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9

 

최 선생님과 함께 여행, 그것도 제주여행이다. 일이 되려면 이렇게 또 쉽다. 하루게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선생님 모시고 햇살 좋은 날 드라이브 한 번 해야지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걷기도 전처럼 누리질 못하시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 한 분이 제주 한 달 살이 중이라며 보낸 풍광 사진에 감탄하다 된 일이다. K 선생님은 모임에서 마음이 통하던 큰 언니 같은 분이다. “, 부럽네요!” “부러우면 와요.” 이런 말을 주고받다 전격 성사되었다. 썩 건강하지도 않은 노인을 모시고 하는 여행에 이렇게 설레다니. 나답지 않은 일. 못 말리는 나의 최 선생님 사랑이다.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아, 이런 날도 있네요. 선생님과 비행기 여행이라니요. 언젠가 해주신 비행기 착륙 활강 얘기가 생각나요.

 

무슨 얘기지? 내가 비행기에 대해 뭘 안다고, 무슨 얘기를 떠들어댔을까?

 

아유, 선생님. 저 건망증 상담해주셨잖아요. 제가 왜 선생님 댁에 가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요. 비행기가 이륙 때 고도를 높일 때와 달리 활강 시간은 길다고 하셨잖아요. 창밖은 아직 대서양 위인데 왜 이리 빨리 내려가는 거야 싶다면서요.

 

그런 얘길 했어? 내가?

 

네에. 제 나이가 그런 때라고 하셨잖아요. 막 활강을 시작하는 때요. 고도가 거의 낮아지지도 않았는데 불쾌감은 가장 크다고요. 건망증에 대해 너무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죠. 중년을 거쳐 노년으로 가는 긴 활강이고 낯선 시작이어서 그렇다고요. 정말 위안이 됐는데요.

 

아아, 맞다. 맞다.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해줬지? 정신 좋네. 내가 한 말도 기억이 안 나. 긴 활강의 끝에 다 와서 그래. 나는 곧 착륙하는 비행기외다. . 출발한다.

 

네, 선생님 지금 착륙 아니고 이륙 중이십니다. 하하.

 

그러네. . 이제 막 이륙하다 치자. 내 인생 지금 막 시작이다. 하하. 아이고, 정 선생과 제주도를 다 가네.

 

그러니까요, 선생님. 너무 좋아요. 아으, 신나! K 선생님 덕분이에요. 너무 부러워요. 한 달 제주 살이라니. 요즘 제 친구들 로망인데, K 샘은 그걸 하시네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용기가 참 대단하세요. 용기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한 일인데, 남편분도 대단하시고요. 에고, 부러워라.

 

정 선생, 어차피 알게 될 거고 K 선생도 허락한 것이니 말할게요. K 선생 일종의 별거예요. K 선생 쪽에서는 별거고, 남편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에요. 이혼 결심한 지 좀 됐는데, 남편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좀 어려운 시간 보냈어요.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나 봐요.

 

네에? 상상도 못 했어요. 늘 밝고 평온해 보이셔서요. 그런 일이 있으실 줄이야. 남편분도 좋은 분 같았는데요. 성실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시지 않나요? 자녀들도 다 잘 되고, 부족할 것 없어 보였는데. 정말 뵐 때마다 늘 행복해 보이셨는데. 우리 모임에서도 그야말로 피스 메이커셨잖아요.

 

그러게. 남편도 그래서 당황스럽대요. 그게 문제였는지 모르지. 속은 썩어가고 있는데 꾹 참고 내색하지 않은 것.

 

어, 선생님. 남편분도 만나보셨어요?

 

실은 남편이 상담받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었어요. K 선생과 내 관계가 있으니, 다른 데를 소개했고. 그래서 겸사겸사 제주에 가는 거예요.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K 선생 얘기를 좀 들어주기라도 하려고. 마침 정 선생도 결혼에 관한 책도 쓰고, 그 분야 전문가잖아. 놀러 가는 줄만 알았지? 이제 비행기 탔으니 빠꾸 시키지도 못할 테니 알려줘야지. 에헴.

 

네에? 그런 거였어요? 저만 혼자 엄청 들떴네요. 민망해라. 아, 그리고 저 전문가 아녜요, 선생님. 어쩌다 보니 책 쓰고, 책 쓰고 나니 한두 번 강의하고 그러는 거지. 제 코가 석 자예요. 아, 진짜…. 여러모로 부담되네. 비행기 돌릴 힘도 없고. 땅콩이라도 던져야 하나.

 

허허, 놀러 가는 마음으로 가면 돼. 나도 그런 가벼운 마음이에요. 이 좋은 봄날에 내 친구 정 선생과 제주 여행 가는 거지. 가면 재워줄 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공항으로 나와 있겠다고 했어요. 이런 상태로 혼자 지내는 게 좋기만 하겠소? 같이 좀 놀아주고 옵시다. 얘기도 들어주고.

 

네, 그나저나 그런 뜻이면 선생님만 가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제가 있어서 편하게 상담하실 수 있겠어요?

 

내가 미리 얘기해뒀어. 이제는 말하고 싶대요. 그리고 상담은 무슨! 걱정하지 말고 정 선생 평소대로 해요.

 

그렇다면 저도 가볍고 묵직하게, 편하게 마음먹겠습니다.

 

, 말도 재밌게도 한다. 가볍고 묵직하게, 편하게. 좋네. 사실 나는 K 선생 이런 행보가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아.

 

네? 이혼에 찬성하신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내가 뭐라고 남의 이혼에 찬성하고 말고 하겠소! K 선생 부부가 평생 부부싸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면 믿겠어요? 부부싸움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겠지만. 큰 소리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대요. 평생 바쁘게 일하던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 들어앉은 지가 1년쯤 됐나. 더 됐나? 같이 그렇게 오래 붙어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죽을 듯이 힘들었대요. 혼자 끙끙거리다 정신과에도 가고 약도 먹고 그랬나 봐.

 

아아…. 혼자서요? 그러면 남편분에게 암 말씀도 안 하시고요?

 

그렇지.

 

병원에 가실 정도면…. 말을 안 한다고 남편은 모르셨나요?

 

모르긴 해도 그 지점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평생 싸우지 않았다는 말이, 평생 서로 좋기만 했다는 뜻이 아니잖아요. 두 사람 다 그런 성격이 그런 데다, 신앙심도 작용했겠죠. 갈등은 무조건 죄다, 이렇게들 여기잖아요.

 

그건 그래요. 선생님. 드러내고 함께 해결하기보다 일단 은혜로 어떤 문제든 덮고 보려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신앙의 이름으로 문제를 더 키우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부부 사이든, 친구 관계든, 교회 교우들 간에든 갈등을 드러내고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일단은 피하고 싶은 거죠. 그럴 때 발동하는 게 심리학적으로 방어기제라는 거 아니겠어. 나는 상담하면서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신앙을 방어기제로 쓰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 은혜, 감사. 이렇게 초월해 버리면 더는 뭐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K 선생의 도발이 꼭 부정적이진 않다는 거예요.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선생님. 저번에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 보실 때도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 적당한 가면으로 포장하지 않고, 감정 다 드러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것이 우정이라고요. 아, 그런데 그게 부부로 가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친구는 싸우고 절교했다가 다시 친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부부는 정말 이혼하면 남이잖아요. 그냥 남이라는 한 마디로 담을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이혼의 과정이고요.

 

평생 상담하면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려요. 가톨릭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마르틴 파도나이(Martin H. Padovani)라는 분도 똑같은 얘길 해서 반가운 적이 있었는데. 폭력보다 침묵 때문에 파경에 이르는 결혼 생활이 더 많아요. 가정불화나 이혼의 원인이 갈등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갈등 해결을 위한 갈등이 없거나, 그것을 피하려고 하다 결국 파국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 선생 말마따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행복한 부부로 보이는 K 선생이라서 나도 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싶은 거예요.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고통을 침묵으로 덮고 있다면 더더욱.

 

맞는 말씀인데, 나도 청년들에게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한 좋은 연애할 수 없다고 말하긴 하는데 어려운 일이다. 갈등을 드러내고 갈등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모른 척 덮어두고, 느끼지 않아야 살아지는 것이 결혼 아닌가. 졸혼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소설가 이외수 선생 부부의 졸혼 뉴스가 나왔을 때, 친구들 분위기가 그랬다. 나도 하고 싶다, 졸혼. 그동안 맞춰 사느라 충분히 애썼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다, 그런 얘기들이 오가곤 했다. 신앙이 있는 친구나 비신자 친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 입담 좋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6)” 이 말이 무서워서 이혼은 생각지도 못하지만, 졸혼은 어쩐지 좀 나은 것 같다나. 치명적인 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에 다들 웃고 동의했던 것 같다. 그때 결혼의 민낯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이혼이 아니라 졸혼이라면, 그래서 종교적 죄의식이나 도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면? 마지못해 유지하는 결혼보다는 졸혼? 그거 괜찮네. 휘청,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 그게 아니고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흔들리는 거였다.

 

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 ? 아무래도 잘못 따라나선 것 같애? 가볍게 묵직하게 편하게 놀고 오자니까.

 

그게 아니고요. 선생님 혹시 졸혼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그럼, 이외수 씨가 공개적으로 졸혼을 했잖아요. 얼마 전에 그걸 다시 취소했다지 아마? 이외수 씨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부인이 취소했다지요? 그게 왜? K 선생한테 이혼 말고 졸혼을 하라고 할까?

 

모든 갈등을 다 드러내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 뉴스가 나왔을 때요, 친구 중 졸혼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다 하고 싶다는 거예요. 좋아서 유지하는 결혼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저는 나름대로 결혼에 만족하는 상위 5% 부부라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아니, 음…. 있었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때 졸혼이란 말에 끌린 거예요. 남편이 싫은 건 아니지만, 편하게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인지 어쩐지. 문득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요 제가, 저희 부부가 행복해서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행복한 것인가 싶네요. 외적인 평화를 위해서 덮어두고 보지 않으려는 갈등이 있나 싶기도 하고요.

 

성찰 병!

 

네?

 

성찰 병이라고. 심리적 영적 결벽증! 하하. 사람 참! 결혼을 유지하는 것 어려운 일이죠. 맞아요. 혼자 사는 게 쉽지, 나와 다른 사람과 마음 맞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어렵고말고. 그래서 내적 외적 갈등이 있는 거고.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표현하고 살겠어요? 매일 싸우다 볼 일 못 보겠네. 졸혼에 환호하는 친구들 마음, 충분히 이해되는데?

 

아…. 저도 뭔가 결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사실 요즘 남편에게 쌓인 게 하나둘이 아니거든요. 갈등을 덮어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요. 집에 가면 싸워야겠다, 제주살이 선언이라도 해야지,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어요.

 

엄한 부부 사이를 쑤셔놓는 게 됐구만. K 선생 얘기하는 거예요. 착하게 신앙생활에 충실한 사람이잖아요. 분노나 섭섭함 같은 것을 표현할 줄 몰랐던 거예요. 아니, 표현 이전에 인식을 못 한 거지. 감정이라는 게 에너지거든. 특히 분노 같은 감정 말이에요. 참는다고 없어지면 참 좋은데, 그 왜 열역학 제1 법칙이라는 게 있잖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에너지는 스스로 소멸하지 않아. 참고 인내하는 것은 미덕인데, 참아서 없어지면 참 좋겠는데,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지. 억압해서 압력받은 것은 언제 어디선가는 터지고 만다는 거예요. K 선생의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이 그런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에너지가 너무나 오랜 시간 고여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K 선생님의 상황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픈데 어쩐지 절망적으로 다가와요. 선생님께선 부정적으로만 보이진 않는다고 하시는데….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느낌적 느낌으로는 K 선생님은 어쨌든 더는 남편과 함께하기가 싫으신 거잖아요.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으신 거잖아요.

 

그러게. 현재로선 그런 것 같아요.

 

비행고도 때문일까. 가슴이 답답해 온다. 최 선생님께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 이혼 선언이 부정적이지 않다면 K 선생님에겐 지금 이혼만이 답인가? 아니면 무슨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까. 60을 코앞에 두고 수면 위로 떠오른 갈등이라니. 평생 묵은 갈등이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닐까? K 선생님은 어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최 선생님의 달관한 듯한 말씀에 마음이 갑갑하다 못해 화가 나려는 것 같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생에 대해 했다는 말이 있어. 인생이란, 처음 40년은 본문을 갖추고, 나머지 40년은 거기에 주석을 다는 거래요. 주석이 없다면, 본문에 담긴 의미를 올바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인생 후반에는 살아온 날에 대해 주석을 달아야 한대. K 선생을 비롯해서 대부분 부부 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분명 뭔가에 끌려 결혼했을 거예요. 살다 보면 사람의 이면이 보이고, 어떤 식으로든 충돌을 하죠. 처음엔 싸우기도 했겠지. 사람 안 바뀌니까, 포기하고 또 사는 거예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그렇게 살다 중년을 맞고 은퇴의 시기가 돼요. 내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야.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생의 후반기에는 살아온 날을 반추하며 성장하는 거예요.

 

반추라면요?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회개랄지, 그런 걸까요?

 

글쎄, 잘 하고 잘못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잘못 살아왔다고 해서 그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정 선생 말처럼 K 선생이 너무 늦게 자기감정을 만났다고 칩시다. 이혼하든 계속 살든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참고 살아왔을까? 그렇게 살아서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또 무엇이고? 이런 질문을 해보는 거지. 중년 이후 노년으로 가는 삶의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껏 살아온 삶에 주석을 다는 거지.

 

아…. 이혼의 문제가 아니군요.

 

그래, 다행히 남편도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상담을 요청해오지 않았소.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각각 돌아보는 거지. 정 선생, 사람 감정이 또 아주 재밌는 것이, 삼라만상이 그렇듯 고정된 게 아니라우. 우리가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듯이 감정은 계속 변하고 흘러가거든. 정 선생, 제주도 여행 간다고 신나던 감정 어디 갔어요?

 

그러게요? 그 감정 다 지나갔죠. 지금은 답답하기만 하네요.

 

허허, 거 봐. 나는 이게 인간 소망이라고 봐. 우리가 힘주고 버티지만 않으면 변하고, 바뀌고, 흘러가거든. 그 사이에 하나님의 자비가 흘러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금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요. K 선생 마음이, 그 부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소. 그래서 우리 기도에 소망이 있는 것 아닐까?

 

아아…. 엇, 선생님 웃긴 생각이 났는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남편과 싸우잖아요. 싸움보다는 늘 저의 일방적 공격이긴 하지만요. 그런 날은 부러 말씀 묵상도 기도도 안 하는 거예요. 말씀 보고 기도하면 꼴 비기 싫은 마음이 사라질 걸 알거든요. 기도하나 봐라, 기도하나 봐라, 하면서 기도하는 자리 째려보면서 왔다 갔다 해요.

 

허허허, 그냥 다니지도 않고 째려보면서 다녀? 에고, 재밌다.

 

진짜 진리네요! 선생님. 감정은 끝없이 변하는군요.

 

그럼, 흘러가는 감정 붙들고 있는 게 몹쓸 고집이지. 내가 바뀌나 봐라! 너를 싫어하기로 한 내 생각도 바꾸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주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어떻게 흘러 들어가겠어? K 선생은 지금 자기 결혼이 대단히 잘못됐고 이걸로 끝이라 여기는지 모르겠는데, 실망만큼 좋은 시작이 없어요.

 

아오, 선생님 그런데요. 좋은 시작은 좀 그래요. 너무 낭만적? 음…. 이상적인 말씀 같아요.

 

아까부터 불편해 죽겠지? 현실 모르는 혼자 사는 노인네의 허황한 희망 같아? 하하.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카를 융(Carl Jung)이 말하는 남성 안의 여성, 여성 안의 남성 기억 안 나요?

 

알죠.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성이 숨어 있고, 남성의 무의식 안에는 여성성이 있다고요. 그것을 잘 통합해내야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요. 지금 두 분은 여성성 남성성 문제는 아니잖아요.

 

글쎄, 아닐까? 갱년기에 어때요? 남자들이 전에 없이 막 감상적이 되어 눈물 흘리고, 여자들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따지는 태도 같은 거. 이전과 다른 모습 보인단 얘기 안 들어봐요?

 

아, 선생님. 안 들어보긴요. 일상이죠. 남편이 예전에 안 그랬는데 사소한 일에 삐지고 그러는 데 정말 당황스럽고 죽겠어요. 제 친구 남편은요, 마초 같은 남자거든요. 요즘 트로트 들으며 가사에 감동해 눈물을 그렇게 흘린대요. 친구가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고요. 너무 꼴 보기 싫다는 거예요.

 

하하하. 그래, 남성 호르몬이 줄면서 여성 호르몬이 더 발현하는 거지. 남자로 살아오느라 회피하거나 묻어두었던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신호라고 해요. 여자도 마찬가지고. 카를 융이 말하는 중년 이후 통합과 성장이 또한 그런 의미야.

 

아, 갱년기에 그런 큰 의미가!

 

융은 그래서 이때의 위기를 영적인 삶으로의 초대라고도 해요. 이제 비로소 나로 온전히 살아가는 시작이 되는 거지. 이혼하고 안 하고보다 중요한 건, 평생 남편에게 기대하던 것을 거둬들이고 내 안에 있는 남성성을 어떻게 건강하게 살려낼 수 있는가 하는 거야. 내 인생 본문의 주석을 다시 쓰는 일이라 할 수도 있고. 장담컨대, 생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거에요. 이래도 좋은 기회가 아닌감? 야아아, 벌써 제주도다! 긴 활강 시작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시니어 매일성경> 5, 6월호 기고

쓸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아버지를 잃은 한 아이가 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는 목사였다. 장례식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친구 목사님이 다가와 말했다. “울지 마라, 너의 아버지 천국에 가셨는데 왜 우냐? 좋은 곳에 가셨다. 울지마라.” 아이는 그 말에 눈물을 그쳤다. “아버지 좋은 곳에 가셨지.” 울지 않기로 작정했다.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두고 슬퍼하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를 지으면 천국에 갈 수 없고, 천국에 가지 못하면 아버지를 만날 길이 없으니 슬퍼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는 하늘 아버지를 믿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그리워 슬퍼지면, 그리운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참아야 했다. 울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생각과 상상력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도 좋은 분일 텐데, 우리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시려고 나는 이렇듯 아비 없는 아이로 만드신 것은 정당한 것인가?’ 물을 곳 없는 아이는 밤마다 일기를 썼다. 쓰기를 잘한 것이, 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계속 물을 힘을 길렀다.

 

   이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이다. 단 한 번도 작가의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일찍 마주한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는 어린 학생들의 질문을 받을 적이 있다. 경험의 한계 안에 갇힌 나는, 나처럼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차마 그리 말할 수는 없으니 글쓰기를 타고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마땅한 답이 없어서 둘러댄 말인데, 나와 비슷한 글쓰기 운명론자가 또 있었다. 다섯 살 때부터 글을 썼다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이다. 그녀는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에서 글 쓰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조앤 디디온 자신)에 대해 말한다. 다섯 살 적에 왜 혼자만의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설명이 불가함을 말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을 가진 사람이 그런 충동을 가지지 않을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롭게 만사에 저항하며 재배치하는 사람, 불안한 투덜이, 분명 태어날 때부터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이 글을 쓰게 된다고. 물론 그녀 자신이다. 그렇게 쓰도록 타고난 것이다.

 

   사춘기에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삐뚤어진 마음이 된 아이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글을 썼을까. ‘불안한 투덜이,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써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 일기를 써서 난중일기를 남겼고, 유대인 소녀 안네(Anne Frank)2차 대전 중 은신처에 숨어서 쓴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져 반전 문학의 백미로 꼽히며 읽히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은 아들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으로 썼고, 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역시 아들을 잃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를 썼다. 후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겠노라 주먹 불끈 쥐고 쓴 글이 아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체포의 위협을 느끼며, 상실의 고통 속에서 외롭게 저항한흔적일 것이다. 마주한 현실에 비하면 미력한 몸부림 일지라도, 이들은 썼다. 인생의 고통을 글로 방어하는 사람들, 이분들도 쓸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또 없을까? 같은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치유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여러 모임을 이끌고 있다. 첫 모임에서 인사를 나누다 보면 누가 묻지도 않는 글쓰기 실력을 고백해오곤 한다. “글은 잘 못 써요.” 처음 보는 이에게 낯을 가리듯, 글쓰기 자체에도 낯을 가리며 부끄러운 태도이다. 처음엔 곧이곧대로 믿었다.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는 분들이구나, 치유에 꽂혀서 여기까지 오셨구나.’ 모임이 거듭되면 이 운명론자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진솔하게 써내는 이야기의 다채로움과 체험의 깊이가 늘 상상 그 이상이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 문학보다 미학적이며 감동적인 글을 만나곤 하다. 알고 보면, 대부분 이미 혼자서 쓰던 분들이다. ‘치유의 글쓰기로 손색없는 글을 이미 일기장에, 비밀 블로그에,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는 사람들이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치유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는 자매들도 다르지 않다. 모임에 오기 전부터, 사건을 공론화하기 전부터 그들은 쓰고 있었다. 누가 쓰라고 한 것이 아니다. 법정 다툼을 염두에 두고 한 기록도 아니다. 왜 쓰는지,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그저 썼다는 것이다. 나의 운명적 친구들, 태어날 때부터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글쓰기를 타고난 친구들이다.

 

글쓰기, 의미를 찾는 일

 

   이쯤 되면 글 쓰는 특정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을 찾아 모을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고통 앞에서 글을 쓰는가, 물어야 할 것 같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로부터를 쓴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역시 쓰는 사람이었다. 수용소 안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무엇보다 거기서 건져 올린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을 잊지 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썼다. 정신의학자인 그는 죽음이 일상인 그 수용소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을 관찰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의미, 삶의 의미,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이 생존한다! 프랭클 자신, 다른 수용소로 간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나겠다는 간절함으로 죽음의 수용소를 버텨냈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의미가 생존을 지탱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그는 의미치료(Logotherapy)’를 창시한다. 생의 크고 작은 고통 앞에서 저항도 무엇도 아닌 일기를 쓰는 사람은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글 쓰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인지 모르겠다.

 

   인간에게 글 쓰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버지를 잃고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에게, 전쟁의 포화 속 외로운 장군 이순신에게,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은 박완서 선생에게, 은신처에 숨은 꿈많은 소녀 안네에게, 믿었던 목회자에게 성폭력 당한 청년에게, 오랜 기다림에 지친 취업준비생에게, 신앙 사춘기를 겪으며 기쁨과 열정을 잃은 그리스도인에게, 펜데믹 세상 속 고립되고 격리된 인생에게 글 쓰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자꾸 곱씹고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말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치유는 기억의 치유이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이다. 이미 일어난 일(경험)은 바꿀 수 없지만, 해석이 달라지면 삶에 대한 태도가 새로워진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기억은 다른 장소에서 새롭게 발화될 때마다 개정판으로 다시 쓰인다. 나와 기억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 때는 의미도 맥락도 발견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내 앞에 나를 세우고 관조하는 행위이다. “죽고 싶다.” 일기장 첫 줄을 쓰는 순간, 죽고 싶은 나를 바라보는 다른 내가 생긴다. 쓰는 내가 있고, 관찰당하고 쓰이는 내가 있다. 그 두 나 사이의 거리가 새로운 관점을 만든다. 기억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한다. 쓰는 일은 의미를 찾는 일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조리를 찾는 일이고, 부서진 고통의 조각을 이어붙여 맥락을 더듬는 일이다. 그렇다. ‘맥락화될 때 의미가 드러난다. 실패, 좌절, 상실이 마지막 귀결이 아님을 믿고 내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찾아 쓰는 일이 글쓰기, 치유하는 글쓰기이다.

 

   그렇다면 모든 글쓰기는 치유의 글쓰기이다. 치유의 어원을 따져보면 더욱 그러하다. 치유(healing), 건강(health)은 같은 어원인 ‘hal, hale’에서 왔고 이것은 whole , 전체, 온전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Hello! 역시 같은 어원인데, 그 흔한 인사에 담긴 뜻은 온전하길 바래, 전체가 되길 바래(T0 be wholeness)”라고. 고통의 증상이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한 존재가 온전케 되는 것이 치유이다. 존재의 온전함을 향한 갈망으로 현재의 결핍과 고통을 쓰는 일은 그대로 치유의 작업이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라 불리는 이승우 작가는 모든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며, 소설조차도 소설가 자신을 위한 치유작업이라고 했다. 소설은 그것을 쓴 작가 자신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는 방편이며 나름의 치유책이다. 소설은 가장 먼저 그 글을 쓴 작가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하다.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견딜힘을 얻는다. 세상의 불합리와 파렴치와 몰인정을 이길 힘을 얻는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승우

 

   돌아보면 아버지 돌아가신 후 시작한 일기 쓰기는 아버지 상실로 들이닥친 생의 부조리에서 조리를 찾는 일이었다. 세계가 쩍 하고 갈라졌다. 갈라진 세계에서 고아의 세상으로 넘어가 살게 되었다.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밝고 당당한 을 하며 살았다. ‘을 하느라 애쓰다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으로 밤을 맞으면 텅 빈 자아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시 썼고. 뒤늦게 여기에 치유의 글쓰기라 이름 붙일 수 있었다. 치유의 글쓰기는 부서진 세계를 이어붙이려는 노력이었다. 낮의 나와 밤의 나를, 사랑받는 딸과 고아를, 나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하나님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쓰기를 잘했다. 쓴 덕분에 내 인생 이야기의 맥락을 찾아가고 있다. 쓴 덕분에 나처럼 부서진 인생들과 연결되어 더 큰 세계로 이어붙이게 되었다. 상실의 경험은 해석되지 않은 채로 나를 가두고 절망 가운데 둘 수 있었지만, 쓸 운명으로 부르신 부르심에 순종하여 인생에 감추신 신비를 만져가고 있다. 쓰기를 잘했다.

