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생일상 받은 여자, 자랑 좀 하겠습니다.

결혼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니 눈 딱 감고 한 번 들어주십쇼.


남편 김종필 님, 곱게 자란 남자라 요리라곤 못합니다.

몇 년 전 제가 코스타 가느라 한 열흘 집을 비웠는데 밥이란 걸 처음 해봤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주방에 몰아넣고 부려먹는 마초는 아닙니다.

밥이나 먹을 것에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굳이 주방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종종 섭섭했지만 저는 생일 이벤트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가 아닌지라

(중요하게 여기는 척마저 안 하진 않습니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든 말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일선물 빙자하여 봐뒀던 옷이나 하나 크게 챙기면 땡큐지요.

겨울 피정 중에 생일이었습니다.

피정 중에 생일이네.... 여행 중에 생축해야겠네.

분명히 이렇게 말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자입니다.

여행 마지막 밤 변산에서 가볍게 저녁 때우기로 하고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엎드려 절받기로 즉석 미역국, 인스턴트 떡볶이 등을 사서 안겼습니다.

나는 쉬고 있을 테니 생일상을 차리라, 엄히 명했습니다.

메뉴얼 읽어가며 공부하듯 즉석 미역국과 즉석 떡볶이를 준비하는데.....

와, 그 좋은 머리로 저렇게 어렵게 일을 하다니.

바라보는데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한두 번을 제외하고 생일에 미역국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요.

어쨌든 남편이 준비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18년 걸렸습니다.


생일 이틀 지나고 오늘.

서프라이즈는 덤!

안성에서 강의를 마치고 퇴근 시간에 걸려 네 시간 운전하고 너덜너덜해져 돌아왔더니

이런 깜찍한 준비를 했더라는.....


생일에 미역국도 얻어 먹고 서프라이즈 케잌 세러모니도 당한 여자, 자랑 좀 했습니다.














사춘기를 빠져나온 1번,
사춘기를 시작하는 2번,
오춘기를 빠져나온 엄마 아빠는 가족 피정 중입니다.

경증 사춘기 아들은 성장 호르몬 탓에
시시각각 삐딱선을 탔다, 정상궤도로 왔다, 오락가락입니다.
세 식구를 왕따시키며 스스로 왕따가 되어
자처한 외로움에 파묻혀 있다,
어느 새 엄마 품에 볼을 부비기도 합니다.

꽃친 딸은 엄마 곁에 슬쩍 와서는....
엄마, 이번 여행은 순간순간이 좋고 아쉬워.
뭔가 엄마 아빠가 더 젊었을 때 여행갔던 게 그립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니까.....
(먼산)

내비도!
사춘기 부모의 필살기 신공 발휘, 여행은 그럭저럭 무난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춘기 끝자락 엄마 아빠는 그런 대화를 했죠.
아이들 귀여웠던 시절과 함께 우리 젊음도 이렇게 가네.
채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왔던 이곳 거제도 해변에 다시 서니
9년의 세월이 한 번에 지나간 느낌이네요.

숙소에서 잠시 찾아온 평화.
채윤이는 일기 쓰겠다고 엎드렸고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는 기타 치며 노래합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선곡 끝장이네!
엄마가 찬송가 풍으로 3절까지 따라불러줬습니다.





 

 

 

새로 장년 교구를 맡은 남편이 첫 행사인 구역장 수련회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엔 왠지 그러고 싶다"면서 수련회의 모든 것을 혼자 준비했다. 몇 분 구역장 권찰들께 부탁하면 기꺼이 도와주시겠지만 왠.지. 이번엔 혼자 준비하고 싶다는 말에 '초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 이 사람이 새로 만난 구역장 권찰님들을 초대하고 싶은 거로구나! 수련회 프로그램, 말씀, 찬양, 핸드북 제작은 물론 간식까지 그야말로 주님의 손과 발과 입과 머리되어 올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구들이 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시간, 갑자기 평소 내는 소리보다 두 배는 되는 데시벨로 '나느은, 7교구다!!!' 외쳤다. 아이들과 내가 깜놀하고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 왜 저래?" "놔둬.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거야."

 

