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8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의 창가, 낮은 책꽂이 위에 공들여 키운 화초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심지어 식구들에게도 그렇고 그런 들쑥날쑥 흔한 식물이겠으나 공들여 키우는 제게는 다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매만집니다. 사랑을 듬뿍 받는 녀석들이지요. 돌보는 이가 한결같지 못하여 간혹 방치될 때도 있습니다. 일이 많아 바쁘거나 마음이 메말라 화초는 물론 그 무엇도 돌볼 여유가 없는 날이 있지요. 그런 순간엔 돌보지 못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바쁜 일이 지나고 아팠던 마음이 나아지면 비로소 잎을 축 늘어뜨린 화초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어 싱크대로 가져가 하염없이 샤워를 시켜보지만 끝내 살아나지 못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회생불가 판정을 내리고 싱크대 안에 둔 채 하룻밤을 자고 났는데 어느 새 살아나 빳빳해진 잎을 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부활이구나, 싶어 조용히 쿵쿵 심장이 뜁니다.

 

한결같지 못하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주인인 제게 스파트필름이라는 화초는 딱 마음에 드는 놈입니다. 물 줄 시기가 지나면 바로 어깨, 아니 잎들을 축 늘어뜨립니다. 온몸으로 목마름을 표현하지요. 주인의 일상과 마음의 몰골이 말이 아니라도 물 달라, 제발 물을 달라온몸으로 시위하는 녀석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얼른 물을 떠다 바치며 흐릿해진 마음의 줄을 다잡게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녀석이지요. 그래, 목마르다고 말을 해야지! 표현을 해야 알지! 꾹꾹 참고 아무 내색 안 하다 갑자기 시들어져 회생하지 못하고 떠나간 초록이들이 야속합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화초가 목소리를 가졌다면 스파트필름 같은 녀석들은 주인님, 목마릅니다.’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 소리에 손을 움직여 물 한 바가지를 먼저 부어줍니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제 마음에 단비를,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소서. 구하고 두드리고 찾아야 합니다. 정말 그래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먼저 갈증을 느낄 수 있어야 말이든 기도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목이 마른지, 배가 고픈지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목마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은 목마름을 느끼는 살아 있는 감각입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자기 영혼의 메마름을 감지할 수 있다면요.

 

빈들의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찬송을 시작하는 첫 구절, 이 한 구절에 저는 마음을 빼앗깁니다. 오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빈들의 땅, 말라 시들어가는 위태한 풀 한 포기 같은 영혼의 상태를 간파해내는 작사자의 감각 말입니다. 우울해, 사는 게 재미가 없어, 꿀꿀해, 사람이 다 싫어, 공동체가 무슨 필요야,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 툭 내뱉어진 나의 말에서 시들은 나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면요. 우울하고 외롭고 화가 나는 지금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지는 않겠지만 ,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성령의 단비로구나!’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 오래 방치된 탓에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있지만, 회생 불가의 메마름이 아님을 알고 소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퍼뜩 일어서진 않겠으나 하룻밤 이틀 밤 지나며 다시 살아나 생명과 맞닿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언약은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기실 실낙원 이후의 인간은 늘 목마른 존재입니다. 연결되어 있어야할 그 무엇, 생명의 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무의식적인 결핍감은 아무 것이나 들이키게 하고 빠져들게 합니다. 애정이든, 알코올이든, 하다못해 스마트폰의 화면이든 무엇에든 사로잡혀 있고 싶게 만듭니다. 그렇게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상해지고,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금세 공허해지는 이유. 무언가 더 좋은 것을 향한 끝없는 목마름입니다. 결국 애초 단절되었던 그 관계, 사랑이신 분으로 충만해지기까지 우리의 목마름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보며 내 영혼이 노래합니다.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7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생각하는 것이 미덕이긴 하지만 그러다 생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고백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생각만하다 상대에게 청첩장 받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상상만 해도 아쉬움의 산사태가 밀려오는 사태네요. 좋은 생각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 이럴까요, 저럴까요? 묻고 기도합니다. 꿈에라도 주님께서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응답 주시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난 어느 시점에서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숙고하고 기도하되 반드시 어느 시점, 생각의 언덕을 떠나 체험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나는 젖지 않겠다, 작심을 하고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노는 친구들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정경, 서로를 빠트리고 도망가고 파도를 타며 노는 친구들.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몸을 하고 친구 여러 명이 내게 몰려옵니다. ‘갈아입을 옷 없어, 나는 빠트리지 마물에 빠지지 않으려 도망 다니다 결국은 잡혀 빠지고 맙니다. 에라, 이미 버린 몸! 하고 깊은 곳으로 헤엄쳐 나가고, 친구 목을 껴안고 물을 먹이고, 그러다 나도 짠물을 들이키고. 이것이 살아있는 체험입니다. 물가에서 앉아 바라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체험이지요.

 

왜 너 인생을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 번 헤아려 안보나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 가네

 

상념에 젖어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바닷물에 젖는 것이 참다운 체험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부인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헌데 오늘 찬송은 은혜의 바다를 노래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역설입니다. 그 바다가 바로 그 바다라고 할 때. 고통의 바다인 인생은 동시에 은혜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은혜의 체험은 다름 아닌 고통과 두려움의 한 가운데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체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에게 청첩장 받는 그 순간까지 대시할까, 말까 물가에 앉아 모래성만 쌓았다 부수고 쌓았다 부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절당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지요. 연애든 진로든 하다못해 오늘은 뭐하지? 일상의 작은 선택이든 풍덩 뛰어들어봐야겠습니다. 고통의 바다임을 알기에 두렵지만, 바로 그 고통 속에 뛰어들어봐야 비로소 은혜의 바다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의 모래를 털고 출항합시다. 지금, 바로 지금 갑시다.

 

거절당할 수도 있지, 반반의 확률이니 고백하자. 그리고 결과는 감수하는 거야!

100% 흡족한 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일단 시작해보자!

내가 공부했던 부분이니 맡아보자, 몰랐던 부분이 드러난다고 내가 바보가 되는 건 아니니까! 내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자. 반대의견이 있지만 어쩌겠나피할 수 없는 갈등이라면 감수할 밖에!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6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Come home, Come home.

  


집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집을 떠나본 사람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출퇴근용 떠남일 수도 있다. 바쁜 일정으로 끼니를 거르거나 계속 매식을 해야 할 때 집에서 밥 먹은 지가 언젠지하며 집밥 생각이 난다. 긴 시간 집을 떠날 수도 있다. 난생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시작하며 자주 독립 만세! 룰루랄라!’ 하겠지만 독립 시작, 집밥 그리움도 시작이다. 해외에 혼자 나가 있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간절한 집바.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원초적인 감각인 식욕으로 대변되는 존재의 깊은 곳의 그리움이 아닐까.

 

긴 겨울이 끝난 건가, 날이 좀 따뜻하네, 싶으면 어느 새 목련 꽃봉오리가 촛대처럼 올라와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촛대 끝이 벌어져 있고, 그러기 시작하면 대기표 받고 있던 봄꽃이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한다. 생명력 가득한 이 짧은 나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나리의 연호를 받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부담 되던 강의와 원고가 끝나 마음은 여유롭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잔 덕에 몸은 한껏 가벼웠다. 모처럼 안팎이 모두 평안한 순간이다. 만개 직전의 노란 개나리 길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고 느낀 순간, 가슴 저릿하면 내 속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집에 가고 싶어요. 주님이게 무슨 소리? 집으로 가고 있는 길인데 말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옛집이 그리운 탓이었을까? 아니다. 옛집이 아니다. 그저, 바로 그 집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다양한 층위의 갈망이 있다. 그 갈망이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어 간다. 심리영성가들은 그 갈망을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욕구로 구분하곤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몸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것은 신체적 욕구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정서적인 충족감을 갈망하는 심리적 욕구도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몸도 마음도 다 편한데 뭔가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보다 진실한 것, 보다 깊은 관계에 대한 갈망. 이것은 단지 심리적 욕구 그 이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 영적인 존재로서의 목마름이다.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 부족할 것 없는 순간에 밀려오는 그리움, 고독감, 공허감은 나를 영적 목마름으로 이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찬송 가사의 죄 있는 자란 회심하기 전, 예수님을 알기 전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매일 매 순간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는 나, 사랑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꽃길을 걷다 한숨처럼 밀려 나온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오라, 오라하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내 영혼의 답가일지 모르겠다. 흔히 영성을 정의하기를 인간 마음속의 진실한 갈망, 즉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속의 갈망이 이끄는 영혼의 여정이라고 한다. 집밥은 단지 밥이 아니라 엄마와 가족이 있는 따뜻한 곳인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고픈 목마름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다. 위 찬송가를 영문 가사로 불러보니 후렴의 'home'이 얼마나 큰 따스함으로 다가오는지. Come home, come home. 작은 소리로 여러 번 불러본다.

 

Come home, come home. You who are weary come home.

Earnestly, tenderly Jesus is calling. Calling all sinner, come home

 

집으로 오렴. 내가 여기 있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이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건만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이다. “예수님, 좀 기다리세요. 자꾸 귀찮게 하지 마시고 주일날 예배 때 만나요. 다음 수련회 저녁 기도회 시간에 만나요. 이 외로움, 분노, 실패감, 지질한 감정들 다 정리 되는대로 당신께 갈게요.” 이러는 대신 3절을 노래하며 바로 지금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 하려나주님이 만나자고 하는 곳과 장소는 죽어서 가는 저 천국만이 아니다. 신변 정리 다 하고, 웬만한 죄는 좀 털어내고, 한 듯 안 한 듯 비비크림 발라 영적인 화장을 마친 후가 아니다. 바로 지금 그분을 만나러 내 마음 깊은 곳 갈망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날이 오랜 후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원한 집(4)’에서 두 팔 벌려 영접해주시는 그분과 헤어짐 없는 만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말끔하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후줄근한 차림으로 서 있을 때의 느낌이 있다. 백화점 의류 매장의 마네킹 사이를 걸어 아이쇼핑할 때의 기분도 비슷하다. 날아갈 듯 가벼운 봄 신상 사이에선 그럭저럭 괜찮았던 내 겨울 코트가 한 물 간 듯싶고 둔하게만 느껴진다. 여기저기 일어난 보푸라기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비교를 하자면 나와 나를 비교할 수도 있다. 제일 좋은 정장을 차려 입고 결혼식 가는 나와 무릎 나온 운동복 차림으로 라면 사러 가는 나는 내 눈에도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는 잠시 옷을 바꿔 입어 신분까지 뒤바뀌어버린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이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몸의 자세는 물론 마음의 당당함도 달라진다. ‘왕자와 거지처럼 신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한 인간으로서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삶이다.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참 아름다워라

그 향기 내 맘에 사무쳐 내 기쁨 되도다 (1)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세상 오신 예수님 참 내 구세주 (후렴)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이 성화에서 보는 번듯하고 빛나는 옷이 아님을 안다. ‘내 주님 쓰라린 고통을 다 견디셨도다. 주 지신 십자가 대할 때 나 눈물 흘리네.’ 2절 가사에 힌트가 있다. 십자가 지신 그날의 옷을 상상해본다.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에 흠뻑 젖었고, 다시 마르고 또 젖고 했을 것이다. 땀에 피가 배어 나오도록 고통스럽게 기도하셨다니, 핏자국이 있을 지도 모른다. 빌라도 판결 후에 군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삶의 체취로 얼룩진 옷을 벗긴다. 그리고 왕의 옷이랍시고 자색 옷을 입힌 후에 네가 왕이냐조롱을 해댄다. 예수님의 사람 냄새로 얼룩진 옷은 결국 찢겨져 모멸의 천 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그런 예수님의 그 옷이 아름답다고? 내 기쁨이 된다고?

