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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추위 덕에 방학이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게 가버렸다.
어쩌다보니 방학의 끝.
방학의 끝에 갑자기 아홉 살 현승이 차이코프스키와 삼국지에 빠져들다.
(차이코프스키는 사실 털보아저씨와의 첫만남에서 수수께끼 놀이한 이후
'차에서 코푼 시키'로 더 많이 불리고 있음)
언제부터 '엄마, 딴따라라 따라리라리라라라라라라라 딴따라라.....딴딴 딴 따다 딴딴 딴 따다... 이 음악 뭐야?'
제목을 찾아내라고 졸라대는데 이게 입에서만 맴돌고 뭔지를 모르겠는거.
차이코프스키 같은데.....
결국 방학의 끝에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걸 알아내고 급 CD를 사서 빠져든 현승이.
'엄마, 나 이 음악이 너무 좋아'하면서 듣고 또 듣다 급기야 지휘자로 나서다.
객석엔 관객들도 앉아계심. 미키님, 미니님..... 기타 VIP들.
그리고 어젯밤 자기 전엔 방에 이거 틀어놓고 황석영/이충호의 만화 삼국지 삼매경.
방학의 끝을 잡고 차~암 고상하게 놀고 있는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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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아, 지금도 어리지) 어눌한 말투로 느릿느릿 사람 넉다운 시키는데 재능을 발휘했던 아이.
아빠의 피를 받아 word play계의 다크호스로 부상(치료가 필요함) 중.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이 요즘 우리집 트렌드이고 그래서 애플사의 애플이 눈에(넣어도 아프지가
않다가 아니고) 많이 걸리적거림.
저녁 식사 중에 스티브 잡스(님도 저녁 같이 잡스세요), 애플사 이런 얘기를 하다가...
'아빠, 그런데 아빠 아이패드 뒤에 있는 거 사과 말고 파인애플이다. 봐바...한 쪽이 파인 애플이잖아'
라고 웃지도 않고 시크하게 던졌다.
분위기가 그리 드라마틱하질 않아서 같이 빵터지지도 그렇다고 별달리(별달해?) 반응하지도 못했지만
엄마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 내가 신동을 낳았구나.....
(원고 진도도 안나가고, 초기화면에서 껌뻑거리던 플래시가 부담도 되고해서 트윗에서 날렸던 거 재탕으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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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의 과감한 엄마 재혼 발언에 관한 현승이의 입장.
실은 현승이로서는 누나의 그 과감한 발언이 '개념 상실'로 보이는 듯.
모르긴 해도 현승이는 감히 아빠가 죽는 상상을 했다는 것과,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누나가 이해가 되지 않을 터. 식탁에서 이 얘기를 하는 동안 현승이는 조용히 자기 침대로 가 누워버렸다.
나중에 가서 현승이한테 '현승아, 너도 누나처럼 생각해?' 했더니, '안 돼. (재혼)하면 안 돼'
짧게 말하고는 자겠다고 돌아누웠다.
다음 날 흑석동 가는 차 안에서 이 얘기가 다시 나왔는데...
현승이는 만약에 엄마가 다른 아저씨하고 결혼하면 그 사람이랑 말도 안하고, 부르지도 않을거란다.
채윤이는 천진난만하게 '왜애? 나는 아빠라고 할 건데. 지금 아빠랑 비슷한 사람하고 하면 되잖아'
이러시고.
그러다 만약에 엄마가 죽고 아빠가 재혼하면... 으로 사태는 번져갔는데.
그러잖아도 엄마가 죽을까봐 엄마가 아플까봐 늘 걱정이 많은 현승이 진짜 속상해졌다.
'아빠가 다른 아줌마하고 결혼하면 나는.... 나는..... 그 아줌마한테 지지배라고 부를거야'
말하자면 욕을 퍼붓겠다는 얘기.
현승이를 설득해서 허락받기는 어려울 듯.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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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홈플 강동점에서 털보 아저씨가
요즘 밤에 잘 때마다 무섭다고 '무서운 꿈 꾸지 않게' 기도해 달라는 채윤이.
매일 밤 그러는 통에 엄마도 아빠도 조금 질린 상태.
엄마한테 해달라그래. 아빤테 해달라그래. 서로 미루고 있는 사이
'내가 해줄까?' 하고 현승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얼씨구나 좋다하고 그래 니가 해라. 니가 해라. 했더니
짧고, 굵고, 적절한 굿나잇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에 잘 때 누나가 무서운 꿈 꾸지 않게 해주세요.
