나를 싫어하는 걸 싫어할 자유가 있어!

우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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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음악션샘미가 되지 않았다면

이 메말라 갈라져 고름 새어 나오는 영혼을 무엇으로 치유받으리!

견고한 안면근육이 무엇으로 구원받으리!

나의 말랑한 선생님, 말랑한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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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친구를 소개하며 '20년 지기'라는 말을 쓴다면 내가 읽어내는 것은 '나이 많으신 분들인가보다' 정도. 이 흔한 '~년 지기' 사람들이 어떤 의미일지 달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년 된 친구들'과의 사진이다. 들여다 보자니 그게 아니었구나. 나이가 많다는 뜻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암튼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20년 지기 친구를 소개할 때는 자기가 늙었단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닌 것임.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무지하게 잘 하는 딸내미를 가진 친구. 돈 잘 버는데 성실하기까지한 남편. 이건 뭐, 이런 친구들과 일박 여행을 다녀 왔다는 건 거의 한 달 견적의 우울과 바가지 긁기 감인데 다행히 그렇지가 않다. 부럽지 않은 건 아닌데 부러움보다 더 큰, 더 깊은, 더 아름다운 것이 우리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네 딸 내 딸이 없고, 네 남편 내 남편이 없.... 이건 좀 그러네. 암튼.  칼같이 긋는 선 따위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그렇다. 잘 되는 일이 더 잘 되고, 힘든 일은 잘 해결되고 극복해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이런 관계가 말처럼 쉬운 줄 아는가.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좋은 것, 그럴 듯한 것만 보여주는 사이엔 20년 아니라 200년이 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년 전, 한 청년부에서 만나 '저 언니들 시집도 못 가면서 지들끼리 뭉쳐 다니고...' 질시를 받으며 권사님 노릇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그랬다. '잘 되는 나'를 보여주기보다 '안 되는 나'를 드러내며 찔찔거리곤 했었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20년 지기 친구들의 여행에 따라와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들었던 안단테 칸타빌레를 잊을 수 없는데 오랜만에 함께 듣자니 마음이 마구 일렁였다. 마침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내게 무척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그 연락을 받고 와! 잠깐 좋아하다 보니 이건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아닌 거다.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좋은 일이 가져온 골치 아픈 고민들을 하나 씩 다 펼쳐놓아 보았다. 펼쳐놓고 이바구 하다 보니 어느 새 마음이 가벼워졌다. '좋은 일'이 단순히 좋은 일을 넘어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될 기세이다.

 

누구를 만나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덕규의 노래 <좋은 나라> 가사처럼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가면을 쓰고 말의 이면을 자꾸 헤아리게 되는 만남이라면 최대한 피하며 살고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적당히 사회적인 얼굴을 하고 만나는 만남이 없을 수 없다. '오늘 내가 커피 살게. 어~ 우리 애가 또 1등 했잖아' 이렇듯 금세 드러나는 자랑 또는 과시욕망은 차라리 귀엽지 않은가. 고전적으로는 이런 게 있지. (갑자기 의기양양하게 편 손가락을 관자놀이 쪽으로 가져간다.'어우, 머리야. 오늘 왜 이리 머리가 아프지?' -> 짜잔, 가운데 손가락에 다이아 반지. 이런 정도는 귀엽다. 드물게 학교 엄마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다 뺀들뺀들 광이 나지만 알고보면  그 뒤에 숨은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이 어지럽다. 이런 모임을 하고 돌아오면 차라리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만. 뭘 더 보내고, 시키고, 닦달을 해야한다며 저렇듯 강박적으로 애쓰는 것일까. 아이를 닦달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볶고 있는 엄마들 말이다.

 

그나마 잘 나가지도 않지만 학교 엄마들 모임은 견딜만 하다. 은혜, 축복, 사랑, 감사....로 점철된 아니, 포장된 교회 엄마들의 모임보다는 훨씬 낫다.  여기서 '낫다'는 건 더 좋은 모임 덜 좋은 모임이란 뜻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가 견딜 수 있음의 레벨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친한 것보다 더더더 친한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걱정을 나누는 것보다 더더더 따뜻하게 눈물을 그렁거리며 '기도할게요. 기도합시다'가 되어야 하는 모임을 갈수록 못하겠으니! (이것은 진정 신앙의 퇴보인가)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가 짙은 법이다. 형제님, 자매님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교회 안에 그렇게나 관계 문제가 복잡한 이유일터. 모든 관계 안에는 좋은 것이 있고 불편한 것이 있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 주고 상처 받는 것이 인간 대 인간의 일이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감사하고 기도할게요. 오직 빛의 언어만을 가지고 소통을 하고 돌아서는 일이 반복될 때, 십중팔구 비합리적 뒷담화와 부정적인 상상력의 그림자에 압도당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포장지 자체가 아름답고 거룩하여 딱 속기 좋은 것이다. 그 속임수의 치명적인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다. 높은 점수나 승진을 위해 옆 사람을 밟는 대놓고 이기적인 사회보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이기심과 욕망과 두려움을 가장한 종교인의 모임이 더 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경험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영어는 어느 학원 다녀요?' 하고 묻는 루이비똥 든 학교 엄마보다 손 꽉 잡고 기도제목 묻는 자매님이 더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그리는 천국은 하덕규의 <좋은 나라>에 나오는 그런 곳에 가깝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그 고운 무지개 속 물방울들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슬픈 헤아림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 신앙의 이름으로 그런 것을 조장하는 것에는 '신앙 아냐 종교놀이야'라고 말해주겠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년 지기 마음 맞는 친구들만 만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내게 이 친구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난 지 2년 만에 20년. 200년 짜리 공감을 함께 나누는 친구도 있다.(이건 완전 2년 된 여친 삐질까 염려하여 힘주어 써놓은 말.ㅋ) 딱 한 번 만나도 존재로 만나는 만남도 있다. 처음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서로 마음 속 깊은 두려움을 내보일 수 있다. 요즘 내게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으로 나는 사람 안에 있는 선함을 믿게 된다. 사랑을 믿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좋은 만남만을 찾아 다닐 수는 없다. 내가 그들로 인해 생명의 기운을 얻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두고 슬픈 헤아림을 하지 않는 까닭이다. 나 역시 계산기 들이밀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결국 상호 무장해제란 말이다. 그런데 훨씬 많은 경우 나는 헤아림의 주판알 격렬하게 튕기며 살아간다. 상대의 슬픈 헤아림을 알아챌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무엇이랴. 마음이 곤고하다.