커피도구 가지고 다니면서 출장 드립하는 것 좋아하지만,  원칙이 있다. '하고 싶을 때, 주고 싶은 사람'에게 이다. (아, 커피 관련 문장의 주어는 항상 남편 아니고 나) 남편의 진정성 있는 동분서주가 예쁘게 느껴져서 간식은 내가 맡아주겠다 했다. 게다가 커피 출드까지 하겠노라 했다. 이런 일은 시켜도, 부탁해도 해주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에 말도 못 꺼냈을 텐데 자발적으로 해주겠다 하니 7교구 목사님,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분들을 '초대'하고픈 남편 마음의 주파수에 맞춰 비록 과자 사탕이지만 고심하고 고민하여 장을 봤다. 당일엔 내 시간 계산법으론 정말 이르고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미리 간식 세팅 다 하고 커피 드립 시간을 구역장님들이 도착하실 시간에 딱 맞추려는 야심 찬 작전. 계단을 내려오시면서부터 커피 향으로 환대해야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패다! 혼자 모든 걸 준비하는 남편과 진짜 일찍 오신 몇 분과 일단 테이블 놓고 자리 세팅하는 것에 투입.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은 다 됐고, 정수기 물은 떨어졌고, 마침 내가 가져간 무선 커피포터는 물이 자꾸 새서 덥석 쓸 수가 없고.... 무슨 정신으로 모닝커피를 내렸는지 모르겠다.(에프터눈 커피는 실패하지 안케따!!)  애초 슬픈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정신없이 티타임 마치고 찬양 시작하여 의자에 앉았더니 앞에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한다. 내 마음에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노래가 울린다. 프로그램 시작하면 나는 빠져나오기로 했는데 찬양이라도 따라부르며 나간 정신을 붙들어 와야지 싶어 앉아 있었다.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본문이 로마서 16장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너희는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헤로디온, 나깃수의 가족,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의 어머니, 아순그리도블레곤허메바드로바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 빌롤로고율리아와 또 네레오그의 자매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아는 이름이라곤 브리스가와 아굴라 뿐이네! 설교의 키워드는 '일일이 이름 부르며 인사하는 바울'이었다. 로마서는 신학논문이라며, 깊이 연구하게 되는 성경이라고 했다. (논문이라니, 논쟁꺼리가 많다니 이 얼마나 7교구 목사님 JP님의 스타일인가!) 그런 의미로 이 16장은 자주 지나쳤단다. 논문과 논문 사이 끼어있는 나열된 이름들, 그들에게 그냥 문안 인사를 전하라니. 연구나 묵상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헌데 이번에 16장이 마음에 들어왔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들여다보며 묵상해보니 구역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며 설교 설교 설교.... 하였다.

 

'왠지 이번엔 혼자 다 준비하고 싶다.' '나는 7교구다!' 했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 같다. 대형교회 부목사로 목회한다는 것. 650여 명의 이름은 알지언정 사람과 사람으로의 스킨십은 없는 관계로 목회한다는 것. '정서적, 영적 스킨십 없는 목회'라는 것이 과연 성립할 수는 있는 말일까? 누군가의 신앙적, 영적 안내자가 되고 싶어 목사가 되었는데, 누군가의 '우리 목사님'이고 싶을 텐데.... 구조라는 넘사벽이 있다. 그 쓸쓸한 딜레마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비록 얼굴을 마주할 순 없지만, 이름으로만 나열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보고 묵상하듯 그저 이름만으로 대하진 않겠다는 결심으로 들렸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목사님'이 아니라 '7교구 목사님'일 뿐인 자신을 로마서 16장에 나열된 이름에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는, 이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알아주든 말든 혼자 준비하는 수련회에 '초대'의 마음을 담았겠구나 싶었다. 그런 속내가 읽히니 울컥했다. 

 

 성경에 관한한 전문가가 되겠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자주 지적탐구에서 확인하려는 남편이 손발을 움직이는 것에 그저 시간을 들이는 것, 로마서의 그 많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줘'에 마음을 꽂은 것은! 정신실이 웃기는 걸 포기하고 지루한 것에 올인하겠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방향의 선회이다. 본인은 자신의 이 변화를 알까?  목회자라서가 아니라, 목사라서가 아니라, 남다른 기준을 가진 특별한 교회의 전임 목사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려는 한 사람으로서, 나답게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무르익어가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나의 영적여정에 힘이 된다. 7교구, 7교구, 세븐, 세븐, 세븐...... 헤븐? 하다가 '하늘가족 7교구'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흔하디흔하여 식상한 말 '하늘가족'엔 하잘것없는, 이름으로만 아는, 때론 이름도 모르는 어느 목사의 가슴 뛰는 묵상이 담겨 있다. 한 송이 이름없는 들꽃같은 어느 대형교회 전임목사를 응원한다. 

 

 

 

 

 

 

 

 

 

