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채윤입니다. 2002년을 보내면서 저희 가정에서 선정한 '채윤이네 10대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뉴스 선정은 엄마 아빠가 저를 떼 놓고 둘이만 놀러 갔다 오면서 해놓고 발표는 저한테 하랍니다. 순종하는 의미에서 제가 두 분을 대신해 발표합니다.
순서는 올 1월 부터 시간에 따른 것이고 중요한 순서는 아닙니다.

아빠 인생의 쓴 맛을 보며 2002년을 시작하다.
울 아빠가 올 시작부터 여기 저기 학교에 교사 지원을 했는데 계속 물을 드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느모로 보나 훌륭한 선생님깜인데...
아직 때가 안됐었나 봅니다.


아빠 소화불량 걸리다.

정확히 2월 25일 부터 우리 아빠가 소화 기능에 이상을 보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건 1번의 뉴스와 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빠는 '믿음'으로 소화불량이 나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최근 더 열심히 믿음으로 소화불량을 극복하기에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채윤이 인격이 드러나다.

엄마 아빠한테는 이게 대단한 일인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제가 올해 들어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제 성품이 많이 분명해졌다는 것에 대해서 두 분은 놀라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성격요? 엄마 아빠 한테 물어보세요.


삼촌 중국에서 추방되다.
제 작년에 중국에 탈북자 선교 들어 갔던 우리 멋쟁이 외삼촌이 잡혀서 추방됐죠. 안 된 일이긴 하지만 저한테는 너무 좋은 일이 됐어요. 저를 넘넘 이뻐해서 롯데월드도 데려가고 매일 매일 전화해 주고 재밌게 놀아주는 삼촌이 가까이 왔으니 진짜 좋죠.


아~ 월드컵!

4강 진출요? 아녜요. 우리 집에서 월드컵이 10대 뉴스가 되는 건....스포츠맹 엄마가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축구 때문인지 홍명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너무 좋아해요. 우리 엄마요? 월드컵 때 홍명보가 차고 다닌 완장이 옐로 카드 받았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이잖아요~

아빠 공부 시작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아빠가 2학기 부터 대학원을 시작했어요. 제가 보기에 우리 아빠는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거 같아요. 책만 있으면 우리 아빠는 행복해요.

기쁨이 생기다.
엄마 아빠가 저 재워 놓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빠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네 어쩌네 하면서 난리가 난 것 같더니(??)....제 동생이 생겼어요. 엄마는 처음이 좋아 죽을라 하더니만 얼마 되지 않아서 입덧인지 뭔지 땜에 다 죽어가고 외갓집으로 가서는 집에도 안 들어오고....집에 와서는 맨날 화장실에서 웩웩 하고....동생 하나 보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최악의 변비사태.

제가 태어나서 그렇게 심한 변비는 처음 봤습니다. 당사자도 고생 많았지만 그 옆에 있던 우리 아빠 특히 고생 많았습니다. 더 이상 언급 안하겠습니다.


아아~ 노무현 대통령. 국민의 승리!!

우리 엄마는 이번 대선을 위해 기도하고 참여하면서 아빠랑 결혼한 걸 다시 한 번 감사했다고 해요. 두 분을 밤 늦게까지 인터넷 앞에 앉아서 문성근 아저시 연설 보면서 눈물도 짜내고.... 아빠는 생전 해 보지도 않은 욕도 하시고....암껏도 모르는 저한테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여요' 이런 것도 외우게 하고...그러다 12월 19일 밤 10시.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탕이었죠.

저희 가족의 1년 이예요.........
마지막은 이렇게 말하라 하셨어요.

돌아보니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김종필 : 다시 보니 새롭구만... 2003년 10대 뉴스로는 어떤 일이 있을까? (12.20 19:54)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  (14) 2009.01.23
일곱 살의 환대  (12) 2009.01.10
멀리서 온 손님  (14) 2009.01.04
부엌의 기도  (4) 2007.11.02
2005년 채윤이네 10대 뉘우스  (0) 2007.07.07
래리크랩.

이 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죄를 많이 짓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미워하고 공동체를 깨뜨리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저자가 있을텐데 저는 이 분이 딱입니다.
사실 <결혼건축가>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앙 인격의 공황을 맞았던 97년 겨울에 이 분이 쓴 <격려를 통한 상담>을 읽으면서 자아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아가 생기는 것 같은 경험을 해습니다. 이 때 이후로 저만의 특유의 죄성이 올라와서 괴로운 때는 이 분의 책을 집어 들었어요. 거기서 받은 인사이트는 한 번에 다 풀어 놓을 수 가 없죠.
최근에는 오랫만에 이 분의 신간을 한꺼번에 사서 일고 있는데 <끊어진 관계 다시 잇기>를 읽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차차 한 번 정리해서 글을 올릴려고 하구요.
며칠 전 부터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하는 책을 읽고 있는데 앞부분이 실로 충격적이었죠.

니가 좋은 부모 될려고 좋은 모범을 보이고 잘 양육하고 기도해도 애는 좋은 애가 안 될 수 있다. 그건 니가 정해놓은 인과법칙이다. 니가 잘하면 잘 될거라는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인과법칙'에 대해서 열나게 까는 거예요. 첨에 좌절이 되더라구요. 아이씨, 그럼 내가 이렇게 열심히 부모노릇 하는데 채윤이가 사춘기때 비행청소년이 될 수도 있단 말이야? ....