  

'그래도 언니들과 이렇게 만나는 게 내게는 제2의 고향인 것 같아' 새벽까지 수다를 떨며 20년 지기 친구가 말했다. 이 말로 돌아가 지친 마음, 피폐해진 마음을 쉰다. 지금 내겐 고향이 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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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온 식구가 <복면가왕>을 잊고

<불후의 명곡>과 <히든 싱어>에 빠져서  보냈습니다.

여파로 저녁마다 거실을 채우는 노래는 거의 신해철.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노소년' 또는 '소노년' 현승이의 선곡입니다.

 

신해철 1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노래가 여기 저기서 많이 들립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아도 그냥 참고 듣거나 보는데 가끔 화면에 그의 가족들이 보이면

여지없이 터져버립니다.

참 좋은 아빠를 너무 어려서 잃은 아이들에게 유난히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이 내 아픔에, 내 상처가 그 슬픔에 잇대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저 예쁘고 해맑은 딸내미가 살아갈 날을 지레 짐작해보는 탓입니다.

생의 길목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올 그리움,

그 그리움에 압도되어 잠못 이룰 밤들,

애초 제 몸에 붙어 있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겠지요.

 

또 신해철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내게 질문를 던집니다.

그는 왜 그리 살고 죽는 것, 의미에 대한 고뇌가 많았을까요?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민물장어의 꿈-

 

 

채윤이가 카톡으로 저 그림을 보내왔습니다.

픽, 웃으면 고개를 듭니다.

신해철의 노래에 취해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나봅니다. 

뒷목이 뻐근합니다.

킥킥, 웃다가 비온 뒤에 더 깨끗해진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 누구야!

저렇듯 따뜻한 상상력과 유머를 가진 사람은.

 

저 그림을 그린 분,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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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집사님과 함께 찬양했던 사진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어요. 집사님 찬양하시는 모습이 크게 잡힌 사진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찾다 찾다 예전 싸이클럽까지 가서 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사진이 흐릿하지만 집사님 옆 모습 딱 보여요. 제 마음의 사진첩 샬롬찬양대 폴더에는 수백 장의 사진과 MP3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 중에 집사님이 솔로로 부르셨던 노래도 있지요. 6/8 박자로 편곡된 곡이었어요. 싱코페이션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 많이 어려워 하셨었죠.

 

이와 같은 때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께

이와 같은 때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저 오래 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할 때부터 솔리스트를 선정할 때의 음악보다는 가사를 봤어요. 찬양의 가사를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려 고백할 수 있겠다 싶은 분께 솔로 부탁하곤 했어요. 그 때문인지 제가 지휘했던 그 많은 곡들의 솔리스트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년 전 어린이 성가대 때부터요. 그 많은 곡들 중  찬양을 부르셨던  집사님의 비음 많이 섞에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어요. 제가 윤복희 목소리 닮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성가대 지휘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일 중의 하나였고, 지휘자 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저 다워지게 만드는 옷인 것 같아요. 그 어떤 성가대보다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샬롬찬양대는요. 파트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틀리고 또 틀리시고,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내 드리면 깔깔깔 웃으시다 시작되는 농담 따먹기는 끝이 없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 중간에 넋을 놓고 쉬시던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제가 가진 얕은 음악성과 근성있는 유머본능이 대원들의 착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솔까말) 엉망진창 음악성과 조화를 이루며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집사님은 늘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다니셨죠. 지휘하다 집사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마음이 막 쓰리곤 했었어요. 제가 청년이었을 적에 지휘하던 어린이 성가대에 집사님의 둘째 G가 있었잖아요. 장난꾸러기라 저한테 혼이 많이 났죠. G에게 야단을 많이 친 죄로 집사님을 뵈면 괜히 죄송했어요. 얼마 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끝내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는 그때 먼발치에서 주보 광고로만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나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신 제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그 이후 교회에서 집사님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두 아이가 성인이 되고, 집사님과 샬롬찬양대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늘 모이면 왁자지껄 즐거운 찬양대에서 집사님은 말이 없으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니셨죠.  저 찬양의 '이와 같은 때'에는 부르는 사람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게 '이와 같은 때'는 모든 최악의 순간인데요. 제 마음의 '이와 같은 때'를 집사님의 상황에 투사한 것 같아요. 솔로를 부탁드렸을 때 한사코 마다하셨고, 앞에 앉으신 분을 방패삼아 몸을 자꾸 숨기시던 기억이 나요. 박자가 너무 어렵다고 하셨고, 결국 주일 찬양에서 긴장하셔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셨죠. ^^ 그래도 집사님이 부르셨던 그 찬양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요.