 

월간 <기독교세계> 4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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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8

 

 

선생님께서는 지하주차장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여러 일이 몰려 있는 날이라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함께 확인하고 보낼 선생님의 원고 마감날이기도 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침에 원고를 가져다드리고 확인하시는 사이 다른 일을 보기로 했다. 아이를 태워 현장학습 장소에 데려다주는 일이다. 복잡한 일정으로 아이도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 잠깐이지만 낯선 어른 마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내려오시기 전에 엄마가 빨리 올라가라며 압박하고 투덜거렸다. 나도 그게 편한데, 굳이 내려오시겠다니 말이다. 벌써 내려오셔서 엘리베이터 현관 앞에 환하게 웃으며 서 계셨다. “어이구, 잘 생긴 아들이구만. 모르는 할머니가 나타나서 주책이지? 만나보고 싶었어. 악수 한 번 할까.” 벌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아들 녀석 인상을 보니 이제 타박 들을 일만 남았구나! 바쁜 척 서둘러 인사 의례를 마무리하고 다시 출발했다. 사춘기 막바지 낯가림 최강자 아들의 불평불만 세례를 각오하고.

 

그런데 교수님인데 왜 그냥 할머니 같애?” 의외의 순순한 말투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아이가 하는 말이다. “그래? 교수님이라도 할머니는 할머니시지. 연세가 있으신데.” “아니, 뭐 교수님 같지가 않고 그냥 착한 할머니 같애. 할머니들은 둘 중 하나거든. 착한 할머니이거나 진짜 싫은 할머니이거나. 엄마가 왜 교수님을 좋아하는지 알겠어.” 사람에 관심이 많고 직관적인 아이이긴 하지만, 자식! 별 걸 다 알아채는군! 아이에게 최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별로 한 적이 없는데. 차라리 최 선생님께는 아이들 얘기를 하는 편이다. 워낙 이런저런 걸 많이 물어보시고 한 번 들었던 얘기는 잊지 않고 다시 물어주시니. 사춘기 막바지에 있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많이 늘어놓았던 것 같다. “엄마, 그리고... 아까 교수님이 악수할 때 돈 주셨어.” 아이 손에 지폐가 들려져 있다. , 용돈 주시려고 부러 내려오셨구나! , 그래서 니 마음이 녹았구나! 어쨌든 부드러워진 아이 목소리에 나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다시 선생님께 갔다.

 

나눠줄 줄 아는 호감 노인

 

아이가 정 선생을 꼭 닮았네. 사람 바라보는 눈빛이 꼭 정 선생이야. 시 쓰고 철학 한다는 그 아들이죠? 그러게 생겼네.

 

아유, 선생님. 그건 옛날 어릴 적 얘기예요. 지금은 외제 차, 명품 운동화에나 관심 있는 그냥 그런 애예요. 어떻게 해야 돈 많이 벌어서 그런 걸 살 수 있는지, 최대 관심사라니까요. 에휴, 정말 꼴 보기 싫고... 걱정이에요. 아참, 선생님 무슨 용돈을 그렇게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일부러 내려오셨군요.

 

돈 좋아하는 친구에게 어필이 됐겠네. 하하. 명품 운동화는 얼마를 줘야 사는 거야? 명품 운동화 하나 사주면 잘생긴 아들내미한테 인기를 얻겠구만.

 

그놈의 운동화 소리 듣기도 싫어요. 아닌 게 아니라 용돈 덕인지 선생님 아주 점수를 제대로 따셨어요. 아이 어릴 적에 제가 풀타임으로 일했잖아요. 시부모님이 육아 도와주셨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커서 남다른 마음이 있어요. 노인들을 좀 친근하게 느낀달까, 따스하게 바라보거든요. 그런데 사춘기 되면서 교회나 밖에서 만나는 어떤 노인들 모습을 지나치게 싫어하더라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례한 노인들을 보면 견딜 수가 없대요. 저는 그게 애정과 연민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제 할머니, 특히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거든요. 아무튼, 그 과한 감정이 늘 걱정이긴 한데, 잠깐 뵈었는데도 선생님이 참 좋은가 봐요. 선생님 앞에 두고 이런 말씀 드리니까 오글거린다. 용돈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히히. 어이구, 죄송합니다.

 

죄송은? 기분 좋구먼. 사람 마음 얻기가 쉬운 일인가? 돈 몇만 원으로 청소년 마음을 얻었으면 보통 이문을 본 게 아닌데! 역시나 노인네가 할 일은 돈 내놓는 일이야. 하하.

 

처음 만남이 생각났다. 종강 날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혼잣말. 그날 식사를 선생님께서 사겠다고 하셨다. 어느 발 빠른 사람이 나서서 계산을 하자 이 사람들, 노인 배려 없네.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밥 사는 거밖에 없는데. 그걸 빼앗네.” 무력한 받아들임으로 들렸고, 진심으로 섭섭해하시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 말에 이끌렸고 오늘의 이런 관계가 된 것이다. 선생님은 부자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부자 같다. 이런 집에 사시는 것만 봐도. 돈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꼭 노인이 아니라도 남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이제 나도 마냥 받아먹을 나이가 아니다. 배움도 삶도 먹을 것도 말이다. 나눠줘야 하는 중년, 중견 사람이다. 후배들 만나면 후하게 밥을 사고 싶고, 넉넉하게 나누고 싶지만, 현실 재정이 늘 발목을 잡는다. 지인들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은 마음을 같이 하여 위로하고 축하할 일이 아닌가. 그것을 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의금과 축의금이고. 마음은 넉넉한데 현실 재정으로 손이 떨릴 때 조금 비참한 심정이 된다. 가족들 몸 어디가 아프면 몸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먼저 마음이 무거울 때도 그렇다. 선생님처럼 넉넉히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나도 멋진 노인, 호감 노인이 될 수 있을까? 돈 걱정 없는 노년이 가능할까? 내 생각을 읽기라고 하셨나?

 

재산이 갈수록 적어지면 좋겠어

 

, 나 이사해요. 주인이 집을 팔았다고 나가라네. 시간은 넉넉히 준다니 알아봐야지.  

 

어머, 선생님 댁이 아니었어요? 전세였었나요?

 

, 나 집 없어. 허허. 전세예요. 남의 집 살이야.

 

아휴, 이사가 보통 일이 아닌데. 힘드셔서 어떡해요?

 

내가 크게 힘든 것은 없어요. 아들이 알아서 해주는데... 아들한테 미안하죠. 선생님은 이사를 많이 해봤어?

 

저요? 저는 정말 평균 2년에 한 번 이사예요. 전세를 살아도 한 집에 오래 살기도 하던데요. 저는 유난히 그게 잘 안 맞아요. 워낙 또 전세가 따라잡을 수 없이 오르기도 하니까요. 저 2년을 주기로 계속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어요. 선생님.

     

아유, 그렇구나! 고생이지 그거. 암튼 여기서 멀리 가진 않을 거니까 이사 가도 자주 와야 해.

 

그럼요! 선생님, 원고 교정한 것 좀 보셨어요?

 

전세니 자가 소유 주택이니, 아파트 평수가 어떻고 시세가 어떠니 하는 것에 어두운 편이다. 어두운 편이지만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친구들 모임 같은 데 가면 대부분 자기 집은 가지고 있고, 집도 한 채가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 “나 이번에 또 이사해.” “, 나 거기 안 살아. 이사했는데. 전세가 너무 올라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경우 뭐랄까 조금 위축된달까.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헌데 선생님은 왜 전세를 사실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그야말로 쓸데없는 궁금증이니 차라리 말을 돌려버렸다. 말을 돌렸더니 선생님이 다시 유턴을 시키시네.

 

, 교정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 봐줬겠어. 그나저나 지금 집에서 계약은 얼마 남았길래? 전세가 또 올랐을 것 아니유? 아들이 집을 알아보는데 이 아파트도 그새 어마어마하게 올랐다고 하더라고. 집 없는 사람들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 선생님도 남편도 공부하고 애 키우고 하느라 집 장만하는데 신경을 못 썼구나.

 

네, 선생님. 사실 재주도 없어요. 주택 청약을 해라, 뭘 어떻게 해라. 주변에 또 부동산 전문가가 한둘인가요? 훈수들 두고 걱정도 하는데, 도통 그쪽으론 몰라요. 관심도 없고요. 그러려니 하며 살아요. 이사할 때가 되면 또 상황에 맞는 적당한 집 찾아 이사하고, 새로운 동네에 좋은 점 발견하며 살고... 이제 뭐 익숙한데요. 아이들 크고 저도 나이를 먹으니 조금씩 더 걱정이 되긴 하더라고요. 이 나이에 뭘 하고 산 건가 싶기도 하고요.

 

뭘 하긴? 정말 중요한 것을 하며 잘 산 것 같은데. 불안하긴 하죠. 괜히 의식주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일에 바탕인데. 하이고, 이번 집에서는 이사 안 가고 더 살면 좋겠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아드님이 알아서 해준다고 해도, 신경을 안 쓰실 수 없잖아요. 변화를 좋아하시니까 괜찮으신가요?

     

왜 신경이 안 쓰여? 일단 아들한테 미안하지. 나도 젊어서부터 선생님처럼 집 사고 재산 불리고, 이런 것에 젬병이었어요. 남편이 좀 알아서 하긴 했는데, 남편 떠나고는 뭐 그저 일하면서 근근이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벅찼지. 그래도 낙천적인 성격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해요.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는 생각이니까. 살던 집은 하나 있었는데, 상담실과 주거 공간을 합치면서 팔았어요. 저쪽에서 상담하고 건너와 살림하는 이런 집이 딱 좋더라고. 전세로 들어와서 이러고 살고 있어요. 그때 아들이 사는 게 좋다고 했는데 그러고 싶질 않더라고.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갈수록 적어졌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죽은 다음에 뭐든 남지 않았으면 싶고.

 

어머, 선생님. 재산이 적어졌으면 좋으시겠다고요?

 

아니 아니이, 욕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다. 그냥 나이 들어 가볍게 살고 싶단 말이유. 이상이지, 이상! 실수였어. 그때 샀어야 했대. 이번에 이사하려고 보니까 상황이 어렵대. 내가 척척 해결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아들 고생 시키게 되어 미안하지.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후후, 대략 알겠어요. 어떤 마음이실지. 그런데 선생님은 친구분들과 비교하거나 그렇게는 안 되세요? 연세 드시면 그런 마음도 없어지실까요?

 

아이고, 연세 드셔도 사람 마음 다 똑같습니다. 평생 하던 비교심이 어디로 가? 노인네들이 하찮은 것으로 비교하고 자랑질하고 더 그러지. 내 친구들이 다 잘 살아요. 잘 살아도 보통 잘 사는 부인네들이 아니지. 한참 때만큼은 아니지만 부동산이고 뭐고 아직도 다 통이야.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돈으로 감을 놔라 배를 놔라들 하지. 내가 안 들어먹으니까 별종 친구로 내놨어요. 한때 젊을 때는 관심사가 달라서 불편하기도 했었고, 마음으로 밀어내기도 했었는데... 돈이 좋은 건 사실이잖우. 안 그래? 돈 많으면 좋지 뭐. ? 잘 사는 친구들 부러워요? 은근히 자랑하고 그러나?

 

그런 친구들은 없어요. 제가 없으니까 자격지심이죠. 혼자 비교하고 꿀꿀하고 그렇죠, 뭐. 사실 그렇게 부럽진 않거든요. 돈이 많다고 행복해 보이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쩌지 못하는 위축감이 있어요. 집도 그렇고 저는 특히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지점으로 가면 많이 우울하더라고요. 아까 보신 아들놈만 해도 어릴 적엔 제가 가장 행복한 줄 알더니만요. 경제력으로 충분히 지원받는 친구들하고 비교를 하는 거예요. 왜 아니겠어요? 저도 눈이 있어서 다 보이는데... 벌써 돈에 민감하더라고요. 제가 준 결핍감으로 아이를 망치는 것 아닌가 싶고. 실질적으로 요즘은 성적도 비싼 학원 값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와 남편은 정말 무능한 부모거든요. 마음이 좀 아프죠.

 

그래, 부모 마음이 그렇지. 어이구, 정 선생도 엄마구나! 그렇지, 엄마지.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돈이 참 그래. 내 친구들 말이유. 돈이 많은 건 좋아. 대부분 신자들이거든. 다들 기도하며 부동산하고, 기도하며 아이들 좋은 학원 보내서 일류대 보내고 유학 보내고 그랬어. 그런 거 잘 되는 게 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하거든. 그럼, 하나님이 주셨겠지 뭐. 그런데 돈이 많은 것까진 좋은데, 그게 참 희한하단 말이지. 가만 보면 돈을 지키려고 사는 것 같아요. 정치고 뭐고 결국 모든 일의 판단 근거가 부동산이야. 아파트값 떨어지냐 마냐가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 같거든. 그것도 좋다 쳐. 그러다 보니까 정말 없이 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나는 그게 희한하단 말이지. 나는 신앙이 나이롱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온통 마음 쓰신 것 같거든. 이 친구들 나보다 믿음도 뜨겁고 내가 따라가질 못한 신자들이에요. 돈이 많은 건 문제가 아닌데, 돈이 많은데 마음을 맑게 비우고 사는 일이 어렵구나 싶은 거야. 나도 사실 거기서 크게 다른 족속은 아닙니다만.

 

선생님은 혹시 어릴 때나 젊을 때 어렵게 사신 적이 있으세요?

 

?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고생 없이 컸어요. 부모님 잘 만나서 하고 싶은 공부 다 했고, 결혼하고도 큰 부를 누린 적은 없지만 크게 고생한 것도 없지. 그래서 내가 교만했고, 그러다 큰코 다친 거예요. 그게 다 내 잘난 탓인 줄 알았지. 그런 게 다 자랑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선생님의 회심 지점인 것 같다. 50대에 겪으신 상실의 경험, 남편과 부모님을 비슷한 시기에 잃으셨던 그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남다른 통찰과 지혜, 깊이는 늘 그 경험과 닿곤 한다. 고난을 겪는 모든 사람이 성찰의 길로 들어서진 않을 텐데, 다시금 머리가 조아려진다.

 

돈 없이 사는 게 내 십자가인가

 

선생님, 저는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요. 공부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잘하고 그러면 언젠가 한 번 복을 받겠지, 했어요. 보상을 해주시겠지... 하하. 그게 안 되나 봐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봐요. 돈 없이 사는 게 내 십자가인가? 그런 생각도 해보거든요.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평소 무슨 걱정을 하고 살까, 쓸데없는 남의 걱정을 해요. 공부할 때 특히 그랬거든요. 저는 장학금 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학비 걱정 아니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었을까 싶어요. 헤헤, 해보는 소리예요. 제가 안 살아본 삶이니까요.

 

안 살아본 삶이라... 그렇지. 살아보지 않은 삶은 모르는 거야 정말. 내가 은퇴하고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평생 교수 이름값으로 비싼 상담 했거든. 받을 만큼 받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다르게 살아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지금은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되돌려준다는 마음으로 상담해요.

 

선생님, 그러면 상담비를 도대체 얼마 받으세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무료 상담은 아니시잖아요.

 

그렇지. 무료는 아니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며? 돈 가는 곳에 마음 가는 것이니 마음을 가져와서 상담받으려면 돈을 내야 해. 주님께서 딱 간파하신 것 같아요. 상담비는 천차만별이야. 내가 정하지 않고 내담자가 정해요. 낼 수 있는 만큼 정하게 해. 물론 기준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와, 그럴 수가 있군요. 멋져요, 선생님.

 

멋진 일이 아니고. 내가 그러면서 안 살아본 삶을 배운다니까. 현직에 있으며 상담할 때는 아무래도 비싼 상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만나지 않았겠어요? 지금같이 하다 보니 알음알음 오는 사람들이 다른 거예요. 정말 상담 개입이 필요한데 돈 때문에 접근이 불가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는 거야. 평생 상담하고 살았지만, 사람을 새로 배운다는 느낌이에요. 돈이 절대적으로 없어서 어려운 삶을 나는 모르는구나, 싶은 거예요. 그런데 분명한 건, 그래요. 돈이 없어서 오히려 행복을 아는 사람은 있는데, 돈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못 찾겠습디다. 이런 일이 있었다우. 재산을 많이 남기고 남편이 먼저 간 친구가 있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재산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 자녀들이 유산 문제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깊어지는 골을 어떻게 할 수가 없겠더라고. 친구는 남편 잃은 슬픔보다 살아있는 자녀들 잃는 고통이 더 컸을 것 같아. 문제는 그걸 지켜본 다른 친구들이 우리는 저러지 말자, 돈 다 쓰고 죽자, 사회 환원을 하자, 하며 반면교사 삼는가 싶더니 금세 잊어요. 돈 지키느라 또 전전긍긍이에요. 돈 많다고 돈 걱정 없는 노년을 사는 건 아니야. 하긴 돈이 좋지. 내가 그 어렵다는 사춘기 아들내미 마음도 샀잖아. 조금 전에. 하하.

 

그러네요, 선생님. 돈의 위력이 장난 아니네요. 그놈 아주 까칠하고 사람 보는 눈이 높은 앤데. 그 애 마음을 사셨네요.

 

그러니까 말야. 얘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에고, 선생님. 이 연세에 집도 없으시고... 방 빼야 하시고... 어쩌신대요? 헤헤헤. 저랑 처지가 비슷하세요.

 

그러게나 말이오! 하하하. (웃음을 멈추고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보신다.) 정 선생, 사는 게 힘들지? 그래도 난 정 선생이 행복해 보여. 살아보니 인생에서 끝까지 해결 안 되는 문제가 다들 하나씩 있더라. 정 선생은 자기 십자가라고 했나? 그 십자가 지고도 잘 사는 것 같아 나는 부러워요. 빈말 아니야. 내가 간간이 듣는 정 선생 가정 얘기, 일하고 신앙생활 하는 얘기 들으면 나도 젊어서부터 좀 저렇게 살 걸 싶거든. 속에 있는 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 됐지.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얘기가 정말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을까. 내가 솔직한 편이고 약점을 내 입으로 까발리는 그런 성격이지만 돈에 관한 한 수치심이 크다. 불쌍해 보일까, 취약해 보일까 돈에 연연하지 않은 척을 잘한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선 더더욱 괜찮은 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 선생님께 이런 얘기를 다 하게 되었을까. 털어놓고 보니 부끄러울 것도 없는 것 같고. 가난하면 얼마나 가난한가. 내 십자가니 뭐니 하는 말도 결국 자기 연민이며 욕망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다. 마음이 복잡하다. 복잡한데 가볍고, 뭔가 위안이 넘실대는 것 같기도 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할머니, 용돈 잘 주는 착한 할머니. 나도 그런 거 하고 싶다. 그게 못할 게 뭐야? 밥 한 끼 사주고, 용돈 몇만 원 쥐어 줄 돈이 내게 없냐고? 있네. 하면 되겠네.

 

오지 않은 노년의 돈 걱정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돈 걱정이 돈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오늘 분량의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돈 걱정 없는 인생이겠구나. 홍순관의 노래 한 소절이 마음에서 툭 올라온다. “죽음이 나를 털려 할 때에 빈주머니 내놓고 돌아가자 아버지 계신 그 집으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공명하는 노래이다.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갈수록 적어졌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죽은 다음에 뭐든 남지 않았으면 싶고.” 돈 걱정으로 자주 위축되고 자주 믿음이 흔들리는 내 마음에 심긴 한 말씀이다.

 

<시니어 매일성경> 3,4월 호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7

 

 

어서 와, 잠깐만! 이거 한 10분 보면 끝나요.” 현관문 열어주시고 바로 다시 소파에 가 앉으시더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뭔가 낯선 장면이다. 선생님과 드라마라... 드라마에 빠진 나의 () 현자(賢者)’ 최 선생님이라니! 한 손에 리모컨을 들고 넋을 놓고 계신 모습이 낯설고도 친근하여 웃음이 나왔다. “쯧쯧쯧,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어리석은 거지. 끝났네. 아아, 예고편 나오는구나. 잠깐만, 정 선생.” 그렇게 독백에 예고편까지 보시고 나의 최 선생님으로 돌아오셨다. 물론 표정은 아직 저 세상. 푹 빠지신 드라마는 몇 년 전에 방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나는 드라마는 못 봤지만, 작가인 노희경을 좋아한다. 포스터 이미지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신구... 내로라 하는 노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참! 당해야 알지, 암만, 암만(아직 드라마 속에 계심). 아이고, 정 선생. 내가 사람 앉혀놓고... 코로나로 어디 잘 나가질 못해서 심심하다니까 아들이 넷플릭슨지 뭔지를 연결해 줬어요. 그걸로 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말야. 노인네들 얘기라 보기 싫은데 또 궁금해서 보다 보니 끊을 수가 없네. 우습지?”

     보기 싫은데 다음 편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게 드라마의 묘미예요. 하하, 선생님 <디어 마이 프렌즈> 보시는 거죠? 재미있으세요?

     재미 없수다! 노인네 치매 걸리고 암 걸리는 얘기가 뭐 재밌어? , 이 드라마를 아네. 정 선생도 봤어요? 유명했었나 봐? 나야 노인네들 얘기니까 심심풀이로 보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보겠나?

     재미없어도 보는 젊은이가 있을 걸요. 헤헤. 선생님도 재미없는데 보시잖아요. 완전 재미없게 보시던데요. 화면으로 들어가셔서 대화도 하시던데, 재미없어서 그러셨죠? 저는 안 봤어요. 재미없어서. 헤헤.

     화면으로 들어가긴! 고현정인가, 하는 배우가 제 엄마랑 그렇게 싸우더니 암 걸린 엄마 보면서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가슴 아파서 그랬지. 마침 그 장면에서 정 선생이 들어와서, 조금 더 본 거야.

     맞아요, 선생님. 재미없으신데 그냥 약간 가슴 아프고, 막막 공감되고 그래서 화면으로 들어갔다 나오신 거예요. 히히.

      어허, 지금 나 놀리는 거구나. 으이그, 그래. 노인네가 드라마에 빠져서 침 좀 흘렸다. 됐냐? 됐어?

     (함께 와하하하 웃는다.)

     그런데 선생님, 낯설긴 한데 참 좋아요. 드라마에 빠져 있으신 모습요. 인간적이시랄까요? 어쩐지 드라마와 선생님은 잘 어울리질 않잖아요. 헤헤.

     왜 아니야. 내가 평생 드라마는 담쌓고 살았지. 볼 시간이 있었어야지! 이제 좀 봐보려 해도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안돼요. 집중도 안 되고. 그런데 코로나로 이 일 저 일 다 취소되고, 집으로 오던 상담도 줄고 하니 심심한 거야. 아들이 와서 넷플릭스에서 이거 봐바라, 저거 봐바라 하기에 보기 시작했더니 시간은 잘 가더라고.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일없이 하루 보내려니 얼마나 지루한지 모르겠어요.

     아아... 선생님...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복 받았지. 그동안은 뭐 심심하다, 어쩌다, 혼자 밥 먹는 게 쓸쓸하다 했지만, 늘 일이 있었잖우. 노인네들이 이러고 살아. 아하, 그래서 저 드라마가 재밌나보다. 노인네들이 친구가 있잖아. 심심할 겨를이 없는 노인네들이네.

     오호! 인정하셨어요. 재밌으시다고! 하하하.

     으이그, 증말. 그래, 재밌다, 재밌어. 좋아하는 얼굴 좀 보소. 장난꾸러기야. 드라마 잘 만들었어. 치매, , 황혼 이혼... 다 있을 법하게 얘기를 꾸며놨더만. 그나저나 정 선생도 봤어?

     아뇨, 저는 그 드라마 작가에 관심이 많아서요. 알고는 있었어요. 어쩐지 포스터가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떠세요? 선생님. 궁금해요. 현실적으로 그려진 노년의 이야기를 보시는 게요.

 

내가 최 선생님이 많이 편해졌나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질문이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치매, 요양병원, 독거노인의 쓸쓸함 같은 것은 민망하여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어쩐지 이제 편하게 말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노인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는데 말이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래요

 

     에잇, 현실적이긴 뭐가 현실적이야. 판타지야!

     그래요? 리얼하게 그렸다는 평을 본 것 같은데요. 치매 와서 요양병원 가는 김혜자 씨 보고 펑펑 울었다는 글 읽은 것 같아서요. 아하, 장르가 판타지였어요? 몰랐네요.