조금씩 읽다보니 내용을 단순합니다. 내가 내 삶을 operating할 수 있다는 생각, 해보겠다는 생각이 불신앙 이라구요. 내가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기도해도 남보다 더 불행해질 수도 있지만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신앙이라구요.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매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사실 하나님이 주신 축복 때문에 행복한 지, 그 분 자신 때문에 행복한지 잘 모르겠네요. 돌아보렵니다.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윤 광화문에 서다  (0) 2007.07.03
2003년 채윤네 10대 뉘우스  (0) 2007.07.01
i-zowa  (0) 2007.07.01
나 잘난 부부  (0) 2007.07.01
누가 며느리인가?  (0) 2007.07.01
i-zowa
제 아이디를 소개하죠~

여기서 ' i ' , 즉 '아이'는 'child' 내지는 'children'의 의미죠.
저는 '일'과 '소명'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답을 얻은 것이 최근인 것 같아요.
진로 결정의 중요한 시점의 대학 입학 때도 아니고,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 두고 백수의 길을 접어 들던 때로 아니고, 다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던 때도 아니고....
채윤이를 낳고 이 직장을 다니면서부터예요.
위에서 열거한 결정적인 시기에는 그냥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선택을 하게 됐는데 돌아보니 그 모든 결정은 저의 '일'과 '소명'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들이었죠.

예전에 '가정과 직장 사이'라는 책을 읽고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영문 제목은 '역할에 따라 살지 않고 소망에 따라 살기' 이 정도 되거든요.그 책을 읽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제 삶에서 일과 소명은 언제나 '아이들'과의 끈이 있더라구요.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오랜 시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중 하나였어요), 지금은 음악치료를 하면서 마음과 몸이 아픈 아이들을 만나죠. 유치부에서 또 아이들을 만나구요...그리고 아주 중요한 소명 '채윤이'를 만났구요......

그래서 제 이아디의 '아이'는 바로 그 '아이' 랍니다.
저는 제 일과 소명에 참 감사하면서 행복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2003/12/5



서재석 : JP도 아이디 바꾸라고 하세요. u-zowa로요.^^ (12.06 11:15)
정신실 : ㅋㅋㅋ..에이~푸하하하하 (12.06 22:12)
김종필 : 제 아이디 faithjp에서 faith는 '신실'입니다. 참 조터군요. (12.07 00:21)
이병삼 :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jp앞에 신실이라니?!/// (12.10 13:01)
서재석 : 아, 그건 몰랐네.. (12.10 15:54)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윤 광화문에 서다  (0) 2007.07.03
2003년 채윤네 10대 뉘우스  (0) 2007.07.01
울트라 캡숑 래리크랩 매니아  (0) 2007.07.01
나 잘난 부부  (0) 2007.07.01
누가 며느리인가?  (0) 2007.07.01
우리 교회 목장 홈피에 우리 목자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아따 '우리'라는 말 많이도 쓴다)
글을 하나 써 올리셨습니다.
곧 목장 분가를 앞두고 우리 부부에게 주신 글인데 그 내용이 우리를 격려하고 감동시키고 고무시키고 그러합니다.

아침 출근 길 차 안에서 그 얘기를 하다가...

SS : 목자님의 글이 우리에게 힘이 주는 것 같애.
 칭찬과 격려의 힘은 참 대단해.
(잘난 척 하기 좋아하시는 똘똘이 스머프 JP, 질 수 없다)

JP : 칭찬과 격려는 사회를 움직이는 자산이지

SS : (잘난 척 하겠다 이거지?) 그렇지~ 칭찬과 격력는 개인의 성숙을 위한 근간이 되지(메~롱)

JP : (역시 질 수 없다) 칭찬과 격력는 공동체를 세우는 초석이지.

SS : (그~으래?, 그렇다면) 칭찬과 격려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원동력이야.(앗싸~아!)

JP : 전도의.....음.. 사람들을 전도로 이끌게 하지.

SS : 음... 전도의 견인차라 할 수 있겠지.

SS의 판정승이죠?


박영수 : 푸하하!! 웃다가 눈물까지 나버렸네... 누가 말리리... (12.06 09:21)
이병삼 : 아이고마 넘 우숩네요..부부가 어찌그리 잼있노~~~^^* (12.10 12:57)
정신실 : 목짠님! 저 목장 홈피 회원가입 허가해 주세여~ (12.10 13:04)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윤 광화문에 서다  (0) 2007.07.03
2003년 채윤네 10대 뉘우스  (0) 2007.07.01
울트라 캡숑 래리크랩 매니아  (0) 2007.07.01
i-zowa  (0) 2007.07.01
누가 며느리인가?  (0) 2007.07.01
지난 주 직원연수 갔다오늘 길에....
마중 나왔던 남편이 차 안에서 하는 말.

"나 분가 하고 싶어" - 상당히 뾰로퉁한 말투로, 볼멘소리로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정신실의 방식이다)
진지하게 점잖게 생긴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그대로 그냥 웃기는 장면이다.

"아부지가 나 너무 구박해. 당신이 없을 때만 그래. 3일 내내 투덜이 파파스머프 였어"

우리 아버님 자상하시고 착하시고 애들 잘 보시고.... 그렇지만 그 뭐냐 (죄송하지만)잔소리 내지는 짜증 이런 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장난이 아니시다. 며느리가 같이 있으면 상당히 조심하시는데 나만 없으면 어머니, 남편, 채윤이에게 하는 태도가 투덜이 스머프다.
그래서 우리 남편은 날 더러 '아버님 킬러' 라 부른다.

암튼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대체 누가 며느린지 모르겠다.
부모님 두 분 다 며느리보다 아들한테 더 시집(?)살이를 시키시니...
아님, 며느리한테 하고 싶은 걸 아들한테 하시기로 현명한 선택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며느리를 훨씬 더 위하시고, 속에 말도 며느리한테 다 하시고.....
어젯 밤에는 어머니께서 아들이 어머니한테 이런 저런 눈치 줬다고 하시면서 '아들인지 아들이 며느린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쯤 되니 나도 진짜 헷갈린다.

그래서 오늘 출근하는 길에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여보, 우리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지? 조금만 참어. 분가할 날이 있겠지~'

^^;;;;
나는 며느리인가? 아들인가? 딸인가? 아님 뭔가?

