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우크렐레를 끼고 더위도 물리치던 현승이의 사랑이 쉬 식지 않습니다.
코드는 강의 영상을 보고 할 수 있는데 스트록이 영 안 된다며 챙챙챙챙 하고 있는데
기타 좀 치는 아빠가 도와줍니다.
조금 도와주더니 아빠도 아예 기타를 들고 즉흥 듀엣을 합니다.
현승이를 꼭 닮은 우크렐레, 아빠와 한 몸 같은 기타.
참 잘 어울립니다.

봄봄봄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향기 그대로
그대가 앉아 있었던 그 벤치 옆에 나무도
아직도 남아있네요



싱어도 등장.
한 때 '밤의 여왕의 아리아_지옥의 복수심 내 마음 불타오르고'도 가볍게 불러제꼈는데,
어쩌다 고음불가 중2가 되어 '제주도 푸른 밤'도 힘겹네요.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정말로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티브이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휴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서는 잠옷 입은 그대로
아이패드와 교본을 앞에 두고 연구하고 연습하였습니다.
연구라는 말이 적절합니다.
긴 시간 앉아서 영상을 보고, 교본을 뒤적이고, 딩가딩가.
그러다보면 어느 새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부르고 있고,
'벚꽃엔'딩을 연주하고 있고,
'이 노랜 하고 싶은데 코드가 어려워서 못해' 하던 '봄봄봄'을 외워 치고 있습니다.
'I'm yours'는 정말 백 번도 더 들어서 전주만 들어도 지겨워서 토나와요.

 


고도의 집중력은 영락없이 아빨 닮았고,
하나에 꽂히면 푹 빠져있는 건 엄말 닮았고,
학구적인 건 다시 아빨 닮았고,
'자기만족'을 동력삼아 재밌는 걸 자발적으로 하는 건 또 엄마네요.
가만 들어보니 기타 소리가 우크렐레 소리를 다 잡아먹고 있는데요.
워낙 아빠는 크고 현승이는 작고, 기타 울림통과 우크렐레 울림통이 작으니 어쩔 수 없지요.
소리야 어떻든 나란히 앉아 딩가딩가 땡까땡까 하는 모습은 조화롭습니다.
커피 다 녹겠네.
하고 있는데 '아, 똥마려. 아 똥마려' 현승이 생리현상으로 연주는 끝이 났습니다.


 

즉흥적으로 맞추는 호흡이라 거친 음악의 조화는 울퉁불퉁하지만 그래도 살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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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아
~아, 김현스~응.
우리집 앞 길에서 현승이를 부르는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
(머리로 놀기 좋아하는) 동네 친구 세 명과 레고 한 판 하고 들어온지 10분 만이다.
이번엔 (몸으로 놀기 전문) 두 명의 친구가 왔다.
여러 번 길을 건너 망원동에서부터 왔다.
점심 먹어야 하는데....
엄마, 나 점심 먹어야 놀 수 있지?
잠깐만, 나 빨리 점심 먹을게. 기다려.
벌려놓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자 샐러드를 쌓아 넣은 모닝빵을 급히 먹는다.
앉지도 못하고 왔다갔다 하며 먹는데 먹는 입과 말하는 입, 둘 다를 포기할 수 없다.
먹으면서 동시에 떠들어 댄다.


엄마, 있잖아 J 말이야.(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1) 걔는 (에니어그램) 8번 같애.
하겠다고 하면 힘으로 딱 밀어붙여. 그래서 J가 하겠다고 하는 걸 거의 다 하게 돼.
그래서 어쩔 때 K(밖에서 기다리는 친구 2)가 좀 불쌍해.
엄마, 엄마. 그렇다고 J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야. 좋은 애거든.
(에니어그램) 번호 자체가 좋고 나쁜 건 아니잖아. 그냥 그애 성격이잖아.
K는 늘 J가 시키는대로만 하려고 해.
둘이 되게 친하긴 친하거든. 그런데 어쨌든  J 맘대로만 하게 돼.
나랑 K랑 둘이 놀 때도 K는 '뭐하고 놀까? 니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이렇게 말해.
그러면 나는 일부러 K가 뭐 하고 싶은지 물어보거든.
그냥 조금 K가 불쌍해.
저번에는 쉬는 시간에 J가 없고 K랑 둘이 있었는데 내가 살짝 말해줬어.
J랑 놀 때, 너가 하고 싶은 것도 하겠다고 해. 라고.
아, 빨리 가야겠다. 
엄마, 나 놀고 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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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금
까지 내가 기도한 것 중에 80%는 안 들어주셨어.