JP&SS는 우리 부부를 이르는 조금은 공적인 호칭이다. 오래 전 [복음과 상황] 편집장이시, 당시 우리 부부의 목자(? 그런게 있다)이기도 하셨던 (채윤이 발음으로) 쉐석 목짠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싸이클럽에서 댓글 농담 따먹기 놀이하다 지어진 이름인데 필명이 되었다. 그 필명으로 쓰던 글이 신혼일기였고 알콩달콩을 빙자한 좌충우돌이었으나 결국 이름에 남은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JP와 SS라고 불러주었을 때, 우린 그에게로 가서 사이좋은 부부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단지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일, 한몸 이루라는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지켜내자' 약속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약속 지키려 애쓰던 시간은 고맙게도 좋은 부부관계 이전에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보편 사랑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성장했고 충분히 큰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친구와 부부관계에 대해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다. '우씨, 가만히 두면 그대로 유지나 하고 있지. 가만히 두면 꼭 퇴보하고 문제가 생겨' 부부가 아니라도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손을 놓으면 어느 새 누런 잎이 생기고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 는 없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둘 다 배둘레햄이 두꺼워지고 마음의 내장지방도 꽤 쌓여서 덤덤하며 동시에 느긋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밧뜨, 결혼 20년을 바라보는 중견부부가 되었다고 햇빛과 물과 공기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생애 전환기를 맞아 다시금 보듬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줘야 하는 시절인지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기로 한 지리산 산행을 준비하는 것 때문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 자전거 타다 넘어져 다쳐 손가락이 아픈데 따뜻한 걱정을 안 해줘셔였던가. 흠, 분명 뭔가 더 심각한 일이 많았다! 늘 그렇듯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 그는 나무, 나는 바람.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흔들었다. 뭐) 둘이 합하면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생각보다 불편한 시간이 길었다. 또 늘 그렇듯 '흥, 결코 대화하지 않겠어! 일단 기도를 하지 말아야지. 기도하면 남편을 용서하게 되니까 최대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해' 마음의 길은 '삐뚤 길'로 달려간다. 각본상 그리 되면 애써 시도하는 대화는 늘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결렬되고 만다. '당신 꼭 ㅇㅇㅇ 같아' 치명적인 무기도 썼다. 피를 철철 흘리던 남편의 반격도 이어졌다. '꼭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하기가 ㅇㅇㅇ 같아' 헉! 중상. 위생병, 위생벼어~엉!!!! 여름 휴가며, 간만의 부부 피정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 번호의 애칭을 바꿨다. 애칭에서 이름으로 바꿨다.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그냥 김종필이다. 흥, 칫, 피!' 그런데 이게 답이었다. 사랑의 빛을 잃은 깜깜한 동굴 속에 비친 한 줄 가이드 라인이었다. 김종필을 그냥 김종필로 보고 나는 정신실이 되는 것. 기도하지 않겠다 결심해도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가 이기기도 한다. 기도 속에서, 성경말씀 속에서, 슬픔에 지쳐 잠든 꿈 속에서 '김종필을 김종필 되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린다. 더불어 그를 두고 세속적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버린 내 마음도 조금씩 보인다. 한몸 이룬 우리는 늘 또 분리되어 독립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이며 둘인 그 긴장을 살아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둘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묘미이다.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을 배우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차거운 분노로 냉랭했던 서너 주가 지나갔다. 둘이 대화했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았고, 기다렸고, 아파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 그 사이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 알아온 부부, 처음으로 만나는 부부,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 부부, 생각과 마음이 딱딱 맞는 부부. 각각의 만남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고 함께함으로 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마음으로 흘러 들었다. 휴대폰의 남편 이름을 새로 저장했다. 오글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다.  휴가 마지막 날 남편은 혼자 천안의 신대원에 다녀왔다. 3년 동안 행복하게 공부했던 도서관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그리고 구입한 책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책 제목으로 추정해본, 부부가 세트로 앓은 홍역에 대한 남편의 처방은 이것이다. '내 가장 중요한 소명이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아버지로 사는 일상 속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다.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플하게 지금 여기를 살겠다. 자, 이제 그런 의미로 2학기 구역성경 공부 본문인 요한계시록 연구에 매진!'

 

 

 

 

결혼학교 강의 준비로 다시 꺼내 읽는 래리크랩의 <결혼 건축가> 일부분이다. 주례사를 듣는 느낌으로 옮겨 적으며 고해성사를 마친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한사람의 다른 인격을 톡특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 즉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고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나님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엄마, 나 요즘 들어 아빠가 너무 좋아져. 그런 거 같지 않아?

요즘 아빠한테 짜증도 안 내잖아. 아빠가 말장난해도 짜증 안 내지?

 

그러네.

 

오늘도 아빠랑 영화 봐야~아지.

 

안 돼.

 

왜애? 오늘은 헝거 게임 투 볼 거야.

 

안 돼.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놀 거야. 요즘 아빠 퇴근하면 계속 너랑 놀았잖아.

 

두 번밖에 안 놀았다고~오. 캐치볼 한 번 하고, 영화 한 번 보고.

 

당연하지. 아빠가 요즘 일찍 퇴근한 게 딱 두 번인데.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매일 매일 같이 놀잖아.

 

뭐가 매일 놀아?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엄마 요즘 아빠랑 얘기도 못 했어.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진짜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평생 같이 놀 거잖아.

나는 조금밖에 못 놀고. 치사해!

 

넌 누나랑 놀아. 아, 누나가 못 놀지.

 

누나는 나랑 놀 시간도 없고. 시간이 있어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췟!

 

너는 하루 종일 한강에서 놀고 자전거 타고 월드컵 공원 가서 또 놀고 그랬잖아.

 

그래도 아빠랑은 안 놀았잖아. 진짜 치사해. 어른이라고 마음대로 하고.