 

지난 목요일 밤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집사님을 뵈며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남겨진 남매를 만나고 많이 울었어요. 이제 둘 다 듬직한 성인이 되어 안심이라고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해요. 더욱 어른스러워진 D의 말에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렸어요. "엄마가 선생님 많이 좋아한 거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세월 같이 찬양을 하면서도 집사님과 길게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집사님 얘길 하니까 '아, 그 던킨도넛 집사님!'이라고 해요. 맞아요. 제가 언젠가 연습시간에 저희 아이들 얘길 하면서 던킨도넛 얘길 했어요. 그 후 크리스마스에 집사님께서 던킨도넛 한 아름을 현승이에게 안겨 주셨죠. 저희가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언젠가 한 번은 저희 현관에 던킨도넛을 걸어두고 가셨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도넛상자에 담긴 집사님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져요. 집사님, 저도 사실 집사님 많이 좋아했는데요.....

 

장례식에서 집사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온 밤에 강의 준비를 핑계 삼아 새벽까지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암에게 뺏겨버린 D와 G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도 같고, 잠깐씩 눈물을 훔치다가  집사님께 마음으로 무슨 말씀인가를 드린 것도 같아요. 강의 준비는 영 못했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나갈 준비하는데 마음에서 찬양 하나가 올라왔어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고대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집사님,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픈 몸을 벗으시고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나셔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잘 계실 것을 믿어요. 음... 집사님 저 장래희망 하나 더 생겼어요. 장래 천국에 가서 집사님과 함께 '이와 같은 때엔' 찬양을 부르겠어요. 샬롬찬양대 좋은 분들 함께 모여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부르겠어요. 그때는 모두들 악보를 잘 보시겠죠? 무엇보다 집사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찬양하셔야 해요. 그런 날을 소망해요. 

집사님, 저............ 집사님 참 좋아했어요. 

 

 

 

 

 

 

 

 

 

 

 

어릴 적에 '어른이 되기까지 남은 날'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최소 12년은 죽어라고 공부하는 나날.

그리고 대학가면 어른이 되나? 그때는 자유가 생기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공부 지옥 벗어날 날을 헤아렸던 것입니다.

일단 대학 갈 때까지는 죽어도 벗어나지 못할 학교 감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 채윤이, 예중 입학을 결정한 5학년 때부터 고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숨막히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내가 채윤이만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감옥에서 언제 벗어나나' 할 것입니다.

그런 채윤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 푸르른 나날을 꽉 막히 연습실에 갇혀서 지내는 것, 

틈이 나면 죽도록 영어 단어를 외우며 기계 같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한 텀 쉬고 가면 안 되나?

이런 신선한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바로 실천해버린 가족이 있습니다.

애정하는 이수진, 황병구 님 부부와 그 딸 은율이가 그랬습니다.

안식학년.

(이라고 쓰고)

중학교 졸업하고 1년 동안 그냥 학교 안 다니고 쉬고 멍때린다.(라고 읽는다)

그렇게 보내서 뭘 얻었다, 가 아니라 그  멍때리는 시간 자체가 의미인 것 같고,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앞만 보고 달리라고 채찍질 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는 미친 세상에서 말입니다.

 

이 부부와 은율이의 선택이 부럽고, 따라해볼까, 하던 차에

이분들이 제대로 일을 만들어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꽃다운 친구들, 일명 꽃친!

저도 요즘 여기 꽃친에 꽂혀 있습니다. 

그 옆에 얼쩡거리면서 자원봉사자 컨셉으로 흥미롭게 지켜보며 응원 중입니다.

아래, 설명회 안내를 그대로 복사해 왔구요.

블로그( http://kochin.tistory.com) 에 가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 보실 수 있습니다. 

 

 

 

*************

 

 

 

[꽃다운친구들] 관심가족 설명회 


 “ 방학이 일년이라면 ” 


드디어 [꽃다운친구들]이 유쾌한 사고를 치기로 결정하고,  
관심가족들을 모셔서 공개설명회를 개최합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학교를 경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1년 짜리 긴 방학을 함께 누린다는에 방점을 두고 설명회를 기획했습니다. 

[꽃다운친구들]의 기획단계부터 여러 도움을 주신 악동뮤지션 부모님의
특별한 초청 강연도 마련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제공하면서
부모들이 함께 인생을 설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내다보는
진지하고도 산뜻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가족들을 넉넉히 초청합니다. 

