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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281

반주자가 셋 채윤이 피아노, 현승이 기타에 맞춰 노래하는 일이 있었다. 집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둘이서 피아노와 기타로 노는 일이 흔하고, 가끔 거기 끼어 노래를 한다. 전문가 채윤이, 나름대로 실력 있는 현승이가 많은 걸 포기하고 옛날 스타일에 맞춰주는 방식으로. 교회 추수감사 주일 행사에 가족이 함께 노래를 했다. 종필, 나의 기타 맨 종필이 기타를 매는 게 가장 익숙한 그림인데. 아이들이 반주를 하고 우리 둘은 에그 셰이커를 흔들었다. 같이 노래한다 해도 어차피 목소리 크기나 기운으로나 내가 솔로 하는 느낌이 된다. 20년도 더 된 어느 감사주일 전날 밤, 그리고 그 감사주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교회에서 찬양제가 있었고 청년부도 한 팀으로 무대에 서야 했다. 청년부는 토요일에 평택에 있는 집사님 별장에 가서.. 2021. 11. 23.
Sabbath diary 35:원하던 길 원하던 길이야? 이런 길 원했어? 원하던 길이야? 세 번을 물었다.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작나무들이 섰는 길을 지나며 한 번, 좁은 오솔길에서 다시 한 번, 산을 내려와서 한 번, 그렇게 세 번을 물었다. "이 정도면 까다로운 정신실이 만족했겠지" 세 번 다 남편 딴에는 흡족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답이 있을 수 없다. '원하던 길'이 애초 있었던가. 오늘은 뭐 하고 싶어? 음, 숲을 조금 걷다가 카페 가서 원고를 쓸까? 이게 전부였다. 숲과 카페를 함께 엮었으니까, 식물원 같은 곳을 상상했던 것 같다. 걷고도 싶고, 원고도 써야 하니까. 조금 걷고 원고는 많이 쓰는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 걸었는데 몸은 많이 가벼워지고, 잠깐 앉아서 썼는데 원고는 완성을 해버리는 그런 상상.. 2021. 9. 23.
22년 걸렸다 이런 책을 공저로 낸 부부이다. 서로 사랑하는데, 각각 괜찮은 사람인데, 이 지점만 가면 같은 패턴으로 맞서다 어설픈 화해, 돌아서서 깊은 좌절로 끝나곤 했었다. 남편은 판단하지 않는 사람,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사람,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이 변화되고자 돌아보고 돌아보는 사람...이지만 마음으로 늘 계획표가 있고, 시간이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지만 끝날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대화가 힘든 사람이다. 그런 남편을 나는 '인색'이라고 부르며 자주 좌절했다. 나는 나름대로 눈치가 있고 웬만큼 낄끼빠빠도 잘 하지만, 뭐 하나에 꽂히면, 특히 부정적 감정에 꽂히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앉아 있으면 끝도 없이 말을 하는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 2021. 9. 3.
갖추고 산다 “엄마, 내일 늦잠 자. 나 내일 학교 가는 날인데, 알아서 아침 먹고 나갈게. 미역국 데워서 밥 말아먹으면 되잖아. 일찍 일어날게.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늦잠 자. 알았지?”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마스크도 벗기 전 내 눈만 보고 (가슴형) 현승이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내 맘 알아줘 눈물이 난다. “엄마, 손 씻었어? 빨리 손 씻어. 엄마 손 잡게… 아우, 그냥 씻어! 나갔다 왔으면 손을 먼저 씻어야지.” 마스크 벗고 뭘 좀 먹겠다고 식탁에 앉았는데 (장형, 본능형) 몸으로 사는 채윤이가 말했다. 뽀독뽀독 손을 씻자니 딸내미 사랑이 벌써 몸으로 느껴진다. “당신 내일 늦잠 자. 울려는 거야, 참는 거야? 에고… 힘든 거다. 힘든 거야... 내일 늦잠 자.” 수요 예배 마치고 늦게 들어온 (머.. 2021. 8. 26.
기쁨 침대 맡에 놓인 두 권의 책 제목에서 '기쁨'이 교차한다. 기쁘다. 모처럼 남편과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다. 독서에 관한 한 서로 취향 존중, 개성 인정, 상호 불간섭이라서 더 기쁘다. 나는 박정은 수녀님의 신간 이고, 남편은 짐 와일더의 이다. 서로 꽂힌 주제라 다 읽고 난 후에 바꿔 읽을 가능성도 높다. 저 두 책 사이에 달라스 윌라드의 을 끼워 넣으면 나름 그와 나의 독서 여정에 맥락이 통한다. 내가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짐 와일더의 이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에서 여름 방학에 함께 읽기 중인이라 자연스레 닿은 책이다. 저자인 짐 와일더가 교집합이지만, 결국 달라스 윌라드 슨상님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다. 영성 수련의 종착역 내지는 동력이 '기쁨'이라는 것을 이제 와 새롭게 알아듣게 된다. 거창하.. 2021. 8. 12.