     어라, 잘 속네. 이번엔 내가 이겼다! 허허. 장르가 판타지가 아니라 드라마니까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다 있을 법한 얘기고, 연기들도 잘하니까 리얼해요. 나한테 닥칠 일이기도 하겠고. 그런데 좀 심사가 뒤틀리더라고. 다 좋은데, 저런 친구들이 어딨어! 싶어요. , 저런 친구들이 있으면 아무 걱정 없겠네 싶고. , 말하다 보니 진짜 그러네. 심술이 자꾸 나는 게 부러워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선생님, 드라마 제목이 <디어 마이 프렌즈>인가 보죠?

     맞아, 맞아. 어려서부터 함께 희노애락 나눈 좋은 친구들 얘기예요. 치매, , 앞뒤 꽉 막힌 꼰대 얘기가 아니라 노년의 우정이 주제예요. 드라마가 그렇지.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걸 유발해. 저런 좋은 친구들 나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나 봐.

     선생님, 그러니까 드라마죠오~ 드라마를 너무 안 보셔서 그래요. 이제 입문하셨으니 드라마 많이 보세요. 논문지도 하시듯 분석하며 보지 마시구요. 히히.

     그런가? 여튼, 시간은 잘 가서 좋아요.

     선생님 친구분들 있으시잖아요. 같이 여행도 가시고 하셨잖아요. 하긴 요즘은 여행은커녕 만나시기도 어려우시죠?

     그렇지. 코로나 아니어도, 다들 이제 몸이 안 따라줘서 해외여행 못 간 지는 꽤 됐고. 봄가을 날씨 좋을 때는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은 좀 했는데, 그것도 못하네요. 이러다 코로나 끝나도 여행은커녕 전처럼 만날 수나 있을까 싶어요. 몸들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니까. 집에 있으니 맨, 유튜브나 붙들고 있고, 카카오톡에 황당한 영상이나 올리고, 아주들 힘들어요. 어떨 땐 영상 올리는 걸로 싸움도 한다니까.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하, 선생님 진짜! 저 말이죠... 그런 게 힘들어서 친구들 단톡방에서 나온 적 있어요. 참다 참다 한마디 하고 나와버렸다니까요. 한창 바쁜데 카톡, 카톡 울려서 보면 영양가 없는 얘기, 근거도 없는 뉴스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거예요. 안 볼 수도 없고요. 다들 좋다 어떻다 하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하고요. 생각이 달라서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단톡방 규칙도 정해보고 그랬거든요. , 그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욱해서 나와버렸어요.

     오호, 정 선생이 성질부릴 줄도 알아?

     그럼요, 선생님 저 성질 더러... 아니, 저 까칠해요. 자꾸 선생님 앞에서 막말을... 히히. 저 이러다가 친구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라는데요.

     보험?

     네, 보험요. 친구들 모임에 목숨 거는 친구가 있어요. 결국 남는 건 친구다, 애들 키워봐야 결국 다 떠나고, 남편은 짐밖에 되지 않는다, 노년에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재밌게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 늘 보험이라고 하죠. 모임이 깨질까 전전긍긍이에요. 제가 단톡방 나왔을 때, 기겁하고 절 찾아왔다니까요. 나중에 후회한다면서요. 그때 친구가 그랬어요. 보험이라고.

     재밌네, 보험! 보험 사기당할라 조심하라고 해요. 공들여 부은 우정 보험에 사기당할 수 있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고. 허허.

     보험 사기? 그럴 듯 하네요. 아하, 보험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네 싶다가도 뭔가 좀 찜찜했거든요. 쟤가 저렇게 애쓰는데 바라는 것처럼 될까, 싶은 거예요. 친구 모임 지키느라 제일 애쓰고 걱정이 많은데요. 그래서 정작 친구들 때문에 행복해 보이진 않거든요.

     하긴 노인만 심심하고 노인만 두렵겠어요? 다들 심심하고 각자 다 외롭고 그래. 지금 외로우니 나중 외로움은 더 큰 걱정이 되고... 내가 그 드라마가 그래서 좋다니까. 우리 모두 그리는 따뜻한 우정 같은 게 있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또 놀리려고 저 눈동자 굴리는 거 봐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 푹 빠져서!

     히히, 인정하셨으니까 봐 드릴게요. (선생님께 다 들리는 혼잣말) 히히 선생님 놀리는 게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그래, 늙은이 놀려먹어 좋겠다. (멀리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시며) 드라마에서 김혜자 씨와 나문희 씨 보면서 죽은 친구 생각이 났어요. 벌써 5년이 됐어. 나랑 참 다른데 잘 맞는 친구였거든. 그 친구가 꼭 정 선생처럼 우스개소리 잘하고 그랬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친구분이요? 양평 나들이 함께 다니셨다는.

     그래, 맞아! 여기저기 나를 많이 데리고 다녔지. 나는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고, 학교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그 친구는 일찍 결혼하여 아이들 키우고 성당 열심히 다니며 봉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바쁘기도 했고, 먼저 연락하고 그러는 성격이 못 되거든. 늘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하고, 어딜 가자, 뭘 같이 하자면서 끌고 다니곤 했어요. 남편과 부모님 보내드리고 힘들 때 곁을 지켰던 친구고요.

     아, 각별하셨군요!

     각별... 그렇지. 각별한 친구지. 맞아요. (한참 말을 잇지 못하신다) 선물 같은 친구예요. 정 선생 친구 말마따나 나이 들수록 친구가 꼭 필요한 것 맞아요. 그런데 좋은 친구는 보험료 내듯 해서 얻는 게 아니야. 그 좋은 친구를 얻자고 내가 지불한 게 없거든.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에요.

 

서로 선물 같은 친구

 

이걸 겸손이라고 해야 할까? 선물로 얻은 친구라니. 늘 쉽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가볍게 하시는 말씀은 없다.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지만, 신앙의 용어로 표현하시는 일도 별로 없다. 지나치리만큼 이성적인 선생님이 맥락 없이 선물이라고 하시니 낯설다. 뭐라도 여쭤보고 싶은데 어쩐지 침범하기 어려운 침묵에 나도 입을 닫았다. 좋은 친구는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내 좋은 친구들과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지? 친구 얼굴 몇이 떠오른다.

 

     어쩌다 한 동네 태어났고, 한 학교에 다녔거나 어떤 환경에서 마주친 존재 아니겠소? 같은 공간에 있다고 다 친구가 되진 않았을 텐데, 성격이든 뭐든 통하는 것이 있으니 친구가 되었겠지. 친구가 되었어도 이사를 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멀어지기도 하잖아요. 내 보기에 친구는 환경과 성격의 산물이에요.

     오호, 산물에 점 하나만 바꾸면 선물이네요.

     그러네. 산물이 선물이 되는 게 친구네. 내가 이 드라마에 왜 이렇게 빠져드나 싶었더니 그 친구 그리는 마음이었 봐.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그립고 보고 싶고 그러네요.

    선생님, 그런데 그저 선물이라고 하시는 건 좀 그래요. 지나치게 겸손하신 건 아닌가요? 그 친구분께도 분명 선생님이좋은 친구셨을 텐데요.

     당연하지. 나도 그 친구에게 선물이 되었을 거라 믿어요. , 일방적인 사랑이었다고 들려? C. S. 루이스 알죠? <네 가지 사랑>이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전 읽었지만 인상 깊게 남은 것들이 있어요. 루이스는 개인의식이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 맺는 관계가 우정이라고 해요. 에로스나 부모의 자녀 사랑 같은 애정보다 더 숭고한 사랑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도 거기 동의해요.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자기들의 사랑에 매몰되죠. 하지만 친구들은 나란히 앉아 공통된 관심사에 함께 빠진다는 거예요. 친구가 둘일 필요도 없어. 셋도 넷도, 더 많은 사람과의 우정이 동시에 가능한 거죠. 젊은 한때 에로스 사랑이 강한 때가 있고, 아이를 키우거나 뭐든 돌보는 일을 할 때 부성애나 모성애가 필요한 시절도 있겠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멀어지는 때가 와요. 그때 필요한 것이 우정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늙을수록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가 되고요. 그런데 우정이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야. 보험료 내듯 관리해서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 선생님은 정말 찐 친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럼. 찐 친구를 말하지 가짜 친구 얘기를 하는 거겠어?

     가짜 친구가 많죠. SNS에 친구라 불리는 가짜 친구가 많아요. 선생님. 페친이라고, 페이스북의 친구가 있잖아요. ‘친구라는 이름의 인맥 구축 장인 것 같아요. 프로필 밑에 친구의 숫자가 뜨는데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야릇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친구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SNS에서 친구 숫자가 많은 것은 그저 얼마나 유명한지 보여주는 지표예요. 유명한 누구누구와 친구를 맺고, 같이 밥을 먹었다, 만났다 하는 걸 족족 사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저는 그런 글들이 오히려 외롭다, 친구가 필요하다로 읽혀요.

     그렇기도 하네. 나야 그쪽 세계는 모르니까. 어쨌든 좋은 친구는 하루아침에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지요. 대가를 많이 치러야지.

     엇, 선생님. 선물이라고 하셨으면서요! 대가는 또 무신 말씀요?

     대가가 있지. 인생 최고의 것을 얻는 건데. 그러면 선물로 온 친구와 더 좋은 친구 되기 위한 대가라고 합시다. 아니면 그냥 보험이라고 하든지, 적금이라고 하든지. (또 한참 말씀이 없으시다) 내 친구 말이에요. 일생에 그런 친구 하나 있어서 참 좋았구나 싶네.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학 때 단짝 친구로 만나 인생 굽이굽이 여러 산을 넘었어요. 내가 공부하러 나갔을 때는 거의 연락 끊고 산 적도 있고, 대놓고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오해도 있었고, 뭔가 서운해서 멀어진 적도 있어요. 진짜 친구가 된 건 오십 줄에 들어서였던 것 같아요. 오래도록 서로 풀리지 않던 마음이 있었는데, 속 다 내놓고 얘기하다 보니 유치하게도 서로에게 질투 같은 것이 있었더라고. 내가 없는 거 친구만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웠던 거지.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늙어가던 시절이 참 좋았어요. 내 인생의 선물 같아요. 남편이나 아들과 다른 것 같아요. 함께한 오랜 시간, 그 시간 동안 보일 꼴 못 보일 꼴 다 보인 것이 대가라면 대가예요. 관리하지 않았어.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어, 선생님. 그건 저도 동의해요. 제가 청년들 상담하면서 그런 얘기 자주 하거든요.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한, 그저 연애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한 건강한 연애는 불가능하다고요. 그렇군요! 좋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군요.

     그러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정 선생은 친구들 단톡방에서 탈출해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요! 다시 불려 들어갔죠. 창피했죠.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들어주는 상담가 역할 하면서 성숙한 인격자 연기 제대로 했었는데 다 망가졌어요. , 그런데 희한한 건요. 그때부터 애들이 서로 조심하고 다른 친구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이전보다 나아졌어요.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대가를 잘 치렀네! 진실해지려면 갈등을 피할 수 없어. 하지만 그걸 감수하기만 하면 다른 관계가 된다고. 그럴 수 있는 친구는 인생에 몇 없으니, 그렇게 조금씩 망가지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 봐요.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가 친구에 대한 그런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적당히 가면 쓰고 포장하지 않고, 감정 다 드러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우정 말이에요. 하긴 뭐, 실제로 그게 쉽겠냐만 그래도 보기 좋아요. 실제로 눈앞에 없다고 꼭 없는 건 아니니까.

     네? 없으면 없는 거죠. 드라마 속 친구가 내 친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난 있어. 눈에 안 보여도. 내 친구 천국 가고 여기선 볼 수 없지만, 내겐 있어요. 그 친구와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있어요. 믿어지지 않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 사무치는데 슬프지만은 않아요. 나한테 그렇게 좋은 친구가 있었단 사실이 변하지 않거든. 그 친구 생각하면,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해 주던 생각하면 어쩐지 내 인생 잘 산 것 같고,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그래요. 살아 있는 거지. 안 그래? 친구가 내 앞에 있다니까.

     어, .... 선생님 저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경지 같아요.

     하하하, 친구가 내 앞에 있어. 요기, 요기! 젊은 친구! 정 선생이 내 친구야. 늘그막에 만난 좋은 친구. 너무 늦게 든 보험인가? 나는 우정을 알아요. 그 친구가 알려주고 떠났거든.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물론 아무나와 그리 될 수는 없지만.

     네에... , 친구요? 스승님이신데... 하아...

     스승님을 그렇게 종일 놀려먹냐? 하하.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여성 철학자를 좋아하는데요. 키케로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우정, 노년에 관해 쓴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논평하면서 우정의 즐거움을 농담과 뒷담화라고 했어요. 맞는 말 같애. 마음 편히 누군가 뒷담화 할 수 있고, 농담할 수 있는 사이. 철학자에 따르면 나는 정 선생과 찐 친구야.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황이 되었고, 그리고 마음 깊이 감동이 되었다. 이후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내 좋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이 상해 누군가 뒷담화를 하고 나서 나를 어떻게 볼까걱정되지 않는 친구. 언제든 놀려먹고 장난 걸 수 있는 친구이다. 웬일로 전화냐고 묻는데 보고 싶어서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내 진심 또한 알아차렸을 것이다. 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정, 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더 잘 알아가려 한다. 우정이라는 선물을 누리는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이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시니어 매일성경> 2022 1,2월호 기고글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6

 

시어머니 자서전을 써드렸다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앞뒤로 매만지며 자꾸 말씀하셨다. “아휴, 참 그 어머니 복도 많으시다, 복도 많으셔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앞에 놓인 귤껍질을 찢고 또 찢어 쌓았다. 시어머니 자서전을 써드렸다. 최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일에 관심이 지대하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어머님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겠다고 추켜세우기도 하셨다. 말은 안 했지만, 나도 딴엔 대단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르고 작업을 했다. 며칠에 한 번 노트북 들고 어머님을 만나 시기별로 인생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프로필 사진을 새로 찍어 표지 이미지로 넣었다. 어설프지만 책의 모양을 갖췄다. 선생님께서도 꼭 한 권 달라고 당부하셨기에 가져가긴 했지만, 마음은 영 불편했다. “선생님, 나중에 보세요. 아니, 안 보셔도 돼요. 안 보셨음 좋겠네요.” 툭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아니, 왜애? 공들여서 이렇게 잘 만들어놓고?” “, 실패예요.” 속마음이 아니라 내가 모르던 마음까지 나와버렸다. 실패, 실패구나!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어느 병원에 가서도 이렇다 할 진단을 못 받으시는 시어머니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셨지만 강한 정신력과 신앙으로 고난에 지지 않고 잘 살아오셨다. 정신으론 승리한 인생이지만 그 대가를 몸이 치르고 있는 것일까. 이 병원 저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이 한동안 내 몫이었다. 자녀 된 도리, 의무감도 없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어머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것을 알았기에 함께 무엇이든 해드리자는 뜻도 있었다.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심리상담과 이런저런 치유 프로그램에도 모셔보았다. 몇 년 전 갑자기 시아버님께서 소천하신 이후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더욱 허약해지셨고, 나로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것이 자서전 쓰기였다. 배움에 대해 결핍감을 가지고 계시지만, 타고난 활자 지향 성향의 어머니께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한발 물러서서 당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삶을 구술하시는 동안 새로운 관점이 생길 거라 믿었다. 치유 글쓰기의 진수를 경험하시게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나 스스로 대견해서 신이 났다.

 

     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원고를 완성하고, 편집을 도와주던 선배 언니가 말했다. “자기야, 이 책 좀 위험해. 등장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어머니가 더 힘들어지실 수도 있겠어. 자기가 서문 격으로 해명하는 글을 하나 써라원고를 쓰면서 나도 우려하는 바였다. 거의 모든 내용이 억울함과 자기 연민의 독백이었다. 어머님 자신이 얼마나 의로웠고 외로웠는지, 헌신했는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몰라줬고. 얼마나 억울하신지. 나야 늘 듣던 이야기라 무감각했는데 제삼자의 눈엔 그렇구나 싶었지만. 다시 쓸 수도 없고, 다시 쓴다고 다른 내용이 될 리도 없다. ‘어머니만의 기억과 해석이니 널리 양해해 달라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의 해명 글을 붙여 책을 찍었다.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선배 언니의 예상처럼 돌아오는 반응이 싸늘했다. 힘이 빠졌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느낌 지울 수 없었는데, ‘실패라는 말을 내뱉고 나니 더욱 실패감이 밀려들었다.

 

책 한 권 쓴다고 인격이 달라져요?

 

     팔려고 만든 책도 아닌데 실패는 무슨 실패? 이런 책에 실패가 어딨어?

     없나요? 그죠? 없죠. 실패가 어딨어요…… 하아, 그렇지만 아무튼…… 읽지 마세요. 선생님. 읽으실 내용도 없어요. 그냥 뭐 저희 어머니께나 기념이죠.

     뭐 이렇게 심드렁해졌어? 그렇게 신나서 열심히 하더니. 큰일 해치우고 나니 허탈하신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요, 뭐 그냥. 저 혼자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무슨 기대가 그리 크셨길래? 뭘 기대했는데, 무슨 실망을 하셨을꼬?

     그러게요. 친척분들이나 어머니 친구분들이 불편해하시겠다는 예상은 했었구요. 그렇죠 뭐. 아무래도 오롯이 어머니 입장이니까요. 같은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실 분들이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더 반응이 쎄하더라구요.

     그러기도 하겠다. 그럴 수 있겠네. 그런데 반응이 차가운 게 정 선생에게 그리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아니요. 예상했던 건데요……. 그러니까요. 예상했던 일인데 뭐가 이리 불편한 거죠? 좌절감이 들고…… 이제 더는 방법이 없겠구나, 싶어요.

     방법이 없다니? 무슨 기대가 따로 있었나?

     실은요, 선생님. 몇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머님의 신체화된 증상들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몇 번 상담도 시도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어머님 말마따나 화병이라면요. 그러니까 오래오래 쌓인 감정에서 오는 거잖아요. 그 오랜 감정들을 오직 분노, 원망으로만 드러내시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 감사한 것뿐이다고백도 하시지만, 일상적 대화에서는 남 탓과 비난을 주로 하세요. 물론 표현은 부드럽지만요. 표현은 부드럽지만, 알고 보면 비난과 원망인 것이 더 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서전을 빌미로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시며 감사, ! 언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감사 요법이요.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건망증이 심해져도 나쁜 기억은 오히려 끝까지 남는다면서요? 나쁜 기억으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억울함과 자기 연민 같은 걸 잘라내는 방법이 감사라고 하셨었죠? 자서전을 쓰기를 통해 인생을 돌아보며 감사를 발견하셨으면 싶었어요.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좋은 며느리네. 나는 그저 글 쓰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선물로 책 한 권 만들어드리나 했는데. 그 노인네 부럽다아!

     아니에요, 선생님. 좋은 며느리는요. (울컥) 쓸데없는 짓 해서 불화만 만든 것 같아요.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려니 목소리가 떨린다.)

     (등을 토닥이시며) 정 선생 마음고생이 크구나.

     대단한 칭찬을 바랬던 건 아닌데. 친척분들은 물론이고 남편 형제들도 굳이 왜 불행한 과거를 들춰서 책까지 내냐는 식인 데다, 어머님은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성찰은커녕 책 자랑에만 여념이 없으시니…… 제가 뭔 짓을 했나 싶어요.

     뭔 짓은? 아름다운 짓을 했지. , 80년을 살아온 노인네가 책 한 권 쓴다고 갑자기 인격이 확 달라져요? 심리 치료하는 사람이 그렇게 순진해? 사람이 그렇게 쉽사리 바뀝디까?

     아뇨, 선생님. 글쓰기 작업은 좀 달라요. 제가 여성들 치유 글쓰기 모임하고 있잖아요. 상담이나 심리치료와 다르다니까요.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놀랍게 관점 전환이 되더라고요. 제가 농담으로 그런다니까요. , 글쓰기의 이런 효과가 알려지면 상담사들 다 굶어 죽겠다.

     에잇, 소문내지 마. 나 굶어 죽기 싫어.

     헤헤, 선생님. 상담으로 돈도 못 버시면서요.

     아하, 웃었다! 이제야 웃네.

 

     그제야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부풀린 꿈이 컸던 것 같다. ‘책이 만들어질 즈음에 어머니는 분노와 남 탓을 내려놓고 한결 편안해지겠지. 어머님의 달라진 태도를 보는 가족들은 내게 얼마나 고마워할까…… 앞으로 나도 편해질 거야. 탓하고 비난하는 말씀 덜하실 테니 전화 통화가 훨씬 편해질 거야.’ 어머님 자서전을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썼던 거다. 선생님 앞에 주절거리다 보면 절로 알아지는 내 마음이 있다. 정작 선생님은 몇 마디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것이 내공인가? , 배우고 싶다.

 

신앙 좋다는 교인들이 제일 어려워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어려운 거지만. 노인네 감정은 더 그래. 단순해서 더 복잡해.

     네? 감정요?

     그래요, 감정, 어쩐지 그 어머니 마음 알 것도 같아서.

     에이, 무슨요! 두 분이 다르세요. 선생님은 평생 마음 다루는 일 하셨잖아요. 저희 어머닌 신앙은 뜨거우신지 몰라도 정말 당신 마음을 모르세요. 그게 어려운 거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신다니까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거고요.

     자기 마음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다고? 허허, 자기는 자기 맘 알어?

     네? ... 제 마음. 모르죠. 하지만 그래도... (, 방금 전까지 내 마음 나도 몰라 헤매고 있었지!) , ... , 잘 몰라요. 헤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자서전을 쓴다, 내 자서전을 쓴다고 생각하면 일단 기승전결 따라가 멋진 결말이 떠올라. 결말은 당연히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 이렇게 되겠지? 흔히 상상하는 이야기 틀인데. 어쩐지 당신 시어머니 자서전이 솔직해서 재밌잖아. 나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나를 몰라준 사람들아, 세상아! 내가 너한텐 이게 섭섭했고, 또 그 옆에 있는 너한텐 이것 때문에 억울했다! 이런 말 속 시원히 한 번 하는 것도 좋겠잖아.

     하, 선생님. 지금 병 주고 약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자서전을 쓰고 곤혹을 치루고 있다니까요.

     곤혹은 당신 일이고. 나는 그런 상상 해본다고. 나도 그렇게 한 번 써 볼까? 하하. 내가 제일 억울하다! 내가 제일 열심히 살았다! 내가 제일 착하다! 하하. 내가 제일 잘났다! 이거 뭔가 통쾌한데.

     하하하하, 선생님, 진짜. 아닌 게 아니라 편집해주던 선배 언니가 그런 표현을 했어요. 제게 해명 글을 하나 써서 덧붙이라면서 그러더라구요.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나쁜 X들아!’라고요. 저는 실은 그게 제일 힘들고 속상했던 것인데, 그래서 요 며칠 잠도 잘 못 잤는데,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평생 상담하면서 내가 제일 어려웠던 내담자가 신앙 좋다는 교인들이에요. 믿음이 좋은 건 백 번 귀한 일인데. 그것이 참 미묘해요. 믿은 좋은 사람은 미워해도 안 되고, 화내도 안 되고, 심지어 슬퍼해도 안 되고, 우울해도 안 된다 여겨.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잖우. 좋을 때가 있으면 미울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고. , 왜 성경에 예수님도 슬퍼 눈물 흘리시고, 화도 내시고, 욕도 하고 그러던데. 감정 자체는 옳고 그른 게 아닌데요. 신앙의 이름으로 감정을 누르고 억압하는 것이 병이 되는 거, 잘 알잖아. 상담하다 보면 왜 방어기제라는 게 있잖우. 제일 힘센 방어기제가 하나님이야. 자기 문제를 봐야 할 즈음이 되면 하나님 뜻, 하나님 은혜로 퉁 치고 도망가는 거야. 그러니 뭐 마음의 핵심 문제를 어떻게 다루겠어? 모르긴 해도 정 선생 시어머님도 그러실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인생 살아오셨으면 당연히 억울한 것이 많고, 섭섭함도 쌓여 있겠지. 신앙 때문에 미운 사람 제대로 미워하지 못하고, 사랑하자 사랑하자 덮고 오셨겠지만. 몸이 제일 정직하다고. 몸이 더는 그 억압을 버티지 못한다니까. 자서전 덕분에 세상에 대고 야이, 나쁜 년들아!” 한 번 하셨으니 잘하셨네. 며느리가 판을 잘 깔아드렸어.

     그, 그렇게 되나요?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깔아드린 판은 말하자면 감정 토로 그만하시고 성찰하고 감사하시라는 판이었죠. 그런데 말씀 듣고 보니 어머님께 필요했던 건 성급한 성찰이나 감사로 끝나는 매끈한 결말이 아니었단 생각이 드네요. , 선생님 그러네요. 치유란 면에서도 그렇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신앙의 용어로 괜찮다고 덮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어머님 몸을 아프게 했던 것인데요. 실은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죠.

     우울이나 분노 슬픔 같은 부정적이라고 불리는 감정들이 우리에게 없어야 할 것처럼 여기잖아요. 없어야 할 것이니 당장 썩 물러가라! 한다고 사라져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느껴야 하고, 표현해야 하고, 거기다 공감을 받아야 해요. 노인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잘했어. 며느리가 당신 얘기를 들어주고 써주는 그 자체가 치유였을 거야. 당장 큰 변화는 없어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르게 보여요. 정말 보람이 1도 없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거든요.