그래? 그러면 너 그런 하나님을 믿어 안 믿어?

그래도 믿긴 믿어.

왜애?

안 들어주긴 했는데 그래도 좀 하여튼 믿어.
그렇다고 안 믿는 건 좀 불안하고, 믿는 게 더 안전한 것 같애.


(그 자식 입을 가만히 안 놔두고 떠들어대서 도무지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짜증내던 아빠가 엄마에게 속닥속닥)

파스칼이야. 파스칼.
파스칼이 그랬어. 네 가지 가정을 한 거지.
천국이 없다고 믿는다 / 죽어보니 없다. (거봐 맞지. 오케이) 
천국이 없다고 믿는다  / 죽어보니  있다.(낭패)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 / 죽어보니 없다.(할 수 없지)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 / 죽어보니 있다.(올레~)
그러니까 천국이 있다고 믿는 것이 제일 낫다는 거지.
파스칼의 논증이야.


오, 우리 현승이 파스칼!  아니고 파승칼.

 

* 사진은 여섯 살, 유치부 여름 성경학교에서. 이가 저렇게 쬐꼬맣던 그때 정말 귀여웠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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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뚜렷하고 언제든 있는 그대로 표출되는 욕구, 채윤이의 욕구. 간절히 원하지만 주변을 살피느라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못하고 막상 묵살되고 나면 나중에 속을 끓이는 현승이의 욕구. 두 욕구가 충돌했을 때 뒤끝 작렬은 늘 현승이 몫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시점에서 감정형인 현승이에겐 논리가 의미없고, 사고형인 채윤이에겐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는데 계속 대화해야 하는 것이 미칠 노릇이다. 중재자인 엄마가 아무리 공정해도 현승이에겐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승이에게 엄마는 공정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편들어주라고 있는 것이니까.(MBTI의 T와 F가 갈등을 대하는 태도를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엄마는 은근 즐긴다) 
채윤이에게 깔끔, 현승이에겐 앙금을 남기고 어쨌든 대화는 종료. 채윤이는 찬양팀 연습을 가고 엄마와 현승이 둘이 남았다. 카톡에 빠져있던 엄마가 배고프다는 현승이에게 '알았어. 잠깐만' 하면서 매를 벌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현승이는 꽝꽝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반찬을 꺼내고 탁탁 밥을 퍼서 퍽퍽 먹고 있었다. "엄마가 삼겹살 구워주려고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 "안 먹어. 안 먹는다구. 이것만 먹을 거야" 하는데 어르고 달래고 까꿍까꿍해서 마주보고 밥을 먹게 되었다. 힘이 빡 들어갔던 눈이 조금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엄마, 엄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싫었던 적 있어? 미운 거 말고. 싫었던 거.

많지. 엄청 많지. 특히 외할머니는 얼마나 싫었는데.

내가 싫다고 말하는 건 미운 거보다 더 싫은 거야. 미운 건 가끔 있을 수 있는데 싫은 건 정말 싫은 거야. 알아?

어, 알겠어. 아이들이 원래 자기 엄마 아빠 많이 싫어해.

나 아까 엄마가 정말 싫었어. 그러잖아도 엄마한테 쌓여 있었는데 진짜로 배고픈데 밥을 안 줘서 완전 싫었어.

미안해. 엄마가 잘못 한 거야. 엄마 미워해도 돼. 싫어해도 되고.

그런데 엄마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 전까지의 설명을 잘 들어보면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더 잘못했다는 것 같고, 내가 고칠 게 많다고 말하는 거 같애.

ㅋㅋㅋㅋㅋㅋㅋ 뭔 말인지 알겠어. 것두 미안해. 그런데 엄마가 미울 때 말고 싫을 때도 많아?

