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쉬며 걷는 날 월요일. '박두진 둘레길'을 걸었다. 박두진 시가 구석구석 '이발소 그림' 버전으로 걸려 있다. 박두진 시를 읽으며 걷다 윤동주 시가 입에서 나왔다. 시 낭송 놀이를 하며 걸어봤다. 한 시간을 걸어도 요즘은 거의 말없이 각자 자기 길을 걷게 되는데, 새로운 놀이 재미있다.

새로운 길_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저녁에 대학원 수업이 있어서 여유 있게 먼 곳으로 가지는 못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JP가 검색 기술 발휘해서 적절한 곳을 찾는다. 어디든 좋다. 요즘은 계속 숲과 물이 함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물이 있고, 조금씩 오르고 내리는 길이 있다. 어디든 그렇게 비슷한 것들이 있지만 똑같은 길은 없다. 계속 걷는 그날의 길조차도 순간순간 새롭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 마음에서 튀어 오른 이유일 것이다. 나무 사이 한 그루 나무처럼 섰는 사진도 참 좋네.

밤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발표를 위한 스터디 모임까지 마치니 11시가 다 되었다. 기나김 월요일 하루다. 20대 끝자락에 음악치료 공부할 때도 참 좋았는데, "대학원은 이렇게 절실할 때, 꼭 하고 싶은 걸로 해야 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20년 훌쩍 뛰어넘어 공부하면서 "대학원은 살만큼 살고, 혼자 공부할 만큼 하고, 이럴 때 해야 해."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월요일 수업이 참 좋았고, 그 기분을 안고 잠에 들었다. 화요일 아침, 오랜만에 꿈을 기억하며 잠에서 깼다. 어서 적어야지! 꿈일기장을 펼치니 와핫! 맞아, 노트 다 썼지. 새 노트다!!!! 꿈일기장으로 쓰려고 간직한 '나리 노트' 드디어 개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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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셰프가 알려준 그대로 고추잡채를 해봤다. 이제껏 고추잡채 중 제일 맛있다는 평이 압도적인가 하면. "맛있긴 한데 뭔가 평범하다. 나는 엄마 식 고추잡채가 좋다. 급식에서 먹었던 것과 맛이 똑같다.(두 아이 모두 중국집 고추잡채를 먹어본 적이 없음. 집 아닌 다른 곳에서 먹었다면 오직 급식.) 엄마 고유의 맛이 있다."라는 평도 있었다. 채윤이 평가이다. 이런 피드백 좋아한다.

현승이는 나중에 "이연복 셰프가 중식 전문이잖아. 무슨 명언을 남긴 게 있어. 엄마 알아?” 한 마디에 '이연복 명언, 이연복 띵언...' 엄청 검색해봤다. 저도 '뭐였더라, 뭐였더라' 한참 검색하더니 못 찾겠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건진 띵언이다. "가르쳐줘도 따라 할 사람만 하지 게으른 사람은 안 해요." 사실 나도 고유한 레시피 거침없이 유포하는 편이다. 요리는 특별한 걸 하는 게 없지만, 영성심리와 마음의 여정에 관한 한 나름의 팔살기 레시피가 있다는 자의식이다. 묻는 이에게, 필요한 이에게 아낌없이 공개한다. 나만의 레시피, 도서 목록, 통찰들.

가르쳐줘도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내가 몰랐던 것은 그것이다. 아니, 모르고 싶었던. 가르쳐주면 그대로 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대로 하기만 하면 비밀병기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태도였다. 가르쳐줘도 하는 사람만 한다! 그렇지! 이런 태도라면 피 땀 눈물이 담긴 레시피 공개해놓고 속 끓일 일 없겠고만. 10년 넘게 그때그때 한 권의 책, 한 사람의 저자를 만나면서 그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저자와 소개팅하고 사귀면서 살아왔다. 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었다. 더듬더듬 홀로 만들어온 길이라, 누군가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면 과도하게 정보 투하하곤 했었다. 물론 나처럼 처절하게 읽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즈음엔 연구소 SNS든 블로그든 책 리뷰를 하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읽지 않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나처럼 읽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좋은 책들을 눈팅하거나 사놓고는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까지 닿았다. 여기 닿기까지 나는 얼마나 헤맸던가. 사람 사람 마음의 여정이 고유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고유함이 끝이 어딘지를 모르며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기꺼이 공개해 온 레시피에 담긴 내 고독의 몸부림이 민망해 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 사람의 고유함을.

