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 먹으면서 현승이가 그랬습니다. 어제 5월4일 있을 소체육대 연습을 하고나서 계주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들었던 며칠 전 반에서 계주선수 뽑는 달리기 얘기가 생각납니다.
조별로 1,2등을 뽑아서 그 아이들끼리 달리기를 했는데 하다보니 자신이 1등으로 달리더랍니다. '어, 이러다 내가 계주에 뽑히면 어떡하지? 한 번도 안 해봤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속도를 줄여서 3등을 했고, 1,2등 두 친구가 계주 대표로 뽑혔답니다.
아이구야, 그 때 속도를 줄였다는 얘기가 그 얘기였구나. 대표로 뽑힐까봐! ㅠㅠ


2.
그 얘기를 들으면서 채윤이가 그랬습니다. "맞다. 김현승 일곱 살 때 운동회 때도 그랬잖아. 1등으로 달려가서 결승점 앞에서 그냥 서버렸잖아. 그래서 따른 애가 1등했어" 그런 일도 있었네요. 달리기를 처음 해봐서 규칙을 모르나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그 때도 현승이가 눈 앞에 있는 1등을 피해버렸군요.


3.
토요일 수영교실에 겨우 적응을 했는데 5일제 수업이 되면서 그 반이 없어지고 새로운 반이 만들어졌어요. 갑자기 아이들이 엄청 많아지고, 처음 두어 주는 테스트해서 레인배정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더군요. 학부모 대기실에서 현승일 지켜보면... 그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을까? 이게 관건인 아이 같아요. 숨고, 또 숨고.
현승이가 일곱 살 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온데다 진짜 좋은 선생님 만난 덕에 평영과 배영은 자세며 모든 게 선수 수준이예요. 저학년 그룹이니까 3학년인 현승이가 거의 제일 잘한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매 번 맨 꼴지에 가서 서는 거예요. 아이구, 속 터져. 앞에 친구들이 자유형 팔꺾기도 안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가고 있으면 그저 거기 맞춰서 쉬었다 가고 쉬었다 가고...
그러기를 5주 정도 하고나서 수영선생님이 '어, 현승이 너 수영 잘하네' 하면서 맨 앞으로 보내주신거죠. 그래. 숨고 숨어도 결국에는 자기 자리 찾게 되기도 하지만.


4.
수영 5주를 지켜보는 동안 나대기 본능 충만한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했지만 그저 지켜보았어요. 엄마한테 나대지 말라고 하는 것 만큼이나 현승이에게 나서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 1등을 해서 주목을 받느니 그 1등을 포기하겠다는데요.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의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자신으로서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에 대해서 반추해보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현승이는 현승이고, 현승이는 채윤이가 아니니까요. 그저 그렇게 생긴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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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엔 꽃이 하나 있었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 왕자 살았다네.


현승이가 요즘 꽂혀서 부르고 또 부르고 듣고 또 듣는 노래.
담임선생님께서 한 번 들려주셨다는데,
뭣 때문인지 심금 울리는 감동을 받았나보다.


파마 한 번 시키고 싶어서 꼬시고 또 꼬셔서 결국 어제 말고야 말았다.
저렇게 해놓으니 영락없는 어린 왕자! 으흐흐...


"엄마, 난 이 부분이 젤 좋아. 꽃이여 내 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또 좋은 부분이 멜로디가 똑같애.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좋지? 이 부분.."


좀 커서 <어린 왕자> 읽으면 엄청 빠져들 스타일이긔.
우리 집 어린 왕자 늦잠 자고 일어나신 알흠다운 모습인데... 알흠답고 귀엽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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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봐도 돼? 지금 예배 드려? 아빠 언제 와?' 이랬싸코.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엄마, 아빠 얼굴을 5일쯤 못 본 것 같애'
하면서 아빠를 그리워하기도, 기다리기도, 좋아하기도 하면서......