 

내 주님 영광의 옷 입고 문 열어주실 때나는 이 부분에서 눈물이 터지곤 한다. 그 영광은 몸소 당하신 고난과 수모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 수고로운 생의 끝에서 그분이 열어주시는 문을 통과할 때, 나 역시 영광의 새 옷을 입을까. 부끄러움과 외로움, 끝없는 실패로 누덕누덕 죄 된 옷을 벗어 던지고 천상의 옷을 입을까. 그 소망이 멀고도 가깝고, 아스라하며 또렷하다. 그 영광의 옷 입을 날을 그리며 이 땅을 사는 내 영혼의 누더기 옷을 직시하자니 눈물이 난다. 내가 오늘을 살 듯 역사 속에 들어와 33년을 사신 예수님, 리얼(real) 인간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셨을까. 평생 집 한 칸 없이 번듯한 옷 한 번 입지 못하셨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메마른 땅을 걷고 또 걸으시며 다니시던 그분의 행색은 영락없는 노숙자이었을 터. 하지만 권세 있는 말씀으로 어디서든 군중을 몰고 다니셨다. 예수님에 열광하던 군중은 금세 예수님을 미워하고 조롱하고 침 뱉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이 뱉은 침으로 내 주님 입으신 옷은 마지막까지 오욕으로 얼룩진다.

 

결국 옷의 문제가 아니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는 옷을 바꿔 입는 것으로 신분이 바뀌고 운명이 달라지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입어도 예수님이셨다. 땀에 절어 냄새 나는 옷을 입고도 왕이셨고, 모조품 왕의 옷을 입고 조롱당할지라도 하나님 아들이셨다. 명품 옷 입은 사람과 앞에서 추레한 옷 모양새를 셀프 스캔하며 어깨를 움츠리는 나와 달리 그분은 당신의 존재로 그 입으신 옷을 영광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사랑받는 자’, 이 한 마디로 이 땅을 사신 예수님을 정체성을 규정한다. 요단강 세례식에 울려 퍼진 하늘 아버지의 목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 이 천한 세상(후렴)’ 오셔서 짓밟히고 버림받아도 결코 손상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모멸과 수치의 옷을 입고도 사랑을 잃지 않는 당당함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랑받는 자, 이미 사랑 받는 자! 반대로 입은 옷에 스스로 규정당하고 사람들의 시선에 존재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하여 흔들리는 나는 사랑받는 자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불신앙이다. ‘내 주님 입으신 귀한 옷 나 만져보았(3)’으니 나도 그리 살자. 몸에 걸친 옷, 사람들의 시선,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사랑받는 자의 중심, 아름다운 중심으로 살자.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4

 



교회 울타리 안에서 공식 비공식적인 상담한지 오래다. 그 사이 내 귀에 깔때기하나가 생겼다. ‘사모님, 공동체가 뭐죠? / 저 올해 리더 그만 둘래요. / 교회와 세상이 다른 점이 뭐죠? / 사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 우리 교회는 성경공부가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회로 가야겠어요.’ 여러 정황 속에 나온 말이지만 대부분 사랑받고 싶어요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시쳇말로 관종이라고 한다. 관심이 필요한 종자들이라는데 실은 우리 모두 관종 아닌가. SNS에 사진 올리고, 일기인 듯 일기 아닌 일기를 올리는 이유도, 심지어 갑자기 프로필 사진을 제거하는 이유조차도 나 좀 봐 주세요일 터. 단지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선한 관심 즉, 사랑을 보여 달라는 뜻이니 SNS 타임라인에 울려대는 알림은 그저 이 노래의 가사 자체일 듯하다.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받기 원하네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 요구 하도다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찬송가 503세상 모두 사랑 없어’. 교회에서 흔히 불리는 찬송이 아니다. 곡의 길이나 특유의 늘어지는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이렇게 적나라한 가사는 불편하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이 필요하다고 노래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것은 나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로 시작하는 가사는 내 깔때기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세상이 너무 추워. 나는 사랑이 필요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불편하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적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무력함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에두르는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괜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거나, 토라지거나, 일의 성공에 목숨을 걸거나, 방어막을 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거나. 이 대목에서 다른 찬양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나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그들를 대입했다가 다시 한 발 물러나 그들을 그들로 부르기를 반복한다. 주님, 아니 사랑이 필요한 그들을 온전히 타자로 세울 수는 없는 탓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며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채워줘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는 것이다. 내 코가 석자인 주제에, 누구 못지않은 관종인 주제에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의 찬송이 등을 떠민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 하겠네

저들 소리 들을 때 가서 도와줍시다 만민 중에 나가서 예수 사랑 전하세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리는 비에 장독대 뚜껑을 열어두면 빗물이 가득차고, 가득 찬 후에는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랍시고 쥐어짜 내주고 난 후에는 내가 너에게 해준 게 얼만데본전 생각나기 십상이다. 우리 영혼은 장독대 같은 빈 그릇일지 모른다. 장독대가 스스로 자신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생성해낼 수 없는 존재이다. 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아가페라 불리는 오는 사랑이 가득 채워질 때 흘려보내는 유통자,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부어져 있다. 우리 존재에 이미 부어져 있는 사랑을 믿는 것은 사랑이신 분을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고 한다. 삶의 희망을 다 잃고 극단적인 선택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진심어린 경청은 말하는 이를 절망에서 일으키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어차피 답은 없지만 이렇게 털어놓으니 그나마 살 것 같다.’ 언젠가 속으로 이랬던 적이 있는 것 같고.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런대? 어쩔 수 없는 것 아는데 속상하다고. 그러니까 그냥 좀 들어달라고.” 열폭했던 기억도 있다. 좋은 벗이란, 좋은 선생님이란, 좋은 상담자란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에겐 잘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소위 걸어 다니는 고민상담소라 불리는, 상담의 은사가 있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사함을 너 받으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친구는 누구인가. 부끄럼 없이 나를 다 드러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도 나를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를 그대는 가졌는가. 그런 친구 한 분을 소개하며 만남을 주선하는 찬송이다. 기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이 찬송에서 기도는 진실한 친구와 의 만남이다. 모든 것을 쏟아놓아도 좋을 진실한 친구, 예수님 말이다. ‘~어룩 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만유의 주,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는하나님. 주일 대예배 장로님의 대표기도 속 하나님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저 높은 곳에 멀리 계신 하나님, 어쩐지 내겐 어려운 하나님. 내 지질한 얘기는 다 넣어두고 오타 하나 없이 정리된 보고서 들고 찾아뵈어야할 것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친구로 오신 하나님, 예수님이신 하나님 말이다.

 

청년 시절 교회에서 24시간 릴레이 기도회를 한 적이 있다. 중대 사안을 놓고 온 교인이 함께 기도하자는 취지였다. 퇴근 후, 내 담당 시간이 되어 교회 기도실 마룻바닥에 가 앉았다. 릴레이에서 내가 달릴 분량이 한 시간. 준비된 공식 요구사항(기도제목)을 다 읊었는데 시간이 몇 분 지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현안과 기타 등등의 기도를 해봐도 남은 시간이 길다. 앞뒤, 옆으로 슬슬 몸을 흔들며 기도 리듬은 타고 있지만 마음은 천지사방을 헤매는 분심에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삐그덕 기도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삐걱삐걱 천천히 마룻바닥을 걷는 소리. 풀썩 방석이 놓이는 소리가 난다. 그 위로 퍽 하고 짐짝 하나가 패대기쳐지는 둔중한 소리와 느낌이 내 자리까지 전달되어 온다. 그리고 바로 한숨 가득한 한 마디 주님, 너무 힘들어요.’ 그 한 마디의 무게로 기도실 마룻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청년부 후배였다. ‘주님, 너무 힘들어요이 한 마디에 그의 하루, 그의 고민, 마음의 짐이 멀뚱거리던 내게까지 온몸으로 전달되었으니. 주님의 마음은 저 한 마디에 얼마나 무너지셨을까.

 

작심하고 앉은 기도의 자리에서 냉랭한 기운 떨쳐버릴 수 없을 때, 그럴듯한 말로 또박또박 기도할 수 있지만 가슴은 도통 뜨거워지지 않을 때 떠올린다. 기도실 마룻바닥에 쿵하고 떨어지던 그 수고롭던 몸과 영혼의 무게감을. 기도의 자리에서 그분을 마주하는 것은 이렇듯 잔뜩 지고 있던 짐을 일단 내려놓는 일. 그리고는 짐 보따리 안에서 좋은 것, 고운 것 먼저 꺼내 보이며 이미지 관리할 것이 아니라 자루 째로 쏟아놓으라 한다.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감사와 함께 근심 걱정을, 기쁨과 함께 슬픔을, 사랑과 순종의 열매와 함께 단 한 사람 용서할 수 없어 메말라 갈라진 마음을 쏟아 놓으라고 말이다. 기실 정말 좋은 친구 앞에서는 그리 하지 않는가.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곁에 모시어라.

그 영원한 생명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주님, 너무 힘들어요. 당신께 실망했어요. 내 기도 듣고 계신 것 맞아요? 당신이 안 계신 것만 같아요.’ 정직하게 풀어놓고 꺼내놓아 텅 빈 마음의 방은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다. 공감의 여왕을 친구로 뒀다 해도 사람 친구가 주는 위로는 금세 다시 목마를 물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가진 유일한 친구가 예수님임을 깨달을 때 기도는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이 좋은 만남으로 어느 새 사라진 슬픔은 이웃의 슬픔에 가닿을 것이다. 가만히 내 기도 들어주시는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을 영혼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길지 모르겠다. 이 찬송의 시작과 끝이 다르다. 기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대신 그분이 주시는 쉽고 가벼운 멍에, 사랑의 짐을 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결국이 아니겠는가.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저 주라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 빛 비추어라

 



내 맘에 한 노래 있어2 [QTzine 2017년 2월호]


 

거절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 안 되는 상황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하고 보는 사람들이다. ‘예예해놓은 일 뒷감당 하면서 내가 미쳤지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해요라고 하는 말 뒤에 그래서 착한 사람이다라는 자의식이 깔려있는 건 아닌지. 요청받는 일이 교회 일일 때는 어떨까? 주님의 일이라면 더더욱 거절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배웠고, 조금 버거워도 십자가 지는 것이 순종의 길이라고 배웠다. 성가대 반주부터 시작해서 구역 특송 연습까지 불려 다니는 반주자가, 청년부 수련회에 단기선교며 성경학교까지 따라다니느라 여름 한 철 다 보낸 성실한 청년이 차마 불평도 못 하게 하는 찬송이 있다.

 

너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가라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458)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 그 길을 따르느라 힘들고 지쳐도 결코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 등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찬송 부르다보면 심지어 힘들어 하지도 말아야 할 것 같다. 아침 해같이 빛나는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라니! 불평이나 원망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연히 지나가다 잠깐,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진 덕에 집안이 복을 받았다는 얘기이다. 타인의 요구, 특히 교회에서 받는 봉사의 요청을 억지 십자가로 져야 할까? ‘억지로 기쁜 것은 과연 기쁜 것인가?

 

인간의 심리학적, 영적 발달에서 가장 성숙한 경지에 이를 때 드러나는 덕이 자발적 자기희생이라고 한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셨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이다. 십자가는 바로 자발적 자기희생의 표상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는역설을 푸는 열쇠는 자발성에 있겠다. 착한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상대가 섭섭해 할까봐, 순종하지 않으면 벌 받을까봐 두려움에 이끌리는 선택이 아니라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사랑의 선택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진 십자가는 참 기쁜 십자가일 수 있는 것이다.