2003/11/27


김종필 : 당신은 사랑스런 박쥐! ㅋㅋㅋ (11.27 19:11)
박영수 : 그리고 나는 불쌍한 아들.., 채윤이 할아버지 기원이 아빠랑 좀 비슷하신가? 자상한데 잔소리 짜증 심하신거.. (11.28 12:17)
정신실 : 앗! 몽녀님이닷!! ^^완벽할 순 없나봐요~진짜 자상하시거든요, 하지만 잔소리와 짜증 거의 비례하시죠~ (11.28 23:15)
이지영 : ㅎㅎㅎ 고모...고모부...히히~ (12.01 17:06)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윤 광화문에 서다  (0) 2007.07.03
2003년 채윤네 10대 뉘우스  (0) 2007.07.01
울트라 캡숑 래리크랩 매니아  (0) 2007.07.01
i-zowa  (0) 2007.07.01
나 잘난 부부  (0) 2007.07.01


 

지난 주에 남편이랑 통화하다가,

"여보! 당신 없이 너무 잘 살고 있는 거 같애. 당신 없어도 집안이 잘 굴러가. 어떡하지?"했는데

옆에서 놀고 있던 현승이가  누나가 만들어 온 아이클레이 작품을 갖고 오더니만.

"아니잖아. 엄마. 이거 아빠가 없어서 못 달았잖아" 합니다.

사실 것두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달 수 있어! 임마! ㅎㅎㅎ


거실 바닥에 낮기온 30도가 넘었다고 하는 어제까지도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겨울에 보면 아늑해 뵈고, 따스해 뵈는 카펫이 어제 막 집에 들어왔는데 속에서 천불이 나도록 덥고 싫은 거 있죠.

이번 주 시험 끝나는 남편이 올라오면 여름 돗자리로 갈아주겠지만....

아~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에라 한 번 해보자. 하고는 치우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카펫의 일부분이 에어콘 밑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한 발로 에어콘 들어올려 밀고 카펫 땡기고 하는데...

현승이가 옆에서 자지러지네요.

첨에는 옆에서 돕겠네 어쩌네 하더니만 갑자기 현관 앞 쪽으로 도망가서는 엉엉 우는 거예요.

"엄마! 하지마! 그거 넘어지면 엄마 죽어. 엄마 하지마. 아빠한테 오면 하라구해" 이러면서요.

으이구, 자식 저런게 약한 마음을 어쩔꼬?


그러나 결국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채윤이랑 비슷한 손목과 팔뚝으로 해치우고야 말았습니다.


정말 남편 없이 지낸 지 3학기 쯤 되니까 남편을 떠나 독립하기가 저절로 막 되네요.

목욕탕 전구 혼자 갈기, 펜치 들고 현승이 트렘블린 다리 조립하기, 혼자 커텐 달기....


이렇게 6학기 지나면 김종필씨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은디...

클 났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하다 해라  (0) 2007.07.03
여보 싸이질 해야지  (0) 2007.07.03
또 다시 보내고  (0) 2007.06.30
이래서 부부(남편의 글)  (0) 2007.06.30
결혼식을 추억함(남편에게)  (0) 2007.06.30

신학교는 기말 시험 전에 '가정학습'이라는 것이 있다.

일주일 동안 수업 없이 '가정에서 학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번 주는 남편 신대원의 가정학습 기간.

"당신 내려 갈거야?"

"내가 안 내려갔던 적 있었어?"


그렇게 남편은 또 내려갔다.


1학년 1학기 가정학습 때는 좀 황당하고 기분 나쁘고 그랬던 것 같다.

'생각만 하고....뭐 집에서 공부하면 내가 잡아 먹기라도 하나?....이기적인 인간! '


가정학습 기간에 남편이 집에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되도록 내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있으면서 도서관을 다닌다 해도 분명 나는 기대가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남편은 집중모드로 들어가면 다차원의 기능이 안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것이라는 생각.

차라리 깔끔하게 보내고 시간을 준 후에 올라오면 내 맘대로 써먹자! 이런 결론이 난 것 같다.ㅎㅎㅎ


다른 어떤 주보다 어제 강변역에 기분 좋게 내려주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면 남편이 문자를 보내주는데,

새벽기도가 없는 탓인지 9시가 되도록 핸펀에서 문자 왔다는 소리가 없다.


아침 설겆이를 하고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기분이 좋아서 바로 식탁에 앉아 문자를 날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성실한 사람 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어디에 있어도 몸과 마음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게 힘이되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잠시 후 답신이 왔다.


내 맘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주일 저녁 교회 권사님 한 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제게나 아이들에게나 늘 함께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신학을 시작하면서 혼자 아이들과 있는

주중에 많이 힘이 들었어요. 이제는 적응도 됐을 뿐 아니라, 남편이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 자신의 아이들을

맘 놓고 맡겨 놓을 수 있다는 것, 제가 남편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가끔은 힘이 들지만 정말 그렇다.

남편이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 반은 그의 책임인 가정과 두 아이 양육을 책임져 줄 수 있다는 것,

부부가 아닌 다음에 가능하기나 하겠나.


이렇게 이번 학기도 마무리 되어간다.

그러면 딱 반이 지나간 것이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보 싸이질 해야지  (0) 2007.07.03
설 곳 없는 당신 ㅎㅎㅎ  (0) 2007.06.30
이래서 부부(남편의 글)  (0) 2007.06.30
결혼식을 추억함(남편에게)  (0) 2007.06.30
한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0) 2007.06.30

낮에 클럽에 남편에게 보내는 글을 써놓고 싸이홈에 갔더니 쪽지가 일곱 통이 와 있었습니다.

남편이 보낸 폭탄 쪽지인데...그걸 죽 이어 붙인 것이 아래의 글입니다.

읽으면서 울다가 웃었습니다.

어쩌면 남편의 쪽지를 보고 답장을 쓴 것처럼 편지를 썼으니 말예요.

이래서 8년 산 부부인가 봅니다.

 

================================================

 

 

나의 아내 SS에게

지금 시간, 4월 30일 밤 11시 7분! 방금 내일 제출할 세 번째 과제를 끝냈어. 우와~ 세 개의 과제를 다 해냈어!

이제 내일 수업 이후엔 수요일 시험 준비만 잘 하면 되고, 또 시간 상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애. (^^)

흐트러진 마음이 어떻게 가지런히 잡혔을까? 역쉬~ 당신 덕분이야.