낮에 놀다가 뜬금없이 이렇게 꺾어주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가 싫지?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아? 막 간식 달라고 하고..... 또 커피 달라고 하고... 자꾸 엄마한테 하녀처럼 뭐 시키고 힘들게 하잖아. 밥 먹을 때 막 신문보고~오. 트위터만 보고~오... 아빠가 싫지?"


라는 말에 뜨거운 반응이 없자.


"아니~이, 손님 오면 엄마가 음식 다 한 건데 막 자기가 한 것처럼 잘난 척 하고 (풉, 여기서 부터 자체 흥분) 음식이 쫌 이상하다 어쩌다 그러며~언, 에이그 정신실~ 이러면서 뭐라고 구박하는 것처럼 하고 꼭 잘난 척 하는 거 같애. 에이, 커피 맛이 아니다... 이렇게 하고.... 아빠가 싫지?"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별 호응이 없는 걸 알아차리고 조용히 다시 <CSI>로 빠져듭니다.


아빠, 이 사람.
좋긴한데.... 엄마를 사이에 두고 보면 그냥 가만히 두기에는 참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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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가멜이 학교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어?
출석번호가 1번이야.
'가'에 또 '가'니까 무조건 1번일껄.


누나는 봉사활동이라 일찍 가고,
혼자 거실에 엎드려 레고 들고 중얼거리다가, 엄마 옆에 와서 쫑알거리다 학교 가는 길.


(팔불출 드립 발사!)
우찌 이렇게 귀여운 애가 내 아들이 됐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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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블로그(처음엔 싸이 미니홈피와 클럽에서 시작) 글쓰기를 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두 아이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온 것. 이건 두고두고 자화자찬 할 일이다.
호모 로쿠엔스, 즉 언어의 인간인 나는 두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주로 말의 발달에서 발견했다. 그걸 건져올리는 것이 양육의 최대 기쁨 중 하나였다. 왜? 나는 언어의 인간이니까.


# 현승 버스

네 식구가 마주앉아 식사하는 자리는 이야기 정거장이다.
며칠 전 현승이의 '말 버스'가 정차하여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겨놓았다.
아빠가 목사고시의 관문을 통과하고 둘러앉은 기분좋은 저녁식탁이었다.
"아빠, 아빠 이제 목사님 되는거야? 헐~ 옛날에 아빠 신대원 다닐 때애~ 아빠 언제 목사님 되냐고 하니까 누나 6학년 따라고 해서 진짜 오래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 말을 한 게 엊그제 같애"
이야기 정거장에 남겨진 현승이가 남긴 무수한 언어의 기록은 들춰봐도 들춰봐도 새롭고 말랑하고 폭신하다.


# 채윤 버스

어제 밤 엄마와의 말싸움 내지는 논쟁 내지는 공격적 대화 중에.
"나는 엄마가 사람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알고 다른 사람 마음도 잘 알아주고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 아는 줄 알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이니까. 그렇게 기대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난 너무 실망스러운거지"(매우 격앙된 말투임)
채윤이의 말은 늘 속시원하고, 힘이 있고, 분명하다. 채윤이 버스가 이야기 정거장에 멈춰서면 긴장할 필요가 있다. 질풍노도의 아우토반으로 들어섰으니 더욱 정신차리고 말씀을 들어드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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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는 자랑이지만 유아교육 전공에 음악치료 전공,
10년이 훨씬 넘게 장애 비장애 아이들을 두루 교육하고 치료했으며,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건 또 몇 년?
사람의 성격과 마음에 관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이 시대 최고의 엄마님.
이 될 소양이란 소양은 다 갖추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면 최악의 엄마이신 나는 오늘도 운다.


사소한 문제, 즉 채윤이의 피아노 연습과 현승이의 일기쓰기로 저녁마다 감정이 상해가고 있었다.
늘 그렇듯 괜히 다른 데서 뒤틀린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서 터져 선언했다.