 

착한 청년들의 노동력과 재능과 시간을 무한정 요구하는 교회, ‘헌신 페이권하는 교회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 시키는 교회(어른)나 시킨다고 다 하는 사람이나 분명 돌아봐야할 지점이다. 그렇다고 날 선 감정으로 내가 왜 해야 하는데요?” 교회에서 시키는 일은 일단 거부하고 보는 것이 주체적인 신앙인의 길도 아닐 것이다. 분명 사랑의 길은 희생의 길이니 말이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의 희생과 순종이 되기까지, 묻고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말이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실 수는 없나요?’ 땀에서 피가 배어 나오도록 하나님과 독대하여 지낸 밤. 그 지난한 밤을 지난 후 비로소 그러나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향해 자발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선택의 상황에서 불확실한 지점에 머무르는 것, 갈등을 오롯이 견디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맹목적으로 순종하거나 맹목적으로 거절하는 것이 쉽지 말이다. 나의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타자의 요구를 명확히 하며 그 긴장을 견뎌내는 것은 겟세마네 예수님처럼 고독한 대면이다. 이 시간을 홀로 견뎌내는 사람만이 맹목의 희생이 아니라 자발적 희생의 덕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자랑삼거나 방패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부담되는 요구를 받을 때 멈추어 보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내가 이것을 하려는 동기는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다시 자문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던질 때 그것은 정직한 기도가 된다. 그 정직한 대면 끝에 지는 짐은 억지로 지는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을 따름이다. 그 길에서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지는 신비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신비는 슬픈 이웃에게 절로 흐르는 사랑과 위로의 강물이 될 것이다.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가라

내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어느덧 주말이 가고 월요일과 맞닿은 주일 밤, 공기가 다르고 마음의 기압 또한 다르다. TV ‘개그 콘서트의 엔딩 음악이 주말의 끝을 알린다. 주일 예배와 에프터까지 마치고 탄 지하철 안은 한산하여 더욱 무거운 공기로 가득. ‘내일은 월요일. 출근! 출근! 알지?’ 일요일이 가고, 월요일이 다가오는 소리의 압박이다. 월요일이 싫은 건지, 주일의 교회 하루가 아깝도록 행복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주일의 위안이라 해두자. 교회생활이라고 마음의 부대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 비하면 천국 아닌가. 오직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산적한 곳, 일의 결과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직장 말이다. 게다가 교회 사람, 회사 사람이 주는 안도감의 차이란! ‘월요병이란 것이 주말의 여유와 일하는 보통날 사이 분열을 앓는 것이라면 신자들에겐 더 치명적이다. 늦잠이나 드라마 정주행보다는 주님과 함께한 시간이 더 의미 있다 느끼는 우리니까.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442)

 

어릴 적부터 교회 죽순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주일 하루, 또는 교회와 관련된 만남은 주님의 동산에 안기는 느낌이다.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 전, 아무도 없는 새벽의 정원에서 내 사랑하는 주님과 데이트. 얼마나 치유적이고 황홀한 시간인가. 성과를 내거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일일이 보고서 작성할 필요가 없는 곳, 까다로운 고객들과 신경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귀에 들리는 소리라곤 오직 그분의 사랑의 음성, 영원과 잇대어진 듯한 사랑의 순간. 우리 모두 이런 동산이 필요하다. 주일 밤에 밀려드는 공허감은 비밀의 화원에서 맛본 천상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회사가 교회 청년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부서가 청년부 소그룹 같다면, 팀장의 성숙함이 조장 언니와 같다면.....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괜찮다. 월화수목금 시간은 가고, 다시 불금이 오고, 그리고 다시 동산의 시간이 올 테니까. 월화수목금이여, 빨리 가라.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찬양의 3절이 나의 등을 떠민다. 세상이란 괴로운 곳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시 돌아갈 이유가 된다는 듯. 그렇다.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산다는 것은 괴로움을 짊어지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본설정이다. 그러니 괴로움 없는 곳을 헤맬 것이 아니라 괴론 세상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가야 한다. 동산에서 주님과 보낸 시간이 빛을 발해야 하는 곳은 동산 밖, 연약한 내 영혼이 언제라도 상처입기 딱 좋은 곳, 괴론 세상이다. 주일 예배에서, 수련회의 뜨거운 기도에서 은총을 누렸다면 그 은총을 살아 내야할 시간은 월화수목금토일이다. 일단 괴로운 세상을 괴로운 세상으로 명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다. 온전히 받아들일 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월요일을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그 청아한 주의 음성이 꼭 필요한 곳은 동산이 아닌 세상임을 알게 된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동행, 늘 내 편이 되어 함께 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이 번뜩이는 가운데 토끼 한 마리 같은 심정, 밑 빠진 독에 끝없이 물을 길어 붓는 식으로 일하는 콩쥐의 심정, 끙끙거리며 커다란 바위를 굴려 겨우 산 정상에 세우자마자 바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시지프스 왕의 심정일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떠올릴 수 있겠는가. 후렴 가사의 동행은 막막한 월요일 출근길을 한 발 내디딜 힘을 준다. 개그 콘서트의 엔딩 음악이 괴론 세상으로의 복귀를 알릴 때 그 청아한 주의 음성또한 이미 내 안에 울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불안과 두려움으로 울어대는 월요병 새소리를 잠잠케 하실 음성을 살려내고 함께 노래하자.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주말, 갈 테면 가라! 월요일 올 테면 오라!




A에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그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며 무더운 일상을 살아갈 A. 당신의 이름을 잠시 상상해 봅니다. 생김새와 성품에 걸맞은 이름을 가졌겠지요. 이름 대신 A라 불리고, A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올렸던 당신을 생각하며 저도 제 이름 대신 J라 소개하겠습니다.


이동현 목사 관련 기사에서 A 님 당사자로 시작해 주변인이 I까지 등장했더군요. 그렇다면 저는 그 다음의 반경에 있는 사람 J, 특히 여성입니다. A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J가 있습니다. 심정적인 방어를 풀면 A의 자리에 가 앉을 수도, 모르쇠로 외면하자면 Z에 갈 수도 있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 사람입니다.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의 수신자 중 한 사람이고, 이 글은 그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유명 청소년 단체 목사의 두 얼굴'로 시작하는 기사엔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성범죄 하루 이틀 일인가?' 싶었고, 이어지는 기사의 사건 분석과 방향 제시, 성찰, 회개, 회개의 촉구 등은 안 읽어도 알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지만 피로감이었습니다. 피로감. 이 얼마나 객관적이며, 거리감 있고, 연루되지 않아도 되는 속 편한 말입니까. 반응하지 않을 자유를 득하는 합리화의 근거입니까. 그러나 뉴스 목록에 있는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은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A 님의 글을 읽은 다음 날 <뉴스앤조이>로부터 글을 하나 쓰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사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이런 일에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는 말이 툭 하고 나왔습니다. '피로감'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할 때는 언제고,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니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끊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A 님 편지의 시작과 끝입니다.


"보복 의도 없이 2007년 있었던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저와 같이 외로움 속에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아이가 있는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인터뷰 요청에 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혹시라도 과거에 성직자와 성관계를 한 후 '주의 종을 죄에 빠지게 한 내가 죄인'이라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괴로움에 혼자 고문당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혹시라도 목사 이름과 명예에 해를 끼치면 하나님나라에, 하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려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알아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긴 세월 외로움 속에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웠던 A의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더 깊은 외로움에 갇히지 않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마음의 힘을 길렀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외로울 '아이'를 위해 두렵지만 용기를 냈구나 싶었습니다.


아프지만 더 아픈 사람을 위해 손 내미는 사람을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릅니다. 참된 치유와 정화는 더 약한 자의 손을 잡는 연약한 손의 연대에 있다고 믿기에 A의 용기가 고맙습니다. 마음을 담아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글에서 여러 해결책을 제안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든 교회와 선교 단체 사역 일선에 실질적으로 녹아들기 바랍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인터뷰에 응하고, 글로 생각을 밝힌 용기 있는 발설 그 자체가 이미 큰 해결을 위한 행동입니다. 저는 여자라서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를요.


늦은 밤 골목길에서 혼자 걷는 여자를 따라 걸어야 했던 남자의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앞선 여자를 안심시키려 빨리 걸어 앞지르려 했답니다. 빨리 걸을수록 여자의 걸음도 빨라지더니 급기야 가방을 안고 뛰더라고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기분 나쁘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계단을 오를 때도 앞에 여성이 불편할까 시간만 된다면 기다렸다 오른다고요. 지하철에서 여성 옆에 앉으면 '쩍벌'이 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쓴다면서 이런 남자의 심정도 알아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여자 편인데, 심정적으로 페미니스트인데 싸잡아 늑대로 치부되는 심정을 아느냐면서요. 여자들의 과도한 태도는 같은 편이 되고자 하는 남자까지 잃게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여성을 조수석에 태우지 않는 배려, 사진 찍으며 여자의 어깨를 터치하지 않는 매너 손, 단둘이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두는 센스. 고맙습니다. 여성의 불리한 입장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남성으로서 기득권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더욱 고맙습니다.


헌데 자기편이 되어 주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오래된, 아주 오래된 피해자와 약자로서의 여자의 삶이 있습니다. 그 맥락에서 A가 뒤늦게 이 일을 폭로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짚어 보고 싶습니다. A와 저, 그리고 우리 편이 되어 주는 남자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앞서 걸어가는 여성이 단지 여자 사람의 몸을 가졌기에 어떤 경험을 끌어안고 평생 살아가는지, 그 여자는 길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아니라 아내이며 누나이며 여동생이며 엄마일 수 있음을요.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것은 그대로 아주 취약한 조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광고의 배경과 소재가 잘빠진 여성의 몸인 이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옛날과 지금, 상류계급 여인과 신분이 낮은 여인, 많이 배우고 똑똑한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막론합니다.


남자들이 사춘기가 되어 남자로서의 자기 몸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많은 여성이 어릴 적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친척 오빠, 동네 오빠, 교회 오빠. 가까이 있는 친절하며 나쁘지 않은 남자 어른들의 못된 손으로 여자인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힘이 없고,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없어서 이 폭력적인 경험은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 '성추행의 기억'은 흔한 일입니다. 발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애써 발설한다 해도 도움을 받아야 할 어른에 의해서 다시 묻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 못된 짓이 왜 발설되지 못하는지, 더 큰 어른에 의해 묻히고야 마는지. 이 지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A를 두 번 울리며 올가미에 가둔 가해자의 말, 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네 인생은 망한다."
"너 나랑 이래 놓고 이제 시집 어떻게 갈래."
"네가 입을 뻥긋하면 사탄이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사역을 망친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걸 참아라. 너 한 명만 참고 견디면 성령을 훼방하지 않게 된다."


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릴 적 교회 전도사님의 못된 손에 걸려든 일이 있습니다. 주일마다 재밌는 설교를 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담임목사의 딸이어서 우리 아버지와 전도사님의 관계, 은근한 갑을 관계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알려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가 알면 아버지가 알 것이고 아버지가 알면 이 (천하에 못된 손을 가졌으나) 착한 전도사님이 쫓겨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분의 (생계) 목숨 줄이 우리 아버지 손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상황이 두려웠지만 엄마에게 발설했습니다. 온 집안과 교회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날 줄 알았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발설은 제게서 끝나고 엄마는 아버지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 지금 쓰다 보니 제가 모르는 방식의 은밀한 발설과 조처가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상처라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기억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내게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일을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 이 기억은 제게 무언의 메시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여자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몸이 되어 갑니다.


'전도사님이 한 일이 큰 잘못은 아닐지 몰라. 원래 남자는 여자아이를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건가 봐. 그게 잘못이라면 내가 화를 내거나 거절했어야지. 내 잘못이네.'


이후로도 동네 오빠, 교회 오빠에게 몇 차례 더 추행을 경험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 버렸습니다. 여자의 몸에 대한 내면화된 목소리만 남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관련 공부를 하던 중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왜 내 말을 듣고도 못 들을 것처럼 가만히 있었느냐고요. 엄마는 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고백을 했습니다. "부흥강사 ○○○ 목사 알지?" 하면서요.