몇 주간 처음 가졌던 열정이 식어가고,

벅찬 학교 커리를 따라가는 의지가 꺾이고,

괜히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도의 언어는 얼어붙고,

미래는 불안해지고…

옛날 같았으면 그렇게 질퍽되는 걸 은근히 즐기면서 스스로 자학하는 재미를 추구했을 테지만,

이제는 단호하게 그런 태도를 끝낼 줄 알게 된 것 같아. 다 당신 덕분이야.

당신의 격려가 나를 더욱 성장하게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 고마워. (^^)
조금 있으면 우리가 결혼한 지 8주년이 되는 해야. 벌써 8주년이라니….

난 아직도 신혼 때의 감정과 신혼 때의 설레임과 신혼 때의 깨끗한 집과 신혼 때 당신에게서 느꼈던 신비감이 있는 것 같은데,

8년이라는 말이 잘 믿기지가 않아. 아무래도 18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애. (^^)

처음 몇 년은 좋으면서도 사실 힘든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야.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 힘들 때도 있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어려움이 사라졌어. 참 좋아.

그러고보니 당신의 피부가 그렇게 부드러운 지 근래에 알게 된 것 같고,

그러고보니 당신이 나에게 정~말 좋은 돕는 배필이라는 것도 근래에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올해 들어 더더욱 깨닫게 된 건데, 당신은 내게 아주 완벽하게 적합한 배우자야.(^^)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그렇지 못한 건 아닐까? (염려되네. --)


결혼 초부터 내가 붙들었던 몇 개의 말씀과 문구가 있었지. “사랑은 오래참고”,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기”...

요샌 이 말씀이 새록새록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거 같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어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말씀이 마음에 파도를 일으켰던 것 같아.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그야말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교회를 세우셨건만, 그래서 남편들에게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건만, 나는 내 아내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가? 과연 희생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나?

억지로 시키니까 조금 모양만 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당신한테 말만 번지르르 하게 사랑한다고 했지,

실상 아내사랑을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어. 아니 회개했지.
그래서 당신한테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는 뜻으로 문자를 날렸던 것 같애.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또 미안하네. 그 이후로도 여전히 금요일 저녁조차 희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야...(^^;)

결혼 8주년인데, 선물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세레모니 하나 준비하지 못했어.

내가 왜 이렇게 건조해졌을까? 너무 내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애.

나를, 내 시간과 내 스케줄과 내 구상을 희생할 줄 모르는 것 같애.

부모님께만 아니라 점점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를 희생할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해. 여보. 당신의 희생은 당연한 걸로 여기면서,

정말 나는 이제 사역자이니 내 희생이 적어지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만 당신에게 전했던 것 같애.

그러다보니 이렇게 결혼 8주년인데,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바보천치가 되고 말았어

 

나 없이 두 아이 데리고 매일매일 힘겹게 사는 당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해.

지금껏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내 소명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만 해서, 그래서 당신을 힘겹게 해서 미안해.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당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어. 당신이 쉴 수 있는 커다란 그늘을 가진 나무가 되고 싶어. 당신이 언제든지 와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풍성한 남자가 되고 싶어.

요즘 내 내면이 많이 성장한 거 같아. 조금 외로움 때문에 당신에게 걱정을 주기도 했지만,

정말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여보! 내 소원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거야. 그게 어떤 형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껏 나를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

예전엔 지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지만,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서 놓치고 지나간 게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더 큰일 맡기실 것이란 기대가 들어.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 물론, 그 일이 목회가 될 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무엇이 될 지 난 몰라.

그렇지만 염려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행복해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어.

여보! 이번 주 금요일을 기대하면서 준비할 게. 당신과 두 아이와 함께 즐겁게  관람도 하고, 또 함께 저녁식사를 할 것을 기대할게. 그 순간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도록 준비할게. 그리고 5월 24일 당신과 함께 갈 여행을 미치도록 기대하며 준비할게.

아무것도 줄 게 없고, 준비 한 게 없어서 이렇게나마 편지 한 통 보낸다. 미안해. 사랑해.

당신의 남편 JP가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 곳 없는 당신 ㅎㅎㅎ  (0) 2007.06.30
또 다시 보내고  (0) 2007.06.30
결혼식을 추억함(남편에게)  (0) 2007.06.30
한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0) 2007.06.30
천안으로 간 바르트  (0) 2007.06.30

<사랑의 신비>


주어서

덜어짐이 없고

잃어도 상실이 없는

사라의 신비로

가장 높은 법을 삼아

어리석음을 택해 사는 나날


그대 하나

오롯이 사랑한 내게

신께서 허락하신

빛나는 것 중에도

가장 빛나는 축

복이려니....


청첩장에 실었던 詩



 

나의 사과나무 김종필씨.


우리가 결혼했던 1998년 5월 1일에는 날씨도 참 화창했었는데...

도산공원에 야외촬영을 하러 갔을 때 온통 연초록의 푸르름 천지였었어.


계속 몸이 안 좋아서인지,

날씨가 이래서인지,

당신이 없어서인지,

게다가 오늘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어서인지...

마음이 어두침침한 것이 흑백사진 같아.


함께 있어서 둘이 식사를 하고 세러모니를 한다고 별다르지도 않을텐데 꽤 서글프네.


당신이 보낸 문자처럼 신비롭기만한 우리의 결혼생활 8년이야.

그렇게도 다르게 생긴 당신과 내가 서로 깊은 부분까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혼의 친구, 부부' 로 만들어져가는 8년.

그렇게 이름 붙이면 될까?


일찍 집에 들어와서 우리 결혼사진, 신혼여행 사진, 청첩장, 신혼초에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 봤어.

정말 그 때는 젊었더라.

결혼식날 식 마치고 양평으로 달리던 그 드라이브 길의 푸르름이 아직도 선명한데 벌써 8년이라니 말야.


8년 동안 우리가 받은 소중한 선물 채윤이와 현승이,

그리고 당신의 소명을 찾아 함께 걸어온 과정,

당신의 가족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힘겹게 사랑을 연습하며 일궈온 관계들,

다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당신과 함께 하면서 당신의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큰 사랑으로 달라진 내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지적하는 대신 침묵하고,

당신의 취향을 포기하며 나를 배려해주고...