무엇보다 아빠들이 함께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설명회 개요>

 

- 일시: 2015년 9월 7일(월) 18:30 ~ 21:00 

- 장소: 서울시 NPO 지원센터 이벤트홀 [품다]

(시청역 도보 5분 거리 -약도 링크 연결)

- 대상: 청소년 하프타임에 관심있는 중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 

- 신청: 구글독스 링크에서 (클릭)

- 회비: 가족당 1만원 (최대 3명, 신청자에게 입금계좌 개별안내) 

- 특전: 사전접수 가족에게 관련 서적 1권 증정, 아빠동반 가족 우대 

- 문의: friend@kochin.kr 

- 정보: www.kochin.kr 

 


 

< 주요 프로그램 >

 

1부: 초청 특강 “오늘 행복, 내일 더 행복”  

     강사: 이성근, 주세희 선교사(악동뮤지션 부모님, 꽃친 자문위원) 


2부:방학 12개월 프로그램 설명회 

     사례 소개 

       1. 참을 수 없는 범생이의 미래 

       2. 말할 수 없는 멍때림의 비밀 


     방학생활 제안 

       1. 자녀가 꿈꾸는 방학 

       2. 부모가 가꾸는 방학 


3부 : 자유간담회

     무엇이든 자유롭게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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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카페바인에서는 [에니어그램 세미나]만 열리는 게 아니네요.

협동조합 카페 '바인'에서 조합원 대상 강의가 있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찌개백반 같은 강의가 줄을 서 있군요.

특히 김근주 교수님과 황병구 교회 오빠는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합니다.

자신 있게 추천하고요.

 

맨 아래 링크 따라 가시면 자세한 안내가 있는데요.

카페바인의 조합원이 되시면 좋은 정신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료 강의와 카페 메뉴와 원두 할인 등 진짜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혜택이 많습니다.

 

저는 한참 전에 <오우연애>를 내고 북토크 장소로 인연을 맺었었는데요.

더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었네요.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바인'에서 지속할 것이구요.

잘 보시면 9월 조합원 강의에 제 이름도 있어요.

저는 '잃어버린 길, 마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믿음과 인격이 따로 노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의 이야기? ㅎㅎㅎㅎ 아니고 여러분 말고 저의 이야기요!

'20 년 동안 새벽기도 빠지지 않는 장로님이 교회와 가정에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유에 대한 영성심리학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아 약을 팔아보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오세요.(참가비 만 원, 조합원은 월 2회 강의 무료 수강및 30% 할인)

 

9월 강의는 물론 8월 강의와 조합 신청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링크를 따라가 보세요.

 

https://t.co/MqhhEj3VBL

 

폰에서는 신청 접수가 잘 되지 않던데요.

계속 안 되시면 이곳에 댓글 남겨주세요.

 

 

 

 

 

 

 

 

 

 

 

 

지난 토요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손바닥과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쓱싹 갈아버렸지요. 상처부위에 드레싱 밴드를 떡허니 붙이고 수업에 가는데 채윤이 현승이가 '오늘 엄마 애기들이 으막션샘미 손 왜 그래요? 막 물어보겠네' 합니다. 오, 애기들한테 가서 엄살 좀 떨어줘야겠는 걸!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보자마자 '션샘미, 왜 그래요?' 걱정포텐 터지는 반응 나올 줄 기대했으나..... 어느 아가도 아야야 내 손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기타코드 옮기며 일부러 손바닥을 펴곤 했는데도.... 흑흑. '얘들아, 선생님 아야했어' 결국 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 반응은 '션샘미, 안 아파요? 엉엉.... 우리 으막션샘미가 다쳤어' 이럴 줄 알았습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저마다 여기 저기 코딱지만 한 상처를 찾아내며 '나도 아파요. 나도 아야했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급기야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 돌진. (실패다) 물러설 수 없다. 실로폰 계단을 오르고 싶은 사람은 션샘미 아픈 손에 호~오 해줘야 한다고 근엄하게 선언했습니다. 모두들 경건한 자세로 호~오를 했습니다. 히히히. 딱지 떼지 마세요~ 상처엔 실로폰계단에 눈먼 아가들의 호~오를 발라주세요! 오늘도 음악수업을 빙자한 힐링캠프였습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오직 지금 여기를 사는 아가들.

이런 영혼들이 자라서 어쩌다 어른이 되는 것일까요? 이런 모든 흔한 고집불통에 돈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 유익을 위해 사람 죽어나갈 거짓말과 망언을 서슴치 않는 어른 말입니다. 내 생각만이 맞다며 결코 마음의 꼬리를 내릴 줄 모르는 뻣뻣한 어른들 말입니다. 실로폰 계단 한 번 올라 보자고 아빠다리에 손무릎,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 바라보기, 차렷! 그 상태로 얼음이 되는 작은 사람들. 물론 딱 10초 정도만. 아, 이런 사람들, 이 작은 사람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정희 시인의 시 일부가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고정희

 

 

보시오

그리움의 태에서 미래의 아기들이 태어나네

그들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딸과 아들로 어우러진 아기들이여

우리 아기에게 해가 되라 하게, 해로 솟을 것이네

별이 되라 하게, 별로 빛날 것이네

우리 아기에게 희망이 되라 하게, 희망으로 떠오를 것이네

그러나 우리 아기에게 폭군이 되라 하면 폭군이 되고

인형이 되라 하면 인형이 되고

절망이 되라 하면 절망이 될 것이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길이 되라 하면 길이 되고