미울 때는 자주 있고 싫을 때는 거의 없는데 오늘은 아까 누나랑 셋이 얘기할 때부터 싫었어. 그런데 엄마가 싫을 때는 평생 안 풀어야지 결심을 하게 되거든. 평생 엄마랑 말을 하지 않고 엄마를 괴롭혀야지 하는데.... 어느 새 엄마랑 이렇게 말을 하고 기분이 좋아져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왜 그런지 알아? 엄마가 너 풀어주려고 애썼잖아. 니가 아무리 엄마를 좋아해도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게 더 커서 그래. 원래 사랑하면 먼저 풀게 되어 있어.

그래서 엄마가 삐지면 아빠가 엄마를 풀어줘? 아빠가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는 거야?

응, 아빠 사랑이 더 커. 엄마는 사랑이 적어. 사랑하면 지는 거다! 하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야. 하긴 우리 현승이도 엄마를 더 사랑할 때가 있다. 엄마가 너랑 대화하다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해' 하고 삐지면 니가 한참 있다가 와서 '엄마 미안해' 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땐 우리 현승이 사랑이 더 큰 거네.

음, 사랑하면 지는 거다.....

현승아 너가 클수록  사랑이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어. 아빠처럼 나중에 더 큰 사랑으로 먼저 풀어주고 품어주고 그런 멋진 사람이 돼.

엄마, 그런데 보듬어주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품어주고 이해해주고 아껴주고 그런 뜻? 왜? 어디 책에서 봤어?

아니, 개콘에서. '미안해요 형'에서 이상구가 '보듬어주세요 형' 그러잖아. 밥 다 먹고 개콘 하나만 볼까?

그래.

(엄마, 즐겁게 낚임. 사랑하면 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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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덥지만 않다면, 놀기 딱 좋은 방학 날인데.
너무 더워서 친구들을 불러낼 수가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은 날씨 때문에 어디론가 다 사라졌고,
레고와 보드게임과 책을 좋아하는 친구 집에 가서 놀기도 했는데 너무 더우니 그것도 민폐.
그 친구랑 동네 망원정이라는 정자에서 만나 장기, 아니고 블루마블을 하는 것도 괜찮았는데
공사 때문에 망원정 문을 닫았네요.
그렇다고 누나가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영화 다운닫아서 보는 것도 끽 해야 두어 시간 소일.
우크렐레 들고, 아빠 모자 꺼내 쓰고 괜한 띵까띵까 해봅니다. 


 


어, 그런데 현승이  방에서 제법 음악이 되는 우크렐레 소리가 납니다.
날도 덥고 엄마도 와 계시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어서 흘려듣고 있었는데,
'엄마, 나 이제 우크렐레로 벚꽃엔딩 할 수 있다' 하며 튀어 나옵니다.
어, 이거 봐라. 이거 봐라.
'벚꽃엔딩'에 '먼지가 되어'가 제법 반주가 되네요.
알고보니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서 우크렐레 독학을 한 것입니다.
대견하고 대견하여 우크렐레 배울래? 등록해줄까?
했더니 됐다고. 자기는 우크렐레를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독학으로 배우는 거라며. 


 


한 나절 독학으로 '벚꽃 엔딩'을 마스터 하고는 학구열이 불타오릅니다.
현승이 사촌 형아가 '그 놈은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고요.
휴대폰 게임도 이상한 게임만 한다고요. 꼭 게임도 머리 쓰는 게임만 한다고.
아닌 게 아니라, 현승이는 노는 것도 학구적이고,
채윤이는 책을 읽어도 어떤 뭐랄까 설정놀이를 하는 것 같이 보인단 말이죠.
여하튼 현승이는 우크렐레 '독학'에 빠져서
굳이 코드 잡는 법을 저렇게 땀 뻘뻘 흘리며 그려놓고야 마는군요.
더워서 헬렐레 하다가 우크렐렐레 하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 오시기 전에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찬송가를 하나 연습해 두었지요.
오시면 연주해 드린다고.
급 우크렐레에 빠져서는 바이올린 잡고 싶지도 않지만,
하기로 한 거니까 합니다. 대신 연주에 영혼 따윈 없구요.
처음에 연습할 때만해도 두 번 연주하고 간주를 어떻게 하고 키를 올려서 천천히 연주하고,
생각이 많았었는데 우크렐레와 사랑에 빠져버린 탓에 확 그냥 막 그냥 해버리기로.
그러다 두 번째 연주에서 현승이도 헤매고 따라 부르시던 할머니도 헤매시고.