또...엄마 아빠가 공사 때문에 잠을 못자지 않게 해주세요.
또...외할머니가 밤에 모기 물리지 않고 자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누나에 관한 기도는 이 기도의 명백한 주제이고,
엄마빠와 공사.
으흐흐흐흐.... 아시는 분 다 아시다시피 우리집 앞마당 명성교회 대성전 신축공사.
공사의 시작시간이 새벽기도 갔다와 잠깐 눈을 붙이고자 눕는 오전 7시.
게다가 어제는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데 세상에....오전 7시부터 굉음이 오후 9시를 넘기도록 이어졌다.(사진참조) 진짜 스트레스와 분노가 제대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하루였다.
이른 가엾게 여긴 섬세한 아들의 엄마빠를 위한 기도가 두 번째 문장이었다.
외할머니는 저녁에 잠깐 '야이~(얘야) 방이(에) 모기가 있나비다(있나보다) 엊저녁이(에) 여기 뜯어먹은 거 봐라' 하시며 모기 물린 자국을 공개하셨다.
이 섬세한 외손주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으니 외할머니 모기 안 뜯어 먹히시고 잘 주무셨단 얘기.
하이튼, 적절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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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휴대폰을 바꾸시고 '이거 현승이 갖다줘라. 이 핸드폰 좋아해. 게임하라고 해' 하시며 충전기 까지 챙겨 주셨습니다. 휴대폰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현승이 녀석, 이거 받아들고 좋아라 하면서...
'헐... 엄마! 이 휴대폰 문자 보내는 거 하고 통화 하는 거 빼놓고 다 돼!!!!! 완전 좋아!'
(헐~ 세상에! 문자하고 통화만 딱 안되는 멋진 휴대폰이 있다뉘!)
하고 열광하며 게임에 매진하는 것도 딱 하루. 손바닥 만한 액정 쳐다보면 게임하는 건 별로!
티브이 없이 닌텐도 없이 게다가 애들 인터넷 게임도 안 시키면서 뭘 하고 노냐고 걱정하면 물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것 없이도 시간이 없어서 못 노는 아이 두 마리 있습니다.
이 장면 채윤이 네 살 때부터 우리집에선 너무 일상적이었던 장면.
4학년이 되신 지금도 시험 끝나고 나서 스트레스 푸실 때 여전히 하시는 놀이이고..
엄마가 아무리 시간을 많이 줘도 시간이 모자라는 놀이이고.....
(물론 사춘기에 임박한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면 대외적으로는 이런 놀이 끊은 걸로 표방하고 있다. 매일 아주 잠깐씩 문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조용하다 싶으면 책상 위에 책들을 늘어놓고 대화를 하거나 가르치거나 하시면서 조용히 그 분을 느끼실 때도 있다. 이것도 대외적으로는 알려져서는 안되는 일이긴 하다.ㅋㅋㅋ)
놀토 오전에는 부서지는 해살을 머금은 창가에서 죽치고 만화 읽기.
저 맛이 짱인데.....
어떤 날에는 커피장 앞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엎드려서 한참을 조용하신 후에 이런 작품을 내놓으시기도 한다. 얼핏 채윤이 그림 같지만 이 여성스럽고 디테일한 그림은 한 때 팀버튼 화법으로 날렸던 현승님의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커피장 아래칸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까지 다 써 넣었다.
작은 드립세트를 크게 확대해서 그려놓은 듯한 이 과감한 그림이 오히려 채윤양의 그림.
나름 핸드드립을 표기한 건데 이런 지적인 작업에서는 과감하게 스펠링을 창작해내서 틀려줘 버리는 센스!
이 외에도 시장 놀이터 가서 딱지치기, 주민센터 도서관 가서 또 만화보기, 엄마 화분 키우는 거 거들다가 화분들 질투하기, 퀵보드 타기, 줄넘기 하기, 둘이 나가서 베드민턴 치기, 가끔 <미래소년 코난> 디브이디 보기. 챈이는 피아노로 아무거나 쳐대면서 놀기. 현관에서 거울 보고 춤추기. 재활용 쓰레기 뒤져서 명성교회 공사장 내려다 보면서 크레인 만들기, 자전거 타......
(아! 이 대목에서 갑자기 울컥! 우리 채윤이 지난 주에 자전거 도둑맞았어요.ㅠㅠㅠㅠㅠ)
이거 티브이랑 닌텐도랑 게임기 같은 거 생겨도 시간 없어서 활용을 못하겠는걸요.
티브이, 닌텐도, 게임기 필수품이 아닙니다.
공.익.꽝.고.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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