감옥이 되라 하면 감옥이 되고

노리개가 되라 하면 노리개가 되기까지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들이여

 

 

 

 

 

 

 

 

아침에 거실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가 화분의 초록 잎에 비춰 만들어내는 투명한 빛에도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녁에 강가에 나가 맞는 바람 한 줄기에도 그분의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당하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습니다. 하물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메르스 전염사태 같은 일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 리 없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분은 크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아무리 제가 묻고 또 물어도 당신의 뜻을 속시원히 알려주시지 않던데요. 서른 살 믿음 좋고 성실한 청년, 누구보다 존경할 만한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서 교회와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려는 젊은이가 암으로 인해 천국에 간 일, 평생 자식들 잘 키우는 것과 가족들 전도를 목표로 몸과 마음 부서져라 살아오신 어머님이 인생 노년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 아직도 이런 일에 담긴 그분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내 얕은 사랑과 이기적인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긴급 기도제목이라며 카톡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가 메르스 위험국가가 된 것은 퀴어 축제 개최를 막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털썩! 늘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입원하신 부모님 간호를 하던 아들과 며느리가, 심지어 친구 부모님 병문안을 갔던 사람들이 졸지에 메르스에 걸려 이름도 잃어버린 채 전염자 14, 26번이 되어있습니다. 가장이고 아이의 엄마일 것입니다. 격리된 병실에서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이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까?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러다 돌아가신 분이 이미 다섯 분입니다. 퀴어 축제를 막자고 나처럼 살아가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었다고요?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단순하게 연관 짓는 것이 저는 메르스보다 더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하질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수록 신비일 뿐이지만 적어도 제 삶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약하고 악한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간절한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어 하나님보다 나, 나의 아이들과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을 숭배하며 매일 불신의 늪을 헤매는, 누구보다 악한 저를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사랑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단톡으로 받은 긴급 기도제목을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가, 분노했다가, 이런 무정한 세상에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정하고 잔인하며 독선적인 말의 폭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트위터에 지인이 공유하신 글에서 다음 문장을 보고는 가슴이 아프도록 동의하며 잡글이라도 끄적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예수의 생명이다

 

 메르스로 인해서 격리 조치된 무고한 60여 명의 사람들, 그들의 가족,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도 든든히 기댈 국가와 지도자가 없는 가련한 백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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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문

 

 

꽃잎 흩날리는 늦봄에... 기룬 것이 어디
논길을 달려가던 자전거뿐이랴
님의 운명을 닮아서 늘 푸른 애창곡 <상록수>뿐이랴
논두렁에 걸터앉은 양은 막걸리 술잔
'사람 사는 세상'의 감빛 밀짚모자뿐이랴?

"사람이 먼저다, 무릇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이 마른 풀잎처럼 쓰러져버린 
험상궂은 반칙사회의 벼랑 끝에서
짓밟힌 풀포기(民草)를 뜨겁게 끌어안은 <변호인>
거꾸로 선 역사를 곧추세운 청문회 의인(義人)

팔레스타인 소년처럼 돌멩이 들었던 아스팔트 투사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괴물군단의 저승사자
야트막한 마을, 어둔 골목길로 걸어갔던 듬직한 맏형
주름진 얼굴의 눈물 닦아준 바보 성자(聖者)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준 '내 마음의 대통령'

올해도, 시드니 물항의 맹그로브 숲을 떠나서
열흘 밤낮 태평양을 건너간 그리움은
기어이 봉하마을 논배미에 내린 큰뒷부리도요새
빼앗긴 봄이 어느새 다섯 번인데
여태도 풀리지 않는 명치끝의 멍울이구나

오랜 슬픔이 하늘끝에 이르면 흰구름이 되는 걸까
자전거 타고 떠도는 낯익은 밀짚모자
"기다리시오, 함께 아팠던 처음처럼 기다려 주시오
오오! 마침내 그날이 오면,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우고 상한 갈대도 일으켜 세웁시다"

무심한 듯 봄날은 오고 가지만 차마 꿈엔들 잊겠는가
촛불 밝히면, 오금이 저린 비리사회의 악령들
탐욕스런 자본과 그 앞에 넙죽 엎드린 마름 종자들
검은 돈에 볼모 잡힌 벼슬아치와 정치모리배들
스스로 거세당하여 명토 박을 펜대조차 없는 기자들

아직은 빼앗긴 봄날... 설운 것이 어디
바닷 속에 잠겨버린, 반칙 모르는 앳된 목숨들뿐이랴
흑백사진으로 남은 노무현의 눈물뿐이랴
차마 떠나가지 못하여
검은 자전거 타고 떠도는 밀짚모자뿐이랴?

 

 

시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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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며 사랑성장을 체험했던 기억(좋았던 때든지 어려웠던 때든지)을 돌아보십시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떠올려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에니어그램 집단여정 중에 나눔을 위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주 빠져들곤 하지만 대개는 결정적인 사람 한 둘은 가지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 함께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지속되는 만남일 수도, 과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상처만 받고 살았다고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뭉클하여 울컥하다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소망한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일깨워줬던 그 사람들을 찾아 일일이 인터뷰 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혜자와 수여자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사람은 기억하는데 대개 준 사람은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잘 안나는 거 보니 깊이 생각했던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그때 밥을 사줬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 세미나에선 함께 참석한 두 분이 저 대사를 딱 읊어주셨다. 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느껴야 사랑이다. 준 사람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라고 울부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대체로 '어떻게 해줬는데!!!!' 하며 준 것들은 공포의 배려이기 마련이다. 사랑과 배려로 '통제'하겠다는 (본인도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가 닿는 것이지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의 이타심, 또는 융의 '자발적 희생' 원형에 대한 지상 강의를 늘어놓고 싶으나 일단 꾹 참고!)