 

(풉) 우헤헤헤헤..... 놀아라, 놀아. 남자끼리 놀아라. 임뫄!

 

 

 

# 어쩌다 JP 인기가 이렇게 좋아졌지? 우리 집 인기투표 등수 4위였는데.... 뭐지?

  암튼 사진의 느낌을 봐라 임뫄. 아빠가 니꺼냐 내꺼냐?

  나 이거 참. 한 때 딸내미 하고 아빠를 두고 경쟁한 적은 있으나,

  그건 뭐 심리학계에서 인정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치자.

  내가 이제 와서 사춘기 앞 둔 너하고 아빠 쟁탈전을 해야 한다 말이냐?

  그것도 임뫄, 진짜 자존심 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한 때 엄마 중독자였었잖아!!!!!!!!!! ㅜㅜㅜㅜㅜㅜ

 

 

 

 

 

 

 

 

 

 

 

 

 

월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한 남편과 드디어 <윈터슬립>을 보았다. 3시간 16분의 런닝타임도 잘 견뎠다. 물도 커피도 마시지 않으니 인터미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끝나고 배가 무지하게 고팠고 식당을 찾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앗, 저기 들어갈 걸, 검색해봐, 뭐 없어, 저긴 비쌀 것 같아, 주차할 곳이 없잖아, 이러다 괜히 서로 감정이 틀어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식당을 정하고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테이블 옆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면서 남편이 무심하게 '정신실 뇌관 건드리기' 놀이를 시작했다.

 

- 이제 속셈을 말해 봐. 영화 주인공이 나랑 닮았어?

- 뭐라? 속셈? 속셈이라니!! 난 진짜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보자는 거였어. 당신 내가 그런 뜻으로 영화보자고 했는 줄 알아? 당신을 닮긴 뭘 당신을 닮아. 오히려 나를 닮았지.

- 나는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무슨 당신을 닮아? 어떤 점이 당신을 닮았어?

- 지역신문에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알량한 글 써놓고 자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 아냐,  당신보단 나랑 비슷하지. 책이나 글에 빠져서 합리적인 척하고. 집세를 받고 이러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 시키고 거리두고. 

- 내가 이 영화가 좋다고 한 건 바로 그것 때문이야. 누구라도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 하긴, 등장인물 셋이 다 그렇지 않아? 

- 그래. 영화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지? 그래서 현실 같지?

 

(벌컥!)

 

- 그런데 당신 내가 무슨 속셈이 있대. 내가 뭐 당신을 그렇게 통제하고 다루는 사람이야?

물론 지난 번 <Her>를 보고 당신과 닮았다과 많이 쪼았지. 인정해. 

그런데 진짜 이번엔 다른 뜻 없었어. 당신이 갑바도기아 갔다 왔고, 그 배경으로 찍은 좋은 영화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했다규! 속셈이라니.... 속셈이라니.....

 

- 그건 농담한 거야. 영화에서 니할이 계속 '속셈을 말해보라'해서 따라한 거야. 밥 먹어. 

 

(그렇게 일단락)

 

다음 날 저녁 남편의 카톡으로 '속셈'과 일대일 대응되는 사건 발생. 어이없음으로 시작하여 삐짐을 경유한 분노가 재점화되었다. 아, 내가 말했던가? 실은 내가 분노중독자라고.

 

 

 

 

뭐라? 걱정 마?

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라?

분명 오늘 아침에 당신 아들 현승에게 당신 입으로 니가 약속하셨잖아요?

당신이 강변을 나가거나 안 나가거나 내가 무슨 걱정이래요? 당신 나한테 왜 이래?

나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야. 내가 언제 당신 때렸나, 생각해 보고 있음. 어이 엄슴.

 

내 뇌관을 건드린 '속셈'과 '걱정 마'에 대단한 뜻이 담기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럴 것이다. 그야말로 속셈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괜시리 제 발 저린 내가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럴 땐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윈터슬립>에서 네즐라가 주인공 아이딘에게 쏘아붙인 명대사가 답이다. "오빠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내 뜻이 남편 뜻이 되기를, 남편 마음이 내 맘 같기를 바라며 은근히 통제하는 나. 남편 말과 행동 뒤의 동기를 다 아는 것처럼 단정 짓고 비난하는 나. 실은 내가 이러는 줄 알기에 남편이 이렇게 느낄가봐 두려워 늘 선제공격이다. (앗, 고백하고 말았어ㅜ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실제의 자기보다 자기가 더 괜찮은 인간'이라 믿고 싶어 자기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히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 남편도 속셈을 가지고 말한 게 아니 듯.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서 회개와 근신의 마음이었는데, 때마침 읽은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의 다음 글귀가 확인사살 해주신다.

 

"만족의 현실주의(Realismus der Bescheidung)가 의미하는 것은 상대에게 쉼 없이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일, 또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일이다. 이러한 만족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가 주는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상대에게도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때만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아, 눼에! 신부님, 성령님, 예수님, 하나님. 잘 알아 들었습니다. 깊이 반성할테니 이런 깨달음 제게만 주시지 말고 부디 남편에게도 깊은 깨달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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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에서 몸땡이가 돌아온 지는 한참 됐지만

이제야 몸과 마음과 영혼의 여독이 제대로 풀려 일상 순례자의 자리로 돌아온 남편. 