 

화석이 되어 가는 회고적 감정

 

     진정한 감사로 가기 위해서는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마주하는 게 필요해요.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의 감정은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어. ‘회고적 감정이라고 하지.

     아, 회고적 감정이요?

     응, 회고적 감정. 모든 감정이 그렇지만, 정 선생 시어머니가 늘 느끼던 것, 그래서 결국 책에도 그리 담길 수밖에 없었던…… 아까 뭐라고 했지? 본인만 의로웠고, 외로웠고, 그걸 몰라줘서 서럽고 억울하다고 그랬나? 그런 감정들이 과거를 향하는 감정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뿌리 깊다는 거예요.

     그렇죠. 뿌리 깊죠. 일종의 집착 같다는 생각도 해요. 어떤 방식으로 느끼겠다, 작정하신 것 아닐까 싶어요. 섭섭해서 섭섭한 것이 아니라 섭섭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섭섭하달까? 그런 틀을 좀 깨야 당신 마음도 편해지고 몸도 덜 아프시지 않을까 하는 거죠.

     말 잘했다. 어떻게 느끼기로 작정한 바가 사람마다 있다니까. 80 평생 굳어져 온 감정의 패턴이 있고, 거기에는 그 시엄마의 인생이 담겨있을 거야. , 왜 눈 온 날 길에 자동차 길 생각해봐요. 한 대 두 대, 지나가기 시작해서 바퀴 길이 나면 뒤에 오는 차들은 저절로 그 모양 위로 가게 되거든. 감정에 길이 난 거야. 80년 그 모양대로만 다녀서 다져지고 다져졌으니 다르게 느끼는 걸 못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자서전 쓴다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오래오래 쌓여서 지금 모양이 된 어머니의 감정 패턴이, 회고적 감정이라고 하셨나요? 바뀔 리 없다니 다시 힘이 빠지네요. 히잉, 아주 선생님 제 감정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시네요.

     하하, 딱히 그 말만은 아닌데. 내 얘기는 정 선생 너무 애쓰지 말라는 거야. 마음은 알겠다. 자기가 하는 일로 시엄마 돕고 싶은 거. 마음의 병으로 몸까지 아픈 시어머니 고쳐보겠다는 뜻도 보기 드물게 귀한데. 잘하려 하다 생기는 부작용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부작용요?

     그래, 부작용. 오늘 부작용이 증상이 심한 것 같은데? 하하. 사람 마음, 그러니까 감정 말이야. 안 바뀌어. 생각을 바꾸는 건 그나마 빠르지. 하긴 뭐 노인네 생각이 바뀐다면 그게 기적이지만. 아무튼! 정 선생 내 말 한 번 따라와 봐. 눈을 감고 5초 후에 기쁜 감정을 느껴 봐. 센다. , , , , . , 기쁜 감정이 됐어?

     아, 아니요. 어떻게 5초 안에...

     좋아 그러면 5초 후에 선생님 집 식탁을 떠올려 봐.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것들도. 어때?

     이건 떠오르죠.

     이거야. 생각은 그나마 바뀌는데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아. 특히 의지로 바뀌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정 선생이 애초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세워놓고는 거기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금 자책하고 있는 거라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 시어머니 안 바뀌어.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끝내 원인 진단 못 받고 그 정도 고통 지니고 사실 거야. 마음에서 기인한 신체화된 통증, 그것 역시 어머니 인생에 대한 회고적 반응일지 몰라요.

     아...

     자서전 써드린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모르긴 해도 당신 시엄마는 책 쓰는 게 좋았던 게 아니라 며느리가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토 달지 않고 얘기 들어주는 것이 좋았을 거야. 실은 노인네에게 필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우. 나는 사실 당신 시엄마 무척 부러운데, 책 하나가 부러운 건 아니다. 이런 며느리 있는 게 부럽지. 에잇, 질투나! 내가 질투 나니까 너무 잘하지 마. 살살해. 좋은 며느리, 착한 며느리 하려고 너무 애쓰다 과부하 걸리면 다 집어치우고 싶어 진다. 하하.

 

     도달하지 못할 목표. 이 말이 마음에 콱 박혀 며칠 떠나질 않는다.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자주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내가 뭘 그렇게 잘하려고 애쓴다고 저러시나, 싶었는데 조금 알 것도 같다. 맞다, 첫 만남에서 선생님이 나에 대한 인상을 그렇게 말씀하셨었지. 강의 들으면서 어깨에 힘을 빡 주고 키보드 두드리며 노트 필기 하더라고. 힘을 빼고 노화의 강에 몸을 맡기라고 하셨었다.

 

     어머니 자서전이 불러일으킨 감정이 복잡하다. 바뀌지 않는 어머니로 화가 나고, 바꾸지 못하는 나로 인해 실패감에 절어 있었는데, 어머니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구나. 80년 쌓인 회고적 감정, 그것도 내 마음 아닌 어머니 마음 바꾸겠다고 끙끙거릴 것이 아니구나. 그나마 아직 석회화가 덜 된 내 몸과 감정 돌아보기를 시작해야겠구나. 언젠가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 ‘좋은 노년은 없다. 좋은 중년의 결과일 뿐이다도 다시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치유적 자서전을 쓸 골든타임은 노년이 아닌 노년 초입, 즉 중년인지 모르겠다. 어머니께 기대했던, 자신의 생을 성찰적으로 돌아보며 감사의 열매를 찾아내는 것 말이다. 내가 지금 해야, 지금 시작해야 그 열매를 따 먹는 노년을 살게 되지 싶다.

 

     선생님의 노년이 어떻게 이렇게 지혜롭고 평온하시냐고 다시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치실 것이 뻔하다. 추측할 수 있다. 50대쯤에 겪으셨던 삶의 위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방향의 전환이 크게 있었다는 것을. 아마, 그때로부터 선생님은 당신의 회고적 감정을 적극적으로 마주하셨을 것이다. 감정을 건강하게 대하시는 비결도 조금 안다. “에잇, 질투 나!” 그때그때 감정을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고 내보이시는 것. 실은 이 모습이 가장 닮고 싶고 멋져 보인다. 이 말씀도 자주 하셨지.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 그거 별거 아냐. 자기 진짜 감정을 아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그런 사람에겐 자꾸 다가가 말 걸고 싶거든.” 다루지 못한 회고적 감정이 쌓이고 쌓여 화석이 되기 전에, 오늘 지금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지! 그래야겠다.

 

시니어 매일성경 2021 11-12월호 기고글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5

 

다 좋은데 저러셔서 힘들어

 

풍성한 식사였다. 주꾸미 볶음이 주메뉴인 줄 알았는데 세트로 묶여서 나온 메밀묵 국수에 메밀전병까지. 풍성하고 조화로웠다. 함께 마음공부로 만나 학구열을 불태웠던 선생님들과의 식사라 더 좋았다. , 물론 모든 영광은 우리의 물주이자 미리 답사까지 하며 식당을 선정하신 신 최 선생께 돌려야 한다.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인연이 된 몇 사람과 정례 모임을 하고 있다. “오는 게 어렵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모여요.” 최 선생님 한 마디에 장소는 붙박이가 되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공부 모임이라 배울 것이 많다. 장소 제공뿐 아니라 근처 맛집을 알아보시고, 미리 답사까지 하며 식사 자리를 준비하시는 최 선생님 덕에 먹는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자리를 옮겨 선생님 댁 거실에 모여 앉았다.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식후에 마실 커피를 준비해갔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드립세트까지 챙겼다. 내내 하늘이 묵직하더니 후두둑 장대비가 쏟아졌다. 흐린 날, 비 오는 날엔 밑으로 깔리는 커피향이 유난히 감미롭다. , 이거 날씨까지 받쳐주는군!

 

원두를 미리 분쇄하지 않고 굳이 핸드밀까지 챙겨갔다. 야심차게 커피를 갈았다. 핸드드립 커피가 가장 매혹적일 때는 분쇄될 때 퍼지는 향이다. 막상 드립하는 순간이나, 특히 마실 때는 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나저러나 거실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찼고, 여느 카페 못지않다며 좋아들 했다. 좋은 것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기쁨이 있다. 무엇보다 최 선생님께 꼭 한 번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댁에서 흔히 말하는 봉지 커피, 인스턴트 커피를 드신다. 나의 민감함, 지나친 걱정이긴 한데. 고혈압에 당뇨도 있으신데 그걸 계속 드시는 게 늘 마음이 쓰였다. 신선한 원두커피를 드시면 좋을 텐데, 싶어 언젠가 한 번 제대로 소개해드려야지 하고 있었다. “어머나, 입이 개운해지네. 그냥 쓴 아메리카노 커피하고 다르구먼. 입안에 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신기하다, 깔끔하네. 그거.” 일단은 성공!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차 막히기 전에 출발하자던 소리를 몇 번이나 하다 일어서려는데 저녁 먹고 가라고 붙드신다. “이왕 늦은 거 저녁까지 먹고 가지. 맛있는 코다리 냉면집 있어.” 여러 번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어려운 선생님 말씀이니 조금씩 난감해하면서도 재빠르게 찻잔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나라도 좀 더 있다 나올까 싶었지만,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 밖에 홀로 서 계신 선생님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꽉 차도록 서 있는 우리, 넓은 공용 현관에 홀로 서 계신 선생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던가. “선생님, 다 좋은데 저러셔서 힘들어. 갈수록 더하시는 것 같애.” 닫히는 시간보다 18층을 내려가는 시간이 더 짧은 것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한두 사람이 이심전심 맞장구치는 눈치였다. 무슨 말이지? 싶었는데 지하철까지 가는 차 안에서 오가는 말로 알아들었다. 선생님 오랜 알고 지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편한 제자들을 만나시면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것이다. 점심 약속이어도 저녁까지 먹을 생각을 하고 하루를 다 비워두어야 한다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말했다. 짧은 수다의 여운을 남기고 그들은 지하철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최 선생님의 오랜 제자도 한 사람이 있고, 나보다 오래 선생님과 알고 지낸 사람도 있다. 표현은 조심스러웠지만, 뒷담화였다. 오래 만나온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선생님의 모습을 알 수도 있겠고, 내 생각과 다를 수 있겠지. 혼자 남은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최 선생님에 대한 내 선망이 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선생님 자신도 늘 말씀하시고 있고. 그분이라고 흠이 없을 수 없는데, 마음이 상한다. 넓은 집에 홀로 남아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서글퍼진다. 길은 또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실시간 빠른 길을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더듬어 찾았다. 가방 안에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주머니에도 없고. 신호에 멈춰서 바닥 여기저기를 봐도 찾아지지 않는다. 선생님 댁에 두고 왔나? 전화를 드려봐야... 아니, 전화기가 없지. 차를 돌려야 하나, 싶은데 이미 순환고속도로에 올랐고 이제야 길이 뚫리기 시작이네. 할 수 없다. 일단 집으로! 뭔가 하루를 제대로 망친 느낌이다.

 

종종 전화기 두고 가구려

 

다음 날 아침 다시 선생님 댁으로 갔다. 다른 날보다 더 반갑게, 심지어 살짝 들떠서 맞아주시는 선생님 뵙는 게 어쩐지 민망하다. “종종 전화기 두고 가구려. 바쁜 사람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좋네. 하하.” 밝은 표정을 뵈니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선생님 혹시 전화기 숨겨두셨던 거 아녜요? 한 번 더 오게 하시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모닝커피를 했다. 긴 여름이 드디어 끝난 건지, 아침 바람이 선선하다. 선생님은 예의 그 달달한 삼박자 커피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봉지씩 뜯어서 탔다.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무슨 향기 안 나? 좋은 냄새 안 나요?

, 글쎄요.

모르네. 자기가 남겨둔 향을 모르는구먼. 아니, 어제 커피 내리고 갔잖아요. 아까워서 커피 가루를 버리질 못하고 식탁에 두고 잤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 나왔더니 향이 나더라고. 정 선생이 왜 이 커피 노래를 불렀는지 알겠다니까. 그것참 깔끔해지는 게 커피 향이 입 계속 남아 있더니만. 커피가 커피지, 그럴 줄 몰랐네.

제가 노래를 불렀나요? 하하. 작전 성공이에요. 선생님, 커피를 조금 바꿔보세요. 제가 핸드드립 하는 거 가르쳐 드릴게요.

하이고, 살림도 안 하는데 커피 살림을 차리라고? 됐어요. 한 번 맛본 것으로 족해요.

아니에요. 선생님. 살림까지 안 차리셔도 되고요. 장비도 몇 개 안 되고, 재미도 있으실걸요. 무엇보다 건강에도 좋으시고요. 커피는 제가 로스팅해서 드릴게요. 지금 이 커피는 몸에는 안 좋은 거 아시죠? 선생님 설탕 좀 조심하셔야 하는 거…….

여기 시어머니 하나 또 있네. 잔소리꾼은 우리 아들 하나로 족한데. 프림 커피 마시지 마라, 밀가루 먹지 마라, 운동을 어떻게 해라, 아주 성화예요. 내가 이 나이에 아들 몰래 뭘 숨겨두고 먹게 된다니까. 고맙지 뭐. 내 걱정해서 하는 거니까. 정 선생도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께선 음식에 관한 한 가리는 게 없으신 것 같다. 그 연세에 떡볶이나 피자 같은 것도 좋아하시고. , 단지 커피만이 아니라 건강 때문에 분명 금하셔야 할 음식이 있는데도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걱정을 더 하게 되는 건가? 물론 나로선 좋다. 함께 식사할 때마다 댁 근처 식당 중 새로운 집을 찾아 데려가 주시곤 한다. 가리는 게 없으시니 다양한 걸 맛보고 좋지만, 식사 전후에 한 줌씩 드시는 약을 보면 또 이래도 되나 싶은 것이다. 수퍼푸드다, 건강보조 식품이다, 먹을거리에 생명줄이 달린 것처럼 사는 노인도 많이 본다. 아침에 토마토 한 개를 반드시 먹어야 하고, 비트 주스를 마셔야 하고, 탄수화물은 끊어야 하며, 오메가3니 글루코사민이니 꼭 챙겨야 할 건강보조식품도 있단다. 주워들은 정보만 가지고도 한참 더 떠들 수 있다. 선생님도 조금 더 신경 쓰셔야 하는 것 아닐까, 아드님의 잔소리에 힘을 보태고 뵐 때마다 식생활 지킴이 역할을 좀 해드릴까.

 

선생님은 먹을 것을 좋아하세요? 그래 보이시진 않는데.

왜애? 혹시 식탐을 묻는 거유? 돌려 말하는 건가? 허허허, 먹을 것 조심하라고?

(화들짝) 아니요. 히히. 건강 때문에 음식조절들 많이 하잖아요. 선생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건강에 관한 관심? 염려? 이런 것 없으세요? 설탕 많이 든 커피 막막 계속 드시고요?

그 말 하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내가 언젠가 말했잖아요. 노인들한텐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묻지 말고 안 아픈 데를 물어보라고. 내 몸 여기저기서 아이고, 아이고, 신음을 해요. 걱정 많이 되지요. 이러다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나,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먹을 거 조심해봐야 무병장수와 크게 상관도 없다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상관없기는요!

그래? 그러면 상관있다는 증거를 대 봐. 내가 다방 커피 끊고 정 선생 알려주는 커피 마시면 몇 년 더 살아? 당황하기는! 하하.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로제토 마을이라는 장수마을이 있었어요. , 지어낸 얘기 아니고 리얼리티. 196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로제토라는 마을이에요. 이 지역에서 오래도록 일했던 의사 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강의 때 여러 번 했던 얘긴데도. 아무튼, 65세 미만의 지역 주민 중에 심장병 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해요. 이유를 찾다가 연구를 시작했는데, 환경이 비슷한 주변 지역 사회와 비교해보니 이 지역 주민의 사망률이 35퍼센트나 낮았던 거예요. 그 원인이 유전자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식단은 더더욱 아니었대요. 왜냐하면, 로제토 주민들은 설탕이 든 간식거리, 고기 기름에 요리한 소시지 같은 것을 유난히 즐기는 데다 직접 포도주를 담가 독한 술도 마시고, 흡연도 하고, 비만도 흔했대요. 여러 해 연구한 결과 건강과 장수의 비밀이 풀렸는데, 허망하게도 남다른 사회성이라는 거예요.

에이, 선생님. 사회성요? 상관있는 증거 대고 계신 거 맞죠? 그걸 어떻게 측정하고 증명해요?

역사적인 맥락이 있었어요. 이곳은 19세기 말에 이탈리아 로제토 발포르토레 출신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낯선 곳에 정착해서 건강에 좋다는 지중해식 식단은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특유의 쾌활함과 사회성을 발휘하면 산 거죠. 힘겨운 이민 생활을 하며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주민들끼리도 끈끈했던 거예요. 틈날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가족 경조사를 기념한다든가, 크고 작은 자율적 시민 단체를 만들어 소속되어 활동하고, 이웃 간에 사이좋게 지내며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요. 이게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었던 거지.

아아,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유쾌함, 대가족 중심으로 모여 먹고 하는 분위기 뭔지 알 것 같아요. 영화에서 많이 봤어요. 그렇군요. 아까 1960년이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그 마을이 여전한가요?

로제토 효과라고 하는데, 이걸 연구하던 다른 의사가 예측했어요. 로제토 주민들이 특유의 공동체적 생활 양식이나 사회성을 잃게 되면 건강상태가 곤두박질쳐 사망률이 다른 미국 마을들과 비슷해질 거라고요. 아닌 게 아니라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지역 사람이 유입되고, 그 정신은 흐려진 거죠. 젊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즉 큰 집 멋진 자동차 등 호화로운 생활을 꿈꾸며 마을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오밀조밀한 작은 집에서 살며, 부를 과시하는 법이 없었대요. 그런데 이제 보통의 미국 마을이 된 거예요. 1971년 이 마을에서 55세 미만인 사람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일이 처음 발생하고, 70년대 말에는 사망률도 다른 지역과 비슷해졌다고 해요.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 한 가지만 하라고 한다면 나는 건강식 대신에 정 선생과 기분 좋은 밥 먹는 걸 선택하겠다 이 말이요! 하하. 그러니까 우리 집에 자주 오라고. 수퍼푸드를 먹고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면 좋겠지. 하지만 뉴스란에서 보는 수퍼푸드 효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건강에 좋은 것은 사회적 관계예요. 많은 연구 결과들이 그렇게 말해요.

아하, 그러니까 앞으로 쭉 설탕 듬뿍 프리마 듬뿍 든 커피를 계속 드시겠다, 상관하지 마라. 이런 말씀이신 거죠?

하하하, 그렇게 되나? 그러네. 놔두구려. 달달하고 구수한 맛에 커피 마시는 거야. 정 선생 손으로 내리는 스페셜 커피는 인정해 드리리다.

, 감사드리고. 저도 선생님 건강 비결이 제자들의 존경, 좋은 사회적 관계에 있으시다는 걸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내가 졌다. 내 무덤을 팠구먼.

진심인데요. 선생님.

이건 데이터일 뿐이고. 건강과 장수를 보장하는 기적의 음식이 따로 없는 것처럼, 사회성 또한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요. 그리고 먹는 습관, 관계 맺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 나이의 몸 상태는 어쩌면 살아온 방식의 결과죠. 그래서 결과로 만족하고 건강을 위한 노력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좋은 노년은 없어요. 좋은 중년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에요. 나이 들수록 한계가 있죠. 한계가 있어요.

한계. 한계요?

그래요. 나는 사실 복 받은 노인이에요. 아직 찾아주는 제자가 있고, 마음이 딱 맞는 건 아니지만 한 번씩 만나 밥 먹고 수다 떠는 친구들도 있고, 저도 힘든데 반찬 만들어 가져오는 여동생도 있어요. 영양제에 건강보조식품 사다 쌓아 놓는 아들도 있고. 그래도 보통은 늘 혼자 먹는 밥이에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인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데. 현실은 그저 혼자 먹어야 하는 밥. 이게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요.

아아.

어제만 해도 그래요. 사람들 저녁 먹고 가라는 말을 매정하게 거절하고들 갔잖우. 나는 정 선생은 더 남아서 같이 저녁 먹어줄 줄 알았지. (윙크, 찡긋)

, ... , .... 집에 애들 먹을 걸 안 챙기고 나와서요.

 

혼밥도 소명이구나

 

선생님이 진심 섭섭해하시는구나, 당황이 되었다. 함께 하는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고 편하게 해주시는 감각이 탁월하신 분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연세 노인들에게 흔히 볼 수 없는 태도이며 감각이고,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제 차 안에서 들은 뒷담화가 다시 떠올랐다. 한쪽에선 부담을 느끼고, 한쪽은 섭섭해하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과, 밥 한 끼 더 먹고 가라는데 그걸 안 들어준다고 섭섭해하시는 선생님. 평소 같으면 상대 입장을 먼저 헤아리실 분인데, 이해는커녕 섭섭해하시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리고 알 것도 같다. 혼밥, 정말 싫으시구나. 혼밥이 싫어 한 번이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상대 배려하는 감각을 이긴 것이다. 시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씀이 있다. “뭘 먹어도 맛이 없다. 음식 해서는 다 버리게 된다. 뭐가 좀 맛있어 보여 사와도 반도 못 먹고 버린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있어야지.” 그 말씀을 나는 더 자주 와라, 심지어 너희와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해석해서 듣고 마음의 짐을 스스로 지곤 한다. , 정말 혼밥이 싫고 힘드시구나! 어머님도, 최 선생님도.

 

아이고, 뭘 그렇게 당황하고 말을 잃어요? 농담인데. 그렇단 얘기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을 좌우한다면, 어제 점심 같은 식사로 내 건강 유지하는 거예요. 그러네. 말해놓고 보니, 그럴싸하네. 하하. 맛있는 음식을 맛있지? 맛있네하면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건 건강도 건강이지만 영혼까지 밝게 하는 것 같아요. 밥 잘 사주는 예쁜 할머니 해주고 얻는 복이에요. 그게 제대로 먹는 거지. 하지만 내 나이, 형편에서 어찌 늘 그걸 식탁을 바랄 수 있겠소.

아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이러면서도 또 잘 살아. 잘 먹고. 다 사는 방법이 있어. 어쩌면. 혼자 먹는 밥, 혼자 있는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노인의 소명인지도 몰라요.

 

둘째 아이가 어렸을 적에 고관절 골절로 입원해 계신 제 외할머니를 보며 수수께끼를 만든 적이 있다. “부탁하고, 하고, 해주고, 부탁하는 게 뭐게?” 스핑크스 퀴즈의 아류였다. 정답은 사람. 아기 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모든 걸 부탁해야 했고, 누나처럼 청소년이 되면 혼자 지하철도 탈고, 모든 걸 하고. 엄마가 되면 아이를 돌보고, 늙은 할머니도 돌보는 해주는존재가 되고, 외할머니처럼 노인이 되면 다시 아기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버전으로 그 퀴즈를 바꾸기도 했었다. ‘받아먹고, 떠먹고, 떠주고, 다시 받아먹기는 과정도 인생이다. 언젠가 나도 혼밥하는 생활을 할 수도, 그러다 받아먹는 시간을 살아야 할 수도 있겠구나. 인간의 길이구나! 혼밥의 외로운 시간, 그러다 침대에 누워 받아먹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을 과연 소명이라 이름하다니! 그렇구나, 노년의 시간에도 소명이 있구나.

 

휴대폰만 찾아서 바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이른 점심을 함께하고 돌아왔다. 새로 찾아낸 맛집이라며 코다리 냉면집으로 안내하시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 느리고 무겁게 느껴졌다. 2층에 있는 식당이라 나 혼자 같으면 단숨에 걸어서 오를 텐데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선생님은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하시지만, 느껴지는 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늘 배우기만 하고,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죄송했는데 오늘만큼은 더 당당하고 기쁘게 먹었다. 선생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해서 기쁘고 맛있게 먹어야 할 단 한 번의 밥상이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의 관건이라니, 나 역시 주어지는 한 끼 한 끼를 그렇게 먹어야 하지 않겠나. 혼밥을 소명으로 먹어야 하는 날이 오기 전, 오늘 중년의 밥상이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 매콤하고 새콤한 코다리 냉면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께 메시지가 하나 와 있다. “집에 왔는데 어제 커피 향이 아직도 힐끗 나네. 정 선생이 남긴 향기 같아요. 고마워요.” , 혼자 계신 넓은 거실에 남은 타인의 흔적, 친밀한 타인의 흔적을 느끼시는구나. 원두 찌꺼기의 향이 얼마나 오래 가랴. 그 거실과 식탁이 너무 외롭지 않길. 생의 노을이 물드는 시간, 쓸쓸하지만 찬란한 한 노인의 소명의 시간에 원두 향보다 깊고 따뜻한 그분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시니어 매일성경] 9,10월호 기고글

<기독교세계> 7,8월호 기고글

 

 

K에게.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늘 궁금했는데 연락해 볼 생각은 못했네요. 건강해졌다는 말 들으니 안심이 돼요. 그리고 아직도교회에 다닌다니 애석하고도 기쁘군요!^^ 첫 만남이 떠오르네요. 글쓰기 모임, 정확히 말하면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이었죠. 저물녘 호수 둘레를 걷는 K의 모습을 상상해 봐요. K의 글에 자주 등장했던 장면이죠? 걷다 보면 글쓰기 숙제에 관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셨어요. K가 썼던 진솔한 글, 그 글을 낭독하는 떨리는 목소리도 다시 살아오는 것 같아요.