또하, 또하~아,
방학날은 이렇게 또 하루 지나갑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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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2일에 포스팅 되었던 것입니다.
현승이가 여섯 살이던 때 기가막힌 노래를 하나 만들었었죠.

오늘은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라는 노래의 이 가사가 자꾸 입에서 맴돕니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제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새벽 강을 보러 떠날 수 없다면 현승이의 노래를 따라 불러 볼 일입니다.

파마머리 현승이도 귀엽고, 오늘 정서와 가사도 착착 붙기에
당시 올렸던 글과 댓글을 살려서 다시 한 번 대문에 걸어봅니다.

**********************************


현승이 작사 작곡의 아주 짧은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가사는 '사는 게 씨리리라라요' 입니다. 무한반복이 컨셉입니다.
뜻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만.

밥벌이의 고단함이 온 몸을 파고드는 날에 현승이의 노래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사는 게 진짜루 씨리리라라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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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랑 한강에 한 번 갈래?" 그렇게 둘이 한강에 나가서 손을 잡고 걸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내가 지금 어른 남자와 얘기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 통하는 아이 현승입니다. 방학 하자마자 할머니 댁에 다녀왔는데 혼자 계신 할머니께 선물을 잔뜩 드리고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얘, 현승이가 뭐래는 줄 아냐? 나랑 같이 한강에 나갔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그러는 거야. 할머니, 저랑 같이 걸으니까 외롭지 않고 좋지요? 무슨 애가 그런 말을 하니?" 그렇게 들뜬 어머님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봤어요.   


현승이에게 덕소는 텔레비젼이 있고 컴퓨터 자유이용권이 있고 왕자대접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할머니가 계셔서 좋은 곳입니다. 이번에는 더욱 설레는 일이 있으니, 처음으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는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방학식 하고 와서 둘이 점심을 먹는데 쫑알쫑알 쫑알쫑알 하다가 "엄마, 엄마는 지금 흥분되지도 않아? 아들이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 집에 가는데 대견하고 자랑스럽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같애" 하고는, 다시 쫑알쫑알 쫑알 쫑알.


지하철 역까지 가서 태워보내려고 했더니 역까지 차로 태워주면 혼자 내려가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같이 가서 자기 혼자 들어가고 '엄마 갔다 올게'하고 인사를 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나쁜 아저씨들이 '쟤가 혼자 어딜 가는구나' 하고 알아채서 잡아갈 수도 있다는 거지요. 합정역에 내려서 후다닥 지하철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그때 비로소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뭉클했습니다. 가는 사이 중간중간 문자를 주고받다가 최고의 난코스 환승역 미션수행을 잘해서 중앙선까지 가서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나 이제 덕소 가는 지하철 기다려. 잘 왔어. 여기까지 오는데 잘 모르겠어도 일부러 아는 것처럼 씩씩하게 걸었어" (이유는 어리바리 하고 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잡아갈까봐.ㅎㅎㅎㅎ)


가서 이 녀석 티브이에 컴퓨터 게임에, 할머니 휴대폰으로 하는 게임까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시간을 보냈음이 안 봐도 비디오지만 그 이상을 누리고 온 것입니다. 아무런 통제없는 사랑에 1박 2일 정도 잠기는 행복 말이지요. 사실 늘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힘이 빡 들어간 엄마가 그런 사랑 주기가 어디 쉬운 일이어야죠. 어머님이 행복한 목소리로 현승이 어록을 끝도 없이 늘어놓으시기에  "현승이는 참 행복한 애예요" 했더니 어머님이 더 행복해 하시며 어쩔 줄을 모르시네요. 할머니 좋고, 손주 좋고, 그 사이에 낀 며느리 좋고! 여러 사람 좋은 1박2일 덕소여행.