'이제부터 채윤이 너 피아노 연습시간, 현승이 너 일기쓰는 것에 대해서 엄마는 일체 말하지 않을거야. 알아서 하는거야. 엄마가 계속 그거 잔소리 하다가는 진짜 화만 내는 엄마가 되겠고 우리 모두 너무 불행해지니까.... 엄마가 그렇게 결심했어'


그리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뒤끝 작렬에 소인배에 쪼잔한 엄마는 여전히 마음이 안 풀려서 땡땡 얼어붙어 있었다. 교회 가려고 화장하는 엄마에게 채윤이가 다가와 턱을 들고 말했다.

"엄마, 어제 엄마가 얘기한 거 다 좋아. 우리가 잘못했지. 그래서 나는 이제 피아노 알아서 연습할거고, 현승이는 알아서 일기 쓰면 돼. 다 되는데.... 그렇게 했으면 엄마가 마음을 풀어야 할 거 아냐. 엄마가 원하는대로 했잖아. 그러면 기분을 풀고 그래야지. 아직까지도 이게 뭐야? 엉!"

"엄마 마음이잖아. 니가 그렇게 화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아니지. 엄마가 밥줬잖아. 밥주고 빨래해주고 이런 건 다 해줄거야. 필요한 건 해줄거라고"(아, 이렇게 쪼짠한 게 어른이고 엄마인가?ㅠㅠㅠㅠ)

"우리가 엄마한테 하녀 되라고 했어? 밥하고 지금 엄마가 우리한테 하녀 하겠다는 뜻이야? 우리는 싫다고. 마음 풀고 예전 엄마로 돌아오라고!"

(현승이 이미 눈물 그렁그렁) "엄마, 어떻게 해야 엄마가 마음을 풀고 예전 엄마로 돌아올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우리 용서해줄거야?"(울음 꿀꺽)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정직하게 말하기로) "실은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거야. 엄마가 좋은 엄마 되고 싶은데 자꾸 화내고 무섭고 너희 힘들게 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애서 속상하고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거야. 그러니까 너희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이렇게 마음이 딱딱한거야"

(현승이 울음이 빵 터지면서) "엉엉엉엉..... 엄마, 그러지 말고.... 엉엉... 엄마 자신을 용서해. 엄마, 엄마 자신을 용서해....응?"



꾸짖어주시는 딸,
자신을 용서하라고 눈물로 호소하시는 아들아!

날이 갈수록 작아질 뿐인 엄마는 날이 갈수록 어려운 양육의 산맥을 좌충우돌 벌벌거리며 기어오른다. 부끄럽구나. 막막하구나.



* 사진은 이런 일로 계속 우울모드인 엄마 마음 풀고자 현승이가 차린 식탁.

설거지가 밀려 있어서 밥그릇이 눈에 띄지 않자 컵과 머그를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사용하여 마치 미적인 식탁을 추구한 듯 보인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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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현승 : 엄마, 아들 둘 키우는 게 힘들어, 딸 둘 키우는 게 힘들어?

외향엄마 : 보통 아들 둘이 더 힘들다고 하지.


내향현승 : 내 생각엔 딸 둘 키우는 게 더 힘들거 같은데.


외향엄마 : 왜애?


내향현승 : 누나가 엄마를 더 힘들게 하잖아. 누나가 말을 너무 안듣잖아.


외향엄마
: 아냐, 누나가 말을 그렇게 많이 안듣는 거 아냐. 누나는 사춘기가 오고 있잖아.


내향현승 : 그래?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누나하고 나는 쫌 뭐가 많이 다른 거 같애.
              뭔지는 몰라도 좀 달라.


외향엄마 : 그런 거 같애?


내향현승 : 엄마, 나는 얌전한 편이야?


외향엄마 : 글쎄.... 그런가?


내향현승 : 나는 MBTI로 뭐라고 하더라? 나는 뭐라고 하고 또  누나는 밖으로 그런 거 있잖아.


외향엄마 : 내향형과 외향형?


내향현승 : 아, 맞다! 나는 내향형이지? 누나는 외향형이지? 그리고 서훈이도 외향형이지?