모처럼 둘이 월요 피정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점심 맛있게 먹고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온다.

'이제 일어나라. 바다도 보이는데'

강화도 뻘 바다에 도착.

 

 

 

 

더럽기로 소문난 동막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앉으니,

과연 바닷물은 진흙탕이었더라.

 

 

 

 

맨발로 갯벌에 들어간 저 연인은

나 잡아봐라, 해가며

화보 찍어가며.....

 

어허, 좋은 때다!

 

 

 

야, 햇살은 따겁다만 글드라도 바다에 풍덩할 날씨는 아닌데.

저 젊은이들 패기보소!

 

허허, 참 좋은 때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 하나, 뱃속에 꿈틀꿈틀 아기 하나.

그렇게 데리고 소풍다니던 때가 우리도 있었지.

언제 키우나, 언제 키우나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행복한 순간인 걸 저 젊은 부부는 알랑가 몰라.

 

참, 좋은 때다!

 

 

 

 

두 분 노시는 게 로맨틱하기로는  현재 해변에서 으뜸이십니다.

신발 벗고 갯벌 걸어다니는 거, 그거 사랑 아냐~

화보 촬영은 저 위 젊은이들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흡사 정사장님과 앙대요 여사님 분위기의 이분들이시네.

 

우야튼, 좋은 때이십니다! 

 

 

 

 

저~어 멀리부터 한 몸을 이루어 걸어오시기에,

'저기 봐. 좋은 때다 5 등장!' 하고 봤더니,

오메 죄송합니다. 쟤네들 아니고 저분들이셨음.

 

차~암, 좋은 때이십다!

 

 

 

 

당신 올해 몇이지?

어이구, 몇 년만 있으면 오십이네!

당신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실없는 농담에 묻어 나온다.

마음이 갑자기 막막하고 아득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선 김동률이 노래를 불러준다. <감사>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며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 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우리도 참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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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고 선사받은 커피 드립계의 아이돌 '에어로프레스' 입니다.

오, 다시 한 번 커피의 신세계를 만납니다.

광고에 나와 있는대로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사이,

그 둘 사이의 화평한 조우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남자들의 커피 토이라네요.

아닌 게 아니라 에어를 프레스 해야 하는 토이이다 보니까 힘이 필요하네요.

살살 원두를 달래며 물을 따라주는 핸드드립과 달리 프레~~~에쓰 드립입니다.

잘 됐죠.

착한데다 가사에 대한 마음은 충천하지만 주방 관련 업무에 너무 소원해서,

미역국을 고추가루 풀어서 끓인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남편 김종필 님인데요.

남자의 커피 토이를 집에 들였으니 이 기회에 커피를 빌미 삼아 주방으로 끌어들여야죠. 

저러고 커피도구를 놓고도 일단 생각부터 해야죠.

(물론 그전에 메뉴얼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필수) 

 

 

 

이렇게 모닝커피 내리는 것을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로망이 이루어지려나 봅니다.

아침햇살로 가득 찬 침실.

미인은 잠꾸러기니까 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여 내 잠을 깨울까 조용종용 움직이며 커피를 내린 그가 커피향으로 나를 깨웁니다.

뚜둡뚭뚜 뚜둡뚭뚜......

(물론 관건은 어떻게 그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게 만드냐는 건데....)

 

 

 

 

며칠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침 먹고

"여보, 커피 마시자" 이러면 커피가 나오더라구요. 오메.

 

 

 

 

 

며칠 호사를 누렸는데......

커피 내려주던 그 님은 먼 곳에.....

커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나라 터키에 커피순례....

아니 성지순례, 성지순례 가셨습니다.

 

(내가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요즘 왜 이리 맛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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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딸노릇을 연구하신 딸노릇의 달인 '장손 김채윤' 선생의 작품 되겠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새벽 두 시까지 벼락치기 열공 투혼을 불사하셨던 딸입니다.

시험 마지막날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를 위해 손수 만드셨습니다.

케잌 망가질까봐 홍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도보 투혼까지!

요즘 하여튼 이래저래 혼을 불사르고 있는 김채윤입니다.

 

 

 

 

 

여자 심장 쫄깃하게 하는 이벤트 같은 것엔소질이 없으신 '선수 김종필' 남편께서는

어쩐 일로 퇴근 길에 꽃다발을 준비하셨습니다.

계단에서 아빠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인터폰 카메라로 동태를 확인하던 '깐돌 김현승' 은

"아빠가 손에 뭘 한 가득 들고 온다. 뭔가 대단한 거 같은데'

쇼핑백에 든 것인 꽃다발인 것을 확인하고 급 표정이 심드렁해지셨습니다.