난생 처음 혼자 지하철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온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현승이의 마지막 논평은 이랬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지하철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인사하고 손 흔들 때 너무 마음이 슬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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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죽으라고 말하는 얘기는 아냐. 그냥 이걸 물어보는 거야.
엄마는 엄마나 아빠 중에 누가 먼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아니, 이건 진짜 만약이야. 만.약.에. 어떤 게 더 낫냐고.
나는?
나는..... 그러니까 죽는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차라리 낫다는 얘기를 하는 건데.
나는 엄마가 아빠보다 늦게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애.
아빠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너~어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어.
왠지 아빠는 혼자 남으면 '정신실, 정신실.....'이러면서 울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애.
엄마는?
엄마는 왠지 씩씩할 것 같애.
그러니까 아빠가 먼저 죽는 게 낫지.
나는 아빠가 혼자 있는 생각만 하면 너무 불쌍해.
그리고 나는 아빠가 죽고 엄마가 혼자 있으면 무조건 엄마를 우리집에 데려올 거야.
엄마가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엄마 혼자 놔둘 수 없어.
그래? 그러면 같이 살지는 말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야겠다.
그리고 내가 매일 매일 손자 손녀를 데리고 엄마한테 갈 거야.
아빠는 사실 왠지 조금 지금도 쓸쓸해 보이지?
엄마는? 엄마는 신나는 거 같애.
아빠는 왜 그렇게 보일까?
(에니어그램) 5번이라서 그래?
아빠는 5번인데도 꽤 웃기지?
그래? 노력하는 거야? 그랬어? 결혼하기 전에? 아, 엄마랑 살다보니까 그렇게 됐구나.
상상이 된다. 이러~어케 인상 쓰고 다녔지? 킥킥킥킥.
엄마, 아빠는 지금 사는 게 어떻대? 좋대? 행복하냐고.
약간 조금 쓸쓸해 보이는 게 있어.
알았어. 내가 한 번 물어볼게.
정말 아빠는 너무 좋은 사람 같애.
화도 안 내고. 그냥 아빠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야.
아! 엄마가 화를 다 내주니까? 그렇구나!
그러면 둘이 그렇게 의논했어? 화는 엄마가 내고 아빠는 착하기로?
큭큭큭큭..... 악역이야? 엄마가.
아, 엄마가 너무 많이 화를 내서 아빠가 낼 게 없구나.
큭큭큭큭큭......


 참 좋은 사람@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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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내가 있잖아..... 흐흐흐흐흐흐......
바자회에서 산 개구리 목 베개 있잖아.
그게 튿어진 거야. 그래서 솜이 막 나오거든.
내가 바느질 했어.
학교에서 배웠잖아.
강의 끝나과 와서 바봐. 내가 핸 거.

(흰실로 얼기설기 엮어서 막아놓고, 검정실로 알 수 없는 모양을 새겨 넣기도 했다. 큭큭)

 

 


실과 시간에 바느질 배운 것 바로 생활에 적용.
집에 빵꾸난 거 없냐?
뒤지고 찾고 하다가 옷을 만들기로 했단다.
분신과도 같은 테디베어 옷 만들어 입히기.
작아진 내복을 쑥쑥 자르더니 대충 막 오려서 갖다대고 바느질 시작.
(방점은 바느질에 있으니까)


엄마 없을 때 배고프면 계란프라이 혼자 해먹는 기능,
후루룩 국수 끓여 먹는 기능,
매실 타먹는 기능,
빨래 널고 걷어서 개키는 기능에

이제 바느질 기능도 추가.
일등 신랑감이 되어간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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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동생이 오랜만에 훈훈한 분위기로 대화 중)

누나 : 현승아, 솔직하게 한 번 말해 봐.
여자로 볼 때 엄마랑 누나 중에 누가 더 예뻐?

현승 : (7초 뜸)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누나 : 그래도 그냥 말해 봐.

현승 : (7초 미적미적) 누나 크면 얼굴이 바뀌겠지?

누나 : 그런 말 하지 말고~ 누가 더 예뻐?

현승 : (7초 침묵) 누나 나중에 성형 할 거야?

누나 : 야, 내가 이렇게 예쁜데 성형을 뭐하러 해?
(농담인 것 같음. 그렇게 믿고 있음)


(어쨌든 이 주제는 여기서 마무리)

(현승이 안도의 숨소리 들리는 듯함)
(채윤, 답을 못 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또 물어볼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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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점점 따뜻해지는데 내 마음 쉽게 따스해지질 않고,
이웃들의 소식도 여전히 춥고 메마르다.
어제 저녁 늦게 '이러고 있지 말자' 하며 일어나 화분 분갈이를 정리를 했다.
163센치 채윤이까지 괜히 들떠서 덩달아 옆에서 부산을 떨었다.