 

이런 이름의 모임에 있는 저 자신이 믿어지지 않아요. 제목(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자조. 모임.) 중 어떤 단어에 끌렸냐고 하셨지만, 이런 단어를 나란히 놓고 읽어야 한다는 게 싫고요. 남의 일 같은 이 일이 제 일이라는 게 어렵기만 하네요.”

 

이렇게 말했지요. 그런 모임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우리예요. K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K뿐 아니라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자매들을 만나며 수도 없이 해본 상상이죠. 어떤 자매의 말이 떠오르네요. 그 고통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주시길, 그 기억이 저장된 뇌세포를 도려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고요.

 

맞아요. 지우고 싶은 그 고통으로 연결된 만남에서 위로 그 이상의 것을 얻었던 것은 아이러니예요. 옆방 사무실에서 일하던 간사님들이 궁금해 기웃거릴 정도로 크게 웃는 일이 많았죠. 그러다 어느새 하염없이 울기도 했고요. 그야말로 울고 웃는 모임이었어요. 저도 그립네요. 첫 만남의 긴장감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으면서 감정의 강이 자연스럽게 흘렀던 것 같아요. 웃어야 할 때 거침없이 웃었고, 그러다 갑자기 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K만 해도 그래요. 첫날의 경직된 표정만큼이나 반달눈을 하고 웃는 모습도 생생하거든요. 성폭력 피해자 모임에서 깔깔 웃는 소리라니! 누군가는 피해자다움을 들이댈지 모르죠. 성폭력 피해자의 표정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누가 뭐라든 치유적이었어요. 울고, 웃고, 분노하고, 아파하던 그 자리요.

 

그 말을 기억하고 있군요! 그래요, 제가 여러 번 말했죠. 발설이 그대를 구원하리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었어요. 고마워요,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줘서. 겪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구원의 첫발이 되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오늘 메일로 만나는 K는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변화의 시작이 쓰고 말했던 그때였다니 고마울 뿐! 함께 읽었던 김영서 작가의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기억나요? 목사인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의 기록이죠. 거기 나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 버릴 거야라던 그 사람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사실을 말하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내가 집에서 아빠에게 겪은 일을 한 사람 두 사람 외부인에게 말하게 된 때였다.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아빠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K의 메일을 읽자니 저자의 이 고백 못지않은 힘이 느껴졌어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가슴으로 알아듣고 있다니 뭉클하네요. 그렇죠?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달라요. 폭력을 당하고, 우리가 의식적으론 알아요. 잘못된 일을 당했다는 것을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내 잘못으로 가져오죠. 많은 학대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가해자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게 되는 거예요. 힘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학대가 남기는 치명적인 상처죠. 더욱이 가해자가 목회자라면 깊은 영적 상처가 될 거예요. “그 자리에 왜 갔느냐, 제 발로 간 것 아니야, 저항하지 않았잖아!” 같은 2차 가해의 목소리는 흔하고, 잔인하게 음해하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피해자는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죠. 자아의 분열 속에서 몸과 마음은 얼어붙고, 주입된 감정이 작동하죠. “내 잘못이야.” 스스로 자기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상태에서는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요. 발설이란 불가능하죠. 게다가 가해자가 존경받는 목회자인데요. 내 말을 믿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모임이 서로에게 제공한 것은 안전함이었을 거예요. 안전하다는 믿음 속에서 어렵게 입을 떼보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쓰고 말하는 연습을 했던 건데. 그 짧은 만남 이후로 혼자 보내는 시간 쉽지 않았을 텐데, ‘내 잘못이 아니었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니요. 어떻게 치유의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돼요.

 

성폭력 피해자들이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분열된 몸과 영혼으로 입은 닫은 채로요.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고통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요. 없는 척 눌러둔 상처는 반드시 되돌아와요. K에게 일어난 일처럼, 조용히 무너지던 마음이 몸으로 신호를 보내죠. K 말대로 무너진 몸, 몸이 보낸 증상들이 결국 K를 살리는 일이 되었네요. 청년부 시절 담당 목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도 전과 다를 것 없이 신앙생활 했다고 했었죠.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무리 없이 했고요. 겉으로는! , 겉으로는요. 진실을 억압한 채 겉모양만 유지하는 괜찮은 삶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잠들지 못하는 밤, 끝없는 무기력과 여러 증상 끝에 결국 몸이 무너졌죠. 그렇게 병원에 가게 되었고, 비로소 묻어두었던 그 일이 드러났어요. K 말대로 부서질 대로 부서진 상태가 되어 병원에 가게 된 거네요. 정신과의 약물이나 여타 치료로 효과를 보면서도 병원에 계속 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어요. 치료 과정 중 의사에게 들었다는 말, 제 마음에도 아프게 살아있네요. “목사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직 교회에 다녀요? 하나님 얘길 아직도 해요?” 그리고 건강해지려면 종교활동을 끊으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했죠.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 큰 혼란에 빠졌고, 아마 그즈음 글쓰기 모임에 문을 두드린 것이었죠.

 

제가 K를 자주 떠올렸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때문인 것 같아요. K가 썼던 글, 했던 말 중 기억나는 것들이 있어요. 목사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은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었죠. “왜 아직도 교회를 다니냐는 말을 듣고 광신적 행위로 비치는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이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려면 정말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혼란스럽다고 했었어요. 막상 교회로 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면(털어놓을 곳도 없었겠지만) “용서해라, 은혜로 잊어라라는 말에 증상이 더 악화되고요. K의 이런 이야기들을 정말 아프게 들었어요. 우리 생존자 모임에도 교회에 발을 끊은 지 오랜 분들이 많았어요. 무신론자를 표방하는 분도 있었고요. 성폭력 경험을 진실하게 마주할수록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커지는 것이 당연해요. 목사에 대한 분노가 쏟아져 나와 말이 거칠어질 때마다 혼란스러워 흔들리던 K의 눈동자를 기억해요.

 

교회와 멀어지고 떠나는 것은 아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은 그런 맥락 안에 있겠지요. 이 딜레마는 여타 성폭력 피해와 다른, 성직자에 의한 폭력이 유발하는 영혼의 고통이에요. 정신-신체적, 심리적 처치를 통한 치유와 함께 깊은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것이지요. 성폭력 피해, 특히나 영적 권위자인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한 영혼을 어떻게 분열시키고 망가트리는지 피눈물이 나도록 생생하게 목도 했습니다. K는 바로 그 지점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던 것이고요.

 

오래전 상담했던 한 분이 떠올라요. 청소년 시절 열심히 따르고 배웠던 목사에게 성폭행당했지만, 회복의 여정을 잘 통과하셨어요. 어릴 적 경험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증언하고 공론화하여 가해자 목사는 법적 처벌까지 받았죠. 그런데 모든 과정이 끝나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긴 싸움의 과정에서 자신을 돕던 기독교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으셨대요. 이분은 청소년 시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그루밍 성폭력이란 이름을 붙인 후 심정적으로 신앙에서 완전히 떠났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 거침없이 살았지요. 비슷한 또래의 활동가들을 보면서 떠오른 거예요. “나도 한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잊었던 어릴 적 꿈이 생각났지만 이제 자신은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청소년 시절 내내 가해자 목사에게 배웠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것은 결국 그 목사의 말을 듣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대요. 이 말을 들은 날 밤, 저는 분노와 슬픔으로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한 청소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기도하며 키운 꿈, 이제는 망가지고 짓밟힌 이것을 어떻게 다시 이어붙이고,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 목사가 감옥에 가고, 목사직을 박탈당한다고 해서 되돌려질까요.

 

성폭력은 몸은 물론 존재 깊은 곳에 해로운 수치심을 심는, 영혼을 향한 폭력입니다. 수치심은 존재 자체에의 부끄러움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있는 온갖 선하고 아름다움까지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미워하게 만듭니다. 참가자 어느 분이 썼던 표현이 생각나요. 반짝반짝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중등부 시절 목회자에 성폭력을 당했지요. 어느 글에서 이런 표현을 했어요. “나는 내가 반짝거린 게 부끄러웠어.”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자신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출구 없는 자기 혐오의 덫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아이가 신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매개자, ‘중간대상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상()’을 투사하는 중간대상이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영적 부모가 되는 것이고요. 때문에,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은 하나님 상에 치명적인 분열을 유발해요. 존경하던 목회자에게 배웠던 그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하나님을 만나는 다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정신과 약으로, 심리치료로, 단순한 기도로 되지 않는 영혼의 치유입니다. 혐오스러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성직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른 한 목사의 얼굴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지요.

 

한때 영적 부모였던 사람이 동시에 치명적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반갑습니다. 섣불리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도요. 맹목적인 용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목사 중 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큼 K가 강해진 것 같아요. 아픔과 혼란 속에서 아직 교회에 다니고, 아직 기도하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 K가 존경스럽습니다. 보고 싶네요. 얼굴 마주하고 차 한 잔 할 날을 그려보겠습니다.

 

정신실(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소장)

 

 

사진 출처_https://gettyimagesbank.com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4

(시니어 매일성경 2021/7-8월호 기고글)

 

 

전화기 발신자 창에 최 선생님 성함이 떴다. 어쩐 일이시지? 먼저 연락하시는 일이 거의 없으신데. 그것도 문자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를? 하는 생각과 동시에 , 오늘 뵙기로 한 날이었던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 선생, 오는 길이에요?” 벌써 도착할 시간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고 하시는 거다. , 이 집 나간 정신! 어쩌면 좋단 말인가, 죄송해서 전화기 붙들고 몇 번 절을 하고는 끊었다. 다음에 보자고 하셨으나, 그대로 차를 몰아 선생님 댁으로 갔다. 지난 만남에서 다음 약속을 잡으며 조정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날짜 몇 개를 오가다 잘못 메모해둔 것이다. 그 순간 번쩍 생각날 일이 어쩌자고 그전까지 까마귀 고기였던 것이냐.

 

헉헉,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전화를 받는 순간, 딱 생각이 났지 뭐예요. 다이어리에 맨 처음 약속한 날짜를 적어둔 거예요. 일정 조정은 오늘에 맞춰 다 해놓고... 메모는 그대로 두고 그것만 들여다보면서 다음 주라고... 헉헉... 아, 진짜... 죄송해요.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뛰면 얼마나 더 빨리 온다고. 이러고 숨을 헐떡거리며... 아휴, 숨 좀 돌리고 얘기해요.

정말. 젊은 것이 이렇게 정신을... 선생님도 실수하지 않으시는데요. 선생님 앞에서 죄송한 말씀인데, 선생님 저 요즘 건망증이 장난 아녜요.

(정색) 아니 자기 건망증인데 왜 나한테 죄송해? 늦어서 죄송한 건 몰라도...

 

정색하고 말씀하시더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무셨다. 가볍게 한 말인데, 어느 지점에서 불편하신 거지? 맞다. 따뜻하고 배려 깊으신 분이지만 당신의 감정을 속이지는 않으시는 일이 없다. 불편한 것을 애써 감추지 않는 분이라 차라리 더 편하고 좋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하신 듯하다. 약속을 잊거나 늦은 것으로 화내시는 분이 아니다. 그건 나도 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마음이 섭섭함으로, 실망스러움으로. 짧은 시간 만감이 교차했다.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미안해요. 당황하게 해서. 내가 노인이면서 노인 취급 당하는 것은 싫은가 봐. 자존심인가. 선생님 건망증 얘기를 하면 되는 거지. 나를 빗대는 것이 그렇게 들려요. 노인에게 건망증은 당연한 건가? 노인은 무조건 기억도 흐릿하고, 둔하고 그런 존재인가? 말로 하자니 더 치졸하구먼. 노인은 당연히 어떠어떠하다는 선입견 깔린 말들이 싫어요. 흔한 일이니까 보통은 어쩌겠나 싶어서 참고 마는데, 정 선생이 편한가 보네. 버럭, 부끄러운 모습을 내보이고. 아이고, ! 민망하다, 민망해.

 

그러고 보니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보기 드문 존경스러운 노인이며 심지어 닮고 싶은 노인이시다. 그것은 무엇보다 당신의 노인 정체성을 편안히 수용하시는 모습 때문이다. 동시에 노인 우대는 거부하곤 하셨다. 말하자면 이런 경우이다. 댁에서 함께 뭘 먹다 주방에 필요한 것을 가지러 가야 할 때가 있다. 당연히 몸이 빠른 내가 벌떡 일어나 가려 하면 극구 말리시며 굳이 당신이 직접 다녀오신다.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그런 노인을 많이 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선생님 무릎이 좋지 않으신 걸 안다. 한 번 일어났다 앉았다 하시는 게 힘겹다는 것을 양가 어머니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럴 때는 못 이기는 척 경로 우대 카드를 쓰셔도 되는데 말이다. 외부에서 여럿이 만나게 되어도 지하철로 어디든 오시겠다고 한다. 공평하게 중간 지점으로 정하는 것을 주장하곤 하셨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싶었는데 조금 이해가 된다.

 

마음이 상했나 보네. 노인네가 이래서 힘든 거야. 미안해요, 정 선생. 고깝게 듣지는 말아요.

아, 아니에요. 선생님. 마음 상한 것 없어요. 당황하긴 했는데요 이해가 됐어요. 잠깐 혼자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정말 괜찮아요. 헤헤.

괜찮은 거 맞죠? 당황해서 말을 잃었나, 마음이 상해서 할 말이 없는 건가 싶었어요. 괜찮다니 됐고, 시간이 얼마 없으니 교정 본 것 확인해봅시다.

네네, 아휴 다시 죄송해요. 저 정말 요즘 좀 심하다 싶어요. 며칠 전에는요. 택배가 와야 할 게 있는데 안 오는 거예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전화를 했죠. 분명히 한참 전에 보냈다는 거죠. 택배사에도 연락하고 옥신각신했는데... 이게 웬일이에요. 선생님, 글쎄 제가 그걸 고이 베란다에다 모셔둔 거예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까맣게 생각이 안 나요.

하하하, 꼬시다! 사람이 그런 맛이 있어야지.

아니 웃으실 일이 아니에요. 저 정말 선생님께 상담하고 싶어요. 심각하다니까요. 그리고요. 선생님, 단어가 생각이 안 나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몇 년 전에 선배 언니 한 분이요. 말을 하다 말고 거시기, 그 뭐냐, 그거 있잖아... 이러는 걸 가지고 엄청 놀렸거든요. 영민한 언니였어요. 그래서 더 재미졌죠. 그런데 제가 요즘 그렇다니까요. 제가 외우는 데는 기계에 가까웠거든요. 사람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요. 거의 모든 찬송가의 가사를 1절부터 4절까지 다 외웠다고요. 하... 요즘 제가 하는 짓들이 이해가 안 돼요. 선생님, 저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문제는 무슨! 그럴 때가 됐지.

그럴 때가 됐다고요? 갱년기 증상인가요?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선생님은 지금도 기억력이 좋으신데요. 뭘 잊고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늘 정확하시던데요.

내가 이 수첩을 괜히 손에 붙이고 사는 줄 알우?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의 가방엔 늘 손바닥만 한 수첩이 들어있다. 전화 통화를 하신 후에, 나하고도 약속을 잡으신 후에는 영락없이 바로 다이어리를 꺼내어 적곤 하신다. 한 바닥의 한 달 일정표에는 상담 스케줄이 빼곡하다. 여백으로 남은 날을 볼펜으로 톡톡 치시며 이날 어때요?” 하시는 모습은 참 정겹다. 아마 먼 훗날 최 선생님을 떠올린다면 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이 사람 또 생각이 어디로 가 있어?

엇, 네? 뭐라고 하셨어요? 잠깐 딴생각... 아니 딴생각이 아니고요. 선생님 다이어리 말이에요. 다이어리에 메모하시는 모습이 참 정겹다는 생각했어요. 헤헤.

다이어리? 수첩이지, 수첩. 전화기에 있는 걸 쓰면 편하다고들 하는데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면서 손으로 한 번 더 기억하는 게 좋지. 내가 쓴 글자를 보면서 확인하는 맛이 있지요. 아니 실은 신문물 어려워요. 쓰건 게 편하지.

선생님, 저도 다시 손으로 다이어리를 써야 할까 봐요. 아니면 기억 붙들어 매기 훈련 같은 걸 하든지요.

안심을 시킬 방법이 있는데 해줄까, 조금 더 놀릴까? 하하. 기억과 노화에 관한 논문들이 그러는데, 정 선생 안심하래요. 허허. 분명히 기억 용량이 줄고, 집중시간 짧아지고, 암기력은 떨어지지만, 전반적 인지기능은 오래 유지돼요. 적어도 내 나이에 이 정도 유지할 만큼을 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다르시죠. 저는 선생님처럼 되지 못할 것 같다니까요. 아, 저 오늘 왜 이리 징징거리죠? 하하하.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왜 그러긴 왜 그래? 나도 정 선생 나이 때 그랬다는 얘길 듣고 싶어서 그러지. 하하, 나도 그랬소, 하면 안심이 되겠어요? 재미있는 비유를 읽은 적이 있어요. 노년의 기억력 감퇴와 인지능력의 발달에 대해서요. 그게 지금 딱 맞는 얘기가 되겠네. 그걸 대서양 횡단 비행에 비유하더라고. 비행기는 이륙 후 급하게 고도를 높여야 한대요. 그러고 나서는 한참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죠. 착륙하기 전의 활강은 무척 길어요. 대서양 한가운데서 벌써 착륙이 시작되는 것이죠. 막 활강을 시작할 때, 기장이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고 해요. 이때 불안해서 창밖의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너무 빨리 내려가는 거 아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50이 그런 나이라고 해요. 활강을 막 시작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실제로 고도는 거의 낮아지지도 않는대요.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딱 지금 정 선생이 느끼는 불안감 아니야? 하하.

맞아요. 선생님! 벌써? 벌써 이런 정신이면 5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10년 후에는? 싶은 거죠.

긴 활강의 시작이에요. 서서히 내려가야 하는 것은 맞고, 기억력이 낮아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지. 50부터는 어떤 의미로든 생의 오후, 내려가야 하는 시기니까요. 인지발달의 그래프도 아래로 가겠지. 날 봐요. 서서히 사라진 인지능력이지만 아직 멀쩡하잖우. 물론 생각 안 나도 나는 척, 기억하는 척 잘 감추고 있기는 해요.

꺅, 정말요? 선생님. 하하하.

에이, 괜히 말해줬네. 너무 좋아한다. 2, 30년 서서히 내려가요. 내 나이쯤 되면 이 활강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얘기하다 보니 나도 선생님 나이 즈음에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한창 바쁘게 일하고 성취에 매여 있던 때라서 제대로 맞닥뜨리지 못했어요.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는나보다. 기억나는 척, 알고 있는 척하면서 정신없이 살았죠. 지금 정 선생처럼 천진하게 실수를 마주하지도 못했던 것 같네. 일에 취해 내 상태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으니, 이러나 저러나 정신줄 놓은 건 마찬가지구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크게 위안이 돼요. 실은 건망증이 심각한 지금 현재보다는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요. 이러다 금방 치매라도 오는 건 아니야, 싶거든요.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치매는 나보다 선생님께 더 가까운 두려움이 아닐까. 금기어를 내뱉은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 정색하며 하신 말씀을 이내 떠올려 어설픈 수습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활강을 시작한 거고. 선생님도 나도 내리막길에 서 있는 것은 마찬가지. 라고 생각하니 괜한 안절부절이 사라졌다.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도 편안하게 말씀하셨다.

 

치매, 두렵지. 확률상 내가 더 가까이에 있죠. 하지만 이것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증가하지만 65세 이상이던가? 하여튼, 5% 정도 된다고 해요. 다른 병에 걸릴 확률에 비해 특별히 높은 것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어쩌면 기억력 감소는 그 자체보다 그에 따른 불안, 이러다 치매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혹여 그래서 우울증에 빠진다면, 불행하게도 우울증은 기억력에 치명적이거든요.

그렇군요! 선생님 뵙고 얼마 안 되어 하신 말씀 기억나요. 주름진 얼굴,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요. 기억력의 감퇴 역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네요.

맞아요. 아까 말한 활강이 시작되는 시점, 갱년기라고들 하죠. 갑작스러운 변화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 얼마나 많게요. 한동안 내 친구들도 치매 예방 시술, 운동, 건강보조식품 정보들 공유하곤 했어요. 하긴 지금도 그러고 있긴 하지만. 아까 말한 기억력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기억력 저하에는 별다른 치료제가 없어요. 기억력 향상이나 치매 예방을 위한 탁월한 훈련도 없고요.

선생님, 어떤 논문이에요? 읽어보고 싶네요.

논문 말고 책을 한 권 읽어요. 네덜란드 심리학 교수던가? 아닌가? 하버드 교수인가? 여하튼 그래요. 제목 묻지 마요. 생각 안 나니까! 하하 참. 암튼 서재에 있어요. 이따 갈 때 가 읽어 봐요. 기억력은 자극받지 않으면 더욱 감퇴하게 되어 있어요. 제일 좋은 자극은 사회적 활동, 인간관계예요. 그러니 내가 정 선생에게 감사하지. 이렇게 나랑 같이 일도 하고, 놀아주고, 예상치 않게 약속을 까먹는 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아이고, 오늘 저녁 맛있는 거 사줘야겠네. 그런 면에서 나는 특별한 복을 누리는 거죠. 혼자 살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조금 다른 의미로도 느껴져요.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저만 해도 솔직히 좋아서 오는 거고, 제가 얻을 게 있으니까 오는 거죠.

아이고, 기분 좋다! 노인네에게 얻을 게 있다니. 오늘 저녁 진짜 소고기 사줘야겠네.

 

선생님은 은퇴한 상담심리 교수로서 여든을 넘긴 연세에 아직도 상담 일을 하고 계신다. 상담료가 무료인 경우는 없지만, 상담비를 내담자가 형편에 맞게 정하도록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회기에 만 원을 받기도 하신다고. 그걸 알고 놀랐더니 현직에 계실 때 상담료 비싸게 많이 받았다고, 이젠 봉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었다. 사라져가는 기억력, 인지능력에 연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시는 것이었구나. 그 연세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총기는 여기서 오는 것일까? 선생님도 나도 잠시 말을 잃고 생각에 빠졌다. 거실 창밖 멀리 비행기 한 대가 간다. , 공항이 멀지 않구나. 이륙인가, 착륙인가. 방향 감각이 없어서 통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라는 비행기는 착륙을 위한 긴 활강을 시작했다는 것. 오늘 알게 된 확실한 사실이다.

 

어허허, 저기 비행기 뜬다. 뜨는 거냐, 내려오는 거냐 난 잘 모르겠어. 정 선생 그런데 내가 오늘 잘난 척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로 그리 의연하지 않아요. 생각은 생각이고 감정은 감정이잖소. 두렵고, 아득한 마음이 늘 있어요. 치매, 두렵지. 여기저기 아플 때는 이러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짐덩이 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고요. 언제나 생각보다 가까운 건 감정이니까요. 모를 거예요. 50대 정 선생 나름대로 염려가 있겠지만, 이 나이, 이 몸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죠. 왜 그렇게 봐요? 앞뒤가 다르지? 하하.

그러니까 서, 선생님도 그런 두려움이 있으신 거군요... 아아...

결국, 온다면 어쩌겠어요.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치매가 치매인 나를 망각하게 하는 것일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잖아요. 다만 경험상, 치매의 증상은 억압된 나쁜 기억과 관련이 있다고 느껴져요. 누구는 예쁜 치매, 미운 치매라 부르기도 하더라고. 내 보기엔 나쁜 기억에 집착하고 괜한 불안에 매여 있는 것보다 주어진 오늘 잘 사는 방법밖에 없어요.

아, 선생님.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그래요. 치매 노인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것이요, 평생 집착하던 것이 남는구나! 싶대요. 돈, 먹을 것, 비난이나 욕설 같은 것들 말이에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휴우, 정 선생. 이 얘기 그만합시다. 뭐 좋은 얘기라고.

 

익숙하고도 낯선 예의 그 쓸쓸한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무셨다. 그 표정을 지으실 때마다 박완서 선생의 노년을 주제로 한 소설 제목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도 가닿을 수 없는 선생님만의 세계 같이 느껴진다. 언젠가 내 몫이 되겠지.

 

, ! 지난번에 양평 갔다 올 때 틀어준 노래 하숙생 말이어요. 덕분에 노래 찾는 법을 알게 되어 요즘 젊을 때 좋아했던 노래를 잘 찾아 듣고 있네.

히히, 다행이에요. 그런데요. 선생님, 저희 음악치료 하다 보면요, 음악 선호도 파악이 중요하거든요. 음악 선호도에서 나이가 들수록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세대 음악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2, 30대 때 유행했던 노래를 가장 좋아한대요. 선생님도 그러신 건가요?