              엄마 그런데 나는 외향형들이 너무 이상해 보여.

외향엄마 : 왜애? 미친거 같애?ㅋㅋㅋ


내향현승 : 그냥 누가 말을 하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마~~악, 하고... 그냥 좀 이상해. 
               다 알면서 사람들 말을 잘 안 들어주고 그러는 거 같애. 외향형은 나쁜거야?


외향엄마 : (발끈) 아니지. 외향형들이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외향형은
              말하고 행동하고 떠들고 그러면서 에너지를 얻는거야. 내향형은 혼자 가만히 있어야
              힘이 나온대.


내향현승 : 맞어. 외향형들은 막 말하지. 계속 말해. 우하하하하... 말이 많어. 


외향엄마 : 그래. 외향형들은 그렇게 얘기하고 떠들면서 주목받는 걸 좋아해.  


내향현승 : 악! 나는 주목받는 게 제일 싫어.


외향엄마 : 그래도 너가 뭘 잘했다고 칭찬받는 건 좋잖아.


내향현승 : 아니 아니, 나는 칭찬도 해주지말고 혼내지도 않으면 좋아.


외향엄마 : 사람들이 주목할까봐?


내향현승 : 어! 칭찬도 안 받고 혼내지도 않고 그냥 나를 안 쳐다보면 좋겠어.

외향엄마 : 그렇구나. 우리 현승이는 그게 많이 부담되는거지?ㅠㅠ



달리는 차 안에서 내향과 외향 터놓고 얘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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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일이 들어있는 2월이 되자마자 미리서 선물을 준비해놓은 채윤이와 현승이.


엄마 피라 속에 뭘 다아두질 못하는 채윤이는
그 날로 엄마 휴대폰 껍데기 벗겨내고 주황색 땡땡이로 갈아입혀주고요.

아빠피라 진득하니 디데이까지 참을 줄 아는 현승이는
네 가지 선물 준비해놓고 혼자 설레서 매일 둑은둑은.



엄마, 힌트 하나만 줄께.
선물은 한 가지가 아니고 네 가지야. 그리고 또 하나 힌트는 색깔이야.


엄마, 그런데 엄마는 하늘색이 좋아? 주황색이 좋아? 하... 하늘색? 하면서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주황색 암호 풀었고요.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그 펜 그거 이름이 하이디스크펜인가? 그거 있잖아. 주황색 다 썼지? 이래서 하이테크펜 주황색 암호 또 풀었고요.

어느 날 엄마 필통에서 화이트를 꺼내들고 '엄마 이거 거의 다 썼지? 헐, 그래? 그래도 얼마 안 쓰면 다 없어지지?' 하는 말에 화아트 암호 풀었고요.

생일 당일까지 몰랐던 건 유일하게 주황 형광의 포스트잇! 아이구 깜짝이야!!!! 포스트잇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의 지도편달이었겠지만 이번 생일은 엄마를 주황색으로 도배를 해줬습니다.
.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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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밑바닥의 끝 모를 그리움과 공허감은 어린시절 엄마의 부재에 대한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그런 얘길 강의랍시고 하러 다니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 속에 있다.

해질녘은 엄마가 곁에 있어도 조금 쓸쓸한 시간인데 이 시간에 집을 나서려니 마음이 그렇다.

가지마! 지금 취소해! 전화해! 먹히지도 않는 떼를 부리다 집 앞 골목까지 배웅 나왔다.
조심히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가, 냅다 다시 뛰어왔다가....

요, 망아지 녀석들.


2012/02/15




오전 내내 화분 분갈이 하고, 재배치하고 잎을 닦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옆에서 도와주던 현승이가 시간이 길어지자 옆에서 책 좀 보다, 레고놀이 좀 하다 간간이 옆에 와 치댄다. 귀찮아서 몇 번 구박했더니 저 쪽 가서 놀다가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워'란다.

