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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280

명절 56년 마음의 일렁임 없이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어머니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럭저럭 괜찮은 남편이 최선을 다했지만 질곡의 설이 되고 말았다. 종갓집으로서 작은 어머니들, 며느리들까지 모여 송편 한 말, 10여 종이 넘는 전을 부치던 명절이었다. 지긋지긋했는데,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로 한가하고 무료한 명절이 되었다. 음식 준비보다 더 나를 옥죄던 관계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고, 최근 몇 년의 명절은 그야말로 '연휴'였다. 몇 년 그렇게 종가집 명절 포스는 온 데 간데없는 명절이었다. 방역 지침 등으로 꼼짝 못 하겠으나, 어머니 모시고 집에 와 하루 지내면 어떨까 하는 연락을 남편이 했다. "설 지내는 얘기를 왜 너랑 하냐? 그건.. 2021. 2. 13.
Sabbath diary 33 : 내 청승 아시는 당신께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두 번째라 놀랍지 않았다. 둘째 현승이의 말이다. 좋은 분위기였다. 성탄절로부터 연말연시, 그리고 이어진 특새로 네 식구가 뒹굴며 삼 시 세 끼를 하는 중이었다. 성탄으로 시작한 나날이고, 이사하고 정신 차려보니 집 앞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였다. 이렇게 많은데 이 가격? 여기에 넋이 나가 연일 먹방이었다. 이러다 파탄 나겠다 싶어서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 파먹는 중 묵은지 베이스로 꽤 괜찮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다들 정말 맛있게 먹으며 "찬양하라, 엄마를! 정신실을 찬양하라!" 기분 좋은 집회였다. 나는 자비롭고 겸손하기에 한 마디 했다. "별 거 아냐. 아무거나 넣고 한 거야. 당신도 배워. 당신도 혼자 해 먹을 수 있어. 이제부터 좀 배워야지.. 2021. 1. 27.
나이 오십, 마카롱 사수하기 여보, 이거 하나 남겨줘. 나 이따 갔다 와서 먹을 거야. 온라인 주일 예배 설교하러 가는 목사가 남긴 말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사랑스럽다. 목사가 된 후, 한 교회를 책임 맡은 목사가 된 후 토요일 아침부터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가족들 숨도 못 쉬게 하는 사람이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존재 자체로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이, 그냥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이, 설교 준비는 '산소'로 하는 건가 싶다. 설교 준비는 광합성하는 식물이 밤을 보내는 메커니즘인가? 집안의 산소란 산소는 다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만 내놓는 존재인가. 설교자는. (그렇다고 설교를 잘하면 말이나 안 하지, 하는 말을 하지 않으련다.) 토요일에 아빠가 사무실에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긴장이다. 토요일엔 빨래도 안 돌리고.. 2021. 1. 24.
Sabbath diary 32 : 몇 번의 마침표가 더 찍혀야 화성의 우음도 갈대밭 사이를 걸었다. 월요일, 말은 적고, 걸음 수는 많아지는 우리만의 안식일이다. 거의 모든 월요일마다 길든 짧든 시간을 내어 함께 걸었고, 길든 짧든 어딘가를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안식’을 누리는 느낌이다. 언제 적 Sabbath diary더냐! 얼마 만이더냐! 안팎으로 찍힌 마침표 덕인 것 같다.밖에 찍힌 마침표는 집이다. 몇 주, 약간의 불안 또는 분노로 붙들고 있던 집 문제가 해결된 후 월요일이다. 안으로 찍힌 마침표는...... 뭐지? 7개월, 아니 6개월, 아니 한 달이 걸렸는데. 지난 2월 어느 월요일의 Sabbath diary(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에서 시작한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은 글이 아니었.. 2020. 10. 19.
소국과 홍옥과 바질 홍옥의 계절이다. 매년 이 즈음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홍옥이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홍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곤 한다. 뭘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내게 홍옥은 엄마다. 홍옥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함께 있어도 벌써 그리운 야릇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움, 또는 두려움. 엄마 돌아가신 후 홍옥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가불 하여 미리 그리워했던 탓일까, 홍옥 한 입 베어 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옥이 아니어도 자주 운다. 길을 걷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자려고 누워서 울고, 책을 읽다 운다. 이런 가을을 한 번, 두 번, 세 번...... 홍옥의 계절을 한 번, 두 번, 세 번...... 2020. 10. 8.