생각해보니 당신은 성경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처럼' 희생하며 사랑해줬던 것 같아.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내 인격의 연약한 점을 큰 상처없이 스스로 더 잘 보게 되고,

돌아보게 되고, 기도하게 되면서 결혼 8년 동안 많이 자란 것 같아.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말야)

그래서 '결혼은 치유'라는 말이 꼭 맞는 말인 것 같아.


청첩장에 실었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지난 8년 우리의 사랑이 그 날의 약속에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


당신과 함께한 8년이 내게는 치유이고, 성숙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함으로 더욱 그 분께 가까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


함께 하지 못하는 결혼기념일이라 조금 쓸쓸하지만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많으니...

옛날 얘기하면서 함께 하는 날이 또 있을거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 편이고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의 아내가 있다는 것 잊지말고,

화이팅하고 공부해.

알지 내 마음?


2007년 5월 1일       당신의 나리꽃 신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시 보내고  (0) 2007.06.30
이래서 부부(남편의 글)  (0) 2007.06.30
한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0) 2007.06.30
천안으로 간 바르트  (0) 2007.06.30
내가 받은 유산, 물려줄 유산  (0) 2007.06.30
남편의 이런 저런 신발들은 주로 천안에 있다.
운동화며 일상적으로 신는 스니커즈며 축구화며....
지난 월요일 아침 같이 산책을 하는데 운동화가 집에 없어서 스니커즈 신고 한 시간 걷고 내려가서는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하는 문자가 날아왔다.
 
남편이 천안으로 가도 늘 집에 남았있는 신발은 오직 구두다.

 
 
결혼할 때 예복과 함께 샀던 남편의 구두다.
결혼하고 수 년 동안 일 년에 구두를 신는 일이 손에 꼽혔다.
직장도 정장을 하고 다니는 곳이 아니었고, 또 학생이었거나 공부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주로 스니커즈를 신고 다녔고 결혼식이 있을 때나 한 번씩 신던 구두이다.
그래서 늘 새 것 같았던 구두이다.
 
작년 어느 날 남편이 벗어놓은 구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닥의 안창이 일어나서 밖으로 쑥 나와있을 뿐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구두가 낡아 있었다.
결혼예복을 사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양복도 양복이지만 산뜻하고 세련된,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남편이 멋져 보였었다.
 
생각해보니 작년부터는 주일마다 정장에 구두를 신었을 뿐 아니라 학교 가는 날이 아니면 양복 입는 일이 정말 많아졌다.
덕분에 작년 1년 새 구두가 그야말로 8년 된 구두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철철이 양복 사대느라 구두까지 장만할 엄두를 못냈다.
가끔 내가 사려고 해도 남편이 '아직 몇 년은 더 신을 수 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아울렛에서 세일을 했다고 하는 구두가 십 만원이 넘으니 말이다.
이번 결혼 기념일에는 꼭 구두를 사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들 인형극 보여주러 2001 아울렛에 갔는데 59000원에 기획전에 누워있는 구두가 있어서 얼른 주워왔다.
 
 
 
 
 
남편은 '자칭 5다리' 때문에 오래 서 있는 걸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서 신발에도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는 컴포트화 기획전이 있으면 가장 편하고 가장 가벼운 스니커즈로 사다 신기곤 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남편의 위에 있는 저 한 쪽 굽이 다 닳은 구두를 신고 서서 설교를 하고 오래 서 있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남편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특별한 일에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양복이 일상복이 된 사람은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일'이 있어도 양복이 일상복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남편의 경우 양복이 일상복이 됐다는 것을 그렇게 찾고 찾던 자신의 일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검정 서류가방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한 그림인가?
그런데 또 그 양복이라는 것이 목에 맨 타이가 목을 조르듯 얼마나 많은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냐?
 
많은 자유를 잃고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명일텐데....
안타깝게도 소명은 대부부의 경우 '직업'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
그 직업이라는 옷이 몸에 너무 거북하지 않고 입고 활동하기 거북스럽지 않아야할텐데....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래서 부부(남편의 글)  (0) 2007.06.30
결혼식을 추억함(남편에게)  (0) 2007.06.30
천안으로 간 바르트  (0) 2007.06.30
내가 받은 유산, 물려줄 유산  (0) 2007.06.30
결혼 8년, 룻의 꿈을 이루다  (0) 2007.06.30

남편에게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장신대에 간다는 것이었었는데...

남편이 천안의 삼룡동인지 이기동인지에 있는 고신대원에 가 있다.

고신대원으로 간 건 거의 내 의지라 할 수 있다.

예전 연애시절에 처음 남편이 신학을 꿈꿀 때는 너무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아서,

막연히 그런 성향들이 두려워서 고신으로 갔으면 하고 바랐었다.


결혼을 하고 재작년에 신대원을 가기로 결정하면서는 순수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고신을 가길 바랬다.

우선 공부할 시간이 짧았고 이왕 신학공부하는 3년 나와 아이들로부터 자유를 좀 주고 싶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이라는 것이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것이었다.


남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학이 온전히 장신의 칼라와 같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답답한 고신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남편 역시 그런 게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고신대원에 갔고 생각지도 못한 수석입학을 하고 여전히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주 올라와서 남편이 '외롭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남편이 꺼내는 말에는 말 이전에 아주 많은 경험과 생각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안다.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말에 함축된 많은 염려과 근심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늘 그렇듯  남편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내가 훨씬 오버된 감정이입으로 더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여자 목사 안수 문제'가 화두가 돠어 동기들과 이런 저런 논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기들 클럽에 그런 논쟁에 달린 댓글 중에는 '여자들은 높여주면 안되게 돼있어' 하는 정도의 표현도 있다. 헐~ 한 사람의 자연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겠다고 선지동산으로 들어간 목회자 후보생의 생각이다.

하긴 수 년 전에 '기저귀 찬 사람이 어떻게 강단에 서냐?'는 무식한 발언을 한 목사가 합동측 교단에 있었기도 했었다.