요리 고수가 되긴 멀었다. 이연복 쉐프처럼 "어차피 안 할 사람은 안 해요." 아직 그리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쯤 되면 뭣이 중헌지 헛갈리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나는 어떤 레시피들을 목록으로 저장해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절한 레시피를 만나면 가능한 바로 해서 먹고 먹이기로 했다. 많은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 마치 요리를 한 것처럼, 심지어 먹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진 않기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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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좋아한다. 사람의 손을 사람 인격 보듯 한다. 손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덥석덥석 손을 잡지도 못한다. 남편의 손을 좋아하고, 약간 집착도 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몸을 통해 얻는 위로 중 최상급일 것이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는 것. 특이한 손을 가져서 손이 늘 부끄러웠다. 늘 손을 감췄다. 언제 어디서든 손을 감추던 젊을 날에 성가대 지휘는 어떻게 했나 몰라. 그때 성가대 했던 아이들이 특이하게 생긴 내 손을 기억하고, 달랑거리던 반지를 기억한단 얘길 해오면 낯이 뜨거워진다. 엄마 손을 따뜻하게 잡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 손이 싫었다. 엄마와의 스킨십은 어쩐지 조금 소름 끼쳤었다. 손을 잡는 것보다 사진으로 담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았다. 이제야 뒤늦게 잡을 수 없는 엄마 손이 그리워 허공을 잡아보곤 한다. 유튜브에서 나문희 선생이 노래하는 무대를 봤는데, 손 때문에 울었다. 얇은 피부, 튀어나온 혈관... 우리 엄마 손과 비슷한 정도로 나이 들어 있었다. 한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손이었다. 손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세월을 담고, 인생을 새긴 손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손만 봤다. 손의 소리만 들렸다.

* 손에 대해 글을 쓰려했더니, 작년 생일에 이미 구구절절 충분히 징징거려 놓은 게 있네.

껍데기 없는 생일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larina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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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도시락 세 개를 쌌다. 모의고사 보러 가는 현승이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출근하는 JP의 도시락을 싸는데 연습실 가는 채윤이도 "나도 싸갈까?" 했다. 셋이 각각 다른 곳에서 같은 밥을 먹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찡하지? 사진의 도시락은 요즘 꼭 남매같이 지내는 아빠와 딸의 것이다. 채윤이가 교회 근처에서 알바 중이라 출퇴근 길에 자주 함께 하고 있다. 띡띡띡띡, 투닥투닥... 현관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둘의 퇴근을 알린다.

종끼~이, 종끼 싫어. 핵 싫어.
윤채, 윤채, 나도 너 싫어.
으으으으, 종끼 아빠!
으으으으, 윤채 김!

그러다 어떨 땐 육탄전까지. 먼저 시작하고 나중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쪽은 윤채 쪽이다. 고3 현승이가 야자 하느라 밤이 늦어야 집에 오니 싸울 시간이 없고. 갈고닦은 전투력을 아빠에게 쏟아붓고 있는지. 메롱메롱 유치 찬란한 남매 아니 부녀간 싸움이 볼만 하다. 불쌍한 JP. 이기는 적이 없다. 나름 유치 찬란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선전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승기가 아빠 쪽으로 기우는 중, "아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한 마디에 순간 JP 움찔. "아빠, 움찔하는 거 다 봤어! 내가 이겼어. 무섭지?" "뭐, 뭐, 뭐? 뭘 일러?" "소용없어, 내가 이겼어."

토요일 아침, 똑같은 도시락 두 개를 준비하는 동안 둘은 계속 투닥투닥. 종끼 아빠는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면서, 윤채김은 제 방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각자 볼 일 보면서도 투닥투닥. 그리고 같은 도시락을 들고 나란히 출근했다. 물론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서도 빨리 해라, 하고 있다, 비켜라, 말아라, 투닥투닥.