, 그래? 음악도 그렇구나! 내가 아까 말했던 책에서 망각의 역현상 효과라는 말이 나와요. 나이가 들며 기억력이 현저하게 감소하는데, 오래된 기억들은 더 또렷해지는 현상. 그게 주로 20대 기억이라는 거죠. 가령 노년에 쓴 자서전들을 모아 비교해보니, 20대 어간의 분량이 제일 많다는 거지. 실은 이게 연구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게 내가 실감하는 거예요. 고독하고 쓸쓸하니까 인생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던 시절을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억이라는 게 의식의 작용 같지만 실은 무의식적 작용이 크거든요. ,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잖아요. 기억 저편에 있던 장면이 갑자기 생각난다던가.

선생님, 그러면 젊은 시절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르세요?

아니지. 건망증이 심해서 다 까먹어도 나쁜 기억, 아팠던 기억은 잘 잊히지 않잖아요. 잊고 싶은 건 오히려 더 생생하지. 억울한 것, 섭섭한 것도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지요.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감사 요법이에요. 아까 말했 듯 치매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로 가자는 노력이에요. 좋은 기억은 좋아서 감사하고, 억울하고 아팠던 일들이 떠오르면 그런 날을 지내고도 이만큼 사람 꼴로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요.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알아요? 나치에 항거하다 젊은 날 순교했던... 순교 직전에 쓴 편지 내용이라던가? 언제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안 난다니까, 이렇게! 허허허. 짧은 이 말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감사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걷는다.” 내가 믿음이 한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살아야지 싶어요. 오늘 괴팍한 노인네 성질 못 숨겨서 미안하기도 한데 덕분에 여러 생각 해보게 됐네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가끔 약속 까먹어줘. 허허.

 

빌려주신 책은 네덜란드 호로닝언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다우어 드라이스마(Douwe Draaisma)<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다. ‘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기억, 시간, 나이. 딱 오늘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주제다. 짧고도 긴 대화 중 세 개의 그물에 결국 걸린 것은 감사. 감사!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기나긴 활강의 시간을 위하여! 최 선생님의, 나의, 나의 벗들의!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3

 

 

어느새 온통 한 덩어리의 푸르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의 빛깔이 제각각이었다. 연두, 연두 같은 연보라, 조금 짙은 연두, 일찍 철든 아이처럼 벌써 진해진 초록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제각각 짙어지더니 신록의 정점에 이른 것 같다. 정점에 이르니 이 나무 저 나무 구분이 안 된다. 양평 가는 강변길을 달린다. 왼편에는 한 덩어리의 신록이 넘실대고, 오른편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이 고요하다. 최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드라이브라 설렘 그 이상의 긴장이다. 이 순간 이 풍경이 선생님 마음에 꼭 들면 좋겠다는 간절함에 마른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평소 같았으면 “와아, 너무 좋다!” 연발하며 설레발쳤을 텐데, 오늘 이 나들이를 도모한 호스트로서 손님의 평가를 기다려야 했다. 말없이 차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시는 나의 VIP 최 선생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자동차는 빠르게 달리는데 선생님 앉으신 강 쪽 풍경은 그림처럼 멈춰 있는 듯하다.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니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무리한 제안을 한 것은 아닐까.

 

전부터 약속된 날이었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를 해오셨었다. 집에 손녀딸이 와서 지내고 있으니 다음에 보자고 하셨다. 그러겠노라 전화를 끊고는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모시고 드라이브를 한 번 가면 어떨까. 자연을 그렇게나 사랑하시는 선생님께 내가 좋아하는 두물머리의 한적한 강변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졌다. 다시 전화를 드려 댁에서 손녀와 함께 계셔야 할 것이 아니라면 밖에서 뵙는 것은 어떠신가 여쭈었다. “나야 감지덕지 좋지요. 정 선생이 수고스러워서 그렇지. 내가 지하철로 정 선생 근처로 갈 테니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 나는 소풍 같이 안 가요.” 하며 좋아하셨다. 흔히 말하는 ‘벙개’다. 갑작스레 신나는 일을 도모하고 성사된 기쁨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도통 요즘 이런 일이 있어야 말이지.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고 만나야 하니 만나는 사람들이니! 그야말로 소풍 가는 날 아이 마음으로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텀블러 두 개에 나눠 담아 준비하고, 차에서 틀 음악까지 선곡해두고 있었다.

 

두물머리 나들이

 

잠실역에서 만날 때만 해도 내 마음이 선생님 마음이려니 했다. 이 청명한 날씨에 나들이가 설레시겠지. 운전을 놓으신 지 한참 되셨고, 맘 편한 드라이브는 오랜만이실 거야. “어이구, 늙으니 호강하네! 하나 힘든 거 없어요. 지하철이 다 데려다주는 거 뭐가 힘들어요. 얼마 만에 양평 나들이인가.” 소풍 날 들떠서 나눈 인사 끝에 잠시 조용해진 틈에 조용필의 ‘허공’을 딱 틀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십팔 번이라며 언급하신 노래다. “어허, 이 사람 센스 하고는!” 하셨다. 음악이 끝나고 뭐라도 말씀하시길 기다리며 달리다 어느새 팔당대교를 넘고 양수리 근처 강변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처음엔 노래로 회한에 잠기신 것인가 싶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듯 점점 더 말씀이 없어지시고, 어쩐지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들떠 있던 마음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보자고 하셨는데 굳이 이렇게 나오시게 한 것이 결례가 된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오래도록 제가 서울 동편에 살아서요. 마음만 먹으면 휘리릭 나와서 달리고 걸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이렇게 좋은 경치를 2, 30분 만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같아요. 언젠가 꼭 선생님 모시고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이구야, 내가 정신이 딴 데 가 있었구나! 고마워요, 나도 아주 좋아하는 곳이에요. 친구들과 한 번씩 바람 쐬러 와보기도 했고요. 아, 수종사라고 알아요? 그 앞마당에 서면 남한강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게 그대로 보인답니다. 거기 참 좋은데,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해서 웬만한 운전 실력자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내죠.

     수종사 알지요. 저도요 참 좋아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이 운전해서 움직일 때나 가볼 수 있어요. 아, 열심히 연마해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언젠가 선생님 모시고 고고씽 하겠습니다!

     하하,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하이튼 이 사람 참!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나를 태우고 수종사에 함께 가곤 했던 친구가 있어요. 쾌활하고 밝은 것이 정 선생과 비슷하네. 벌써 5년 됐네요. 그 친구 천국에 간 지가. 아니요, 괜찮아요. 가끔 그립긴 하지만 그리운 것이 어디 하나둘이어야지. 정 선생하고 이쪽에 나오니 그 친구와 다시 만난 기분이네. 늙은이랑 놀아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마음 써서 준비했는데, 노인네가 만나자마자 침울해서 마음 쓰였죠? 주책바가지.

     아뇨, 선생님. 혹시 손녀 따님과 함께 계셨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들이댔나 싶어요. 무리해서 나오신 건 아닌지...

     물론 괜찮아요. 집에서 나오는 데 며느리가 갑자기 왔어요. 집에 와 있는 손녀딸의 에미. 내가 같이 있으면서 중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두고 나왔어요. 아직 마음이 몸을 못 따라왔나 봐. 마음이 잠깐 집에 가 있었어요. 이제 마음까지 여기 왔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좋은 날씨, 풍경을 맘껏 즐깁시다. 야, 좋다! 하늘이 그림 같네요.

 

손녀딸 이야기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고, 사람들 없는 한적한 강변에 주차했다. 선생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강물은 흐르기보다는 멈춰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만나면 서너 시간 대화는 기본이지만 개인 신상에 관해서는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 한 잘 묻지 않으신다. 당신 이야기도 웬만해서는 잘 내놓지 않으신다. 어쩐 일인지 오늘 아침 상황을 설명하시며 손녀딸 이야기를 하셨다. 일종의 가출이라고.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집을 나와 선생님 댁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아드님은 두 딸을 남다르게 공들여 키웠다고 한다. 딸들의 아빠에 대한 마음도 깊어서 보기 드문 부녀지간이라고. 사춘기 어려운 시절에도 엄마와는 부대끼고 갈등이 있었을망정 아빠와는 사이가 좋았다고 하셨다. 결혼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였다. 딸들의 일이라면 ‘No’가 없는 아빠가 결혼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단다. 음악을 전공해 명문대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유학을 계획하고 있던 딸이다. 유학을 포기하고 돌연 결혼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이 일로 부녀 사이는 전에 없던 갈등 관계가 되었다. 큰 소리 날 일 없었던 가정이었는데 가족 전체가 폭풍에 휘말린 것이다. 흔히 그렇듯 부모의 반대가 강할수록 남자 친구에 대한 열정은 더 커지고, 그럴수록 부모는 배신감으로 깊이 좌절하게 되고... 딸들에게 관대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태도가 바뀌어 박사과정 밟으며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 큰딸에게도 결혼을 강요하더니 아예 부모 쪽 인맥으로 두 딸의 결혼 대상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에 없이 대화가 어긋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단다. 와중에 둘째는 최후통첩 후 집을 나와 할머니 집으로 온 것이다. 어떤 일에도 초연하실 듯한 선생님이다. 하나뿐인 아드님이지만 독립적으로 살고 계신 듯하여 보기가 좋았다. 나도 노인이 되면 자식들과 저렇게 지내야지 싶었다. 따뜻하고 세심하지만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좋은 노인의 표상처럼 느껴지는 최 선생님만의 매력이다. 그런데 평소 선생님답지 않게 쉬 떨쳐내지 못하시는 듯 말씀 끝에는 여운이, 표정에는 무거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할머니시고 어머니시니 다행이고 부럽네요. 손녀 따님이 와서 기댈 할머님이 계시니... 멀리 갈 것 없이 상담가 할머님, 어머님께서 곁에 계시니 얼마나 좋을까요.

     평생 상담하고 상담 가르치며 살았지만 내 가족 문제에는 속수무책이에요. 다 큰 자식 앞길에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죠. 성경 말씀대로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이니 떠나 보내는 것은 부모의 몫이고요. 헌데 이게 말이 쉽지요. 우리 아들 말마따나 고생길이 훤한 결혼은 막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데, 떠나보내라는 말이 들리지 않을 거예요. 제 살 도려내는 고통이라는 것을 내가 알지요. 하지만 다 큰 아이는 부모 말을 듣겠어요? 반대할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이 남녀 간 정인데. 설령 고생길이 훤해도 부모가 개입하여 고생길을 꽃길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져주는 것이지요.

     그, 그렇군요. 선생님. 저로서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잘 가늠이 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져주는 것이라... 아무튼 집안에 선생님 같은 어머니, 할머니, 어른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엉뚱하게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다소 냉소적이랄까 자조적인 선생님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죠? 정답이잖아요. 내 아들과 손녀 사이에선 이걸 갖고 들이댈 수가 없어요. 우리 아들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봐요. 순한 사람이거든요. 딸들 앞에서 큰 소리 한 번 내는 것을 못 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완고해요. 철벽같아요. 처음엔 나도 반대하는 아들 마음에 수긍이 됐는데, 아니 할 말로 우리 손녀가 아깝단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아들이 자기 논리에 빠져 상황을 최악으로 상상하며 더욱 고집불통이 되네요. 이러다 보니 손녀는 물론이고 식구들 모두 당황하게 되고, 갈수록 실망하게 되는 거지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밥도 잘 못 먹고 어깨가 축 늘어진 손녀딸을 보면 그 녀석 또한 곁에 두고 보기가 아주 가엾죠. (깊은 한숨)하아... 내가 묻지도 않는 가족사를 떠들어대고 있네요. 정 선생이 청년들 많이 만나지 않아요? 아, 연애 강의도 한다고 했죠? 전문가가 여기 계시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아휴, 선생님 잘 아시면서요. 저라고 무슨 수가 있으려고요. 그런데 아드님이나 손녀를 따로 만나보진 않으셨어요? 선생님 의견을 말씀하시진 않으시나 봐요.

     내 의견이 뭐 중요하겠소. 각각 자기 소견이 분명한데. 아들 내외는 그들대로 손녀는 손녀대로 내게 서운한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아들은 별말은 안 하지만 나마저도 제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내심 야속할 거예요. 그러고 보면.... 내가... 아, 아닙니다. 정 선생 배고프지 않아요? 맛있는 쌈밥집 간다고 했죠? 갑시다. 고마운 우리 정 기사님 점심 잘 대접해드리리다.

 

섭섭함과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

 

식사 전엔 늘 여러 알의 약을 드시곤 하시는데. 오늘따라 약의 양이 많아 보였다. 늘 드시던 약이건만 오늘따라 마음이 쓰였다. 신선한 야채를 좋아하셔서 야심차게 고른 식당인데 내가 그렇게 보아서인지 생야채와 고기가 버거우신 듯 잘 드시지 못하셨다. 나도 덩달아 입이 써서 쌈 야채가 거칠게만 느껴졌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우리 큰애도, 아니 작은 녀석도 언젠가 결혼하겠다며 낯선 어느 녀석을 데려올 날이 있을 텐데. 어릴 적부터 자주 생각했었다. 주변 또래 아이들을 떠올려 상상으로 짝을 본 적이 있다. “그 녀석은 그래서 안 돼... 아, 누구는 제 엄마가 좀 문제야...” 어떤 청년이면 내가 만족할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나 성품을 가진 사람이면 어떡하지? 진로와 전공을 선택할 때마다 그러했듯 오직 아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치고 강 전망의 카페에 가 앉았다.

 

     정 선생, 노인네 눈치가 많이 뵈지요?

     네? 아니에요. 선생님. 눈치는요... 식사도 많이 못하시고 안색이 안 좋으시니 조금 걱정이 될 뿐이에요.

     내가 왜 이럴까? 늙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웬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좋아서 뛰는 일도 없지만 그만큼 마음이 상하고 두려운 것도 없어요. 그런데 요 며칠은 전에 없이 마음이 무겁네요. 그걸 숨길 수 없으니 정 선생이 내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일 거예요.

     눈치라기보다는요... 아, 저... 선생님, 저희 친정엄마나 시어머님 생각해보면 아직도 저희 사는 일에 좋게 말하면 걱정, 사실대로 말하면 잔소리와 간섭이 많으시거든요. 아까 떠나 보내야 한다는 표현하셨는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결코 저희를 놔주시지 않는다 싶어요. 물론 연세 드시며 전보다 약해지긴 하셨지만요. 선생님은 그 면에서 경계를 분명히 세우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느님 얘기 가끔 하실 때 우리 어머님 같으시면 벌써 여러 번 섭섭해서 전화하셨겠다 싶은데. 선생님은 예삿일로 여기시더라고요. 그런 선생님을 잘 배우고 싶어요.

     정 선생 나한테 점수를 높이 주는 경향이 있어요. 나라고 왜 섭섭한 것이 없겠어요. 없기는! 섭섭한 것뿐이지. 허허. 노인의 길이지요. 어쩌면 소명일지도 몰라요. 섭섭함,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요. 아하, 그런 내가 손녀딸 결혼 문제에 대해 개입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여요?

     아니요. 오히려 그러시고 싶지 않으셔서 더 힘드신 것 아니에요?

     독심술이 있네. 이 사람! 개입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해도 소용없으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고요. 지켜보는 마음이 아파요. 실은 내가 아들에게 지은 죄가 있어요. 아들이 난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 평소답지 않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내게서 비롯된 거예요. 결국 이 부끄러운 얘기를 하고 마네. 정 선생은 지금의 나를 보면서 선망하지만 젊을 때 나는 참 미숙한 사람이었어요. 자기중심적이었고 세속적이었죠. 그걸 직업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능력까지 있었으니... 아들이 결혼하고자 했던 아가씨가 있었는데 내가 반대했어요. 남편은 허락하는 걸, 내가 끝까지 반대했어요. 아들이 워낙 순종적이기도 하고, 제 엄마 고집을 아니까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요. 내가 이리저리 조건 따져서 선을 보게 해 며느리를 봤어요. 글쎄요, 아들이 지금 의식적으로 저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알지요. 뒤늦은, 한참 늦은 나에 대한 반항의 뜻도 있다는 것을요. 아들 생각엔 이럴 때 내가 제 편을 들어야 맞는 거예요. 반대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네가 아직 젊고 세상을 몰라서 그렇지. 결혼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이거예요. 가슴이 미어져요. 살면서 잘못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들에게 참 미안한 거예요. 돌아보면 정 선생 말마따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한 인생을 내 맘대로 휘두른 것이죠. 후회하고 말고요.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내가 다르게 하겠어요? 그때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성공을 이루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요. 일, 가정, 아이 교육,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도 있었고요.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이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죠. 아들은 착하고 성실해요. 하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되는 삶에 대한 집착이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아요. 내가 하는 걸 본대로 제 딸에게 하는 거예요. 제 아빠에게 실망하여 분노하고 눈물짓는 손녀딸을 보면 한없이 미안할 뿐이에요. 정 선생, 나이 먹는 건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러움을 쌓아 가는 거예요. 나 이런 사람이라고. 그러니 나를 벤치마킹 하겠다느니 배우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덜 말어요.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는 삶

 

말씀 중간중간 강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말씀을 마치시며 고해성사하는 것 같다며 웃으셨다. 선생님은 당신을 존경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내 마음을 더 잡아당기신다. 당신의 실패담으로 가르치고 일깨우신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나이와 함께 쌓아온 ‘부끄러움’을 내어놓으심으로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는 반면교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좋아 敎師지. 누군가를 반면교사 삼겠다는 것은 그의 행태로 고통받았다는 뜻이고 상처 입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선생님의 실패담은 반면교사 삼을 것이 아니다. 무얼까, 한 노인의 실패담이 감동으로 오는 이유는. 나도 선생님 따라 말을 멈추고 흐르기보단 그대로 멈춰 반짝거리고 있는 듯 보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 돌려 선생님을 쳐다봤다. 눈물로 촉촉해진 눈가가 강물을 따라 반짝 빛이 났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책 제목 하나가 툭 마음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연달아 ‘성찰’이란 단어가 따라 나왔다. 삶의 성장이 긍정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최 선생님께서 하신 적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에게 관찰되는 것은 성찰의 능력이더라고 하셨다. 실패담을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오히려 나로 더욱 배우는 태도가 되게 하시는 것은 성찰의 힘이신가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쌓는 것이지만, 잘 늙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카페를 나설 때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내내 뭔가 선생님께 죄송하고 불편했던 마음 사라졌다. 뭔가 깊어지고 충만해졌다고나 할까. 선생님께서도 후련하고 가벼워졌다고 하셨다. 야심 찬 나들이 계획은 거의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지만 마지막 카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스마트폰 음악 앱에 저장해둔 노래를 틀고 카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머나!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 CCM 가수 한웅재 목사님이 부른 ‘하숙생’이다. 이 곡도 언젠가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언급하셨었다. 그때 듣고 검색해서 알게 된 리메이크 연주이다. 느끼함 없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차분한 피아노 반주에 맞춘 노래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들으니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순례길인 인생,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향방 없는 여행은 아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이 여행이 길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춘기 아이와 갈등하고 있는 나는 금세 아이 결혼으로 골머리를 싸매는 날이 오겠지. 선생님의 오늘 모습처럼 탓하기보다 성찰하고, 통제하기보다 조용히 기도하는 중년을 살아야겠다.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노래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정 선생, 고마워요. 오늘 참 좋았어요. 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아들에게나 누구에게든 잘못한 것들 이제 와 어쩌겠어요. 치러야 할 값이 있다면 이제라도 감당해야겠죠. 아들과 손녀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지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욱 기도해야겠어요.” 마침 한웅재 목사님의 ‘임계점’이란 찬양이 차 안에 신나게 울려 퍼진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내일의 몫 오늘의 내 삶을 힘껏 디뎌 일어서...’ 더욱 기도하시겠다는 말씀이 힘껏 디뎌 일어서신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 덩어리가 된 신록의 숲과 한결 부드러워진 오후의 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이 여전하다. 성찰의 힘으로 누구보다 강인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쓸쓸한 노인을 따스하게 안아주시는 그분의 품이려니.

 

 

* 시니어 매일성경 2021년 5,6월 호 기고글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2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설 원작의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이다. 노(老) 소설가 이적요의 독백이다. 그리 감명 깊게 본 영화도 아닌데, 저 대사만큼은 어쩐지 잊히질 않는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매료되어 출간을 기다리며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읽어댄 여러 소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다. 이 역시 읽을 당시 그다지 큰 감동은 없었다. 선생의 소설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은 따로 있다. 그런데 유독 기억나는 인물과 대사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죄 모여 있다. 노인들이 주인공이고 노년의 쓸쓸한 나날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나도 모르게 노년의 몸, 노년의 삶에 끌린다. 그런가 하면 실제 삶에선 이상하리만치 노인 대하는 것이 어려워 가까이 다가가질 못한다. 음악심리치료를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 학기마다 치료 실습이 있었다. 장애 비장애 아동부터 정신과 환자와 노인 질환자, 일반인까지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경험하는 것이 실습의 목표였다. 그러다 자연스레 적성에 맞는 대상을 찾아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대학원 내내 노인 대상 치료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핑계는 늘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피해 다닌 게 맞다. 졸업 후에는 학생들 실습 지도 일을 했었는데, 그때도 역시 노인기관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것 같다. 이상하리만치 노인, 특히 노인의 몸에 대해 끌림과 거부 사이를 오갔다.

 

노인에 대한 양가감정

기억 저편의 소설 『은교』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떠오른 것은 최 선생님 때문인 듯하다. 벌써 선생님을 여러 번 뵈었다. 일로 만나는 사이지만, 일 얘기는 헤어지기 전 몇 마디면 족하다. 책 작업과 관련 없는 수다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나곤 한다. 주로 내 고민을 끝없이 털어놓는 격이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듣고만 계시는 건 아니다. 한 번씩 가볍게 질문 던지기도 하시는데, 그 때문에 내 얘기가 끝나질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줄줄 쏟아내게 하시니, 과연 평생 상담으로 살아오신 전문가답다. 이 만남이 참 좋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뵈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노인의 몸, 80을 넘긴 노구의 몸을 가진 선생님께 끌리면서 동시에 밀어내는 내 마음을 본다. 알 수 없는 내 마음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끝없는 얘길 나누노라면 오후의 햇살이 거실 안쪽까지 깊게 훑고 지나가곤 한다. 빠져나가던 빛이 어쩌다 선생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볼 한쪽에 조각 햇살이 남아 그 부분만 환하게 도드라졌다. 그때 선생님의 피부가 유난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눈길을 거두었다. 실은 마주하고 긴긴 얘기를 나누면서도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바라보는 것 같은 모양새는 했지만, 게슴츠레한 눈으로 흐릿하게 보려 애썼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깊은 주름과 검버섯이 어우러진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쩐지 죄송하고 민망하다. 선생님의 인격에 한없이 끌리지만, 그래서 자꾸 가까이 가고 싶지만, 한편 뒷걸음질 치게 되는 순간이다. 알 것도 같고 영 모르겠다 싶기도 한 노인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고백컨대, 처음 선생님과 가까이 마주 앉아 얘기 나누던 카페에서부터 작은 불편함이 있었다. 깊은 주름, 검버섯과 겉도는 밝은색 립스틱이 무척 버거웠다. 선생님은 좋지만, 선생님의 얼굴은 싫었다. 그런 마음을 들킬까, 도둑 제 발 저리는 심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떴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선생, 내 얼굴이 좀 우습죠?” 나는 분명 재빠르게 거둬들였는데, 그새 내 눈길을 잡아채신 것인가. “네? 무... 무슨 말씀요. 서... 선생님 얼굴이... 왜요, 좋으신데요.” 당황해서 말이 잘 수습되지 않았다. “아, 글쎄 우리 아들 며느리가 저네들 다니는 병원에 데리고 가더니 얼굴에 주사를 놨지 뭡니까. 뭘 넣는다고 펴질 주름도 아닌데, 늘 이렇게 더 우습게 만들어놔요. 그래서 자꾸 쳐다보는 거죠? 우습죠?” 휴우, 안심이 되고 다른 한편 더욱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심정이 되었다. 어서 화제 전환을 해야지 싶은데, 웬걸. 직진을 하셨다.

 

      내 얼굴을 보는 게 참 낯설어요. 내 사진을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죠. 나인가 싶지 않은 거지. 그렇다고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있습디다. 내담자나, 젊은 선생들과 얼굴 맞대고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분들 참 고역이겠구나. 마른 대추같이 쭈글쭈글한 얼굴 들여다보는 게 좋겠어요?

 

     아, 아니에요.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에이, 뭐, 그, 그런 말씀을...

 

    정 선생은 유난히 사람을 뚫어져라 보잖아요. 하하. 정 선생 눈빛이 강렬하다고 아주. 가끔 쭈그렁 망탱이 노인네 민망해요. 하하. 우리 아들이 제 엄마 늙는 것에 아주 질색팔색을 해요. 먹을 것도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매일 운동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죄다 별 소용없는 일인 줄 알지만 못 이기는 척 따라 하고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밖에 해줄 게 없으니. 가끔 이렇게 얼굴에 뭘 넣어 주름이 펴지면 그렇게 좋은가봐요. 나도 마지못해 따라가는 건, 조금 팽팽한 얼굴이 젊은 내담자들에게 덜 부담스러우려나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그러니 주책스러워 보이겠지만 그러려니 해줘요.

 

    아, 선생님 저는 정말 전혀 몰랐는데요. 평소와 다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아? 아닌가? 이건... 어, 그러니까 선생님 자연스럽다는 말씀인데...