 

선수 김종필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엄마 앞에 와 무릎 꿇더니,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자

딸 김채윤 양은

"어머, 어머 멋져. 나 눈물 날 것 같아" 감동하셨습니다.

아빠를 닮아 세상의 모든 오글거리는 것들을 거부하시는 '깐돌 김현승' 아들은

심히 민망해 하며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JP와 SS 사이를 갈라놓겠다는 질투심 발동으로

케잌 위 초콜렛 중 S 하나를 낼름 빼냈습니다.

아직 오이디프스 형님의 영향권 벗어나지 못하셨나봅니다.

 

 

JP&SS Forever!

조폭신실은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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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 : 아빠, 나 체육시간에 피구했는데 오늘의 히어로에 뽑혔어.

        체육 선생님이 그 시간에 제일 잘 한 사람 한 명씩 뽑아주시거든.

        나 피구 잘해. 공격은 잘 못하는데 수비는 잘 해.

 

아빠 : 아빠는 공격도 잘 하는데.

 

엄마 : 당신 피구할 때 상대방이 공 갖고 있으면 맨 앞에서 잡으려고 손 뻗치고 있고 그런 애지?

         어우, 나는 그런 애들이 제일 무서워. 아니 공을 피해야지 왜 잡을려고 해. 

         공 딱 잡고 둘러보고 있으면 더 무서워. 어디로 던질지 모르거든.

         여자 애들도 그렇게 잘하는 애들 있어.

 

아빠 : 핸드볼 했잖아. 따~악 잡아서 따~악 던지는 거지.

        

엄마 : 아, 그 공 맞으면 진짜 아프겠다. ㅎㄷㄷ

 

아빠 : 나는 다칠까봐 위로 안 던져. 꼭 다리로 던져.

 

현승 : 아!  맞어, 맞어. 그러면 바닥에 튀면서 두 명도 잡지?  나도 공격 잘하고 싶다. 

 

엄마 : 나도 오래 살아 남아. 무조건 덩치 큰 애들 뒤에서 숨어 있으면 되거든.

 

아빠 : 뒤에 숨어서 오도방정 떨지?

 

엄마 : ㅋㅋㅋㅋㅋㅋ 어, 당신 같은 애들이 공 잡아서 '돌려 돌려' 소리 지르면 무서워서 정신이 혼미해져.

         막 오도방정 떨다가 정신 차려보면 공 들고 있는 상대편 바로 앞에 서 있는 거야.

         던질 필요도 없이 공으로 터치! 하면 치면 죽는 거지.

 

채윤 : 그럴 필요 없는데. 그냥 공 피해다니지 말고 상대편 서 있는 줄 근처에 서 있어.

        그러면 자기 편인 줄 알고 안 죽여.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 김채윤 너는 하여간. 너는 공 맞고 밖에 나갔다가도 쓰윽 다시 들어올 애야.

 

채윤 : 어!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러는데.

         아니면 맞았어도 그냥 모른 척하고 막 뛰면 애들이 잘 몰라.

 

현승 : 진짜! 누나는 그렇게 맨날 속인다고오~ 보드게임할 때도 맨날 속여서 짜증난다고.

         속일려면 게임을 왜 해?

 

채윤 : 야, 속이는 게 게임의 재미야. 얘는 뭘 몰라.

 

 

@ 가족의 캐릭터가 살아 나피구왕 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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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아님

 

나 오늘 당신 출근할 때 같이 나갈 거야. 나 좀 태워 줘.

왜? 어디가?

병워~언. 건강검진 받는다고 했잖아. 몇 번을 얘기 해.

아, 맞다. 미안 미안. 오후라며?

내가 언제?

어제 당신이 그랬잖아. 오후 네 시경에... 네... 내... 아~아, 네 시가 아니고 내시경 한다고? 아~ 미안 미안. 내시경 한다는 거였어. (수습 수습) 수면 내시경 한다고 했지?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는 사오정 귀, 18년을 살아도 안 질리는 이유)

 

 

 

 

# 나름 개그

 

엄마 : 어, 현승아. 대나무다! 아까 전에 입구에서 가지고 놀았던 긴 나무.

         대나무가 여기 있네.

아빠 : 어, 소나무도 있네.

현승 : 아빠, 나 아까 아빠랑 누나 식당에서 기다릴 때 엄청 기다란 나무 봤다.

         그거 가지고 재밌게 놀았어.

아빠 : (진지하게) 그런데 현승아,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에.....

현승 : 응. 왜애? 대나무가 왜애?

아빠 : 저기 봐.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 왜 대나무가 소나무보다 작아?

현승 : 어?.................. 아잇, 진짜 아빠 짜증 나.

엄마 : 푸헤헤헤헤헤헤...... JP 사랑해!

 

(내겐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JP식 개그, 아들은 매 번 빡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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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조용해서 궁금하셨을 텐데 전화 한 번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노래를 불러드렸을 텐데요.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고백받을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들. 

 

 

 

 

하긴 전화 안 하시길 다행입니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습디다.