Sabbath diary 34 : 숲며들다 대관령 국민의 숲을 걸었다. 비 예보가 있다. 차에 우산이 없었고, 있다 해도 우산을 들고 들어가진 않았을 것.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땅바닥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들었다 났다 하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림자 그림이 예술이었다. 가다 말고 가만히 카메라 드리우고 서있어 보았다. 작품이 나타났다. 1분 25초짜리 영상 안에 하늘, 해, 구름, 나무, 바람이 다 들어있다. 가만히 서 있었는데, 숨만 쉬며 서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았다. 산악인 엄홍길 씨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산이 받아줘야 한다" 산을 정복하기 보다는 "받아달라, 받아달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등반을 한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산이 받아준다.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산이 받아주고, 숲이 안아주는 느낌. 이래저래 마.. 2021. 6. 23.
야아, 이거 신발이 왤케 귀엽냐. 꼭 신고 도망가게 생겼네. 안 되겠다. 숨켜놔야겠다. 저렇게 혼잣말을 크게 하며 들고 다니더니 소파 뒤에 놓았다. (밖에서 신었던 신발인데...) 소파 밑에 숨기려 했나 봄. 둔한 줄 알았는데 솨롸있네, 김종필. 애들도 다 컸겠다, 날개옷만 찾으면 도망가야지, 하고 있는데. 그걸 눈치챘네. 2021. 5. 19.
파티 본능, 22th Anniversary 꿈틀대는 파티 본능을 22주년 결혼기념일에 쏟아부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대놓고 풍선 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그냥 못 본 척해주기로 하고. 모처럼 설교 없는 주일 전야라는 미명 하에 나는 맛있는 걸 좀 만들고, 그렇게 파티를 했다. 아, 발단은 결혼사진 액자였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꽁꽁 싸매 둔 액자가 나왔는데, 결혼기념일 당일 아침 이 있던 자리에 한 번 배치해봤다. 모처럼 다들 심심한 터라, 이때다! 싶어 시간과 에너지를 과소비 하게 된 것 같다. 22년 전 사진 앞에 서니 세월이 보인다. 신부와 나를 비교하면 그 세월이 더 잘 보이지만 남편을 희생시키기로. 데코레이션이며 사진이며, 김채윤 감독의 공이 크다. 월요일 아침 "오늘은 뭐하지?" 검색 놀이에 '키조개 삼합'이 걸렸다. 대천해수욕장에 .. 2021. 5. 3.
파티 본능 아빠 어디 가지? 오늘 밤에 아빠가 없네?(눈빛 초롱초롱) 그러면 오늘 밤에 우리 셋이 파티? 남편 또는 아빠가 1박 2일 콜로키움 참석 차 오랜만에 집을 비운다. 채윤, 현승 두 아이와 각각 나눈 눈빛, 그리고 대화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다. 하아, 이런 본능, 이런 파티 본능. 어릴 적에 엄마가 일주일 씩 기도원 가곤 했는데. 그 주간은 동생이랑 번갈아 가며 격일로 친구 부르고, 합동으로 교회 친구들 불러서 놀고 그랬었지. 김종필 아빠는 가부장적인 아빠도 아니고, 권력 서열로 치면 우리 집에서 그리 높은 편도 아닌데, 아빠가 없는 밤에 왜 셋이 파티를 하고 싶지? 파티를 한다면 더 좋아할 사람이 아빤데... 뭔가 나는 이긴 기분이 들고, "역시! 아이들이 엄마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거야!" 좋아서 코 평.. 2021. 4. 30.
모닝 커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루틴이 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뭘 하는 줄 알아? 커피 물을 끓인대" 정확히 남편이 이 말을 하고 난 후였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 커피 물 끓이려고 물을 받아놓은 주전자에 원두 두 스푼을 갖다 넣었다. "어흑,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신 나갔어 정말?!" 이름에 부합하는 짓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내 이름 정신失. 다시 생각해 보니 나름 정신에도 길이 있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는 순간 '모카포트'가 떠올랐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라면 모카포트가 아닐까? 바로 이때 모카포트에 커피 분말을 채우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나는 눈.. 2021.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