 

끌리는데 멀어지고 싶은 마음

나는 사실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봐 드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민망했다. 이미 충분히 노회한 얼굴에 사로잡혀 시술과 관리로 달라진 변화가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노인인 선생님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는 당신 얼굴 얘길 하실 때,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아졌다. 나는 왜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선생님의 늙음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닌데, 난 왜 똑바로 보지 못할까. 똑바로 보지 않으려 애썼는데 어째서 선생님은 그 반대로 느끼신 걸까. 난 정말 선생님의 정신과 말씀은 모두 좋지만, 시술로도 어떻게 안 되는 노화로 가득 찬 선생님의 얼굴과 몸은 버겁기만 하다. 처음으로 닮고 싶은 어르신을 만났다. 나도 저렇게 나이 먹었으면 싶은 바로 그 노인을 만났다. 선생님께선 ‘우정’이란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세대의 간극을 넘어 우정이 두터워지는 것이 느껴져 황송하고 행복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몸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 설레면서 동시에 무거웠다. 노인의 몸에 끌리면서 동시에 거부감이 드는 딱 그 지점이다. 피할 수 없다. 한 번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설명해주실 것 같고, 무엇보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진실하게 대화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참 희한한 것이요. 저의 친정엄마가 90이 넘으셨거든요. 그렇죠. 선생님보다 한참 위이시죠.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거의 뭐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 차이죠. 어릴 적에야 제 부모님밖에 경험하지 못하니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노인들이 아이를 키우신 거예요. 그래서 그럴까요. 저는 노인들, 특히 노인들의 몸에 본능적으로 끌려요. 그런데 끌리는 만큼 밀어내는 힘도 강렬해요. 너무 마음이 쓰이는데 그럴수록 멀어지고 싶달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시겠죠? 저도 제가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 나는 알 것 같은데. (웃음) 그래서요? 궁금하다. 정 선생 노인네인 나한테 끌려서 이렇게 친해진 거잖아요. 끌리는데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뭘까? 우리 집에 그만 오겠다는 말은 아니죠? 하하.

 

     헤헤, 당연히요! 선생님 조금 전에 선생님 얼굴이 낯설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이를 완전히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제 또래 모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세대를 뛰어넘어 이렇듯 편안하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가끔 믿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그런가. 뭐랄까, 아, 뭐랄까. 그게 너무나 감사하고 좋죠. 그러니까 선생님의 정신은 젊으신데, 연세 드신 몸이 좀 순간순간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잘 표현이 안 되네요.

 

      허허, 거참 기분 야릇하네. 칭찬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늙은 얼굴이 부담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그.... 그게요. 선생님, 부담이 아니라.... 그....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믿길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도 그래요. 내 생각은 아직 한참 젊은데 몸만 늙은 것 같아요. 팔십 넘은 얼굴이 이래야지 어떠해야겠어요. 80년 넘게 쓴 몸이 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나도 내 몸이 낯설어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정 선생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은 뭐 50 넘은 당신 몸이 적응이 되우? 몸이 가는 시간은 정직한데 마음이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요. 그런데 정 선생은 그 말이 왜 그리 어려울까? 내가 어려워서 그러는 것 같진 않은데.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해봐요.

 

왜 그리 죽음에 끌려요?

몇 마디 말씀에 안심이 되었다. 영화 『은교』의 대사부터 시작해서 끙끙거리던 내적 갈등을 털어놓았다. 말을 할수록 금세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희한하게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 아니 의술의 힘으로 일부 팽팽해져 더욱 어색한 선생님 얼굴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내 얘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알 듯 모를 듯 웃음을 지으셨다.

 

      정 선생은 왜 그리 죽음에 끌려요?

 

      네? 죽음에 끌린다고요? 제가요?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는데...

 

      나는 내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봐요. 아까 내 얼굴이 낯설다고 했는데, 이렇게 늙은 낯선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일부러 죽음을 생각해요. 노인의 몸으로 사는 것이 어떤지 물었죠? 죽음이 반쯤 덮친 몸이구나, 나는 이렇게 느껴요. 아기의 얼굴을 떠올려봐요. 다가가 어루만지고 싶고 입이라도 맞추고 싶죠. 누구랄 것 없이 아기의 몸에 끌려요. 노인에겐 어디 그런가요? 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봐요. 아기에게선 생명의 기운이, 노인에게선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탓이지. 정 선생의 말, 노인에게 유난히 끌리기도 하고 달아나고 싶기도 하단 말이 죽음에 대해 그러하다고 들려요. 정 선생, 가까이에서 경험한 죽음이 있어요?

 

      네? 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어릴 적이라 뭐가 뭔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엔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태산 같은 일이라, 깊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죽음 자체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강렬했고, 그러는 한편 죽음은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공포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거울에 비친 모습에 죽음을 떠올리신다는 말씀이 놀랍네요. 아, 놀랍다는 게 신선하달까 그런 느낌이라 좀 야릇해요.

 

      정 선생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 좋은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죠? 갱년기 증상을 겪으면서, 고치고 운동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당혹스럽다고 했던가?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려 태도를 봤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갱년기 증상은 죽음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라고 생각해요. 정 선생이 자기도 모르게 그 신호를 알아채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때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정 선생 나이 때 그런 깨달음이 없었거든. 힘쓰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마음먹은 것을 결국 대부분 이뤄내고 말았고요. 갱년기니 뭐니 하는 것도 나약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강단에서 가르쳤던 것, 내담자 앞에 두고 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았죠. 좋은 노년은 없다고 했던 말 기억해요? 좋은 노년은 좋은 중년의 결과예요. 내가 생각하기엔 그래요. 내 뼈아픈 경험에서 얻은 생각이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좋은 노년을 사시고 계시잖아요. 말씀대로라면 그 이전의 삶의 결과 아닌가요?

 

      정 선생이 좋게 봐줘서 그래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깨달은 것은 나이 60이나 되어 호된 고난을 겪은 덕분이지요. 덕분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네. 말 그대로 죽음에 욱여쌈을 당한 시절이었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죽음에 욱여쌈을 당했던 그 시절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셨다. 60대 초반, 선생님의 남편께서 암 선고를 받으셨다. 예고 없이 찾아든 청천벽력이라고 표현하셨다. 공교롭게도 하나밖에 없는 아드님 부부가 어렵사리 아이를 가져 기쁨과 설렘으로 지내던 나날이었다고 한다. 항암치료로 야윌 대로 야윈 남편분께서 갓 태어난 손주를 안고 눈물지으시던 장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라고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연로하신 선생님의 어머님 또한 노환으로 입·퇴원을 반복하셨으니, 그야말로 생로병사가 눈앞에서 교차하고 있었다고.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안에 남편과 어머님을 천국에 보내셨다. 무엇 하나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던 삶은 텅 비어버렸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인생 신념이 무너졌다고 한다. 몇 년 캄캄한 시절을 보냈고, 뒤늦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고. 죽음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으로 슬픔에 맞섰고, 미국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의 소설이 In Heaven as on Earth: A Vision of the Afterlife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포이에마)이었다. 빨려들 듯 읽으셨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렴풋하게나마 의문에 희망을 찾았다고 하셨다. 평생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 온 선생님이시다. 이즈음의 경험과 독서로 영적 세계에 눈이 떠졌고 자연스레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셨다고 한다. 그전까지 선생님의 신앙은 불교에 가까웠다. 죽음의 욱여쌈이 도리어 죽음을 넘어서는 소망이 되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되었다니! 그러니 당신은 죽음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창밖 멀리 시선을 보내셨다. 거실 깊숙이 들어와 앉았던 해의 꼬리가 물러난 지 한참이다.

 

      , 선생님, 이런 간증을 듣다니요! 죽음과 삶의 연결이 신비롭게 느껴져요.

 

     주름진 얼굴, 노화가 불편한 것은 죽음을 부정하고 본능일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것이죠. 사회가 젊음, 젊은 몸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죽음에 대한 거부 아니겠어요? 중년을 넘긴 우리 아들이 유난히 젊음에 집착을 해요. 늙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제 몸뿐 아니라 죽을 날이 가까운 지 에미까지 관리하느라 공을 들이죠. 저기 저 운동기구며 안마의자도 다 아들이 사다 놓은 거예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을 알아요. 제 아버지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왜 아니겠어요. 첫 아이를 낳고 아버지 되는 기쁨과 제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동시에 겪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혼자 남은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거예요. 제 몸 제가 지켜야 한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서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그 집착이 나는 안타까워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만큼 건강한 몸에 집착하거든요. 그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깝죠. 이제라도 아들이 깨우쳤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제 삶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때 신앙이 들어갈 여백이 생길 텐데. 정 선생 보면서 우리 아들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나이 먹어 늙고 죽게 되는 인생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제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자리가 주님 만날 자리인데, 아직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 생각나거든 우리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스름한 한강 변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하는 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노인의 얼굴에 다가가고 싶고 멀어지고 싶은 알 수 없는 마음을 ‘죽음’에의 태도로 해석해주신 것은 선생님만의 따스한 지혜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또렷하게 선생님의 목소리로 다시 들린다. 좋은 노인으로 사는 것은 결국 죽음과 친해지는 일인 것이다. 죽음과 친해지는 것은 노년의 일 아니라 지금 여기의 과제이다. 선생님을 따라서 해봐야겠다. 거울을 볼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드리워졌나 찬찬히 꼽아 봐야지. 눈가의 주름과 쳐지는 피부로 내 죽음을 마주할 때, 어쩐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브레넌 매닝이 『아바의 자녀』에서 말했다. “나는 삶이 가장 두려울 때 죽음도 가장 두렵다.” 앞으로 더욱 거세게 밀려들 노화의 파도를 순순히 기쁘게 맞도록 해야겠다. 삶의 끝은 죽음이 자명하니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리. 죽음 이전에 삶, 오늘의 삶이 있으니 이 순간을 두려움 없이 누리는 것 또한 포기하지 않으리.

 

<시니어 매일성경> 2021 3-4월호

 

2021년 1월부터 <시니어 매일성경>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란 큰 제목을 걸고 중년 이후의 삶과 영성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요. 무엇이든 써야하는데 무엇을 쓸지, 쓰고 싶은지 모를 때면 꼭 혜성 같이 나타나셔서 "새로운 글을 써보라" 옆구리 찔러주시고 멍석 깔아주시는 iami님 덕입니다. 엄마 돌아가신 이후 죽음, 상실, 애도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죽음을 준비할 때라는 생각을 하는 중 제안을 해주셔서 도전해봅니다. 중년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일단 손을 놓았고요. 생의 오후인 중년 이야기를 건너 뛰어 저녁놀이 물드는 시간, 황혼에 머물러 보려고요. 쓰려고 마음 먹으니 살아보지 않은 날을 언감생심 논할 수 있나 싶어요. 감 놔라 배 놔라, 편하게 가르치고 행세하고 싶어서 '부캐(최선생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럼 한 번 써보겠습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

 

 

내 나이 쉰셋,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고, 배울 것은 많은 세상이다. 새로운 일을 자주 시도하는 편이지만 좀처럼 설레는 일은 없다. 일은 물론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새로운 사람 만나봐야 거기서 거기니 조금 서글프다. 헌데 오늘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낯선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솜털 피부에 말랑한 언어를 가진, 호기심 가득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아니다. 여든을 넘긴 어르신! 눈꺼풀부터 턱밑 피부까지 중력의 법칙에 온전히 순응하는 근육이며, 검버섯이 핀 얼굴의 최 선생님이다. 한 학기 강의를 들었고, 종강하던 날엔 수강생들 다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전에 출간하신 책 개정판을 내시는데 도움을 드리기로 했고, 그 일로 오늘 처음 개인적으로 뵙게 된 것이다. 교정작업을 도와드리겠다고 한 것은 선생님과 만남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 것을 알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원하여 결정했다. 뭔가 끌림이 있었고, 그저 그 끌림에 따른 것인데 결론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좋은 노인을 만나고 싶다

 

여든 넘기신 선생님을 뵙고 와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어쩐지 안 계셔도 조금 죄송하지만. 50대가 되고 갱년기를 통과하며 나는 늙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 좋은 노년을 준비하고 싶다. 그러자니 닮고 싶은 노인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 지점에서 조금 좌절이 된다. “저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지반면교사는 정말 흔하디 흔한데, 닮고 싶은 분은 없다.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는 갱년기 증상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찾아오는 노화의 증상들을 경유한 후 종착지는 나이 드신 부모님 이야기이다. 부모님의 고집으로 속 터지는 이야기, 가여워서 더욱 답답한 이야기. “우리는 그렇게 늙지 말자!”로 대화가 끝나지만, 나는 어쩐지 자신이 없다. 그런 노인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노인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요즘은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에는 길을 가거나 버스 안에서 그렇게 또래 남학생만 보이더니, 청년 때는 그 나이대 남자만 보였다. 임신해서 다닐 때는 임산부만 눈에 띄어, 세상에 임산부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아이 키울 때는 당연히 유아차 밀고 가는 엄마와 그 안의 아기가 어떤 차보다 크게 보였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에서도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내 나이대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 아니라 노인들이 자꾸 보인다. 길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노인은 물론이고, 뉴스에 등장하는 노인과 노인집단, 무엇보다 주변 친밀한 관계 안에서도 유독 노인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된다. 연세 드신 부모님 걱정과 겹쳐진 탓도 있지만, 나름대로 누구를 찾는 것이다. 좋은 노인을 만나고 싶다. 이것은 내 노년을 상상하며 미리 가불해 가져온 두려움과 닿아 있다.

 

"오늘 밥은 내가 살게요."

 

 강의에서 최 선생님을 뵙고 깜짝 놀랐다. 강사가 은퇴 교수님이신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연세 드신 분일 줄은 몰랐다. 어쩐지 실망스럽기도 했다. 느릿한 말투나 걸음걸이가 불안해 보였고, 강의 계획도 엉성했다. 모처럼 마음 먹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건데, 성의 없는 강사를 만난 것 아닌가 싶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아, 엉성한 계획이나마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뭘 그렇게 잘 잊으셨다. 다음 시간에 나눠주겠노라 하셨던 자료는 까맣게 잊기 일쑤. 질문 하나에 답하시다 강의 주제를 벗어나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렇다. 강의가 강의 흐름같았다. 지적인 구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내게는 정말 불편한 방식이었다. 강의 계획에 따라 어떤 책을 읽어가면 전혀 다른 책 얘기를 하셨다. 그런데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 흐름이 편해졌다. 듣는 내 태도도 달라졌다. 노트북 앞에 놓고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는 필기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귀로 듣고 손으로 바로 받아쳐서 강의를 한글파일로 만드는 기계라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최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점점 기계 작동이 느슨해졌다. 어쩌다 보면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이 스르르 멈춰 서 있기 일쑤. 강의 후반에 가서는 제목만 쳐놓고 아예 손을 내리고 있었다.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게 되었다고나 할까.

 

필기할 내용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워 담고 싶은 마음으로 필기하던 손을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저 마음으로 들어 젖어 들고, 물드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모르겠다. 맞다, 선생님의 강의는 악착같이 필기하여 어디 써먹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용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것도 아니며,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강의가 강물처럼 나를 스쳐 가도록 두는 게 좋았다. 들을 땐 좋았는데 돌아서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필기한 것도 없으니 손에 남는 것도 없는 강의가 종강이라니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선생님 모시고 식사로 인사 나누자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가 오가고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최 선생님께서 오늘 밥은 내가 살게요.”라고 하셨다. 가당키나 한가. 여기저기서 아닙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요, 요란스럽더니 누군가 발 빠른 사람이 나가 계산을 해버렸다.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뒤쪽에서 선생님과 함께 섰다가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 사람들, 노인 배려 없네.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밥 사는 거밖에 없는데. 그걸 빼앗네.” 바람처럼 지나가는 말의 가벼움에 놀랐다. 말씀의 내용도 그렇고. 여태 15주를 가르쳐주셨는데,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밥 사는 일밖에 없다고?

 

드물게 만난 호감 노인

 

그 말씀이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무슨 말씀이지?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노인이지만 80대라는 연세가 무색한 분 아닌가. 아직 가르칠 게 있는 분, 할 수 있는 게 없으시다니. 진정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까? 혼잣말처럼 하셨으니 누구 들으라고 예의상 하신 말씀 같지는 않다. 한 학기 동안 들었던 물 흐르듯 하는 강의는 다 빠져나가고 그 한 문장이 남은 듯하다. 어쩐지 그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일부러 선생님 옆자리에 앉았다. 강의 들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호기심으로 선생님을 관찰했다. 호감 노인, 드물게 만난 호감 노인이었다. 내가 호감과 비호감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가까이 다가가 앉고 싶은 사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은 호감. 저 멀리 나타나기만 해도 뒷걸음질 쳐지고, 되도록 피해가고 싶은 사람 비호감이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다가가 말 건네고 싶은 노인을 만난 건 거의 처음이다. 강의 때의 매력은 교수님으로서의 매력이지 한 인간, 한 노인은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 책 개정판 작업 얘기가 나왔고,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덥석 이 호감 노인을 붙들었다.

 

원고 받으러 간다는 명목으로 선생님 댁을 찾았다. 유난히 긴장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몇 주 전, 그 카페에서의 내 판단이 과연 옳았을까? 일을 도와드리는 문제가 아니라, 좋은 노인을 만났다는 판단 말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실망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게 걱정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노인을 배려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식사비 계산하시도록 기꺼이 양보해드렸다. 일단 점수를 땄다. 하지만 실은 정말 점수를 딴 건지, 아닌지 잠시 확신이 흔들렸다. 지난 종강 식사 때처럼 얼른 나가서 계산하는 게 어르신 대접 아닐까. 예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라고 잠시 머릿속에 쓰던 소설이 사라진 것이, 식당을 나와 걷는데 어르신과 걷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파랗고 하얀 하늘과 구름, 그리고 적당히 부는 바람에 취해서 감탄하느라. “선생님, 하늘 구름 바람은 아주 그냥 잘 어울리는 삼합이에요.” 했더니 하하 웃으셨다. 말도 참 재밌게 한다며 삼합, 삼합하며 웃으셨다.

 

하늘 구름 바람 삼합과 함께 선생님의 웃음에 무장해제 되었다. 선생님 댁 현관에 들어설 때는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사무실과 주거공간이 알맞게 분리된 넓은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시야가 뻥 뚫린 경관의 상담실이 있고 복도를 통과하면 거실이다. 거실이야말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는 탁 트인 하늘을 마주한다. 상담심리학 교수로 은퇴하신 선생님은 간간이 상담 일을 하시고, 마음에 관한 강의도 하신다. 혼자 사시는 넓은 집이 내담자를 받아들이는 선생님의 마음 같아 열린 공간 같이 느껴졌다. 용건인 선생님 책 얘기는 시작도 못하고 내 얘기를 털어놓아 버렸다. 묻지도 않으셨는데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선생님, 조금 오글거리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저는 제 나름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몸과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노년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죄송해요, 선생님.

 

      (정색하시며) 뭐가요? 뭐가 죄송해요?

 

      (당황) 아, 선생님 앞에서 제가 노년이 가깝다느니 이런 말씀을 드려서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 앞이 어때서? 내가 늙은이라서? 정 선생 얘길 하는 거잖아요. 나는 내가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고, 정 선생도 나이 먹는다는 얘긴데 그게 뭐? 노년이 몹쓸 시절도 아니고. 하하. 어려워하지 말아요. 하고 싶은 얘기 편하게 해요.

 

      실은 선생님, 저희 종강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이 남아 어쩐지 말씀을 나누고 싶었거든요. 왜 식사 사려고 하셨잖아요. 노인이 되면 밥 사는 일 밖에 할 게 없는데... 하신 말씀을 들었어요. 저희에게 융(Carl Jung) 심리학을 가르쳐 주셨고, 여전히 상담도 하고 계시잖아요.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데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 싶었고요. 그 말씀이 신선하게 들렸어요. 아까 제가 노년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던 것은 좋은 노년의 삶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구요, 그러기 위해서 준비할 것이 있다면 준비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데 배울 곳이 없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닮고 싶은 노년을 만나고 싶은데... 네, 뭐 그러던 중 선생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어요. 밥 사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하하, 그 말이 정 선생에게 화두(話頭)가 되었구만. 내가 본의 아니게 공안(公案)을 던진 셈이고, 참구(參究)하던 정 선생을 오늘 우리집에까지 끌어들였네. 노인네가 어쩌다 흘린 말에 제대로 걸려들었어. 그나저나 나는 정 선생 나이 때 그런 생각 못했는데 어쩌다 그리 멀리 내다보는 고민을 해요.

 

그때 어디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 어디서 찬양이? 선생님의 휴대폰 벨 소리였다. , 그럼 선생님도 크리스천이신가. 그랬다. 이건 더 의외였다. 한 학기 만나면서 선생님이 종교가 있으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 종교를 가지셨다면 불교에 가까우실 분이었다. 조금 전에도 화두, 공안, 참구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 의외였지만 선생님은 권사님이셨다. 말씀으로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 하셨다. 더욱 마음이 편해져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노인이 할 일은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

 

      선생님, 저는 이제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을 겪는데요. 노안이 오고, 오십견에서 시작하여 몸 여기저기가 망가지면서 좀 많이 놀랐어요. 대부분의 증상 앞에는 ‘퇴행성’이 붙더라고요.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고치는 병이 아니라고 들렸거든요. 오십견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오십견이 낫는다 해도 노화는 진행될 것이고,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받아들이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고요. 또래 친구들 만나면 대화의 주제가 이런 거거든요. 결론은 탄수화물을 끊고, 좋은 생각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자!예요. 신앙이 있는 친구들은 천국 소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하려 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쩐지 저는 그럴수록 더욱 답답한 거예요. 젊을 때는 의지를 발동하고, 열정을 쏟아부으면 될 것 같은 희망이 있었죠. 실제로 되기도 했고요. 오십견 온 팔을 부여잡고 있으면 더는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리고 또 친구들 대화의 또 다른 주제는 ‘노년의 부모님’이거든요. 40년 한결같이 같은 문제로,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시는 부모님. 알코올 중독, 분노중독 아버지와 종교중독 어머니의 간극, 건강염려증에 애정결핍으로 늘 새로운 병원을 찾아 모셔야 하는 어머니도 계시고요. 늘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수십 수백 번 합리적 설명을 해야 하거나, 참다 참다 화를 내고 죄책감이 휩싸이는 일상 같은 것들이요. (이 지점에서 선생님의 표정에 살짝 먹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눈치챘으나, 발동 걸린 말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 20년 후에는 자기 엄마와 똑같아지겠구나! 실은 이 친구들도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가 똑같거든요.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오빠도 책임을 감당하시라고 해,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해, 아예 전화를 받지 말어. 쏟아지는 조언과 충고도 비슷해요. 이래서 소용없고, 저래서 소용없어. 되돌아오는 반응도 똑같고요. 뫼비우스의 띠 같아요. 그리고 헤어지며 하는 말은 늘 ‘야야, 우리는 정말 잘 늙자’예요. 그런데 저는 정말 잘 늙기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만 드네요.

 

      (엄마 미소 지으시며) 틀린 말이 없네. 맞아요. 갈수록 어디 아프냐고 묻는 것보다 안 아픈데 어디냐고 묻는 게 더 빨라요. 나도 노인네지만 노인이 되어 고착된 생각, 특히 신앙 같은 것들은 변화나 성장이 거의 불가능해요. 나부터도 이렇게 늙고 싶지 않았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 조금 민망하고 오글거리지만, 선생님 뵈면서 닮고 싶은 어르신을 제대로 처음 만났다 싶고요. 그래서 책 작업이든 무엇이든 도와드리면서 배우고 싶어요.

 

      하하, 사람 잘못 봤는데. 나 고집쟁이 노인네야. 우리 아들한테 물어봐요. 융 심리학에서 말하잖아.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나한테서 발견한 좋은 모습이 있다면 그건 선생님 안에 있는 것이에요. 무엇보다 좋은 노년을 꿈꾸는 마음을 잘 품고 지금처럼 배우고자 하면 정 선생이 그런 노인 될 거예요. 그렇게 되세요. 나는 아니에요.

 

      네, 선생님 그러면요, 이건 좀 답해주세요. ‘밥 사는 일밖에 할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이세요?

 

      꿈보다 해몽이네. 허허. 결국 나이 먹어 늙으면 알게 될 일, 미리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어요. 나도 내 나이 믿어지지 않고, 이렇게 늙은 나이, 말 안 듣는 몸이 나 같지 않고 힘들어요. 내가 나이롱이라 성경은 잘 모르지만, 노인에게 아주 적실한 말씀이 하나 있어요. 어디 나오더라. 베드로 얘기예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해주신 말씀일 거예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내 생각에 노인의 할 일은 주도권을 내려놓는 거예요. 무조건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 남이 누구든 나를 주도하도록 내어주어야 편하다니까. 가까이는 자식들에게 그렇고, 제자들에게 그러려고 해요. 나도 젊을 때는 무척 깐깐한 선생이었어요. 수퍼비전 줄 때는 울지 않았던 학생이 없었어.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해봐요. 누가 나를 만나러 오겠어.