진지하게 보는 첫 모의고사 중 현승이가 먹을 점심, 조용한 교회당 사무실에서 설교 준비 하다 먹을 점심, 좁다란 연습실에서 이어폰 꽂고 드라마 짤 보면서 먹을 점심. 이 시간쯤 따로 똑같이 먹을 점심 풍경을 그려본다. 소중한 님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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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 되어 야자의 삶을 사는 현승이와 주말 데이트를 했다. 2001아울렛 지하에서 가성비 좋은 회전초밥을 맛있게 먹고 집에 오늘 길. 고3 맞이 몸만들기 운동 차 겨울 동안 다녔던 구미도서관 옆을 지나는 중이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 애를 데리고 구미도서관에 한 번 오며 재밌겠다. 공부하던 곳도 보여주고, 매일 가던 미정국수에 같이 가서 밥도 먹고... 재밌겠지?"

 

"아빠가 너 도서관 갔다 온 날 늘 하는 얘기 있지? 엄마빠 헤어졌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고덕도서관. 거기서 자판기 커피에 초코칩 쿠기 먹고, 매점에서 우동 먹은 얘기 알지?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얘기. 거기 아빠가 대학생 때 다니던 도서관이거든. 아빠가 지금 너한테 고덕도서관에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아빠랑 같이 가서 자판기 커피 뽑아 먹고, 우동 먹고 그러자고 하면."

 

"아, 안 되겠구나! 말도 안 되게 싫으네. 이런 거구나... 와, 나중에 아빠 같이 될 것 같은데... 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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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지인들은 무기력과 분노를 토로해왔다. 교회 교우들을 비롯해서 대선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 꽤 많을 텐데 그분들과 마주할 일은 없었다. 가족 중 한 분이 승리에 도취되어 (목적어는 분명치 않지만)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동생에게 보냈단다. 그 내용을 전달받고 정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었다. 하필 엄마 추도식 다음 날이었다. 하긴 그분은, 임대차 삼법의 여파로 전셋값을 부르는 대로 올려준대도 나가라는 주인 때문에 잠시 거리에 나앉는 상황에 몰린 내게 그랬다. "좋겄다, 니가 좋아하는 문재인이가 부동산 잘해서..." 그때는 다리가 아니라 가슴이 무너졌다. 정치가 무엇이기에,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기에 이렇듯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단 말인가. 가족 간의 인지상정조차 말소해버린단 말인가. 그 조롱의 톡을 받은 동생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대선 이후 나는 무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화도 내지 않았고, 그리 절망적이 되지도 않았다. 뉴스만 보지 않으면 살 수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견뎠고, 전두환 시절도 살았는데.

현승이가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집에서는 물론 다니는 학교도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제 생각을 말하고 피력하는 것에 익숙한 환경이다. 거기다 타고난 기질까지 작용하여 뉴스로 보고 나름대로 의문을 품고, 식탁에 앉아 아빠와 끝없는 대화를 하곤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첫 촛불 집회가 열렸던 날, 나는 지방에서 1박 2일 강의가 있었다. 세 식구가 촛불집회 나간 사진을 보내왔는데, 가슴이 떨렸다. 내가 여기서 한가롭게 강의하고 있을 때인가 싶었었다. 그 집회에서 이재명을 만났고, 같이 찍은 사진을 또한 보내왔었다. 두 아이는 그때 받은 좋은 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셀카를 찍자고 하니 보좌관에게 찍어달래자 하고, 보좌관을 대하는 태도 역시 참 좋았다고 했다. 그때 찍은 사진과 이번 선거날에 채윤 현승 둘이 가서 투표하고 찍은 인증샷이다.

사진에서 시간이 보인다. 성인이 된 남매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대입을 치르고, 성인식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겪어냈고, 또 사춘기를 통과했고, 엄마 아빠 인격의 이면으로 실망했고, 반항도 했고.... 그리고 둘 다 성인이 되었다. 정치적 입장이든 개인의 삶이든 더는 엄마빠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커졌다. 이러기까지 보낸 시간은 성장통을 앓는 시간이었다. 그렇다. 성장통이다. 아빠가 목회하는 교회를 떠나겠다 선언하는 일도, 엄마빠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 실망하는 것도. 아이들의 시간이 그러할 때, 엄마 아빠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아이 눈에 비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아픔의 시간이었다. 좋다 나쁘다 하나의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만, 결과적으론 좋다. 성인 넷이 사는 오늘, 양육자와 피 양육자가 아니라 자기 빛깔로 사는 네 사람으로 만나는 오늘이 참 좋다.