예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꼭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 기간 강사 목사님은 우리 집에서 숙식했고, 우리 집 부엌은 끼니마다 온갖 요리를 만드는 집사님, 권사님들로 북적였습니다. 귀빈 대접이었지요. 저녁 집회를 마친 후 엄마는 저녁 간식을 가지고 강사 ○○○ 목사가 기거하던 방에 들어갔고, 그 (신령한) 목사의 (더러운) 손이 엄마의 몸을 더듬었답니다.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답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모처럼 은혜로운 부흥회를, 교회를, 가정을, 부흥강사의 사역을 지켜 내게 된다. 그렇게 참고 덮어 둔 '나 하나'인 여성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때의 고백 이후로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앞뒤 설명도 없이 이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연세가 많아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는 요즘에도 반복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유명한 부흥강사 ○○○ 목사의 못된 손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무력한 아이를 돕지 않은 무지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분명한데, 이 엄마 역시 도움받지 못한 무력한 여자였으니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여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잠재적인 성적 피해자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증언조차 할 수 없도록 길들여집니다. 교회의 여자라면 거기에 성령 훼방죄, 사역자를 시험에 들게 한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니 이중 삼중의 올가미입니다.


부모에게 학대나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가해하는 어른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가해자의 힘과 권력에 철저하게 굴복하여 자신이 당하는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를 학대하는 부모를 좋은 부모로 각색하고 부모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다고 합니다. 종교 권력을 가진 목회자나 사역자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이나 청년들도 비슷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가진, 존경하는 지도자는 부모 그 이상,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목사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옷매무시를 고치고, 가장 좋은 과일을 대접하고, 심방 감사 봉투를 챙기는 저희 엄마가 신령한 부흥강사의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수천 년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살아온 여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고, 거기에 가부장적인 종교의 굴레까지 뒤집어쓴 여자의 자기 인식입니다.


여성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상과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합니다. 수천 년 새겨진 대상으로서의 몸을 지닌 여성이며, 거기에 아담을 유혹하여 실낙원을 유발한 하와의 후예로서 종교적인 굴레까지 뒤집어쓴 교회 여자가 어떻게 주체로 설 수 있겠습니까.


맹목적으로 추앙하던 지도자들에게 이양했던 우리의 힘을 되찾아 올 일입니다. '주의 종'이라 우러르며 이양하고 포기한 우리의 힘을 되돌려 받는 것은 자아 팽창으로 상식적인 판단력마저 잃은 지도자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추앙이 후광이 되고 후광이 과도한 권력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더럽히는 지도자가 난무하는 시대. '나 하나 참고 덮어 주자'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내 발로 서자'할 때, 맹목적인 추앙과 허황된 후광 사이 악순환의 고리에 작은 충격이라도 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강해지고 온전히 치유되는 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 두렵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며,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무력한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고 치유하고 힘을 기른 A가 되어 다행입니다.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어른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러도록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강 건너 Z로 살아서 미안합니다.


A가 내민 손을 비슷한 고통으로 외로워하고 있는 교회 동생들이 잡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꽃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며 흘린 눈물 위에 연거푸 피눈물 흘리는 자매들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발설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손 내밀어 주어 고맙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 출간작업 

# 벚꽃과 그리움 

# 술과 신앙

# 죽음과 천국

# 너나 잘하세요

# 아버지와 아들


이런 키워드가 전에 쓴 글을 하나 불러냈다.


사진의 아버님이 생일 맞은 현승이를 위해 기도문을 적어 읽고 계신다. 문득 의문이 든다. 아버님은 당신을 '신앙인'으로 규정하신 적이 있으실까? 교회에 안 빠지고 나가셨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 앞에 가끔 기도할 줄 아셨지만 '믿음'에 관한 한 어떤 자의식도 없으셨던 듯. 믿음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많아도 성경을 한 번 안 읽는며 어머님께 핀잔은 많이 들으셨다. 그런 아버님이 사랑하는 손주 생일에 손수 써서 준비하셨던 기도문, 식상한 표현 뿐이어서 신선했던 그 기도가 문득 뭉클하게 그립다.


전에 크로스로에 연재했었고, 일정은 멀리 있지만 책으로 나올 글이다.

 


[아버님의 소주잔]


설거지를 하려고보니 그릇 사이로 소주잔 하나가 뒹굴고 있다. 배시시 웃음이 샌다. 큰 녀석이 그릇장 안쪽에 있던 걸 꺼내서 물 컵으로 사용하고 휙 던져 놓은 것일 터이다.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의 집에 웬 소주잔? 이것은 정통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인 며느리가 단 한 분, 시아버님을 위해서 마련한 아버님 전용 소주잔이다.

 

나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대학(그것도 걸걸한 여대)도 다니고 사회생활도 했기 때문에 술자리, 술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지만 결혼하기 전까지 집안에서의 음주행위는 상상도 못하고 자랐다. 신혼 초에 시댁에서 잔치가 있어서 처음으로 설거지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설거지 그릇 중에 소주잔이 여러 개 있었는데 살짝 손이 떨리는 거였다. ‘, 내가 술잔 설거지를 하다니. 우리 엄마 알면 뭐라 하실까?’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화충격이었다.

 

겉으로는 술도 같이 한 잔 안 마셔주는 아들 소용없다며 호기로우셨지만 아버님도 늘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셨다. 착하고 소심하신 아버님은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서 한 잔 생각이 나셔도 냉큼 주문을 하지 못하셨다. 어느 날 부턴가 식당에 가면 쭈뼛거리시는 아버님에 앞서 먼저 소주 한 병 주문을 했다. 착하고 소심하신 아버님의 약주사랑이 참 곱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평소 말이 없으신 분이 약주 한 잔 하시면 유쾌해지시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뿐 아니라 아버님 생신을 우리 집에서 차려야 하는 날에 장을 보면서 과감하게 소주 몇 병을 카트에 담았다. 상을 받으시고 뭔가 허전하다 싶으셨던 그 순간에 냉장고에서 나온 초록색 병에 아니, 이걸 샀어?”하면서 좋아하시던 아버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집에 소주잔이 없어서 머그컵에 소주를 따라 드셨고, 그 이후 언젠가 아버님만을 위한 소주잔을 갖춰 놓게 되었다.

 

그 힘들다는 워킹 맘으로 두 아이 양육하기가 아버님의 도움으로 참 수월하였다. 아이를 좋아하실 뿐 아니라 여성보다 더 섬세하고 살뜰하게 보살피시는 아버님으로 인해서 참 팔자 좋게 일하고 양육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느 정도 독립이 되었을 때도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집으로 오셔서 유치원 마친 아이를 맞아주시고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씩 집에 오셔서 방과 후의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기간이 있었다. 막내아들이 늦깎이 목회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일을 하고 밤에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검정 비닐봉지로 꽁꽁 싸인 병이 하나 들어 있다. 낮 시간에 아이들과 떡볶이 간식 사다 드시며 한 잔 걸치시고 남은 막걸리였다. 행여 목회자 아들 집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가 누가 될까봐 어찌나 꽁꽁 싸매두셨는지…….

 

무엇을 드셔도 척척 소화시키신다고 자랑이시던 아버님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50여일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신 지 1년이다. 아버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시기에는, 남은 우리들이 떠나 보내드릴 준비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당황해하며 혼란스러워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수십 년 교회를 다니셨지만 예수님을 향해서 살가운 표현 한 번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셨다. 믿음 좋은 아내와 자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신다는 식으로 주일마다 꼬박꼬박 예배는 빠지지 않으셨다. 교회 일에 열심인 어머님을 향해 내가 수염 영감탱이 예수한테 마누라를 뺏겼어. 아니 영감탱이가 아니지하셨다. 늦게 신학교에 가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아들이 좋은 성적에 장학금을 받아오자 못내 아쉽다는 듯 이제라도 그 머리로 공무원 시험 봐라시며 먹고 살 걱정을 하시기도 하였다.

 

그런 아버님을 바라보며 아버님과 함께한 마지막 50일 동안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믿음 없으신 아버님이 입술로 고백하시도록 해야 한다며 속으로 얼마나 안달복달 했던지. 맘먹고 사영리를 들고 아버님과 독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막내며느리가 제격이라며 기도하며 서둘러라하는 사랑어린 재촉도 있었다. 새벽기도에 가면 내 불안에 겨워 이 땅을 떠나시는 아버님이 당신의 품에 눈뜨게 해달라며 빗물 같은 눈물을 쏟아내곤 하였다.

 

설상가상 아버님께서는 심방오신 분들과 예배드리는 걸 거부하셨다. 마지막 호스피스 입원 중에 간호를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병문안을 오셨다. 간단히 예배드리려 하는데 고개를 돌리신다. 싫어하시는 것이 역력한데 그 자리에 계시도록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버님, 한 바퀴 돌까요?’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기도하시는 분들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한편으론 불안의 솜방망질이던지. 믿음, 구원, 믿음, 입으로 시인, 구원, , 혼란스럽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만큼 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우연인지 (그 분이 계획하신 필연인지) 연거푸 세 번 씩이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미 의식을 많이 잃으신 아버님께서는 그저 모든 것을 보호자의 판단에 내어맡기고 누워계실 뿐이었다. 마지막 예배는 막내 아들이 함께 한 자리였고 예배를 마치고 찬양 한 번 더 부르자는 목사님의 제안이 있었다.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오셨네를 부르는 중 예수 안에 생명 있네.’ 후렴을 부르는 순간 우리 착한 아버님, 이 세상을 붙들었던 손을 가만히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것처럼 이 땅에서의 마지막 50일 동안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큰 육체적 고통도 없이 그렇게 지내시다 하늘 그 곳으로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의 마지막 50일은 한 없이 고요하였는데, 내 마음은 양철지붕에 소나기 떨어지듯 요란했다. 그 요란한 양철지붕 아래에는 나는 믿음이 있고, 아버님은 믿음이 없다는 일말의 의문도 없는 전제가 숨어있다. 도대체 그 근거 없는 판단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일하는 엄마였던 내게 든든히 기댈 언덕이셨던 아버님께서 떠나신 자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돌봐주시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아버님께서 내게 무엇보다 큰 숙제와 더불어 엄청난 선물을 남기고 가신 탓이다.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는 한 마디를 마음 깊은 곳에 넣어주시고 가신 탓이다. 마지막 50아버님 믿음의 고백, 입술의 고백이러면서 안달복달 하던 내 마음의 깊은 동기가 진정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는지, 믿음의 기도였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님의 믿음이 아니라 내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하는 영원의 원점 같은 곳으로 돌아와 섰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하던 기간과 신종플루 걸렸던 주간 외에는 주일에 빠져본 적이 없다?(이걸 가지고 주일 성수했다며), 청년 때부터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교회봉사를 했다? 미운 사람이 생겨도 하나님, 원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면서 예수님 코스프레를 좀 하고 산다? 그런 것들에 근거한 나는 믿음 있는 사람라는 확신에 겨워 살아온 날들에 씌운 거품을 비로소 확인한다.