바닥 걸레질까지 다 마치고 고개 들어보니....
어,토토로! 너가 여기 웬일이니?
화분이 이니라 토토로를 여기로 데려온 현승이 마음과 손길이 내겐 봄과 같다.


엄마 수술하시는 날이다.
아픈 엄마로 인해 크게 영향받지 않고 덤덤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아침은 확연한 무게감으로 온다.
나무 아래 토토로를 보면서 픽 웃고 사진을 찍으니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
봄은 토토로가 아니 현승이가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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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집구석에 딱 박혀서 책 한 권을 다 읽어낼 순간이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
"엄마, 하루 종일 집에 있었잖아. 한 번도 안 나갔지?
나랑 한강 가자. 집에만 있으면 안 돼"
라며 기어코 엄말 끌고 나갔다.


자전거 탄 아들내미 강변까지 나가는 골목에서 차가 오면 멈춰 서고 또 한 대 오면 또 멈춰서고.
이 녀석 겁이 정말 많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 애가 조심성이 많으면 부모한텐 더 좋은 거 아냐? 걱정이 안 되잖아.
사고 날 일이 별로 없잖아" 란다.


웬만큼 소심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긴 너무 조심성이 많으면 답답하겠다. 부모로서" 란다.


알긴 아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뭐. 아주 약간 답답한 정도지? 안 그래?" 란다.


(니가 내 할 말까지 다 하는데 나는 입을 왜 달고 나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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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현승,
무심한 듯 세심하게 새로운 선생님을 스캐닝하다. 


D-3

엄마, 수영장 버스 탈 때~애. 맨날 따라가는 엄마가 있어.
그래서 버스 기다릴 때도 같이 서 있어.
그 아줌마가 어떤 스타일이냐면, 디게 적극적인 엄마 있지.
학교에도 많이 오고, 뭔가 막 애들한테 열심인 엄마 있잖아.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래서 그 엄마가 학교에 대해서도 잘 아나 봐.
오늘 버스 기다리는데 그 아줌마가 나 5학년 몇 반 됐냐고 해서 3반이라고 했더니,
좋겠대. 3반 선생님이 *** 선생님인데 그 선생님 디게 좋은 선생님이래.
(옆에 있던 누나) 맞어, 나 5학년 때 그 선생님 5학년 어떤 반 선생님이었는데 인기 좋았어.
새로운 환경에 대해 보통보다 조금 더 민감한 현승이가 일단 조금 안심입니다.


D-0

다녀왔습니다.
엄마, 안 좋은 소식이야.
그 아줌마가 잘못 알았어.
*** 선생님이 아니야.
###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야.
글쎄.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첫날이라 조금 참으시는 것 같은데 며칠 지나면 화를 잘 내실 것 같애.
그리고 규칙이 굉장히 많으셔. 그걸 다 얘기하느라고 설교하는 것 같이 길게 얘기해.
일단, 농담을 하나도 안 하셔.


D+1

다녀왔습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선생님을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는대.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대.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선생님 생각이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하면 안 된대. 열심히 해야 된대.


D+2


엄마, 우리 선생님은 비유를 참 잘 하시는 것 같애.
어떤 애가 뭐든지 디게 디게 늦게 하는 애가 있어.
내가 걔랑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어서 알거든. 뭐든지 정말 정말 늦게 해.
오늘도 2교시에 시작한 미술을 끝날 때까지 했어.
그래서 애들이 자꾸 놀렸거든.
그랬더니 선생님이 딱 그 말투가 있어. 선생님 말투가. 딱 어떻게 정해진 말투거든.
그 말투로 이렇게 말했어.
"여러분, 거북이가 나빠요?"
비유를 진짜 잘 하시지?