 

글이나 강의, 대화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꿈(도 야무져!)이 있었다. 그 꿈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불안했다. 누가 나보다 더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하나, 글을 쓰나 이글거리는 경쟁심과 질투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한다). 집착인데, 집착인 줄 아는데 잘 내려놓지 못했었다(못하고 있다). 다행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야무진 꿈은 자주 아작나고 있다. 강의든 글이든 상담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생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은밀히 꿈틀댄다.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내 그릇에 가득차서 넘쳐 흘러 넘치는 것만이 진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강의하면서 내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압된 욕망은 과도한 자기비판의 칼날로 대체되어 이중 삼중으로 나를 괴롭힌다. '나만이 답을 알고 있는 태도로 강의한  건 아닐까.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살아내고 있는 체 하지는 않았나' '적게 듣고 많이 말한 것은 아닐까. 들어주면 될 것을, 너무 가르친 것은 아닌가' '고도의 교만을 겸손과 솔직함으로 위장하는 글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과도한 자기확신도 아닌 절묘하여 아름다운 지점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 우리 동네를 경유해서 출퇴근 하는 D와 아예 동네 주민인 Y가 지나가 들른 느낌으로 집에 왔다. 얘들이 손에 뭘 하나 씩 들고 왔다. 떡볶이 앞에 놓고 수다수다를 했다. 돌아가고 나서 들고 온 예쁜 꽃바구니를 들여다보다 생각하니 작년 이맘 때도 만나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아, 얘들이 스승의 날을 생각하고 온 거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우연히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구나. 선생이고픈 욕망을 용케도 잘 누르고 있는데 떡하니 받은 꽃바구니에 대놓고 뭉클했다. 마주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몇 년 전 주일 파리바게뜨에서 딱 이 멤버로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원한, 또는 어려운 연애 얘길 했었다. 허허. 어느 새 그녀들은 예비엄마, 예비신부가 되어 있다. 어쩌다 이젠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 놓았다. 역시나 가르치는 영이 충만한 나는 (게다가 기분까지 들떠서) 적게 듣고 많이 주절거렸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던 날 우리가 우연히 만났었단다. 둘이 걸어가는데 내가 차 타고 지나가다 '야, 타!' 했단다. 그런 거다. 애쓰지 않고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는 그때 그때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거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반갑게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게 가르침이고 배움이고 사랑이다. 암튼, 고맙다.

 

(질투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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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오우연애>는 '내 책 내는 거 맞찌? 내 이름의 책이 나오는 거 진짜 맞찌?' 황홀함에 들떠서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허둥대다보니 나와 있었다. 두 번째 책 <와우결혼>을 내기 위해서 만난 편집자 L 님의 첫 메일을 받고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길지도 않은 인사 메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촉이 필요 이상으로 발달한 나, 정신실이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 의존적이기 때문에 누구와 만나서 대화하고 일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는 나다. 첫 메일에서 프로의 냄새를 맡았다. 적응력도 있는 나는 프로 편집자님께 프로 저자가 되기로 정해버렸다. 이것은 1층에 있던 저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는 순간이었다.


메일을 보아하니 디게 깐깐한 분이다. 오타는 애교, 맞춤법 틀리는 건 살짝 부끄러운 거~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신경 안 쓴 척, 원래 꼼꼼한 척 깨알 같은 답신을 썼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얼마 후에 출판사에 가서 대면했는데... 뭐야? 왤케 부드러우심? 그 부드러움은 다름 아닌 저자에 대한 존중의 태도였다. 그 존중의 태도는 다름 아닌 책을 편집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지였다. 아, 그냥 완벽주의 편집자가 아니구나,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와우결혼>을 만들면서 L 님의 완벽주의는 수시로 확인이 되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렁설렁 하려는 내 태도를 돌아보며 컴터 앞에 앉은 내 태도를 고쳐 앉게 하였다.


나는 오랜 기간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평에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 했다. 까칠함이 나쁜 것이라고(엄마가 늘 말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오타가 나는 것도 '에이, 뭐 그런 거지. 오타도 보이고 그래야 인간적이지' 하곤 했다. 내가 까칠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것으로 증명하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우결혼>을 만들며 교정본을 받고 다시 보내고 하는 과정에서 오타와 비문, 정확한 인용에 대해서 화들짝 눈을 뜬 면이 있다. (또 다른 전문가적 완벽주의자 남편과 함께 한 작업인 탓도 있다.) 어쨌든  한 번도 내게 다그치지 않았지만, L님의 일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자랑인데, 내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에게 빨리 배우는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심하게 부러워하면서 그 부러워하던 덕목을 배우고야 마는 그런 근성이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헤헤) L님은 정말 내게 '와우~ 편집자님!'