 

소주잔을 보면 한 잔 하신 아버님께서 흥에 겨워 부르시던 뽕짝 멜로디가 생각난다. 또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 하시며 부르시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소심하게 흥얼거리시던 허밍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50일을 걱정 대신 사랑으로 더 잘 떠나 보내드릴 걸하는 후회 같은 건 넣어두려 한다. 터무니없는 자기의의 발로로 발을 동동 구르며 보냈을지언정 아버님과 하늘 아버지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 같은 사랑의 교제가 있었을 터이니. 또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 없음에 관한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과대 포장된 내 믿음의 자가 평가서나 돌아볼 일이다. 다만, ‘거기서 해처럼 밝게 빛나실아버님이 오늘 더욱 그리운 것이다. 소주잔을 닦다 그 투명한 유리에 어른거리는 아버님의 모습이, 생색내지 않으셔서 더 따스했던 그 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입으로는 하늘소망을 그럴 듯하게 노래하면서도 마음으론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 천국이다. 이 땅에서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손주의 작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그 순간 영원한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생각하니 천국은 얼마나 가까운 곳인지. 우리네 삶과 얼마나 가깝게 붙어있는 곳인지. 아버님과 함께 한 13년 동안 내가 필요한 것을 그렇게 주시기만 하시더니 떠나시면서 가장 귀한 선물을 남겨두고 가셨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소주잔에 남겨두신 사랑과 선물이 어른거린다.








<뉴스앤조이>의 목회멘토링 사역원에서 3월에 목회 멘토링 컨퍼런스를 엽니다. 컨퍼런스에서 선택강좌 중 하나를 맡았는데 제목은 '목회자 부부의 탈진과 정서적 돌봄'입니다. 사역원 소식지에 실을 글을 하나 썼고, 소식지 인쇄본은 아직 못 받았으나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에 걸렸으니 제 집 대문에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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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나 은수저는 몰라도 나는 성경책을 옆에 끼고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태어나보니 아버지는 목사였고, 내 이름은 교회 냄새 물씬 나는 신실이였다. ‘신실아부르는 소리는 목사 딸이라는 보통명사처럼 들렸다.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우체국 안에 있던 전화국에 놀러 갔다. 처음 보는 교환원이 나를 보고는 교회 집 딸이구나. 79번 집!’ 우리 집 전화번호이다. 딱 부러지는 인상의 교환원 언니 입에서 79번이란 말이 떨어지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게다가 나를 알고 있어. 무언가가 어린 나를 긴장시켰다. 아버지는 사사로운 일로 전화를 쓰지 못하게 했다. 전화는 물론 전기 등도 마찬가지였는데 교회 돈이 나간다는 이유였다. 교환언니의 입에서 79번이 나왔을 때 어린 나는 왜 움찔했으며 그 기억이 이토록 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 몰래 전화를 써도 교환원 언니는 다 알고 있다는 것. ‘너는 목사의 딸로서 전화를 아껴서 쓰고 있는가, 전기는? 똑바로 해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중요한 목소리이다.

 

어린 눈에 아버지가 훌륭해 보였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인(이런 말을 알기 전부터) 좋은 목사님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일찍부터 아버지의 딸로 살았으며 자부심도 컸다. 부모님의 목사 딸 교육법으로 나는 나쁘지 않은 아이로 컸다. 그래서 속이 쓰릴지언정 겉으론 미소 지으며 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미움으로 맞서지 않고 이를 악물고 스릉흠미다하기도 한다. 문제는 목사 딸 교육법이 드리운 그림자이다. 착한 행실 뒤에는 사랑보다는 두려움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목사의 딸로서 일찍이 내가 터득한 것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사는 법이었다. 이미 천국에 계신 아버지, 모든 짐을 벗고 자유로우실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할 마음은 없다. 누군들 위선적으로 살고 싶겠는가. 목사와 목사 가족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신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그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아버지는 목사로서 신도들에게 책잡힐 여지를 한 톨도 남기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목사의 딸이라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랑의 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나 마나 한 상상이다. 자신이 살지 못하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칠 수 없는 법. 교인들의 가지각색 기대와 시선을 천형처럼 지고 누구보다 자신들을 옥죄면서 한평생을 사신 부모님이다. 아니 우리 부모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뒤늦게 목사의 아내가 된 나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땅의 목사님들과 그 가족은 모두 ‘79번 집 사람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 할 수 없는 것은 목회자만의 실존이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뒤돌아서 자신을 혐오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딜레마이다. 칼 융(Carl G. Jung)은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얼굴, 인격의 가장 겉부분을 페르소나(Persona)'라 명명하였다. 목사, 장로, 선생, 엄마, 아들 등의 직함이나 역할은 사회적 얼굴이다. 페르소나는 타자의 시선(기대)에 의해 형성되며 소속된 집단에 충실하면서 강화된다. 가면이라고도 하는 페르소나는 벗어버려야 할 불온한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가 진짜 나인 줄 아는 동일시가 인격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이 동일시가 극도에 다다라 페르소나와 내가 구별되지 않을 때, 의식과 무의식의 단절이 일어나 흔히 말하는 마음의 병,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목사(종교지도자)는 역할의 특성상 보다 쉽게 페르소나와 동일시할 수 있어서 위험한 위치에 있다. 융의 투사(projection)이론이 이 메커니즘을 잘 설명해준다.

 

투사(projection)’란 말 그대로 프로젝터(projector)를 통해서 스크린에 비췬 영상을 보고 그것이 컴퓨터 아닌 스크린에 있다고 믿는 심리 현상이다. , 나쁜 것은 자기 마음(컴퓨터)에 있는데 자기 속에 있는 줄 모르고 밖의 타인(스크린)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공연히 미운 사람, 싫어도 너무 싫은 사람, 나도 모르게 격렬히 비판하게 되는 대상 등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 투사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어둠만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분까지 밖으로 투사하게 된다. 목사님들을 향한 과도한 존경과 기대가 그 예일 것이다. 이런 투사는 내가 살아내야 할 거룩한 삶을 대신 살아주기 바라는 책임전가와도 같다. 융 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Robert A. Johnson)은 이것을 황금투사라 한다. 자기 안의 금과 같이 소중한 것을 투사함으로 더 고귀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이 투사는 목회자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과도한 존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받는 대상 또한 문제이다.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 같은 분입니다.’ 같은 칭찬과 기대로 표현되는 황금투사를 넙죽넙죽 내면화하는 목회자는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황금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는 자아팽창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투사의 드라마에 갇혀 있는 한, 신도들은 성장하기 어렵고 목회자들은 자기 자신이 되어 살기 어렵다. 이것이 오늘 목회자와 목회자 아내들의 비극이 아닐까. 사모는 활달해야 하고 동시에 차분해야 하며, 적당히 세련되어야 하고 동시에 외모가 화려하면 안 된다는 등. 서로 상충하여 말이 닿지도 않는 목회자와 그 아내에 대한 기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 춤출 수 없다! 그것은 장단이 아니기에. 실체가 아닌 스크린에 비춘 그들의 마음일 뿐이다. 그것을 분별해내는 눈과 황금투사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이 비극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목회의 길을 가는 동안 나란히 가는 마음의 여정이어야 할 것이다. 나를 움찔하게 했던 ‘79번 집 딸이구나!’ 이 한 마디의 위력에서 벗어나는데 수십 년의 시간과 기도가 들었다. 여전히, 아직도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엄마, 이것 봐요

아이가 자라면서 혼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하는 말이다. 낙서 같기도 피카소 작품 같기도 한 그림 한 장, 대충 쌓은 것 같은 블록 몇 개, 심지어 어떤 때는 도대체 뭘 보라고 부른 것인지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와우, 잘 만들었는데엄마의 피드백에 의기양양해져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몸과 마음이 자랐다. 자아의식이 생기던 그때부터 우리는 바라봐 주는 누군가를 부르고 찾고 기다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빠르게 보편화된 SNS는 앞 다투어 현시 욕구를 발산하고 충족시키는 광장이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있다, 난 이런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친과 나 멋진 곳에서 데이트 중이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띄운다. 그리고는 페친들의 좋아요를 기다린다. 어렸을 적 엄마가 어머, 우리 아들 잘했어!’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심이겠지만 그럴듯한 나를 봐주고, 부러워해주는 것이 좋다.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더 세련되고 아니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 속 욕구는 비슷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면 왜 굳이 일기장에 쓰지 않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내놓겠나. 올리자마자 속속 늘어나는 좋아요개수에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느낌까지 든다. 우린 모두는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이다.

 

나도 널 본다

나도 수시로 본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친구들의 지금 여기를 본다. 친구의 글과 사진을 본다고 믿지만 많은 경우 그 ''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 마음'을 비춰보는 것이다. '그 사람''그 글'이 불편하고 '보기 싫다'고 느끼지만 불편함과 보기 싫음의 절대 잣대는 없다. 그 글이 내.. 불편한 것이다. 내게는 몹시 불편한 글을 다른 멀쩡한 사람이 매우 좋다고 열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친구의 여행사진에는 기분 좋게 좋아요해줬는데, 오랜만에 일상을 떠난다는 다른 친구의 공항사진에는 그래, 너 잘나가서 좋겠다. 좋은 직장이라 돈도 잘 벌고 휴가도 마음대로 낼 수 있으니하며 싸늘하게 쓱 밀어내리기도 한다. 저녁으로 뭘 먹었다는 시시한 글에 '좋아요' 누르는가 하면, 어떤 친구가 고백하는 깊은 아픔을 읽으며 '위선 떨고 있네' 하며 시야에서 쓱 치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투사'는 일상에서 늘 일어나지만 얼굴 맞대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이 많다. 휴가내고 해외여행 간다며 공항사진 올린 친구를 우연히 만나 여행 갔더라. 잘 다녀왔어?’ 물었는데 직장 상사로 인해 사직을 고민하는 중이었다는 얘기, 그 얘길 하는 친구의 피곤하고 슬픈 눈을 마주하고는 잘 나가서 좋겠다며 뒤틀렸던 심사가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의 이미지로만 관계를 맺는다면 결국 투사 속에 허우적대다 과대망상, 피해망상 속에 빠져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본다

애매하게 주어를 생략해서 쓴 위의 이야기들은 불특정 페북 이용자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반응에 강하고, 감각적인 농담 따먹기는 더 좋아하는 터라 페이스북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시욕 강한 내게 페이스북은 재미와 의미가 공존하는 놀이터였다. 문제는 항상 바보들의 놀이 비교에서 시작한다. 본업은 아니지만 어쩌다 B급 글쟁이로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내 글과 다른 사람의 글을 줄을 세워 보여준다. ‘에잇, 이 사람은 도대체 언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은 거야. 글은 또 왜 이렇게 잘 써?’로 시작해서 투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마음은 금세 지옥으로 내려간다. 내 글보다 나을 것도 없는데 좋아요가 엄청나게 붙은 페친의 글을 째려보고, 허점을 찾아내고, 그러다 자존감이 쪼그라든다. 신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수려한 글을 읽다보면 심장이 벌떡거린다. 나보다 기수도 낮고 공부도 그리 잘했던 것 같지 않은데 교수님 호칭을 달고 있는 후배를 페친으로 만나는 날엔 유치한 줄 알지만 우울해지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 이미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투사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치러야할 시간적 정서적 비용이 컸다.

 

나만이 나를 본다

연금술에서 바스 헤르메티스’(‘vas hermetis’ 라틴어로 헤르메스의 그릇’)라고 불리는 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릇이 있단다. 그 안에 납을 담고 그릇을 밀봉한 뒤 열을 가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행여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서 열기가 새어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그릇을 테메노스’(Temenos) 즉 심리적 그릇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새어나가지 않는 나만의 비밀이 있는 장소이다. 새어나가는 비밀이 없이 고요히 침잠한 심리적 에너지가 쌓일 때 납이 금이 되듯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통합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금으로 단련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에너지를 단속할 일이다. 페이스북 등 SNS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다 뒤로 빠지고 그러다 어느 새 다시 몸을 담그고, 또 한 발 물러나고……. 이런 지점에서 나는 테메노스를 생각한다. 그럴듯한 나의 통찰과 경험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나의 테메노스에 깊이 던져두기로 하면 시끄럽던 내면이 조용해진다. 타인이 포장해 내놓은 이미지를 바라보며 혼자 소외감 느끼고, 좌절하고, 분노할 때도 내 마음의 그릇에 담겨 있어야 할 욕망들이 투사되어 나와 춤추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본다. 드러내고 표현하길 권하는 투명사회를 살면서 비밀스럽게 담아두는 것의 미덕을 깊이 생각해본다.