이게 바로 엄마가 곁에 있어도 없는 '엄마의 부재' ㅋㅋ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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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네 식구가 눈 감고 누우면 새가 날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니...
스마트폰 득템이후에 빠져든 앵드리버드 홀릭 때문이었다.






그 열기는 오래 가지 않고 토푸나 과일자르기 스머프 키우기
등으로 애정이 옮겨가긴 했지만 그 여운이 길었고 급기야 어떤 예술작품이 탄생했다는 말씀인 것이다.







학교 앞에서 한 개 백원 하는 앵그리버드 지우개가 한 때 거실을 막 굴러다녔으며,
엄마는 굴러다니던 지우개를 모아 음악치료 하러 가서 아이들에게 당근으로 쓰기도 하였다.






현승이는 신년 첫날 홍대 나들이 가서는 폭탄새로 귀를 틀어막기도 하였고,







어쩌다 득템한  인형과 돼지 저금통을 이용 앵그리버드를 몸으로 체험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앵그리버드에 물든 부족한 아들 현승이는 앵그리버드 게임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하였으니!
뱀주사위 놀이와 블루마블이 교묘하게 결합된 앵그리버드 보드게임 A4판!





보기엔 상당히 지저분하여 뭐 선한 것이 나오려나 싶지만,
막상 해보면 매우 디테일하게 점수관리가 될 뿐 아니라 점수를 이용해 샵에서 새로운 말을 살 수도 있고, 보너스 카드를 살 수도 있는 꽤 흥미진진한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입안에 흥건한 침을 수습할 여유도 없이 게임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는 제작자 김현승님이시다.

 





한 판 게임을 붙어볼라 치면 점수를 적어 넣는 것 조차도 지극히 경건하여서 감히 범접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한편,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느라 놀이의 신께 상당히 소홀하고 있는 '호모 놀이쿠스'의 원조 김채윤 누나는....
그간 참으로 삶으로 모범을 보이며 놀이를 가르쳤던 동생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감동하고 어여삐 여기시었다. 그리하여 없는 시간을 쪼개어 그 지져분한 게임판을 컴퓨터 작업을 통해서 깔끔한 놀이판으로  일구어 내신 것이었다.



 




간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는 '이게 진정 내 아들 현승이가 만든 보드게임이 맞냐'며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지는 않았고, '이 자식 뭐 이딴 걸 만들어서 이렇게 귀찮게 하냐'는 식으로 마주 앉아 앵그리버드 대작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엄마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20여 년 전 유치원 교사로 재직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통해서 학습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과연 이것과 다르지 않음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아들이로다' 를 외치며 기뻐하고, 만방에 자랑하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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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아이들의 행동에 놀라고 감동하는 일이 많습니다.
따로 가르치치 않았는데 아이들 속에서 생각지 못한 배려나 착한행실이 나올 때,
일종의 경이감 까지 느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인간의 본성일까? 하면서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를 더 더 많이 경험하지만요.
이번 명절 전후에 아이들이 보여준 예쁜 마음에 위로도 격려도 받았지요.




 

 

 

명절 증후군 극뽀옥!

하는 조금 귀여운 처방전 발견.

엄마, 힘들지?
오늘따라 엄마가 힘들어 보여.
내가 도와줄 거 없어?
내가 꼭 도와주고 싶어.
그래도 도와줄께. 아무거나 도와줄께.


라면서 두 아이가 번갈아 야채도 씻어주고, 그릇에 담아주고, 양념도 꺼내주고 하는 통에 일도 마음도 한결 쉬워졌다.

                                                                          
2012/01/22 정신실의 facebook에서






몸도 마음도 분주하게 보낸 후라 따로 한적한 곳으로의 시간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한 시간만 현승이 책상에서 성경볼께'
하고 들어와서 고요한 시간을 갖고 있었지요.

아주 천천히 방 문고리가 돌아가는가 싶더니....
발소리도 안 나게 들어온 채윤이가 쪽지 하나 스윽 올려놓고 나갑니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엄마의 고요한 시간을 지켜주는 센스! 