 

유레카!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내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선생님께서 다 설명할 수도 없으시지만 그런 삶의 기쁨이 있다고 하셨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아는 행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책 작업을 하는 동안 베드로의 노년을 따르는 선생님의 노년을 많이 듣고 기록해야지 싶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유난히 보랏빛, 붉은빛의 오묘한 조합으로 아름다웠다.

 

      이 시간이면 소파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걸 봐요. 혼자 살기 때문에 참 쓸쓸한 시간이기도 해요. 내 인생의 시간이겠지. 아니다! 해가 넘어가고 노을이 물드는 시간은 정 선생의 시간이겠다. 나는 이제 밤이에요. 정 선생이 부럽네. 나는 5, 60대 늙음의 신호가 왔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성공과 성취에 취해서 젊을 때 살던 그대로 살았지. 조금 더 일찍 노화를 받아들이고, 팔을 벌리는 방향으로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뭐, 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 지는 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 빛으로 생기는 저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팔을 펴는 연습하라고 오십견이 오는지도 몰라. 정 선생 강의 들을 때 보니까 어깨 힘주고 정신없이 노트북 두드려대던데. 그렇지, 나중엔 손을 놓더라고. 하하. 노화의 강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요. 이야, 오늘 노을 정말 예쁘네. 정 선생같이 예쁘네.

 

새벽으로부터 동이 트고 정오를 향해 높아지는 해, 그리고 오후가 되어 부드러워지는 빛과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인생 주기와 빗대어 한참 이야기 나눴다. 선생님은 당신의 시간은 밤이라고 했다. 영원한 잠이 들기 전 마지막 시간으로 정리가 된다고. 그러며 좋은 노년은 없다, 고 하셨다. 좋은 노년은 좋은 중년의 결과일 뿐이라고. 어둠이 내리기 전, 하루 중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인 이 시간을 겸허하게, 나 자신을 진실하게 대면하며 지내면 좋겠다고 하셨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셔서 아쉽다고. 앞으로 뵐 때마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 밤이 오기 전에 돌아봐야 할 진정한 나, 진정한 삶에 대해 얘기 나눠보자고 하셨다. 가슴이 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지만, 남은 것은 늙음 뿐인 나날이라 생각했는데. 전에 느껴보지 못한 아주 고요한 새로운 설렘이다.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진다.

* 월간 <복음과 상황> 356호(2020년 7월호) 기고글입니다.

 

신령한 기도와 산신령 놀이 사이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청년부 시절 한 사람이 가끔 난다. 크고 작은 결정사항 앞에서 늘 이렇게 대답했다. 주보에 실을 수련회 후기를 써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걸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님 계신 고향에 갈 때도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 기도하고 결정하는 친구였으니. 그저 그의 하나님께서 글을 쓰라는 결재를 내려보내시길 기도(, 기도!) 할 수밖에. 그의 말에 자주 거부감을 느꼈다. 실은 이 친구가 싫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집사님이 계셨다. 친절하게 손잡아주고 위로해주시는 따뜻한 분이기도 했다. 가끔 교회 복도에서 마주쳐서 이런 말씀만 하지 않으시면 참 좋았는데. “정 선생님, 요즘 힘들어요? 내가 기도해보니까 정 선생님이 힘든 것 같던데…… 하여튼 힘내요. 내가 늘 기도하고 있으니까.” 위로로 다가와 순간적으로 울컥하려는 감정을 확 밀어 넣게 되었다. (인생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있다고!) “하나님도 참. 제가 힘든 걸 아시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든지, 해결을 해주시든지. 왜 집사님께 뒷담화를 하시죠?” 속으론 그렇지만, 대충 훈훈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돌아서는 마음은 한없이 갑갑했던 기억.

 

기도하면 뭐가 그렇게 잘 보이고, 하나님 음성이 잘도 들리기론 우리 엄마가 1등이었다. “엄마가 기도해보니까 이번 일 잘 되겠더라. 기도 끝에 니가 활짝 웃더라고.” 엄마가 기도해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시험도 잘 볼 거고, 면접 결과도 좋을 거고, 맡은 행사 잘 진행할 거고, 아픈 데는 큰 문제 아닐 거고. 어쨌든 엄마의 기도는 힘이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내 시간표에 맞춰 꼼짝하지 않고 내내 기도를 하셨다. 공부는 안 했어도 엄마 기도 때문에 든든했다. 문제는 이랬던 엄마가 엄마가 기도해보니 너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런 점괘, 아니 응답을 받아올 때였다. 가령 엄마 마음에 차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다닌다든지 할 때.

 

기도라는 이름의 욕망의 투사, 기도로 위장된 간섭과 통제, 기도라는 이름 뒤에 숨은 회피를 드러내는 예는 신앙생활 일상에 허다하다. 이런 행태를 간파하고 비판할 신학적 지식과 판단력이 내게 없지도 않다. 기도에 관해 읽은 무수한 책들이 내 편인 듯한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자고 저 기억들은 30여 년,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 청년, 그 집사님, 엄마 앞에 섰을 때의 이었다. 막힌 느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 그 벽의 이름이 인간의 가장 성스러운 행위인 기도라는 것이 무엇보다 큰 좌절이다.

 

닫힌 종교와 종교 중독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조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 전통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애썼던, 이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자가 된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의 영적 여정에 공감되는 바가 크다. 유대교 전통 안에서 만물 안에 현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가톨릭 신학교에서 만난 교수들의 열린 태도와 사랑에 안내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종교를 넘나들며 그가 고민한 것은 열림과 닫힘, 그리고 자유였다. “(종교 안에) 닫혀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도달했단다. 그렇게 기독교 신자가 된 쉴라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다시 이런 질문 앞에 섰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닫혀 있게 하는가?” 유대교 공동체에서 만났던 벽을 자유를 찾아 안착한 기독교 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중독과 회복에 대한 이해에서 찾게 되었다고 한다.

 

쉴라와 그의 동료들이 정의하는 중독은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실체 또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중독의 목적은 한마디로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발견은 종교나 종교 행위들이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내면 안에 있는 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 중독을 정의한다. 종교 중독은 엄격한 믿음의 체계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실재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엄격한 믿음 체계 안에 갇혀 모든 문제를 종교적 행위로 환원시키는, 그렇게 함으로 마주해야 할 내면의 진실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는 것이 중독 행동의 양태이다. 이 같은 중독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가 어린 왕자에 나온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시죠?”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마시고 있다.” 술꾼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마셔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으려고.”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어요?” 어린 왕자는 벌써 그를 불쌍하게 여기며 캐물었다. “내가 부끄러운 놈이란 걸 잊기 위해서.” 술꾼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털어놓았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어 자세히 물었다.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주정뱅이 말을 끝내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어린왕자열린책들 (52)

 

위의 세 사람, 기도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내게 벽으로 느껴진 이유는, 모든 대화가 기도하나님으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도통 대화의 주제, 문제의 핵심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배우자나 아이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하는데, 열심히 기도하는데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기는커녕, 관계만 더 나빠진다면, 종교 중독 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기도할수록, 신앙에 열심을 낼수록 배제하고 배척할 대상이 많아진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키고, 그것만이 옳다는 확신 속에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닦달하고 통제하고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 여타의 중독과 달리 종교 중독이 가진 치명적 해악이 여기에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누가 봐도 나쁜 것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있다. 책상 밑에, 장롱 안에, 술병을 숨겨두거나 난 그 정도는 아니야하며 자신의 중독 행동을 깎아내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 중독의 행위들은 곧바로 종교적 자부심이 된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의 행위가 진실한 자기 대면을 대체할수록, 즉 중독 증상이 심화 될수록 흔히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중독 권하는 교회에서의 현실이다. 청년부 시절 그 친구, 교회 복도에서 만나는 집사님, 엄마가 내가 기도해보니까라며 치고 들어오면 반격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너는 저들만큼 기도하냐?”는 목소리가 내 안에 울린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할애하는 절대 시간을 비교하면 나는 작아지고 만다. “기도도 안 하는 것들이” “주일성수도 안 하는 것들이중독 행동으로 공격한다면 방어할 도리가 없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기도 중독자를 어떻게 당해낼 것인가. 부끄러움 없는, 거침없는 중독 행동에의 몰입은 필연 나만 옳다는 자아 중독으로 귀결된다. 자아 중독의 몹쓸 폐해, 다른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믿어야 한다고 확신하며 통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신앙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심지어 혐오하기에 십상인 것이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중독과 은혜를 통해 제럴드 메이(Gerald G. May)가 우리에게 준 충격적인 통찰은, 우리 모두 중독자라는 것이다. 출간된 지 한참 된 그 책이 아직도(아니, 이제야) 사람들 사이 회자 되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경험적 증거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코올이나 마약 등, 약물 중독을 넘어 비물질적인 것들에의 중독 증상이 당신과 나의 일상에 흔하다.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열 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알코올 중독이라고.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신자 10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종교 중독자 아닐까?

 

종교 중독은 여타 물질 중독과 달리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다. 스티븐 아터번(Stephen Arterburn)과 잭 펠톤(Jack Felton)해로운 신앙에서는 종교 중독자를 진단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나와 있다. 그 지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특히 동기를 더듬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체크리스트 몇 항목으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행위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의 열정적 행위가 사랑의 발로인지, 자기과시이거나 현실도피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동기를 달아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All a man's ways seem innocent to him, but motives are weighed by the LORD. 16:2, NIV)

 

무의식의 지도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낸 프로이트(Freud)의 업적을 이은 신 프로이트 학파의 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열어준 마음의 세계는 더 깊고 영성적이다. 정신 병리적 관점으로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치유할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의 이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건강한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종교 중독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영성발달과 종교 중독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위의 기도 중독자 세 사람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내가 그들만큼 기도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종교 중독의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그런 종류의 신앙인에게 붙일 언표를 얻고, 속이 시원했다. 주변의 불편한 신앙인들, 하나님을 믿는지 산신령님을 믿는지 알 수 없는 기복신앙을 비추는 만능 거울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거울에서 낯익은 얼굴이 어른거리니, 그것은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를 닮은 내 얼굴이었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나다. 내가 종교 중독자이다. 나는 한때 지독한 종교 중독자였다. 아니 지금도 회복 중인 중독자이다. 이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중독과 은혜의 저자 제럴드 메이가 먼저 길을 열어주었고, 그의 진실한 고백과 연구로 가만히 나를 진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이다.

 

나는 니코틴, 카페인, 설탕, 초콜릿, 등 다양한 물질들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물리적 중독일까 혹은 단지 심리적 의존이었을까?…… 결국,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물질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행위에도 중독되어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중독자이며,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들에 대한 중독은 다른 종류의 중독들에 비해 그저 좀 더 명백하고 비참한 중독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살아 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다.” 중독과 은혜IVP (21, 23)

 

종교 중독, 유발자는 누구인가

종교 중독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성적 학대 분야의 권위자인 패트릭 칸스(Patrick Carnes) 박사가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우리의 연구는 아동 학대가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 …… 그리고 아동기에 학대를 많이 받을수록, 성인기에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독과 학대 경험은 떼어 설명하기 어렵다. 아동기 학대 경험이 중독으로 이어진다면, 종교 중독은 영적 학대와 맞물려 있다고 하겠다. 폭력적인 부모에 의해 아동 학대가 발생한다면, 폭력적인 영적 지도자에 의해 종교 집단의 영적 학대가 일어난다. 아동이든 종교 생활을 하는 성인이든 학대의 피해자는 치명적인 약자이다. 학대 가해자가 가진 힘과 권력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은, 학대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어 악의 고리를 더 강화하게 되어 있다.

 

앞의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과 한 팀인 마태오 린(Matthew Linn, S.J)신부는 정서적 학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두 살 아이에게 열 살 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기대하거나, 열 살 아이에게 두 살 아이처럼 계속 의존하도록 하는 것’. 그대로 영적 학대에 빗댄다면 아직 믿음의 초보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성숙한 신자의 종교 행위를 강요하고, 충분히 성숙한 사람을 유치한 신앙과 신학으로 통제해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 이미지의 투사 대상이다.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한 인간의 신적인 연결을 위해서는 매개자로서의 다른 인간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로 그 매개자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목회자, 종교지도자이다. 종교 중독 유발자는 일차적으로 이런 목회자들이다. 신도들의 영적 갈망, 세속적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들이 가진 수치심(하나님 앞에서 뭔가 늘 부족하다는 느낌, 존재 자체에 흠이 있다는 느낌)(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연료로 삼아 종교 행위를 활활 불태우도록 하는 목사들 말이다. “집사님, 이렇게 기도를 안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아이 앞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겠습니까?”

 

모든 중독의 핵심적인 감정은 수치심이다. 학대 피해자로 자란 아이들은 수치심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항상 울리는 메시지가 있다. “믿지 마,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혹 느끼거나 생각하더라도 자신의 그것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학대의 메커니즘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자신의 느낌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목회자들이 영적 학대자들이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다른 사람의 영적 여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학대라고 하였다. 종교 중독을 유발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목회자는 학대자이다. 역할로 부여받은 목회적 권위를 권력 삼아 휘두르고, 하나님과 자신을 동급으로 여기는 과대망상에 빠진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심각한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중독에 빠진 책임과 거기서 벗어나야 할 의무가 당사자에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동 학대 피해자와 달리 우리는 힘을 가진 성인이고, 무엇보다 직접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이다. 성인 학대 피해자의 힘의 부족은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그 무력감이 학습되었다면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다. 참된 앎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한 빠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대면하지 않기 위해 의존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중독의 실체임을 알고,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다시 술을 마시는 순환을 멈추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중독 치료로 알려진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를 창설하고 12단계 회복프로그램을 만든 빌 윌슨(Bill Wilson)은 중독자를 일컬어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두통이 있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느끼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교회 봉사를 하고, 헌신하고, 하고, 하고, 하는· 망치질을 일단 멈춰봐야 한다. 두렵더라도 두통의 실체를 맞서고 드러내야 한다. 망치질 권하는 학대자의 목소리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대자와 함께 중독 유발자가 되는 것이고, 그 피해는 오롯이 망치질에 부서지는 자기 머리통이다.

 

종교 중독의 치유, 다시 잇기

A.A 12단계의 1단계는 이렇다.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인했다.” ,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만큼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명확한 첫걸음은 없다. 우리 모두 종교 중독과 건강한 영성발달 단계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면, 건강의 지표는 중독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실존적으로 인정하는 정도가 아닐까. 다시 말하면, 회복과 성장을 위한 희망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나는 결코 종교 중독자일 수 없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이다자부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철저하게 타자화하고, 거침없이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타자화한 그 존재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자기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 사람 사기꾼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사기꾼의 개념도 있어야 하고, 그 개념을 형성한 직간접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종교 중독이 알아 차려지고 유난히 잘 보이는 것은 거기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동 후에 행패를 부리던 노인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혜신 박사는 소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했다. 노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얘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꺼낸 말이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였다. 나는 광화문에서 세월호에 욕설을 퍼붓는 노인을 떠올리면 지독한 종교와 이념에 복합적으로 중독된 구제 불능의 중독자가 연상된다. 종교 중독의 그러데이션에서 가장 진한 부분, 저쪽 끝 어디에 두게 된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자기 성찰을 끌어낸 정혜신 박사의 내적인 힘이 놀랍기만 하다. 그 책에서 내내 말하는바, 존재에 주목하면 이어진다는 것이다.

종교(religion)의 어원 re-ligio다시 묶는다, 다시 띠를 두른다라는 뜻이다. 나와 타자, 나의 실존과 일상의 고통, 지금의 나와 미성숙했던 나를 분리하는 한, 중독의 회복도 영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 분열된 것들을 다시 잇는 참된 종교의 회복이 종교 중독으로부터의 치유이고,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회심인지 모르겠다. 잠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우리에게 연결되자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인지 모르겠다.

 

* 출처 : 월간 <복음과 상황> 356호(2020년 7월호) 커버 스토리 “중독과 열정 사이”

 



조금 울었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연재 마지막 글을 위해 고른 찬송을 불러보다 조금 울었다. 기타 들고 소리 낮춰 불렀다. 누군가를, [큐티진] 독자를 앞에 세우고 불러주는 노래가 되었다. 누군가, 또는 독자가 구체적인 얼굴이 되었다. 오랜 취업준비생의 날을 보내고 있거나, 직장생활 한다지만 일의 기쁨 같은 건 느껴보지도 못하고 근근이 버티고 사는 무표정한 얼굴. 언제 펴질지 모를 형편으로 기약 없이 결혼을 미루고 있는 커플의 안타까운 얼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애와 결혼, 원치 않게 길어지는 비혼의 시간에 당황인지 좌절인지 모르는 무력한 얼굴. 오랜 기다림 끝에 결혼했으나 금세 불행의 낭떠러지 앞에 서서 되돌아가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막막한 얼굴. 미성숙한 부모 인생의 짐을 대신 지고 희망조차 품지 못하는 얼굴, 얼굴, 얼굴들. ‘인생역전의 소망을 노래하며 연재를 끝내려고 선곡했는데 가사 속 쉬운 반전이 현실의 얼굴들과 멀게만 느껴져 눈물이 났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연약함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씨 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움 후에 평안 있고 슬퍼한 후에 기쁨 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한 후에 친구 있네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이 된 나의 인생 여정에도, 청년들의 시간에도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선의는 작동할 것이다. 어둠 후에 올 빛, 이 눈물 그친 후에 주실 새로운 웃음, 분명 좋은 것 주시는 분임을 안다. 문제는 빛이 오기까지의 어둠 속에서 어떻게 더듬어 가야 할지. 어둠과 빛, 눈물과 웃음, 괴로움과 평안 사이 우울과 무력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의 작가 도널드 밀러를 좋아한다. 그가 쓴 모든 책을 재미 그 이상의 감동으로 읽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도 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천년 동안 백만 마일> 어느 부분에 나왔던 것 같은데 뚱뚱한 몸으로 티브이 앞에 앉아 하염없이 스낵을 먹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이란 책으로 소위 대박이 났지만 그 이후에 낸 책들은 잘 팔리지 않았고, 작가의 말 그대로 다시 정서가 불안해졌고 일상으로 돌아갔단다. 이후로 도널드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이 배경화면으로 깔린다. 최근작 <무기가 되는 스토리>는 기독교 아닌 일반 서적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니 승승장구 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도 티브이 앞에서 감자칩 먹는 폐인 모드의 도널드를 상상하며 웃음이 나왔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 사이, 강연과 강의 사이 혼자 있는 순간 외로움과 공허감에 여전히 잠깐씩 폐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천년 동안 백만 마일>엔 저 찬송의 어두운-후에-, 연약함-후에-강건, 고독한-후에-친구가 오는 과정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반전이 오기 전의 그 지난한 시간-오늘 우리의 일상과 같은-을 견디는 비법도 등장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 인물이 무엇인가를 원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그것을 얻어 낸다.’이다. 물론 한 인물은 도널드 자신이며 그의 열혈 독자인 나, 또 나의 이 글을 읽는 <큐티진>의 독자 여러분이다. 우울하고, 지루하고, 무력하여 맥락 없는 오늘이 기승전결의 큰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내가, 당신이) 이야기의 이나 쯤에 있다면 숲에서 길을 잃었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비참한 상황으로 설정된다. 어두움, 비바람, 수고, 슬픔, 씨 뿌림, 멀어짐, 고독. 찬송에 등장하는 것들은 이야기의 흔한 소재들이다.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갈등의 소재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무엇이 이들을 살아남게 했는가.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 터무니없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 이들이라고 하였다. 도널드 밀러 식으로 말하면 소망 없어 보이는 오늘이라는 조각 시간이 맥락 있는 이야기 속에 있다는 의식일 것이다. 가장 크고 확실한 이야기는 십자가와 부활, 죽음 너머의 삶이겠고. 여러분과 내가 오늘을 견디고 사는 이유일 터이다. 이러한 도가 진리이다.

 

고생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영광 있고

죽음 온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가 진리로다

 

내 맘에 있는 노래의 결국은 이렇듯 예정된 해피엔딩이다.


<QTzine>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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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에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열 편의 글을 썼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 글이 내 인생을 쓰는 것인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글로 정리하는 몇 개월이 되었습니다.

또는 10년이 훌쩍 넘는 긴 방황을 글이 나서서 종결시켜 준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글을 기획 했지만, 이런 글이 나올 줄 몰랐고.

힘들고 아플 줄 알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열 편 모두 울지 않고 쓴 글이 없습니다.

글이란 게 내놓으면 더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알았지만,

읽는 이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도, 

읽는 이의 태도에 따라 의미 없는 문법의 배열에 그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엄마, 동생까지 동원하여 가족의 흑역사를 까발린 사연팔이 글이라 

내놓고도 부끄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마쳤다는 것이 좋아서 혼자 조금 들뜬 밤입니다.

모처럼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글은 링크를 따라가 읽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적 사춘기를 겪는 가나안 교인에게 

목사를 대적한 사람의 말로 : 더 깊은 사랑과 성장을 위하여

영적 학대, 재난이 온다 : 두 살 목사와 열 살 교인

어느 종교 중독자 : 중독과 은혜 사이

목사 혐오와 우상화를 넘어 : 종교 중독, 영적 학대에서 벗어나려면

영적 비신자, 종교적 신자 : 신앙 성숙의 기준

그러면 기도하지 말까 : 영성 생활의 출발점

착한 나쁜 그리스도인 : 생각하지 않는 죄

사모, 아프거나 미치거나 : 이름을 갖지 못한 사람들

밥벌이로써의 목회 : '거룩한 소명'의 뒤안길

신앙 사춘기를 넘어 : 어른으로 가는 여정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3

 


주일 예배 순서에 참회의 기도 시간이 있다. 솔직히 맹숭맹숭한 마음으로 눈만 감고 있는 날이 많다. 말로는 수백 수천 번 인정하고 고백했지만 실은 좀 무덤덤한 정체성이 죄인인 나이다.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것일까. 아니면 무감각 그 자체가 죄인지 모를 일이다. 투명하게 나의 를 느끼자면 어디 한 순간이라도 견딜 수 있겠는가.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찬송가 2741)

 

전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말 중 하나가 죄인이라는 얘길 들었다. 비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편해 하는 말이다. 뭘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죄인, 죄인 하느냐는 것. 비신자만 그럴까. 우리도 불편하다. ‘내가 행한 것이 죄뿐이라!’ (하도 들어서)머리로는 인정, 가슴으로는? 글쎄다. 나름대로 큐티 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기도도 하고, 미운 사람 품으려 애쓰면 살고 있는데 행한 모든 것이 죄라니 좀 심하지 않은가.

맹숭맹숭하던 주일 참회의 기도시간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남편과 관계가 틀어져 말을 안 하고 있거나, 예배 가기 직전 아이들을 윽박지르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이다. 뒤틀려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에 가 앉으면 오히려 일단은 심사가 더 뒤틀리는 것 같다. 누가 됐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죄다 고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솔직히 그의 죄가 밝혀지는 순간 나의 치부까지 드러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다른 일로 화가 났던 걸 괜히 아이들에게 쏟아냈다는 자각이 생기면 비로소 뒤틀린 것들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만만한 아이들, 착한 남편에게 내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놓고 말았구나! 그럴 때 꽉 쥔 주먹이 풀리고 가슴이 저릿하며 참회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2)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며 눈까지도 밝으리라(3)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는 태도에서 한 발만 이탈하면 작은 빛이 새어드는 것 같다. 죄가 보이기 시작한다. 빛 하나 들어올 틈 없이 온통 나의 의와 옳음으로 가득한 캄캄한 마음의 숲에 말이다. 그 작은 빛 한 줄기로 여기저기 내 마음을 조망한다. 그 신령한 빛이 닿는 지점마다 죄의 흔적으로 처참할 줄 알았건만. , 빛이 닿는 지점마다 즉시로 말끔해진다. 나 행한 것 죄 뿐인데! 죄로 가득했던 마음이라 차마 내보이기 싫어 꼭꼭 닫고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갔지? 눈물로 드린 참회의 기도는 알 수 없는 말끔함으로 끝이 난다. 죄의 고백과 끝은 용서로 주시는 정결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스캇 펙의 <주와 함께 가는 여행>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필리핀의 한 마을에 어린 소녀가 예수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마닐라의 추기경에게도 들려졌다. 추기경은 한 신부를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조치했다. 세 번의 조사에서 그 신부는 도저히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고 실망한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네가 다음번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도록 해라.” 어린 소녀는 그 말에 동의했다. 한 주 뒤 그녀는 다시 소환되었고, 신부는 곧바로 물었다. “그래, 사랑하는 딸아,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느냐?” “, 신부님하고 어린 소녀는 대답했다. “그래, 네가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 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 신부님 저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신부는 따져 물었다.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던?” 어린 소녀는 즉시 대답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잊어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늘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우리 마음에 순도 100% 정결함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시시각각 찾아드는 자기중심성의 악함을 다 버릴 수 있겠는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마음의 정결함이다. 지고의 마음수련 같은 것들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 깨끗한 마음이다. 회개하는 자의 죄를 잊어버리시는 분, 도말해주시는 분의 신비하도록 놀라운 사랑 아니면 안 된다. 그저 우리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부여안고 죄인 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할 뿐이다. 인정하고 회개할 뿐이다. 그리고 얻는 것은 용서와 정결함, 무엇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신비의 체험이다.

 

<QTzine>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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