 

나의 페이스북 사용법

여전히 나는 페이스북 유저이다. 뭣 모르고 뛰어들어 신나게 놀아보기도, 마음을 다쳐 앓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 아닌 내 마음에서 일렁이는 욕구와 숨어있는 욕망을 마주하게 되었다. , 내가 이 나이에도 나를 바라봐주는 눈을 그렇게나 갈망하는구나. 아무것도 아닌 좋아요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구나.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페친은 영락없이 나 스스로 보기 싫어서 밀어 넣고 숨겨놓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구나. 페이스북 뉴스피드을 거울로 인식하고 여기에 반사되어 꺾인 시선이 다시 내 안으로 향했을 때 생각의 전환, 일종의 회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 의식수준과 마음그릇에 딱 맞는 페이스북 이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 스마트폰 화면에 페이스북은 언론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다. 뉴스 기능을 하는 페이지나 개인만 팔로우하여 구독하고 있다. 뉴스를 보던 무심한 눈으로 친구들의 일상을 보게 됨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근황이 궁금한 친구는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 들어가 읽고 좋아요든 댓글이든 흔적을 남긴다. ‘조용히 훔쳐보기가 모두에게 허용되는 곳이 SNS 타임라인이다. 은밀하게 훔쳐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슬쩍 챙기고, 그러다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다 손가락질하고, 얼굴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낯선 웃음을 짓는 나의 관음증적 관계들. 내 영혼이 갈망하는 참된 만남은 그 관음증적 관계를 뒤집은 정반대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여.

 

* 100주년기념교회 20대 청년 회보 <100Tong>에 기고한 글입니다.

 

 

 

**  학복협에서 발간하는 <물근원을 맑게>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낮의 연애 고민, 밤중의 성 고민

제가 청년들에게 받는 가장 흔한 질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요?’ 입니다. ‘최근에 소개팅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이 정도 마음인데 제 짝일까요?’ ‘그다지 설레진 않지만 만나면 편안한 사람이 있어요. 대시를 해왔는데 하나님이 주신 사람인지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나요?’ ‘아직 사람을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지만 내 짝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상황에 따라서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내 짝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를 찾는 방법’이라고 표현하며 괜히 더 있어 보이고 왠지 괜찮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여하튼 이것은 제가 공개석상에서 받는 대표적인 질문입니다. 말하자면 연애강사가 한낮, 밝을 때 받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밤의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수 년 전에 청년들이 보는 잡지에 연애 관련 글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즈음 독자들로부터 많은 상담 메일을 받았습니다. 물론 강의를 마친 후에 무선 마이크를 통해 듣는 질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대략 예상이 되시겠지만 스킨십이나 성에 관련된 문제가 바로 밤의 질문입니다. 이런 상담은 비신자와 교제하는 이들보다는 이른바 CC, 즉 교회 내에서 사귀는 커플이 대부분입니다. 상황과 처지는 다 다르지만 결국에 성관계 후의 죄책감, 상대에 대한 분노, 두려움 등으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을 어디에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요. 때문에 이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는 등 외적인 일상을 유지해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찬양팀 싱어를 하고 조장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죄책감은 더 커집니다. 분열적인 시간이 오래 가면서 이 부자연스러움마저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의 고뇌, 청년부 목사님의 딜레머

해맑은 표정으로 ‘내 짝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어요?’라고 묻는 청년과 장문의 비밀 메일을 보내온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청년이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낮의 청년과 밤중의 청년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적어도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따로 줄을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낮과 밤의 다른 고민, 바로 우리 시대 크리스천들의 이성 문제를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기독청년들이 일찍이 성경험을 했다.’는 식의 통계, 이면에 눈여겨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몇 살에 성경험 몇%’는 그저 수치가 아니라 인격이고, 얼굴을 가진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입니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교회 생활하는 청년부 회장, 믿음 좋은 선배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몇 시간이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련회 꼭 가자고 설득하며 열정을 다하는 모습과 달리 연애 문제로 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욕망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열된 삶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든,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든 어쨌든 교회에만 오면 다시 멀쩡한 새벽이슬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청년부를 지도하시는 목사님께도, 청년들 자신에게도 이 불편한 진실이 특별히 새로운 사실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어제 오늘 일도 아닙니다. 청년부 지도 목사님이 싱글이던 때도, 아니 담임 목사님이 총각으로 선을 보러 다니실 때도 어느 구석에선가 있었을 법한 문제입니다. 그래도 그 시대에는 ‘어디! 혼전 성관계를! 게다가 임신을?’ 하면서 징계를 하거나 지옥에 떨어질 사탄의 자식쯤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면,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나’라며 내가 선택한 섹스, 책임질 수만 있으면 되니 당당해지라는 목소리가 교회 안팎으로 커졌습니다. 여기다 대고 어설프게 혼전순결이니 하는 말로 조언을 하거나 책망하다간 감각 없고 촌스러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니 청년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나 저 같이 어설픈 강사들에게 참 곤혹스러운 시대입니다. 청년들은 그들대로 성에 있어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도자들은 그들대로 원칙만 들이댈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이유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는 한 없이 복잡한데, 끊어버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그럴수록 좌절은 더 깊어 가는데 교회에서 듣는 지침은 혼전 성관계 안 된다는 원칙뿐이라면 더더욱 입을 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민은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문제가 아니라 여기기 십상이니, 더욱 길을 잃고 몸이 이끄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둘 밖에요. 그렇다고 목사님이 동아리 선배 형도 아닌데 청년회장이 여자 친구와 일박 여행 갔다 왔던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입술의 고백 속 하나님, 뇌구조 속 하나님

생년월일과 성별을 입력하면 뇌구조를 그려주는 스마트폰 앱이 있더군요. 별 기대 없이 입력했는데 완전 공감 뇌구조 그림이 나왔다며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 뇌구조는 나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싱글 청년들의 뇌구조라면 더욱 자신 있습니다. 뇌를 거의 다 채울 만큼 큰 영역을 그리고 거기에 ‘연애하고 싶다.’ ‘올 크리스마스도 솔로란 말인가’ ‘내 짝은 어디에?’ 등 연애에 관한 내용을 넣어줍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 대충 취업, 다이어트, 여행가고 싶다, 이런 정도 끼워 넣어주면 공감 터지는 건 시간문제죠. 발달 심리학자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청년기는 이성을 향한 에로스(eros) 에너지 충만한 시기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청년의 믿음은 새벽기도나 단기선교 참여 회수, 조장 경력 등이 아니라 어떻게 연애하고, 헤어지고, 짝사랑하고 거절당하느냐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하늘의 방언과도 같은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찬양으로 초청했던 교회 오빠가 모든 순서 마치고 데이트 자리로 가면 이 몸과 세상 간 곳 없고 여친의 몸만 보이는 상태가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품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뭐 그리 문제가 되겠습니까. 생각과 말에는 충만한 하나님이 데이트 자리에서는 도통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그 괴리가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외모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자매의 외모만 보는, 형제들의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보는 청년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자 외모를 봐요.’ 또는 ‘내게는 남자 경제력이 중요해요. 저는 하나님도 좋지만 정말 명품가방 없이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자 일 순위는 물론 신앙이에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선택은 늘 외모이거나 경제력인 청년들보다 여러 모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일단 결혼 가능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앙 성숙의 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인 문제로 자매들의 상담을 받았을 때의 흔한 스토리-예를 들어 어떤 교회 오빠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고 심지어 임신하고 중절한 경험도 있었는데 오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자매와 교제하는데 이전의 관계를 발설할 수 없다. 누워서 침 뱉기이고 여자인 나 자신을 스스로 매장하는 것 아니냐.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의 남자주인공은 날날이 신자인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남성적 매력을 겸비한 킹카 회장 오빠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건전하고 건강하게 데이트 한다는 커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꼬장꼬장한 오빠가 데이트할 때만 되면 더 깊은 스킨십을 요구하고, 한두 번 거절하는 것이 반복되면 싸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나서 대화로 해결하자고 마주 않았는데 ‘나는 대화 필요 없어. 니가 뽀뽀만 해주면 다 해결 돼.’ 라고 말하는 오빠는 개그 콘서트의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의 보통남자만이 아닙니다. 바로 이 지점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밝은 곳으로 나와야 할 기독청년들의 성

혼전 성관계, 임신 등의 문제가 더 이상 교회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일날 교회는 나오지만 주중에 어떤 애들을 만나고 어떻게 놀고 사는 지 뻔히 보이는, 내놓은 자식 같은 집중 케어 대상 청년들이 아니라 청년부 임원, 리더들의 현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른 동네, 잘 사는 동네, 큰 교회 얘기지. 우리 청년부는 그 정도 아니다’라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요. 그리하여 수련회의 한 프로그램으로, 한 텀의 성경공부 주제로 ‘성’이 자연스럽게 밝은 곳으로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지금 하는 짓도 충분히 망나닌데 그런 애들에게 마당을 깔아주자는 것이냐, 신앙생활 잘 하는 순진한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나, 두려운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청년들의 입으로 자신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 성문제를 교회에서 얘기할 수 있는 마당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잘 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지만 더 자주, 더 격렬하게 청년들 스스로 토론해야 하고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소신 있는 가르침을 위해 공부하고 전해야 하고요. 주일 저녁 임원회를 하고 은혜롭게 기도회를 마친 청년회장과 부회장이 그 날 늦은 밤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제가 연애 강의를 하지만 저는 연애 문제에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연애뿐이겠습니까.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데 짧은 질문을 듣고 ‘지금 이 순간에 대시를 해라. 그 사람과는 헤어져라. 대화의 기술을 익혀라. 좀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꿔라.’ 이런 답을 주는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에는 쉬운 답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신앙의 여정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복잡한 문제를 푸는 좋은 방법은 ‘이건 어려운 문제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연애, 게다가 거기에 성문제가 얽히면, 게다가 크리스천 남녀의 문제라면 정말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렵다는 전제와 더불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매우 아픈 일이라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끊지 못하는 성관계 뒤에는 아마도 결핍된 사랑에 대한 목마름과 얻은 사랑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방법이 인격이 아니라 몸뿐이라고 애초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문제가 불거지면 쯧쯧 혀를 차며 ‘다른 형제자매들이 알고 영향 받을까 무섭다.’가 아니라 참 어려운 문제를 아프게 겪고 있구나. 라고 바라봐주는 시각이 있어야 이 문제들이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말하게 해야