2012/01/25 정신실의 faceboo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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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들어온 아빠 보고 반색.

좋아서

 

셋이 마루바닥에 뒹굴다 화기애애한 틈을 노린 외디피스 콤플렉스에 물든 부족한 아들 현승이 땡깡 시작.


"나 오늘 엄마랑 잘거야. 아빠 내 침대에서 자. 싫어. 그래도 오늘은 내가 엄마 침대에서 잘거니까.... 왜애! 아빠는 40년 동안 엄마랑 자는데 나는 하루도 못 자냐고~오!"

불쑥 누나의 훈수
"야, 쫌 설득력 있게 말 쫌 해 봐. 쫌! 그게 모야?"

심기일전 현승
(설득력 있게)
"아빠는 백 년 동안 엄마랑 자는데 나는 왜 오늘 하루만 자면 안되냐고~오!"

거참,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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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다 날씨 춥고, 동네 친구도 아직 없는 아이들이 하루 종이 미치도록 뒹굴기만 합니다.

둘이 싸우다 챈이가 "김현승 너는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맨날 레고나 하다 책이나 읽고,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방학이라고 게으름뱅이 같이..."
라고 퍼붓습니다.(챈이는 나름 하루 여섯 시간 피아노 연습하는 여자라 떳떳...)

저러다 애들 얼굴에 곰팡이 필 것 같아서 동네탐험 하고 오라고 내보냈더니 안방 창문 밑에 와서 "저기야, 우리 집 창문이 저기야. 엄마 안방에 있다. 엄마~아! 엄마~아" 부릅니다.
위에서 천 원 짜리 두 장 날려주니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하며 한 장 씩 주워들고 헬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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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기 전 물을 끓이고 드립도구들 세팅하는 일을 해주면서..... 재잘재잘)

엄마, 엄마는 언제 죽을거야?
그러면 빨리 죽고 싶어 늦게 죽고 싶어?
아, 그렇지! 그러면 만약에 엄마가 마음대로 죽을 수 있다면?
그래. 그러면 이렇게는 꼭 됐으면 좋겠어.
내가 커서 결혼을 하기 전에는 죽지마.
왜냐면 그 전에 엄마가 죽으면 내가 좋아할 사람이 없어.
그러면 너무 외롭고 슬플 것 같애.
꼭이야. 알았지?






음식 쓰레기 버리러 나가주는 폼이 어찌나 아저씨 같고,

어찌나 김종필씨를 닮았는지.....






(12월 어느 눈내리던 성탄절 전에 있었던 일 : 페북에서 옮겨옴)


어제 할머니 댁에서 1박을 하고 그 머나먼 남양주 덕소에서 합정까지 둘이서 지하철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녹지 않은 눈을 찾아 옥상에 올라 간 남매. 들락날락 하며 모종삽, 그릇 가지고 나가고 했쌌터니...

방금 현승이 녀석 쿠당탕탕 내려왔습니다
"엄마, 내 유켄도 장갑 찾아줘. 누나가 장갑이 광수(방수)장갑이 아니어서 손시리대. 나는 두 개니까 누나 빌려줘야겠어. 빨리 찾아줘. 누나 손 시려"
하며 살뜰하게 누나를 챙기는 동생이라니..

진실로 성탄절입니다. 늘 으르렁거리던 저 둘 사이에 평화가 임하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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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떨리면 원래 배가 아파? 나 너무 떨려. 그리고 배도 아파. 나 사실은 아까 아까부터 떨렸어.


새로운 수영장에 가는 첫 날, 현승인 긴장을 감추지 못합니다. 선생님께 처음 왔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두렵고,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걱정되고, 샤워하고 들어가는 곳을 모를까봐 걱정이고... 모든 낯선 것이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일이라면 현승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더 많이 기우는 것 같습니다.