아포리아(a-poria), 길이 없음.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르는 난제를 일컫는 말이다. 살면서 흔히 맞닥뜨리는 길을 잃었다거나, 절망적이다, 이런 상태까지 아우르는 것 아닐까 싶다. 피하고 싶고 당혹스러운 지점이지만, 철학에서는 여기를 '낙담'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가는 중요한 지점으로 본다. 대충 알면서 자기확신에 빠진 이가 아포리아에 들어서 혼란을 통과하며 더 큰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좌절과 혼란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피상적이고 쉬운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물론 삼라만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 사이 남매의 질풍노도며 가족의 성장통으로 변화무쌍의 시간이었다면, 이재명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트위터에서 만난 시원시원한 정치인으로 시작하여 19대 대선을 향한 경선, 그리고 그 이후...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관계는 여느 개인적 관계 맺음과 다르지 않았다. 끝없이 변하되 어디로 향하느냐, 가 관건이 아닐까. 한 인생이 어디로 향해가는지, 그 흐름과 맥락 속에서 삶의 의미는 찾아지는 것이다. 지난 목포 여행 마지막 시간에 선물처럼 만난 카페가 있다. 김대중 공부방을 탐방하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카페다. 주인 취향이 너무나 뚜렷하여 정겨운, 바다가 보이는 카페였다. 밖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실내 어느 벽에 시편 23편이 걸려 있었다. 목포 여행 첫날에 들렀던 '손소영 갤러리 카페' 벽에는 이재명 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의 순간은 모두 지나간 어느 날의 순간. 거기로부터 시간은 여기까지 흘러왔고.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 사람도 다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씩 대중 목욕탕에 가서 잔뜩 불린 다음 빡빡 밀어줘야 한다.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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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무기력과 우울감이 오래 가고 있다. 아침 준비하려고 앉았다 무심코 클릭해서 본 영상으로 반짝, 무엇이 들어왔다. 오, 오늘 아침은 이거야. 꾹꾹 눌러 모양을 만들어 토스터에 구운 식빵이다. 눌러 만든 모양에 잼을 채운다. 우울감이 천 리 만 리 달아났다.

 

하트는 제일 먼저 일어난 JP 용이다. 낄낄거리면서 하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손은 씻었어? 코딱지 판 손 아니지?"란다. 완성된 작품에도 감동 한 마디 없이 "어떻게 먹는 거야? 이대로 먹어? 더 발라?"한다.  

스마일은 김현승 몫이다. 신이 나서 굽고 만들고 하는데 뚱한 표정으로 "언제 먹어?"란다. "전체에 다 발라야 하는데 이렇게 주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하더니 스마일 무시하고 처발처발 해서 덤덤하게 처묵처묵 한다. 

 

다음 타자 부스스한 김채윤 등장. "뭐야? 뭔데?" "보지마, 보지마, 저리 가 있어. 엄마가 다 하면 부를게. 아직 오지마. 일단 너 웃는 얼굴이야, 화난 얼굴이야, 어떤 얼굴 원해?" "화난 얼굴" "오케이! 좀 이따 와." 또 신나게 세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다 먹고 일어나던 김현승이 식탁 근처 못오는 누나 한 번 쳐다보고 그런다. "엄마,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아, 진짜 재밌어! 화난 얼굴은 딱 김채윤이다. 그러나 관심 없기는 얘도 마찬가지. 

그래도 셋 중 가장 큰 성의를 보여주었다. 제 취향대로 작품 활동 한 번 해주는 것으로. 조커 느낌도 나고 좋네!

냉담한 가족들, 너희들! 그래도 괜찮아. 사실 나는 내가 재밌으면 돼.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에 재미 하나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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