D+3

엄마, 오늘 드디어 선생님이 어떤 애를 울리셨어.
그 애가  자존심이 엄청 강한 애기는 해.
선생님이 애들 다 보는 데서 걔가 학습장 제대로 안 쓴 것에 대해서 막 뭐라고 뭐라고 하셨거든.
좀 잘못 하기는 하셨지.
그런데 걔가 자존심이 강한 애라서 빨리 울었어.
(엄마 : 우리 현승이도 한 자존심 하는데..... 니가 그 애였으면 어땠을 것 같애?)
나는? 나는 친구들 웃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혼나고 들어올 때 고개를 이렇게 하고 내가 쫌 웃으면 애들이 따라 웃어.
그리고 그때 까부는 남자애들하고 눈 마주치고 웃으면 다 웃어.


D+4

엄마, 임00 선생님(작년 담임 선생님)이 드디어 애들한테 오늘 이렇게 말씀하셨어.
4학년 때 애들이 매일 같이 선생님을 찾아가.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만 오라고 하셨어.
엄마, 내가 3학년 4학년 때 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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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혼자 커피 한 잔 하려고 드르륵 드르륵 하고 있었는데,
내복맨 현승이가 갑자기,
엄마! 아니다. 아니다. 다시.

(고생을 기억하는 목소리로 톤을 바꾼 후에)
어머니, 어머니 커피 드시는데 제가 컵 골라드리는 호사 누려도 될까요?
란다. 물론, 어머니는 그 필 그대로 받아서,
아가야, 컵 골라주는 호사 누려! 했고.
아가는 저 빨간 컵을 골라주었다.


잠시 후,
어머니, 저..... 아빠 홍삼 반 봉지만 먹는 호사 누려도 될까요?
라길래.
아가야, 아빠 홍삼 반 봉지 먹는 호사 누려! 했다.


잠시 후 바이올린 연습을 하려다가,
어머니, 저 바이올린으로 (패닉의) 달팽이 연주하는 호사 누려도 될까요?
새들처럼도요. 란다.
그래서 또 물론,
아가야, 달팽이, 새들처럼, 연주하는 호사 누려!
했더니,
깽깽깽깽깽.....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깽깽깽깽깽.....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깨갱깨갱 깨갱깨 갱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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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단둘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는 현승이의 수다봉인이 풀립니다. 질문도 많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무한 길고.... 오늘 생각해보니, 이게 현승이의 배려심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집에서 엄마는 집안일을 하거나, 원고를 쓰거나,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으려고 하니까 맘 편히 수다요청을 못하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랜만에 둘이 김포에 가느라 자동차 데이트를 하게 되어 힐링캠프 따위는 울고 갈 딥토킹을 하게 되었지요. 솔까말, 현승이와의 대화는 웬만한 어른들과의 대화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무겁지 않은 질문으로 대화를 여는 상담자인지 내담자인지 모르겠는 현승이)


현승 : 엄마, 내가 빌라에 사는 건 여기가 처음이지? 나는 아파트에만 살았잖아. 엄마는 빌라에서 사는 게 어때?


엄마 : 뭐가 어때?


현승 : 아파트랑 살 때하고 어떠냐고. 좋다, 싫다 뭐 이런 거. 여기서 살아서 좋은 점이 뭐야? 망원시장?


엄마 : 망원시장은 좋은데 멀지. 명일시장이 짱이었어. 코앞이었잖아.

현승 : 아파트는 뭔가 좀 독특한 거 같애. 음... 그 안에 놀이터가 있고, 그 아파트 아이들이 놀고.... 그런 것 같지 않아? 하여튼 아파트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있어. 그런데 내가 빌라에 익숙해졌어. 이런 동네에 살고, 또 여기서 노는 것도 좀 익숙해진 것 같애.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현승 : 엄마, 그런데 내 친구 **이 있잖아. 엄마 아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래. 엄마는 미국으로 가서 어딨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중국에 있어서 가끔 보기도 한대
.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거야.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는 불쌍해도 너무 불쌍해. 엄마 아빠를 아예 보지도 못하고 사는데....

(
친구 **이는 현승이가 3학년 때부터 관심을 가지던 친구. 할머니와 살아서 준비물도 못 챙겨와 늘 혼나는 아이. 생일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엄마가 생일잔치 해주면 안 되겠냐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현승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이 친구에게 더 차겁게 대하고 심지어 놀리기까지 해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지요. 불쌍한데 자꾸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그래서 혼나고, 친구들한테도 놀림받을 짓을 자꾸 해서 더 놀림받고.... 이런 걸 보면서 답답해하고 속상해 했지요. ㅠㅠ)

엄마 : 그렇지. 그건 너무 슬픈 일이지
. 나이가 어리니까 더 슬프고 가엾은 것 같애.