그러나 어떤 면에서 <와우결혼>은 내게 결정적인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에 나왔다. 그 아쉬움을 통해서 책이 나와서 마냥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수준이란 게 있구나'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 아니구나) 세 번째 책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은 L 님의 아내님의 손에 넘어갔다. 두 사람은 부부 편집단. <와우결혼> 출간 즈음에 결혼을 하셨으니 이건 또 무슨 즐거운 인연인가?  아무튼 에니어그램 책을 맡으신 아내 간사님 역시 일러스트를 찾는 것부터 내 기대치를 웃돈다. 아내 L 편집자님은 여자 김종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 남편과 비슷한 캐릭터. 그래서 그런지 책을 만드는 과정이 물 흐르듯 졸졸졸이다. 그리고 책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 나의 '와우~ 편집자님'이 적극 참여하시며 짧은 저자 인생에서 얻은 작은 트라우마 하나를 치유해 주셨다. <커피 에니어그램>은 여러모로 내게 치유적인 책이 되었다.


토요일 저녁, 두 L 편집자님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나누고 풍성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저 막연히 두 분의 편집자가 내게는 큰 선물이며 복이다, 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는 희미하게 보였으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분들이 나를 알고 계시듯 나도 그분들을 알겠고, 선물이라 생각했던 심증은 확증이 되었다. 저자라고 누구나 좋은 편집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내 마음이 한층 자라고 글에 대한 겸허함을 배우게 되었으니 복과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 대화 중에 남편 L 편집자님이 던진 '게으름'이라는 화두가 긴 울림으로 가슴에 남는다. 어떤 소명의 자리로 부름 받은 사람,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자극에 둔감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게으름이고 '죄'다. '변화'는 늘 하던 것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어제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니 고통의 선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자 한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고,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게으름이고 동시에 죄이다.


네 번째 책, '육아'에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글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자로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새삼스레 반성하게 된다. 저자의 무책임은 무책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편집자의 짐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느슨한 탈고를 하면서 구멍을 남기는 것이 인간적이라며 가볍게 굴었던 것도. 게다가 그런 걸 가지고 '나 까칠하지 않다니까' 합리화를 일삼았다. 저자와 편집자 관계에서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일이 늘 미끈하고 뽀대나는 일이 아니라 까칠해 보이고 주변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까칠함의 미덕을 새롭게 배운다. 저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까칠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착하단 소리 못 듣고, 잃고 가는 것이 많아지더라도 저자의 저자됨, 나의 나됨을 위해서 용기있게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실은 요즘 나의 까칠함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원고 하나를 매만지면서 배신 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더 빛내줄 출판사에서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으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껏 치솟은 안압을 낮추기로 한다. 팔리는 책이 아니라 저자의 빛깔이 살아 있는 책을 만들려는 편집자,  저자를 빛나게 해  책 많이 팔기를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저자의 빛이 커져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어떻게 책임을 나눠서 질까를 미리 고민하는 편집자가 있다. 그분이 내 편집자이다. 때문에 나의 글 선생님이기도 하다.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까칠해서 더 좋은 편집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 있는 짝지 편집자. 까칠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저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짝지 남편(이며 약간은 저자)과 대화가 무르익어가는데 대~애박, 창밖으로 무지개가 떴다. 갑자기 나타난 무지개를 보며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처럼 삶은 갑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그로 인한 인한 깨달음을 통해 깊은 탄성을 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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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어느 새 한솔이 3주기가 되었다.
작년에 와서 심어놓은 꽃들이 다시 피어있어 반갑고 신기하다.
올핸 활짝 핀 수국을 한솔이 옆에 나란히 심어주었다.

문득 한영교회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한솔이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파  함께 울며 기도하던,
한솔이 형, 한솔이 오빠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하던,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노래하며 지낸 한솔이의  마지막 나날을 들었던,

눈물로 떠나보내면서 새로운 삶을 다짐했던,


그 TNTer들.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명의 샘에 잇대어 생명을 소중히 가꾸며 살고 있을까?


한솔이를 만나고 올라오며 우리 모두의 생명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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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이금미 부부가 파릇한 신혼일 때 매주 한 번씩 '가정교회'로 만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눴었습니다. 우리 둘째 현승이가 생애 처음 그린 그림(또는 멋대로 그은 선 몇 개)을 보고 뭘 그린 거냐 물으니 "이슈삼츈"이라고 했더랬지요. 여섯 살이던 큰 애 채윤이는 이슈삼촌 성대모사를 제대로 했었죠. "워우~ 종피리형!" 엠티 가서 각 부부 첫키스 얘기 들으며 뒹굴며 웃던 그 밤도 생각납니다. 아, 이슈삼촌이 '와이프, 와이프' 하는 소릴 듣고 채윤인 "엄마, 나 나중에 커서 수민이의 와.이.퍼가 될래" 이러면서 어록을 남기기도 했었네요.


일본에서 선교하시다 오랜만에 들어오셨는데 제 강의를 들으러 와주셨고, 장소가 마침 우리 교회 사회봉사관이었던 덕에 넷이 이렇게 기념사진 남겼어요. 두 가정 다 그 시절로선 상상하지 못했던 자리에 와 있네요. 돋보기 들이대고 보면 두려움과 기대, 눈물 또는 기쁨으로 굴곡진 몇 년이었지만 이렇게 만나 돌이켜보니 은총의 손길이 변함 없이 함께 하셨구나. 싶어 뭉클합니다.