쉽지는 않습니다. 성에 관한 고민을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행사 하나도 조심스러운 것이 교회 안 현실입니다. 청년부 수련회에서 성문제에 관해서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을 가진다 합시다. 프로그램이 알려지기기 무섭게 당장 교회 어르신 들이 걱정 하실 것입니다. 어찌 은혜 받으러 가는 수련회에서 성을 논한단 말인가. 청년 시절 성에 관한 고민, 죄책감 등을 내놓고 다루어 본 적이 없으신,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으셨던 어른들로서는 당연한 걱정일지 모릅니다. 순결 서약식이나 하면 아름다운 일이라 박수를 쳐 주시겠지만요. 순결 서약식 같은 것으로 청년들 개개인의 성이 통제될 거라고 믿는 것은 믿음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 결단하는 것도 필요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의 공증 세러모니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결단의 주체인 청년들로 시작되어야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향식 행사로서의 순결 서약식과 거기서 끼워주는 서약반지는 더 큰 죄책감의 올무가 되기 십상입니다. 청년들이 연애, 특히 성에 관한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가 교회 안에 꼭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련회 프로그램이 됐든, 결혼한 선배 집의 거실이 됐든,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 그래서 잘 통제가 되지 않는 내 행동은 이름붙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아직 싱글인 청년이 주일 아침부터 교회에 나가 예배, 주일학교 봉사, 조모임, 뒷풀이 까지 마치고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의 느낌을 아시나요. 마음에 부는 한 줄기 차가운 바람. 강의 중에 이 얘길 하면 여기저기서 공감의 웃음이 큭큭 새어나옵니다. 느낌 아니까요. 이때의 느낌이 ‘외로움’이고 이것은 전혀 나쁘거나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싱글이라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고, 어쩌면 하나님이 아담의 뒷모습을 보고 읽으셨을 느낌-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이었을 것이라고요. 이렇듯 이름을 붙인 감정들에는 이유 없이 압도되거나 끌려 다니지 않게 됩니다. 성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 밖으로 꺼내고 이름을 붙여놓으면 조금 더 다루기 쉬워집니다. 그러기 위한 마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다루지 않거나, 다른 순진한 아이들까지 물들일까봐 쉬쉬하는 것은 결국 청년기의 이 중요한 문제를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게 만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청년부 지도교역자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성욕이 넘치는 시기인데 그렇다고 그 욕구를 채울 수 없으니 운동 같은 걸 열심히 하거나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꽤 오래된 교회 내 처방이 있습니다. 단기선교, 수련회 준비, 교회 큰 행사의 스텝봉사 등으로 쉴 틈 없이 젊음을 불태우는 것도 하나의 처방이라고 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압도되는 에너지가 운동을 한다고 사라지겠습니까. 땀 흘려 운동하고 기분 좋게 샤워하고 자려고 누운 밤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구는 어쩌구요.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봉사하며 지내고 돌아와 누운 밤, 외로움과 함께 고개를 드는 욕구는요. 선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젊음의 에너지도 좋지만 자칫 승화 아닌 회피가 되어 사랑하는 청년들이 죄책감과 고뇌로 혼자 외로운 곳에 버려지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런 청년들을 위해 청년부 목사님들께서 사랑의 용기를 내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년에 몇 번이라도 스킨십, 성을 주제로 설교를 하시고, 때로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준엄하게 꾸짖으시고, 청년들의 상처 난 몸과 마음을 붙들고 함께 우시면서 정면으로 돌파하셨으면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런 노력이 이 시대 청년사역을 하시는 목회자분들께서 맡으신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데이트 하는 청년이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빠가 널 정말 사랑해서 너와 자고 싶은 거야.’ 가 아니라 ‘오빠가 정말 너를 사랑해서 참을게. 도와줘.’라고요. 지금 여기서 자신의 연애와 성문제를 진지하게 복음에 비춰 고민하는 청년들이 장차 결혼해서는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를 양육을 하면서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세상에서 어떻게 키우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부모의 삶일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욕구하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정직하게 만남이며 제자도란 삶의 자리 바로 거기에서의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 스스로 고민하는 힘을 키워주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목사님들 역시 치열하게 함께 고민하며 전하는 설교.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습니다.


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고 신대원에 들어간 남편이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전도사님들의 고민도 별다른 것이 아니라서 데이트하며 겪는 스킨십 문제로 찾아와 상담하는 후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말이 와 설렘 반 고뇌 반으로 데이트를 향해 가는 전도사님에게 남편이 그랬답니다. ‘정 그러면 이번 주말에 목표를 하나 세우고 지키고 와라. 데이트 하며 뽀뽀하되 손을 옷 안으로 집어넣지 마.’ 한 번의 데이트에서 그 정도는 지킬 수 있게다 싶어 흔쾌히 받아들이고 가셨나보죠. 월요일에 남편의 기숙사방에 들어서는 전도사님이 팔을 내밀며 하는 말이 ‘형, 제 손을 잘라주세요.’였답니다. 이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고 결혼하여 아이의 아빠가 되셨는데요. 모르긴 해도 그때 그 경험과 고민이 지금 하시는 청년사역에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짓곤 합니다.
수도원이 아니라 먹고 자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삶의 에너지가 정점을 찍는 청년시절은 그래서 더욱 방황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쉬운 답을 찾자면 오히려 한 없이 어려워지고 꼬이고 죄책감에 허덕이게 되어 있습니다. 쉬운 답은 없지만 남과 다른 나만의 길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렵기만 한 성문제 역시 답을 찾아 고민하고 때로 좌절하면서도 나만의 길을 가는 것, 스스로 주체가 되어 통과할 여정입니다. 청년들은 찾아나서야 하고 선배와 지도자들은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을 것입니다.

정신실 : 음악치료사, 늦깎이 목사의 아내, 일상에 숨겨진 영원의 빛을 보는 맑은 눈을 선망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오우 연애」 「와우 결혼」(이상 죠이선교회)의 저자이기도 하다.

 


내 생애 첫 번째 노래


가끔씩 내 인생의 첫 번째 노래
, 첫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 어떤 이유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지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재미와 의미를 다 누리는 삶이라는 자부심의 힘이 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도 않았었으니 조금 정서적 과장을 하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운명 같은 만남으로 음악치료사가 되었다라고 혼자 소설을 쓰기도 한다. 성악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형편 상 그것은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음..치료사이다. 음악과의 운명 같은 만남은 생애 첫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앙심이 좋은 엄마는 늘 나를 안고 찬송가를 불러줬다.(고 하셨다.) 우리 큰 아이를 키워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그려볼 수 있었다. 생후 한 달이 안 된 아이를 안고 친정엄마는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셨다. 그리 잘하는 노래도 아니었고, 가사는 물론 음정도 엉망인 노래들이지만 그 모습은 적잖이 감동이었다. 내게 음악이 운명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결국 운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생애 첫 노래도 그러했을 것이다. 눈맞춤은 커녕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인 나를 안고 엄마는 노래하셨을 것이다. 품에 안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노래하셨을 것이다. 가끔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란 말인가, 감동에 겨워 목이 메었을지도 모른다. 나 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억을 해내진 못하더라도 이런 엄마의 노래가 무의식 어느 구석에 살아있을 것이다.

 

음악 하는 엄마, 내 아이의 음악치료사 되기


지난 세 번의 지상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음악치료 대상 중 지적장애
, 정신질환, 노인질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음악치료의 대상은 발달장애, 신체장애, 여러 감각장애는 물론 일반의료 분야, 장애나 질병이 없는 일반인까지 폭넓다. 왜 아니겠는가. 음악은 언어 그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기에 장애와 비장애, 질병과 건강의 상태를 아우를 수 있음은 당연하다. 또 우리는 음악이 사람의 신체, 심리, 사회적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음악치료의 대상 가운데 음악적 자극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결과을 얻을 수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아기들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음악적인 자극을 흡수하는 힘이 크다. 음악적 자극뿐이겠는가. 뇌세포가 활발히 형성되는 시기이고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떤 자극이든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시기라고 한다. 장애 아동든 정상발달 아동이든 막론하고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어리면 어릴수록 더 크리라는 것이다. 음악치료사들 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맘, 무슨 맘, 해도 뮤직맘이 최고다! 아기에게 노래불러주는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없다.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연재글 음악치료의 세계마지막 회인 오늘의 주제는 엄마의 노래이다. 음악을 전공한(아니 굳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음악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엄마들이 자신의 아기들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음악치료적 팁을 드리려고 한다.

 

지금 여기서 아이와 함께 뮤직에 샤워하기

 
음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엄마들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 손을 잡고 문화센터를 찾고, 장애를 가진 아기를 휠체어에 태워 음악치료실을 찾는다. 교사나 치료사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음악활동이 아이의 발달에 유익을 끼친다고 할 때,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 하는 엄마가 해주는 음악놀이야 말로 더 없는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음악은 집과 유치원, 학교, 일상생활 어디에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음악이라는 멋진 도구를 손에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손에 들려진다면, 그리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엄마에 의해서 잘 사용되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놀잇감이 없을 것이다. 아니 너무 바빠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짧은 엄마라도 그 시간을 음악을 가지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엄마는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심장박동과 따뜻한 목소리로 최초의 소리를 제공한 당사자이다.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자장가를 들려주면서 아이를 재우고 달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온 과정을 눈으로 지켜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함께 자랐던 엄마는 누구보다 아이를 제일 잘 안다. 엄마 치료사,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음악놀이는 엄마 자신에게도 같은 유익을 줄 것이다.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예를 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화를 내기는 어렵다. 아이와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듣는 동안에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어렵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음악으로 논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아이의 부정확한 음정이 거슬리거나, 박자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하며 하는 것 자체도 즐거움일 수 있다. 음악과 함께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어머니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 엄마가 음악의 매력과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아이도 함께 행복감을 느끼며 누릴 것이다. 따로 시간을 떼에 놓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으로 음악활동을 끌어들이는 것이 좋다. 다음의 노래와 활동을 재료삼아 더 풍성한 음악놀이로 응용하시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노래를 아이와 함께 부르실 수 있기를.

 

  <묻고 대답하는 노래>

 

준비물 : 없음.

 방법 : 노래를 충분히 익힌 후에 어떤 내용이든 묻고 대답할 수 있다. 엄마가 질문부분을 노래하면 아이가 대답하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아이가 말로 대답하도록 하고 엄마가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를 불러준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 라고 엄마가 노래를 불렀을 때 아이가 다영이라고 말로 대답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다영이예요.’라고 엄마가 노래 만드는 것을 모델링한다. 반복하면 아이가 스스로 바로 노래로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상황에 따라 어떤 질문도 가능하다. 과자를 사러 갈 때 채윤이는 무슨 과자 먹고 싶나요. 노래로 대답해 주세요.’라고 물을 수 있고, 기분이 어떤지, 지금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등. 묻고 대답하는 노래가 익숙해지면 엄마와 아이 사이 둘만 아는 비밀통로처럼 흥미로운 소통방식이 될 수 있다.

 

<피아노-테니스공 즉흥연주>

 

준비물 : 피아노, 테니스공 4.

방법 : 엄마와 아이가 두 개의 테니스공을 양손에 쥐고 테니스 공으로 피아노 즉흥연주를 하면서 교류한다. 아이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하는 미러링(mirroring)을 해주거나, 아이의 연주를 따라하되 리듬을 조금씩 변형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리듬이나 연주방식을 모델링해주기도 한다. 연주가 끊어지지 않고 일정 시간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역동성을 금방 느낄 수 있어서 연주만으로 아이와 역동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

   

<사랑해 사랑해>

 

준비물 : 없음

방법 :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엄마가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만 해도 좋다. ‘사랑해라는 말은 늘 하고 싶지만 말로 반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붙여서 아기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아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잘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로 새겨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이의 이름을 넣어 축복의 말을 들려줄 수 있는 노래라면 어떤 노래든 좋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노래할 수 있다면 엄마를 향해서 노래를 불러주고 스스로 스킨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면 안아주세요, 사랑한다면 간질러줘요, 사랑한다면 윙크해줘요.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탬버린 탬탬탬>

 

준비물 : 탬버린

방 법 :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함께 노래하면서 탬탬탬부분에서 아이가 탬버린을 연주하도록 대준다. 엄마는 탬버린을 높이 올렸다가 낮은 곳에도 놓아주면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엄마가 탬버린을 들고 도망 다니고 아이는 박자에 놓치지 않게 탬탬탬부분을 치기 위해서 엄마를 잡으러 다니는 방식으로 놀이를 할 수 있다.

 

  <섬 집 아기-트라이앵글>

 

준비물 : 트라이앵글

방 법 : 트라이앵글은 엄마가, 채는 아이가 들고 섬 집 아기노래를 부른다. 마디의 첫 번째 박에서 트라이앵글을 칠 수 있도록 엄마가 그 박자에 대주도록 한다. 단순한 활동이지만 어디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말로 하지 않아도 엄마가 조절해줄 수 있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느끼며 함께 소리를 내는 것이 트라이앵글의 공명만큼이나 정서적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색깔창문>

 

준비물 : 여러 색깔의 셀로판지

방 법 : 셀로판지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도록 아이 눈 앞에 대주고 노래를 부른다. 가사 속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고, 아이가 익숙해지면 스스로 가사를 넣어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큰 아이들과는 가사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 나눠 볼 수 있다.