계획의 쓸모 벌써부터 1박2일 하동 여행 계획을 세워뒀다. 숙소도 물론 예약해 두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 속에서 꿈을 꾸었다. 맑은 하늘 투명한 공기의 지리산 자락을 걸어야지, 걷다 지치면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물소리를 들어야지, 그러면 어느 여름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하여 떠난 고정희 시인과 연결될까. 막연한 계획이었다. 장마로 인해 섬진강이 범람하고 화개장터며 우리가 가려던 곳이 물에 잠겼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해복구 상황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숙소 취소 기한이 될 때까지 고민하다 이런 때는 그냥 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먹는 것이 도와드리는 것이다 싶어 강행하기로 했다. 그저 취소하지 않는 것, 수해복구 현장이라도 보고 오는 것을 목표로 아무 계획 세우지 않았다. 수해에 .. 2020. 8. 30.
Sabbath diary 31 : 자고, 걷다, 기쁘고, 그립고 남편 JP와는 많은 점이 다르고,그 이상으로 비슷해서 쿵작이 잘 맞는다 싶지만,JP&SS 부부의 세계, 해가 거듭될수록 같은 점은 뭐고 다른 점은 또 뭐지,싶은 것이다. 다만 요즘 [우리 부부의 세계]에서는 함께 걷는 것과 나무와 풀을 향한 애정에서 100% 일치이다. JP 생일을 하루 지낸 월요일,생일에 못 먹은 미역국을 전문점에 가서 고급스럽게 먹었다.특별한 계획 없이 차에 탔는데,늘 그렇듯 졸음이 쏟아지더라. 차만 타면 그렇게 잠이 온다.결혼 생활 21년, 남편과 차 타고 움직인 시간이 어마어마할 텐데,그중 1/3의 시간을 조수석에 앉아 꿀잠 자며 보냈다. 막 떠들다 갑자기 잠들고,아픈 엄마 보고 오며 엉엉 울다 갑자기 잠들고,심지어 엄마 장례식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꺼이꺼이 울다 갑자기 곯아 떨.. 2020. 5. 20.
Sabbath diary 30: 설경의 놀월 많이 기다렸다. 정말 많이 기다렸어.말은 안했지만 내심 진짜 기다렸지. 방학도 끝나가니 어디든 바람 쐬러 갈까도 했지만많이 기다린 눈, 거실 앞 산에 한가득인데 널 두고 어딜 가냐. 이 풍경 누려보자고 치루는 비용이 얼만데,거실 앞 산할아버지가 있잖아!이걸로 위안 삼아 퉁치는 정서적 비용이 얼만데.오늘 같은 날은 유리창 앞에 붙어 꼼짝 않고 누려야지. 오징어 반 떡 반오징어 떡볶이로 점심 하고. 날씨가 끝내주니국물도 한 번 끝내주는 걸로. 미친 듯 쏟아지다 감쪽같이 사라진 너너가 사라진 자리에는 햇살 금세 한가득10분 만에 바뀐 그림. 어어어어, 녹지도 않는 눈꽃송이가!!!!바질 화분에 함박눈 한 조각 같은 꽃이 피었다.창밖 풍경에 내 정신을 쏙빼놓더니그 사이에 살짝 피었니?진짜 너, 너들, 사랑스런 너.. 2020. 2. 19.
Sabbath diary 29 : 월요일 독서 여자들의 우정. 계층, 학력, 나이, 직업이 다른 여성들의 서사가 교차하는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성육신에 대한 낯선,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혐오와 폭력의 종교에 맞서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보편적 그리스도』 남자 사람 목사가 읽고 있는 책은 『붕대 감기』여자 사람 작가가 읽는 책은 『보편적 그리스도』 그렇다. 2020. 2. 12.
Sabath diary 28 : 거룩한 낭비 드디어 찾아서 손에 넣었다! 남편 득템! 연말 연시 준비할 일이 많아 가까운 곳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섰다. 이천 쌀밥을 운운하며 갔는데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인도 커리를 먹고 근처 도자기 파는 곳에 들렀다가 몇 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인사동 같은 델 가면 우물, 마중물, 펌프... 하면서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늘 실패. 도자기 가게 아이쇼핑 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가 발견했다. "여보, 이거 봐.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찾던 거라고!!!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펌프 모형, 옹기, 물을 올리는 진짜 펌프를 샀다. 이천 아울렛에 가서 엄청 싸게 나온 신발을 보고, 마침 신발이 필요하다며 들었다 놨다 결국 놓는 것으로 끝났다. 사라고, 내가 사주겠다 해.. 2019.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