현승 : 나는
김포 가서 하루 잘 때도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은데.

엄마 : 그러게, 너무 보고 싶지만 하루 자고 다음 날 집에 가면 엄마가 있지만 자고 일어나도, 아침이 돼도 여전히 엄마를 볼 수 없는 건 상상도 못하게 슬픈 일일거야.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그냥 자라는 거야.


현승 : 아, 엄마가 겪어봐서 아는구나.(외할아버지 추도식 시즌이니까^^)


엄마 : 엄마가? 아.... 그러게. 그러니까 엄마는 중학생이었으니까 조금 더 알았지만 더 어렸던 삼촌이 엄마보다 더 깊이 슬펐을 거라는 생각을 요즘 해.


현승 : 그래? 그러면 외할아버지 추도식 때 삼촌은 울지도 않고 히~ 웃고 그래도 마음으론 더 슬픈 거야?


엄마 : ㅎㅎㅎ 지금은 돌아가신지 오래 됐으니까 울만큼 슬프진 않아. 마음 속 깊은 곳에 슬픔이 남아 있을거라는 얘기야. 사실 엄마처럼 울거나 표현하면 오히려 괜찮아.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슬픈 줄도 모르고, 그걸 모르니까 표현도 못하지.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말이야.... 현승이가 울지 않았잖.....


현승 : 아니야. 엄마. 그만해. 그 얘긴....
. 하지마.

엄마 : 엄마는 이 얘기 언젠가 꼭 하고 싶었는데.


현승 :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할 얘기가 없다고.

엄마 :(얘기 하지 말라면서도 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느껴져서 밀어부치기로 한다.) 현승이가 할아버지 많이 좋아했고, 할아버지 돌아가시는 게 슬펐지만 울지 않았잖아...
그래서 실은 엄마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 현승이가 우리 식구 중에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했는데 너무 슬퍼서 울지도 못한 것 같아서.


현승 : 그땐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어. 누나는 울었잖아.


엄마 : 그러게. 어리기도 했고, 현승이는 사람들 있는데서 현승이 느낌을 보여주는 게 불편하지?


현승 : 응. 엄마 그런데.............. 나 사실은 그때 울었어. 장례식 때 밤에 잘 때 혼자 울었어.


엄마 : ...........................


현승 :
범식이 형아랑  누나들이랑 덕소 가서 잤잖아. 그때 혼자 훌쩍훌쩍 울었어.

엄마 : (이때부터 엄마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 ㅠㅠ) 그랬구나. 엄마는 현승이가 너무 슬픈데 울지도 못해서 그게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파.


현승 : ............................


엄마 : 그런데 엄마가 현승이 마음 이해 돼. 슬픈 게 힘들어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엄마도 어릴 적에 그랬던 것 같애. 그러다 보면 내가 슬픈지도 모르게 되거든. 그렇다고 슬픈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현승 : ................................ 그렇구나. 내가 할아버지 생각 일부러 안 했던 건 더 슬퍼질까봐 그런 거였구나. 맞아. 그런 것 같아.  

 

사실 현승이는 누구보다 할아버지와 깊은 애착관계였는데 할아버지 투병하시던 시간, 임종시에, 장례식에서, 그 이후에도 거의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나가 '넌 왜 울지도 않니?' 이런 식의 얘기를 꺼내거나 그 비슷한 얘기만 나와도 과하게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라서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오늘 생각지 못한 기회에 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현승이 스스로 '내가 슬픔을 보기 싫어서 회피했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자신의 정직한 감정을 인정하기 싫어서 끝까지 방어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완고한 나 자신이 이를 악물고 방어할 때 누군가를 참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렇구나. 맞아. 내가 그런 것 같아.'라며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이 말랑한 영혼이 라니... 참 사랑스럽군요. 훨씬 더 길고 깨알같았던 대화를 대화를 다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현승이에게는 물론이고 엄마에게도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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