'이 조명'이 크리스마스 명성교회 앞 전깃줄 칭칭 감은 나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우리 싸람 나무에 전기 옷 입히는 거 싫어한다해.

 

 

 

 

다행인 것은 순천 들러 여수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몰랐는데 '순천은 도시'가 아니랍니다.

'정원'이랍니다. 순천시장님이 여기저기 써 붙여놓으셨던데요.

 

 

 

 

갈대에 취해서 마냥 걷다 보니 9km를 걸었습니다.

사춘기 시작과 끝에 서 있는 아이들이 웬일이니! 그냥 잘 따라다니네요.

얘네 짜증 내기 시작하면 어르고 달래야 하고,

어르고 달래려면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하고,

세 번 정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는데도 여전히 JR을 그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분노 폭발할 테고....

이러면 상황 참 복잡해지는데 말이죠.

 

 

 

 

힘들지만 즐겁게 걷고 걸어서 멋진 풍광 마음에 담았습니다.

 

 

 

 

오, 다리 무지하게 아픈 중에도 모두 밝은 표정.

 

 

 

 

실은 이번 여행, 채윤이 화보촬영 여행이었고요.

세 명의 조연들은 채윤이 스타일 몰아주기 배경 소품으로 참여했습니다. 

 

 

 

 

현승이에게 여행이란, 일단 본질은 조금 비켜가야하구요.

작대기, 돌멩이, 마음에 드는 흙 등을 발견하여 잠시 교감하는 것.

발견하고, 줍고, 파고, 캐내고, 들고 뛰어댕기고.... 여행의 목적입니다.

순천 자연생태공원 입구에 두고 온 엄청나게 긴 대나무는 잘 있을지.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죠.

 

 

 

 

오동도에서는 애들 소음을 잠시 꺼둘 수 있었습니다.

얘네들과 함께 있는 게 꼭 역겨웠던 것은 아닌데 둘이 걷는 걸음걸음에

동백꽃이 놓여있었습니다.

걷다 말고 뭐 하시나요? 

 

 

 

 

예, 예.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좋은 여행에 드립 친구들 안 데려갈 수 없었구요.

 

 

 

점핑샷 안 찍을 수 없었구요.

 

 

 

 

마지막은 국내 유일의 해양 케이블카 탑승 영상입니다.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바다 아아아 하아아아 하하아오오 하 아아아 허오오오 아아아아 허오오
뭐하고 있냐고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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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를 묻고 또 물어 자신 안에서 충만해지고, 그리하여 의미의 강이 흘러 넘칠 때 비로소 시동을 걸어 악세레이터를 밟는 남자. 일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에든 의미가 되고 싶어 시간을 많이 들이는 남자. 일 중독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남자였다. 그 남자가 의미를 곱씹을 새 없이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매일 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여보, 나 일중독인가봐' 하며 쉼 없이 4년 째 달리고 있다. 그 남자에게 꿀 같은 겨울 피정이 주어졌고, 예수원을 향해 홀로 태백행 고속버스를 탔고 떠났다. 휴대폰 등 세상과 닿는 모든 기기를 잠시 꺼두시고 맡겨두셔야 하는 곳인지라 '안녕'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연락 두절이다. 그 이후 갈비뼈 1번과 2번 사이 어딘가에 묵직한 것이 하나 들어 앉았다.

 

**

사랑하면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혼자 있고 싶어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욕구를 내비치는 건 분명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려니 싶어 견딜 수 없던 적이 있었다. 결혼 후 1년쯤 되었을 때 사람이 자기 생긴 꼴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었다. 모처럼 휴가를 낸 남편에게 '혼자 시간 보내고 와'라고 말했다. 그날을 기억한다. 일하고 신혼집에 돌아왔는데 나보다 늦게 나간 남편이 편지를 써 놓았다. 주저리주저리 어쩌구저쩌꾸 하다가 편지 끝에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켜시오, 오디오를 켜시오.' 이런 주문이 적혀 있었다. 오디오를 켰는데 뙇! 어떤 음악이 나왔고, 엄청 감동이었는데 그 음악이 뭐였더라 생각이 안 난다. 아무튼,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임을 이해받았다는 것이 참 좋았던 모양이었다.

 

***

살다 보니 뭐든 '함께, 함께, 같이, 같이' 하던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존재였다. 아이들 어릴 때, 육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서 분노의 증기가 콧구멍으로 귓구멍으로 눈빛 레이저로 쏟아져 나올라치며 남편이 그랬다. '여보, 내가 애들 볼게. 방에 혼자 들어가서 기도를 하든, 말씀을 보든, 뭐든 해.' 자주는 아니고 몇 번 있었던 일인데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고맙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직도 서로 좋아하고 약간 설레고 그런 사이이다. 내 패이스대로 무엇이든 같이!를 고집하며 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진실과 헌신'이 관계 맺음의 모토였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따로 또 같이-적절한 거리 두기'의 적절함의 질과 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고, 홀로 있을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었지만, 입에 써서 몸에는 참 좋은 약이 되었다. 