반가웠어요. 몸은 멀리 있지만 함께 밥 먹고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찬양하던 그때처럼 마음만은 함께 해요. 네팔에 있는 진태훈, 오윤선 부부도 많이 보고싶어지네요.

 

오랜된 앨범 폴더에서 찾았네요.
현승이의 첫 그림, 이슈삼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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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서 쉬 싸는 사람이 누군 줄 알어?
야, 얘들아~ 여기 움악션샘미 있어.
화장실 문 앞에 팬들이 모여 있어서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아시는가?
일주일에 한 번 믿어지지 않을 세상에 들어갔다 나온다.
4,5세 아기들의 음악 수업인데,
뜨거운 호응과 열렬한 지지에 자존감이 높아진 나 감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훔..... 이제 내 경쟁상대는 뽀로로 뿐이군. 







새해 첫 수업일에는 의도적으로 이런 헬로송을 부른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즐거운 음악시간, 안녕 네 살 꼬뜰반~
물론 네 살에 액센트 넣어준다.
그러면 '안녕 선생님' 대답하려다 말고 애들이 눈에 확 불이 붙어가지고,
다셧 쌸이예요. 시현이 다셨 쌸이예요. 소율이 이렇게 이렇게 다셧 쌸예요.
손가락 다 펼쳐 보이고 난리도 아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런 표정 연기가 중요하다. 우막션샘미는 사실 여자 짐캐리였다.)
무슨 소리야. 니네 네 살인데. 니네 접때 네 살이었잖아. 하면

완전 목에 핏대 세우고,
아니예요~오. 다셧 쌸이예요. 이제 다셧 쌸 댔쎠요~오.
그래? 갑자기 왜 다섯 살이 됐어? 어떻게 다섯 살이 된 거야?
순간, 멍. '그러게, 내가 왜 갑자기 다섯 살이 됐지?' 하는 표정
(나이가 더 드신 애들은 바로 떡국 얘기가 나온다.)
그때 한 아이.
엄마가 이제부터 다섯 쌸이래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 녀석들도
다시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엄마가 다셧 쌀이라고 했어요~오. 우리 엄마가 나 이제 다섯 쌸이래요.
그 와중에 한 녀석이벌떡 일어나 까치발을 들어보이며,
이봐요. 이렇게 키가 커져쎠요. 란다.

이런 순간, 내 몸 속에서 믿어지지 않을 양의 엔돌핀이 방출된다.
행복이나 기쁨이란 단어도 무색하다.
그저, 뭐 이렇게 귀엽고 말랑말랑한 세상이 있을까 싶다.



 

작년 마지막 주 수업에서는 색깔종 연주를 준비해 갔는데
수업을 시작하려니 종 하나가  없는 것이다.
주황색 종을 다른 요일에 치료하는 곳에 흘리고 온 것.
음이 하나 빠지면 당연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난감한이긴 했지만
20년 차 우막션샘미는 결코 당황하지는 않는다.
아~나, 어떡하지?
 약간 오버를 해주니 역시 아이들 반응이 뜨겁다.

왜요? 왜요?
아니, 너희 주황마녀 알아? 주황마녀가 선생님 주황색 종을 가져갔어.
그래서 우리가 오늘 종소리 울려라 연주를 할 수가 없어. 어떡하지?
이 한 마디에 의외로 아이들 몰입. 바로 뜨거운 리액션들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1인 즉흥 모노 동화'를 만들어서 열연을 했다. 

선생님이 주황마녀 집으로 가서 주황색 종을 찾아올 거야
.
그런데 사실 선생님 디게 무섭다. 주황마녀가 마술을 부릴 수도 있거든.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 흥분해서 나름의 필살기를 내놓는다.
내가 로봇을 빌려줄테니까 가져가서 싸워라. 발로 탁 차라. 칼로 찔러라... 기타 등등.


(이제 수업 돌입)
고마운데 다 필요없다.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이라서 노래의 힘이 필요하다.
너희가 한 명 씩 노래를 아주 큰 소리를 불러주면 선생님한테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면 힘을 받아가지고 선생님이 주황마녀를 찾아가 싸우고, 다음 주에 종을 찾아오겠다.
라면서 아이들 독창을 시켰다.
내향적이고 부끄럼이 많아서 절대 혼자 뭘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노래를 시킨다.
물론 일단 뒤로 뺀다.
"야, 그러면 음악 선생님이 힘이 없어서 주황마녀한테 질 지도 몰라."
우막션샘미를 지켜야한다는 의협심이 내향적 에너지를 이긴다.
일어나서 기타 반주에 무려 독창을 하는 아이! 꺄울!!!
다시 한 번 우막션샘미 몸에 엔돌핀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이렇게 수업은 예상치 못한 쾌거를 거두며 마친다.


엊그제 수업을 가서 어느 반에 들어 갔는데,
한 녀석이 내 발에 뽀뽀를 했다. 처음엔 뽀뽀를 했는지도 몰랐다.
한 번 더 뽀뽀를 하더니,
"좋아서요. 우막션새미가 좋아서 그래요."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말랑한 영혼으로부터 우막션샘미 마음에 치유의 광선이 비춰졌다.


나, 이토록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은밀히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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