사람들과 생각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느껴을 때 늘 그런 것처럼 빨라지고 커지는 심장 소리가 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저 이해하고 들어줘야 하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같이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단지 이런 문제 뿐 아니라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유들을 생각하며 이번 한 주 내내 '장신대로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굳이 내가 고신을 가라한 것은 아니지만 내 심중을 헤아리고 고신을 선택한 것임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도 가눌 길이 없다.

어리석은 생각임을 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라고 찬송하는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면 '만약'을 곱씹을 일이 아니다.

'오늘, 여기서, 그 분을 위해'를 되뇌이며 살아오지 않았나.

오늘 여기에 김종필씨가 있는 것은 '주께로부터 온 일'이라고 믿으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번 주 내내 남편을 향한 기도가 일상을 지내면서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의 외로움이 그 분 안에서 더 커지고 넓어지는 과정이 될 것으로 믿는다.

JP도사님! 힘 내요.






댓글(5)
 
        
정신실 병이다.
지나친 감정이입.
남편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 혼재된 자아.
확실히 병이라는 걸 안다. 내 병을 내가 알지. (07.04.12 21:52) 댓글수정삭제
김종필 여보! 고신에 나랑 비슷한 생각 가진 사람들, 생각보다 많더라. ^^ 글구, 나보다 당신이 더 걱정되는 것 같애. ^^; 내가 적극적으로 고신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것도 다 뜻이 있지 않겠나 싶어.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건 내 스탈이 아냐. --; 그나저나 여기 이렇게 이런 걸 공개적으로 밝히면 쫌 내가 곤란해지는데... (07.04.13 16:12) 댓글삭제
강성호 형수님. 용서해 주세요. 형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어제는 JP님이랑 2시반까지 얘기했어요. 대화를 통해서 차이는 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가까워졌어요. 저의 과격하고 단호한 글에 상처입었을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 (07.04.13 22:21) 댓글삭제
정신실 용서라뇨?글이 과격하긴요?
오히려 조심스럽게 입장을 피력하셨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미 차이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가 반은 해소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대화 자체의 가능성도 열어 놓지 않고 '성경에 써있으니 잔말 마라' 하는 태도죠.
두 분은 생각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들으려 하고,
또 물러서지 않고 토론하는 정말 좋은 관계시잖아요~^^
염려 푹 놓으시고요~

다행히 한영교회는 김세윤 목사님이 오셔서 성경공부를 가르치실 만큼(예전 일이긴 하지만...) 고신 교단 내에서도 좀 다르니까 신학적인 입장의 문제로 열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일을 보면서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의 상황들도 많이 생각나고 하면서 답답해졌어요.

아직 젊은 분들인데 은퇴를 앞둔 보수교단 목사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신학을 한다고 생각하니 순수하게 평신도의 입장에서도 답답하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함께 더 많은 얘기 나눠요.

주일준비로 오늘은 많이 분주하시죠? 이쁜 색시와 함께 봄날을 누리고 싶으실텐데...
낼 설교도 화이팅이구요! (07.04.14 10:20) 댓글수정삭제
강성호 낼 설교 없어서 색시랑 청계산갔다 왔어요.
다음번에 같이 가자고 색시가 그러네요. 현뜽, 채윤이도 데리고 같이 나들이 가요. ^^ (07.04.14 23:07) 댓글삭제

남편이 신대원 동기들 까페에 예전에 복상에 썼던 글을 올리고 있다.

그 덕에 예전 글을 하나 하나 다시 읽어보게 보며 우리 가정과 부부관계의 변화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대부분의 글에서 읽혀지는 생각이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 때 생각한 원칙들을 지키면 살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유독 고부간의 갈등 얘기는 지금 읽어보니 '상당히 갈팡질팡' 하면서 썼던 것 같다.

글이 그래도 내가 고부간의 문제로 얼마나 갈팡질팡 좌충우돌 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사중!' 그 상태다.

 

지금도 마음의 집이 완공된 것은 아니지만 나름 뼈대를 갖추고,

조금은 여유를 갖고 한 발 물러서서 미소지으며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 곳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도 여전히 어머님의 어떤 행동들 때문에 내가 마음을 다치곤 했었는데 무슨 계기가 내 마음을

새털처럼 가볍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답을 찾았다. 홀리맘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그리스도인 가족의 경건훈련'을 스터디 할 때가 시작이었다.


 
이 책의 부제가 '풍성한 영적 유산을 물려줄 실제적인 아이디어'였다.
심리학을 좀 공부하고 '치유'이런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들이 부모가 내게 저지를 나쁜 짓이다.
부모의 약점이 내게로 와 내 약점이 된 것, 부모가 나를 잘못 키우는 바람에 내게 남은 상처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내적치유인 것처럼 나도 처음에 그랬던 것 같다.
헌데, 어느 가정에나 흠이 있는 유산이 있고 부모도 연약함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아야 했다.
우리의 약점을 부모로부터 받은 쓴뿌리라고 변명하며 책임회피 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영적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우리가 우리 부모를 먼저 용서하고,
또 받아들이고, 이 분들이 남긴 좋은점을 발견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 가족 또는 남편의 가족사에 함께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가족사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가족사에 섭리하고 계신다는 확신 없이 아이들에게 무슨 신앙의 유산을 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들의 부모님에 대해서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남긴 긍정적인 것들에 마음을 두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 부모님을 더 없이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초장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서 만나는 장로님은 기도 때마다 자주 그렇게 기도하신다.
'우리에게 섬길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분들이 우리에게 아무 것 해주시는 것이 없어도 그저 우리 뒤에서 우리를 지켜봐주시고 우리가 언제든 찾아가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알고보면 그 장로님은 부모 덕이라고는 못 보신 분이었다. 그야말로 혼자서 알아서 공부하고 혼자 유학가고 혼자 결혼하고...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 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그저 부모님인 그 자체로 감사하난다.
이런 분들과의 만남은 날이 갈수록 부모님들의 약점을 가지고 찔리고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려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번 어머니 회갑에 어머니께 책을 선물해 드리면서 표지에 그렇게 썼다.
어머니를 할머니로 둔 아이들, 우리들 모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만 보면 아이스크림 사 달라 하고 쵸콜릿 사 달라하며 매달리는데 아버님이 내 눈치를 보신다.
예전에 아이들이 더 어릴 적에 아이들에게 사탕 먹이시고 이유식에 조미료 넣으시는 것 보면서 많이 속상해 했었든데...
요즘은 할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 사달래서 먹는 아이들 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통제하고 못하게 하는 엄마만 있으면 애들이 얼마나 갑갑할까? 가면 무조건 다 들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셔서얼마나 얘네들은 행복한가?
 