- 화요일 목요일 가서 이제 다 알았잖아. 첫날 갔지만 아무런 걱정되는 일이 없었잖아.
- 그 날은 누나랑 함께 하는 날이고 오늘은 나 혼자잖아. 너무 떨려.
- 하긴.... 처음은 누구나 떨려. 엄마도 그래.
- 엄마는 그러면 처음에 떨리는 걸 어떻게 참아? 진짜로 떨려?
- 그럼, 떨리지. 처음이라는 건 한 번도 안 해 본 모르는 걸 하는 거잖야. 모르는 곳에 가는 거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고.
- 그런데 엄마는 쫌 괜찮아? 나보다?
- 응, 엄마도 처음은 늘 떨려. 그런데 처음인 곳에 자꾸 가보니까, 많이 가보니까 그렇게 두려워 할 게 없구나를 자꾸만 배우게 됐어. 모르면 물어보며 되고, 가만히 지켜보면서 조금씩 알아가면 돼. 그래도 사실 처음 어디 가는 건 늘 쫌 그래.
-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는?
-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 너 누가 처음 왔다고 그 사람만 쳐다고보 신경쓰고 그래?
-  그렇진 않지. 그냥 쳐다보기는 하지만 신경을 안써.
- 그니까 말야. 게다가 현승이는 귀엽고 인상이 좋아서 조금만 지나면 친구들도 사귀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거야.
- 인상이 좋다는 게 뭐야?
- 현승이 처럼 착하게 생겨서 자꾸 가까이 하고 싶다는 거...






가는 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하지만 감정이입이 잘 되는 엄마는 괜히 심장이 더 뛰고 그렇습니다. 깡마른 몸에 달라붙는 수영복 입고 쭈볏거리고 들어갈 때 현승이 심장에서 얼마나 쿵쿵 소리가 크게 들릴 지가 벌써 느껴지는거죠.
탈의실 앞에서 손을 놓고 들여보내면서 엄마는 압니다. 물론 현승이가 아무렇지 않게 잘 하고 나올 것이라는 것을요.
다만, '여기 까지야. 현승아. 엄마는 수영장은 물론 니 인생에서 아주 짧은 순간만 손 잡아 줄 수 있고 함께해 줄 수 있어. 아무리 네 마음에 공감이 돼도 혼자 가는 걸 지켜볼 뿐일거야' 라고 마음 속으로 말해봅니다. 현승이가 아니라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일 겁니다.

물론 들어가서 레인을 배정받고 가끔 긴장해서 손톱을 물어 뜯긴 하지만 잘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면 엄마가 앉은 참관실이 보이는데 결코 이 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엄마는 그런 현승이 마음조차 알겠습니다. 그리고 20여 분이 지났을까? 긴장된 어깨에서 힘이 빠진 듯 보이는 바로 그 때. 고개를 들어 엄마를 한 번 쳐다보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 뜻 역시 엄마는 압니다. '엄마, 할 만 해. 걱정 많이 했지? 이제 안심해'







중반을 넘어서자 앞 뒤 형들이 말을 걸어오고 수줍게 대답도 합니다. 물장난 치는 형들 사이에서 조용히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이 한결 편안합니다. '처음'이라는 것이 왜 그리 두려울까요? 우리 모두에게, 특히 현승이에게. 처음이라는 건 그걸 부딪히기만 하면 바로 '한 번 가봤던 곳, 가봤던 길이 되는데요...'


 

 




끝날 즈음이 되자 아까보다 훨씬 당당해진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바라봐 줍니다. 처음 수영을 배우러 갔던 날 애를 번쩍 들어서 물에 던져버린 터프한 선생님으로 인해서 생긴 두려움일 수도 있고, 온갖 낯선 것 앞에서는 일단 움츠리고 보는 성향 탓이기도 할 겁니다.
새 학교, 새 교회, 새 수영장. 그렇게도 어려운 '처음'이 다 끝났네요. 이렇게 한 번 씩 처음을 넘어서면서 다음 처음은 더 수월해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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