 

An die music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치료의 세계를 안내하던 이 연재글을 마친다. 짧지 않은 글이었지만 음악치료 세계의 숲을 제대로 보여드리지도, 그렇다고 나무를 세세히 알려드리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음악치료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치료 속에서 음악이 사람보다 앞서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은 철저하게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존재한다. 제럴드 무어(Gerald Moore)가 그의 반주인생 내내 자신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늘 신경 썼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음악치료사는 어떤 의미에서 음악 소리가 사람의 소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그가 자신의 고별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An die music’을 들으며 글을 맺는다.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엄마의 기도,  기도의 여정에서 만난 첫 이정표

학창시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은 긴장의 나날이었다. 친구와 선생님을 새로 만나야 한다는 낯섦에 대한 부담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지는 학업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지니 말이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과 9, 엄마는 밤마다 철야기도를 했다. 저녁에 아홉 시 쯤 교회에 가시면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기도를 마친 후 일곱 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저 엄마의 습관이려니 했었는데 내가 학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의 절절함을 알 듯 하다. 아이가 가진 부담감을 모르지 않지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같이 학교에 가 줄 수도, 공부를 대신해 줄 수도 없다. 게다가 일찍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어린 남매를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는 아버지이며 남편인 하나님께로 가 무릎을 꿇는 선택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훨씬 이전부터 엄마는 그랬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아버지와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돌아오신 날 밤에도 자다가 깨보면 엄마의 이불이 푹 꺼져있다. 또 교회로 가신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에 연탄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곳은 교회 마당, 엄마의 등이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기도인지 찬송인지 모를 목소리가 엄마의 등을 통해 내 볼로 전해지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기도는 원래부터 모든 엄마들의 의무인줄 알았다.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것처럼, 기도는 엄마 역할의 기본옵션인줄 알고 자란 것이다. 시험 날에는 내가 시험 치는 시간 내내 엄마가 집에서 기도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못해도 잘할 줄 알았다. 시험 뿐 아니라 엄마가 기도하니까 내가 뭘 해도 잘 할 줄 알았다. 엄마의 기도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나의 비빌 언덕이었던 것이다.

 

엄마 기도의 빛과 그림자

그러나 또 신앙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엄마의 기도만큼 싫은 것이 없다. 몸이 약해서 자주 병치레를 했던 나를 놓고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엄마는 수시로 안수기도를 하셨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마귀야 썩 나와라.’ 엄포를 놓는 엄마 목소리가 얼마나 싫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웬만한 일은 다 기도로 해결하려는 엄마의 단순함이 날이 갈수록, 머리가 커질수록 싫어졌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하는 말 속에 담긴 엄마에 대한 애증처럼 기도역시 내게는 가장 갈망하면서 동시에 가장 피하고 싶은 신앙 행위였던 것 같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런 확신이 마음에 차오르면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내일이면 밀린 월급을 한꺼번에 받을 반짝 하는 소망이 샘솟는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기도한다. 기도응답의 조건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니까 될 줄로 믿쓉니다.’를 빼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구했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아닌 거절판정 받는 게 일쑤다. 엄마가 기도해보니 잘 될 것 같다.’던 일이 잘 되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청소년기와 청년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하면서는 미리 좌절했다. ‘, 이런 것까지 들어주실 리 없어. 그래도 어쩌겠어. 졸라는 봐야지.’ 하는 심정이었을까?

 

수련회의 기도, 집에서도 할 수는 없나요?

중고등부 때는 물론 청년부 수련회의 뜨거운 기도시간에 아주 잠깐 누리는 천국 같은 평안함, 세상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관용의 마음, 무엇보다 하나님 한 분이면 될 것 같은 만족감은 그 시절 내 기도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그 절정은 너무도 짧아 1년에 한 번, 합치면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라는 것이 함정. 일상에 돌아오면 바라던 직장에 꼭 가게 해달라고, 마음에 둔 형제도 나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나를 괴롭히는 직장 선배 좀 어떻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며 다시 답이 없는 나를 확인한다.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되 그 분 손의 쇼핑백을 수시로 힐끗거리게 된다. 그게 아닌 것을 알지만 매일 집에서 수련회를 할 수도 없으니 기도는 자주 길을 잃었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기도에 대한 열망은 커지지만 기도는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져야할 책임이 많아진 만큼 그 만큼의 무력감을 느꼈고, 그 무력감은 기도가 되었다. 기도라 봐야 이런 요구조건이 있지만, 하나님 맘대로 해주세요.’였으니 이건 뭐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기도를 배우고 싶었다. 리챠드 포스터의 <기도>,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 포사이스의 <영혼의 기도>, 래리크랩의 <파파기도>를 읽으며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 관계 말이다. 20분 정도 내 요구조건 브리핑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서 쩝쩝거리는 대화가 아니라 그 분과의 만남이 너무 좋아서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은 관계,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그런 기도를 할 수는 없을까?

 

기도의 길을 잃다.

그런 갈망에 더욱 목이 말라갈 무렵 남편은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늦게 신대원에 입학을 하였다. 새벽잠이 많아서 목사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부모님께 농담을 듣던 남편의 새벽이 영롱해지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신대원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나서 보내오는 메시지에서 하루가 다르게 투명해지는 그의 영혼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깊고 투명한 기도를 갈망할수록 나의 기도는 메말라 가는 것이었다. 방언을 구해보기도 했으나 그 분의 쇼핑백에서는 방언의 은사는커녕 이제 사소한 기도응답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신대원을 마치고 남편이 전임사역을 시작하자 내게 사모란 이름으로 새벽기도 의무사항이 주어졌다. 새벽기도를 안 하는 사모는 세상 무엇을 한다 해도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가진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하여 기도의 여사도(女使徒)’ 친정엄마 역시 거드신다. ‘너 새벽기도 해야헌다. 내가 기도혀도 소용없어. 사모가 기도허야 김서방이 목회 성공하는 거여.’ 내가 가장 잘 하고 싶은 것이 기도인데, 기도에의 열망과 열정이 새벽기도로 하나로 대치되어 내 존재를 판단 받게 되다니 분열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새벽기도에 나가면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꾸지람을 듣거나 정죄당하기 일쑤였다. 새벽기도에 나가면 내 존재가 분열될 것만 같은 고통으로 눈물만 하염없이 쏟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침묵기도로 가는 신비로운 이정표

이즈음 직업적 필요 반, 신앙적인 갈망 반으로 공부를 하나 시작했다. ‘성격유형에 관한 공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우연 같은 필연으로 가톨릭 기관에서 배우게 되었다. 알고 보니 단지 성격유형이 아니라 거짓자아에 대한 공부였고, 예수회 신부님들의 자기성찰을 위한 영성수련 방법 중 하나였다. 머리를 키우려다 마음을 터치하는 도구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열린 문은 신비롭게도 침묵기도 피정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생각과 욕망의 침묵을 통해서 비로소 내 존재의 중심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을 들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배운 침묵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갈망하던 쇼핑백 아닌, 쇼핑백 든 하나님을 조금씩 응시하게 되었다. 애써 선택한 것이 없는데, 그저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만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 새 나는 멀리 와 있었다. 목회자의 아내로 보이기 위한 기도에 대한 압박으로 괴로워 흘리던 눈물을 하나님아닌 하느님이 닦아주시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그렇게 갈망하던 기도를 (‘기도의 사도인 엄마가 이단이라 믿으시는) 가톨릭에 와서 배우게 되다니. 낯선 예전과 언어들 속에서 남의 나라 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처럼 위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낯선 어느 경당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며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저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요? 이 낯선 곳에서 이방인 같이 앉아 있습니다. 엄마에게 배운 기도가 있는데, 내 어머니의 교회에서 배운 신앙의 전통이 있는데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가요? 당신은 하나님인가요, 하느님인가요?‘ 동냥젖을 얻어먹는 아기처럼 배고파 정신없이 빨지만 마음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깊은 울음과 긴 흐느낌 끝에 사랑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음의 눈을 들어 그 눈빛에 내 눈을 맞췄다. ,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보고 계시는구나. 공허한 기도 속에서 정신없이 그 분을 찾아 돌아다닐 그 때도 이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그 분의 아들이시며 그 분 자신이신 예수님이 말이다.

 

쉬지 않는 기도

삶은, 신앙은 신비이다. 주변에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여정 속에서 혼란스러웠지만 혼란보다 큰 평안이 점점 나를 감싸가고 있었다. 그 분과 연결되고 싶은 열망 하나로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분이 바로 내 안에, 내가 있는 바로 여기에 계셨다. 한적한 피정집이나 내가 자란 교회의 예배, 둘 중 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상 한가운데에서도 그리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었고, 그것이 기도이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아이만 뒤로 쳐지는 것은 아닐까 극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 어딘가에서 나를 비난하고 있을지 모르는 관계가 틀어진 친구를 상상하며 두려워지는 순간에, 더 이상 남편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강퍅하게 마음 문을 닫아버린 어느 날. 바로 그 순간에 지체하지 않고 주님을 부를 수도, 그것이 가장 깊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메말라 윤기 없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그 분을 부를 때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를 밀어내고 들이닥치는 사랑의 침노를 느낄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의 원인이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며 바라보고 계신 사랑의 눈동자는 내가 고개만 들면 눈 맞춤 할 수 있는 곳에 아주 가까이 계시니 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구나.)

 

나의 기도는 이런 것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난 집안.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며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은 복잡한 내 마음 같다. 그래도 라디오 FM에선 쇼팽이 흘러나온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내 마음이 편안하게 조급하다. 이걸 마치고 거실의 낡은 탁자 앞에서 있을 데이트 때문이다. 아무런 꽃단장이 필요 없는 만남이다. 아니, 얼룩이 묻거나 찢어져 상처가 흉할수록 더 귀하게 대접받는 데이트이다. 얼룩과 상처를 내보이고 아픔과 두려움을 인정하면서 시작되는 기도는 그 분의 충만한 현존으로 나를 이끌어간다. 어떤 때는 속이 시끄러워 그 자리에 앉아서 단편 소설을 써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 단편소설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고 다시 나의 연인의 눈을 바라보면 여전히 그 눈빛 그대로 여기 계시다. 이 아침의 기도가 깊어질수록 일상 속 쉬지 않는 기도는 더 힘을 받는다. 매일 마음의 얼룩을 지운다고 지워도 나도 모르게 끼는 묵은 때가 있다. 이것이 쌓이면 가까이 계시는 그 분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일상의 의무를 벗어나 그 분과 단둘이 긴 시간을 보낼 때가 왔다는 신호이다. 이틀 삼일 엄마가 피정을 가겠다는 말에 아이들의 반발이 거세다. , 왜 꼭 기도하러 가야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아빠가 부지불식간에 대답을 내놓았다. “? 엄마가 기도 안 하면... , 죽어.” 아이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나온 표현이지만 내 가슴에 박혔다. 기도 안 하면 죽어.

 

많은 문제로 고민을 하던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 기회에 테레사 수녀님의 충고를 듣고자 긴 시간 자신의 문제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우웬 신부님이 입을 다물자 테레사 수녀님은 조용히 말했다. “글쎄요. 하루 한 시간씩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 줄 아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향한 여정 끝에 생의 오르막길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내게 주신 주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하루 한 시간씩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 줄 아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삶. 나의 기도와 기도의 삶은 이런 것이다.


* 한국여성크리스천클럽에서 발간하는 회보 <샘바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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