섬길 수 있을 때 더 잘 섬겨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친정엄마야 아무런 노력없이 그저 안쓰럽고 사랑스럽지만 시부모님에 관한한 더 많이 그 분들의 장점을 생각하면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클럽을 운영하던 초기에 '룻과 나오미를 꿈꾸며'라는 게시판이 있었다.

세상의 많은 며느리들이 포기한 '관계'를 포기하지 말고,

세속의 방식대로 섬기지 말고,

성경 속의 나오미를 섬기던 룻처럼 해보자는 생각을 정리하던 게시판이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성공도 실패도 솔직하게 정리하며 아마 2년은 유지했었다.


어느 날,

참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할 수 있는 것 다 했지만 역시 시어머니를 사랑하기는 너무 힘든 일이라고 느껴졌다.

더 이상 에너지를 쏟지 말고 이대로 손을 놓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게시판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도 확 닫아버린 채로 살았었나보다.

꿈도 접었다. 룻과 나오미의 꿈도...


'꿈을 접으면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다'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편이 자주하는 말이다.

요즘에 나는 '룻과 나오미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겉으로는 어머니께 순종할지언정 마음으로는 짐을 한 짐 지고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또 어디서 새로운 병원의 정보를 들고 오셨다.

"어떤 집사 남편이 성수동에 있는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두통이 낫다더라"

이건 결국 '며느리! 운전해~ 성수동으로좀 가. 어서~어' 이 말씀이다.

어머님이 성수동 병원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확실하게 병원 이름을 알아다 주세요. 어머니!" 해서는

병원을 검색하고 바로 예약하고 어머니를 뫼시고 찾아갔다.

한 열 번은 가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하니

"난 여기가 어딘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열 번을 다니냐?"하신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모시고 다녀요" 하니

"니가 피곤한데 여기 열 번을 어떻게 오냐?"

"어머니! 어머니 두통만 나신다면 열 번이 문제예요. 걱정하지 마세요"했다.


진심이다. 어머니 두통만 나으신다면 열 번을 문제도 아니다. 20년이 된 두통이 나으신다는데...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병원에서 열 번을 치료 받아도 낫지 않으실 거라는 것 말이다.

어머니를 뫼시고 그런 기대로 병원을 찾아다닌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많은 병원들에서 마지막 카드로 내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시죠' 이 말은 '이거 못 고쳐요'라는 얘기임을 이제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며느리가 고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는 요즘 한다.

오랜 세월 많은 병으로 병원을 드나드셨던 어머니.

아버님이 자상하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남편에게조차 아쉬운 소리하기 싫으신 탓에 늘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병원을 찾아다니셨단다.심지어 치질 수술을 받으로 버스타고 혼자 가셔서 혼자 받고 오셨단다.

그런 어머니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 잘 주무셨어요? 약 드시고 주무셨어요? 머리는 안 아프세요?'

하고 물어봐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들도 있지만 워낙 자식들 역시 부모님 닮아서 표현이 없는터라 누가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하고

묻고 걱정하는 소리도 못 들어보셨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거의 지붕 아래 살던 한 4년 동안 어머니가 당신 몸이 약하신 것으로 인해서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지,

무엇보다 세상 누구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외로워하시는지를 알았다.

해서, 어쩌면 누군가 어머니의 오래된 두통을 알아드리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해드리는 것으로 고쳐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단다.

우리 어머니께 그런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결혼 8년의 생활을 통해 알았다.

어머니 마음을 들어드리고, 사랑해 드리고, 어머님 마음 속에 숨은 선한 동기를 알아드리는 것.

이것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혼 8년 동안 어머니로 인해서 많이 울었다.

끊임없이 휴일마다 해대는 김치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소금에 절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어머니가 미워 죽을 것 같아서 내 발로 기도원이라는 데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차겁움에 마음이 얼어붙는 듯한 적도 있었다.


헌데, 이제 나는 어머니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우리 엄마의 약점을 보면서 미워하기보다는 가엾고 슬픈 것처럼 시어머니의 약점이 이젠 그렇게 다가온다.


우리 어머니 오늘 회갑을 맞으셨다.

그저 마음 같아서는 회갑 축하 예배를 드리는데 이 찬양을 꼭 불러드리고 싶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저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란 많으나 예수 인도 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성도 앞에 나의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으로 이제는 몸에 그 환란의 흔적으로 두통과 불면증의 세월을 보내시고 계신 어머니.

감사한 건 우리 어머님이 그 고통의 세월동안 예수그리스도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세월을 예수님 손 잡고 살아오셨다는 것.


지난 8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얻은 값진 선물 중 하나가 시어머니의 연약함까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은혜가 아니고 무엇일까?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으로 간 바르트  (0) 2007.06.30
내가 받은 유산, 물려줄 유산  (0) 2007.06.30
JP는 기숙사, SS는 수도원 생활  (0) 2007.06.30
남편 돌아오다_첫 설교 이야기  (0) 2007.06.30
친구 목사  (0) 2007.06.30

남편이 방학 끝에 '빨리 학교 갔음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다른 의미가 아니다. 방학하고 나서 새벽기도를 띄엄띄엄 하면서 깊은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생긴 것이다.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가자니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에만 신경을 써야하고,

그러자면 나나 아이들한테 소홀하게 되니 아예 포기하고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신학교 들어가서 제일 좋은 건 기도의 회복'이라 하였다.