 

****

그런데 갈수록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뭐더라? 사랑이. 그를 사랑하나? 내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나? 잘 모르겠다. 느끼는 것도,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느낌으로 강렬할 때는 차라리 '연민'이다. 가엾게 느껴질 때, 너무너무 가엾게 느껴질 때,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을 때 감정이 최고치를 찍는 것 같다. 그럴 땐 일찍 잠든 남편의 가슴에 손을 대고 소리 없는 기도를 한다. 그럴 때는 가슴 부분에 실제 통증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도 종종 하는 일이고,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아,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가 보다. 말치레라고는 모르는 기름기 없는 남편이(말치레라고 해봐야 너~어무 말치레스러워 화를 돋울 뿐이다.) 보기보다 헐랭이이며 허당인 내게 '으이그, 불쌍한 정신실' 할 때, 괜히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럴 때 사랑이라고 느끼나 보다. 우리 사랑, 너무 올드한 건가?

 

*****

그의 블로그 이름이 'The wounded healer'에서 '아픈 바람'으로 바뀐 지 몇 달이 됐다. 나는 가끔 남편이 우리 시대 목회자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교인들은 뚜렷한 것을 원하고, 강력한 정답을 원한다. 설교 한 방, 설교의 결론으로 낸 적용 한 방이면 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장담을 해줘야 능력 있는 지도자로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청년들은 밟아주고 무시해주는 사역자를 유능한 목회자로 본단다. 나 역시 간간이 청년들을 만나며 피부로 느끼는 점이다. 되든 안되는 확신 있게 말해주고, 으스대는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미더워해주는 것 같다. 작년 겨울 피정 때 남편에게 농담으로 '시대와 불화하는 목회자가 되라'고 했었다. 사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 시대와 뭔가 늘 서먹하고 어색한 사람이다.   

 

******

남편의 고독한 발걸음이 하루 종일 아픈 바람으로 내 마음을 뒤흔든다. 위에 걸어놓은 나무 사진을 찾으려고 남편 아이패드의 사진첩을 뒤지며 한참 사진 구경을 했다. 그 사람다운 것이 뭔지도 이젠 잘 모르겠지만, 그답지 않은 사진들과 가끔 그다운 사진들을 보며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하던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자꾸 가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오늘 좀 사랑이 샘솟는 모양이다. 올드한 사랑 말이다.  

 

그리고 아픈 바람, 그의 목소리.

 

http://nouwenjp.tistory.com/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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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전에서 강의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인사할 틈도 없이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 밤 11시.

새벽기도 설교 맡은 전날이라 부담이 있는 남편은 '택시 타고 들어와'라고 했다.

바부팅이.

내가 태우러 나갈게. 이러면,

아닙니다. 서방님. 설교준비 하셔야죠. 소녀 택시를 이용하겠사옵나이다. 이러고,

미리 준비하고 나가면 돼.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 이러면,

아니라니까. 걱정말고 설교 준비하고 있어.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러고,

아.... 진짜. 이 사람 내가 나간다니까. 할 수 없군. 허허허.

이럴 수도 있지않나?

 

암튼, 택시로 들어오려 했다.

올라오는 기차 안, 남편이 그제야 역으로 나오겠다고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와서 왜?)

뒤늦은 훈훈한 대화가 오간다.

여보, 11시 도착이지? 내가 나갈게. 도착하면 연락해. 이따 봐.

아니야, 당신 설교 준비해. 나오지 마. 택시 타고 들어갈게.

 

이유는.

'아드님이 택시가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이 심하셔'

(라며 아래의 스티커 추가. 울면 겨자 먹으며 운전하는 아빠의 심정을 잘 담아낸 스티커)

흥4

아빠랑 정말 비슷한데 감정을 느끼고 읽어내는 이 지점에서 살짝 다른 아들.

이런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 식사 준비한 것이 없어서 들어오는 길 씨리얼 한 통 사가지고 왔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고 꿈만 꾸며 뒹굴고 있었는데,

꿈결에 남편은 새벽기도 갔다 오고, 

채윤이 일어나 씻고,

엄마,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채윤이 내가 태워줄게. 그냥 자.

현승이 일어나서, 엄마 언제 일어나?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나 먹고 준비하고 갈게. 일어나지 마.

남편도 어쩌구 저쩌구하고 사라졌다.

 

평소 그닥 충실한 엄마나 아내도 못 되면서

아침에 식구들 나가는데 얼굴 보지 않으면 짠하고 미안하다.

아침 식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늦게 일어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빈 우유팩과 씨리얼 부스러기를 한참 쳐다봤다.

미안하기보단 고맙다.

꼼수 모르는 바부팅이 남편이 울며 겨자 먹으며 결국 태우러 나와준 것이 고맙고,

아침에 혼자 챙겨 나간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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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님 자서전이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저의 2014년은 이렇게 마무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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