늘 새벽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기숙사 생활은 남편을 보다 단순하고 깊은 영성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그런 모든 정황과 남편의 심정을 아는지라 '빨리 학교 갔음 좋겠다'는 말에 내심 그리 섭섭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짐을 싸서 떠났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눈물이 나오면 울어버릴 걸....

며칠 전부터 마음이 착찹했으나 결혼 8년 차에 짬밥도 있고하니 진중하게 내려보내자 싶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보니 슬픔이 자꾸 굴절이 돼서 결국 짜증으로 아웃 풋이 됐다.

해서, 남편이 내려가는 길을 맘편히 보내질 못했다.


남편을 강변역에 태워주고 집에 오는 길.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편도 마음이 좀 상했겠지만 스스로 잘 극복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기도로 지원하면 되는 거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게도 남편이 학기 중일 때는 다른 느낌이 있다.

남편이 새벽기도에 목숨 걸고 영적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에 부응해야 겠다는 생각도 있고.

또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니까 애들한테 충실해지고 애들과 보내는 시간이 질적인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희한하게 아침 7시면 눈이 떠지고 애들 일어나기 전에 성경 한 장이라도 보려는 마음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아이들과 보내는 저녁시간도 인터넷에 빠져 있지 않고 가급적 놀아주거나,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아이들 노는 옆에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는 아이들을 양쪽에 끼고 기도를 한다.


내 삶 역시 단순해지고 단순해지는 만큼 차분해지고 깊어진다.

할 수 있는대로 이것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남편의 기숙사 생활과 더불어 나 역시 집에서 보내는 수도원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규모있는 생활로 한 학기 잘 지낼 것을 다짐해본다.



초등부 성경학교와 수요예배 설교를 앞두고 있었던 지난 주 어느 날.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데 채윤이가 아빠를 부르면서 뭐라 말을 건다.

한 번, 두 번, 말을 걸어도 아빠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채윤이에게 일러줬다.

"채윤아! 니네 아빠 여기 없어. 니네 아빠 담주 수요일날 지나야 돌아와"


그렇다.

남편을 같이 밥 먹고 있지만 마주보고서 눈도 한 번 안 맞춰준다.

예의 그 찌푸린 인상을 하고 무언가에 골똘히 빠져있는 것이다.

결혼 8년 만에 나는 그런 남편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연대 대학원에 들어 갔을 때,

뭐 세미나 발표 하나만 있어도 남편은 '곁에 있으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런 남편이 이해가 안 돼서 꽤 짜증도 내고 했던 것 같다.

나처럼 남편은 여러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 있는 멀테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한 번에 한 가지 씩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을 알기에 한 두어 주 전부터, 특히 일주일 전 쯤부터는 그러려니 했다.

내 생일에도 성경학교 겹쳤다고 그렇게 넘어갔고, 성경학교 마쳤으니 생일축하 하자고 할 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성경학교는 끝났지만 수요예배 설교(것두 전도사 되고나서 처음하는 어른 대상 설교)가 있었기에 아직 남편이 내 곁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앉혀 놓고 구상한 설교를 해보고,

반응이 심드렁하면 또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설교 본문을 잡았다.


첫 설교 멋지게 해보겠다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로 했단다.

민들레 공동체 김인수박사님께서 하신 '우리가 누굴 가르칠 수 있습니까?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하나 입니다' 하는

말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아 먹었단다.


나 역시 많이 긴장이 되었다.

막연하게 남편을 설교를 잘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남편은 자신에게 충만해져서 그것이 흘러 넘치지 않는 한 입을 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씀이 자신에게 충만해질 때까지 고민하고 침묵하고 금식하고 묵상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적용이 없는 허공을 치는 소리를 누구보다 못 견뎌하니까.


그러나 한편 염려가 많이 되었다.

무대체질이며 마이크만 잡으면 평소보다 더 씩씩해지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힘있게 확신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강단에 서서 소심하게 굴면 어떡하나?


수요일 내내 나도 글을 쓸 게 있고, 밤에 MBTI 강의가 있어서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계속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시간은 다가왔다.

수요찬양단 싱어가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설교 전 찬양을 함께 했다.

찬양을 하러 나갔는데 남편의 첫설교를 응원하러 오셨다고 추측되는 분이 계셨다.

그리고 목장의 목원도 눈에 띄었다.

그 분들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찬양하면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은데 눈물은 계속 흘렀다.

결혼 7년 동안 남편이 얼마나 사모하던 자리였던가?

단지 설교가 하고 싶어서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간 사람이다.


설교와 기도회 인도를 잘 마치고 남편이 강단을 내려왔다.


남편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

설교를 들으면서 요즘 내 맘을 제일 무겁게 하는 것, 채윤이 입학과 새로운 학기를 또 혼자 아이들 돌보고 일하며 지내야 하는 것.

그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 놓았다. '내니 두려워 말라' 설교 제목이었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다.


남편의 첫설교에서 '열정'을 보았다.

내 남편의 '열정적인 모습'을 남편을 안 지 10년이 되었는데 처음 보게 된 것 같다.

감사하다. 적어도 내게는 훌륭한, 가슴을 울리는 설교였기에 감사하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나는 다른 교회 MBTI 강의가 10시 부터 있었다.

둘 다 저녁 식사를 못해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참으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뻤다.



 


 

그리고 밤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가 넘도로 진행된 MBTI 강의에 남편이 함께해 주었다.

내가 채윤이에게 예언했던대로 수요예배 설교가 끝나기 무섭게 남편은 내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ㅎㅎㅎ


여보!

수고 많았어.

겨울방학 내내 사역과 가정생활 모두에 나는 에이뿔 주고 싶어.

내게도 참 의미있는 겨울방학이었고,

설교가 계속 미뤄져서 안좋다 생각했었는데 잘 된 것 같아.

당신에게도 내게도 말씀으로 방학을 마치고 새로운 한 학기를 시작하게 하신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

사역자의 아내는 참 하기 싫었지만 사역자 김종필전도사의 아내는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질 것 같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