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채윤이가 스물네 살 청년이라니, 매일 마주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청년의 힘과 성장하는 에너지, 푸르른 생기와 함께 살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채윤이 태명이 "푸름이"였다. 지난 토요일에 함께 영화 <위키드>를 보고 밥을 먹으면서 이 영화와, 전신인 뮤지컬, 또 그 전신인 <오즈의 마법사>까지 세계관과 음악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는 채윤일 보고 내가 탄성을 질렀다. 오늘 아침에는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을 자기 빛깔로 연주하고 녹음해서 바로 들여주었다. "주님, 과연 이 아이를 제가 낳았단 말입니까!" 과장이 아니다. 내가 낳았지만, 이 아이 존재의 크기와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청년이다.
동생 군대 보내고 외동 체험 중인 덕에 한 달을 생일 축하로 지냈다. 유학을 위한 오디션 준비로 갈아 넣었던 시간을 끝내고 엄마 아빠와 제주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했다. (여행으로 생일 선물 퉁치겠다던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11월 초에 셋이 짧은 제주 여행을 했다. "내 생애 처음은 이런 가족이었잖아." 했는데 맞다. 이 아이가 우리에게 와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열어주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 아주 조그만 아이가 아장아장 걸었던 그런 날이 있었다. 둘이 호흡을 맞추고 "우웃~짜" 하고 번쩍 들어 올려주면 깔깔거리던 그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다.
지난주 어느 날, 종일 있던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왔다. 지하철로 마중 나온 남편이 채윤이가 저녁을 안 먹었다고, 호빵을 사다 달라했단다. 편의점 몇 군데 들렀는데 없더라며. 함께 마트에 가서 호빵을 샀다. 영어 시험을 앞두고 긴장했던 채윤이가 호빵을 보고, 아니 엄마를 보고 재잘거리다 얼굴과 마음이 확 풀린 게 느껴졌다. 주문했던 반건조오징어도 도착한 터라 호빵을 데우고, 오징어를 구워주니 애가 살아났다. 생기가 도는 채윤이를 보니 내 마음도 함께 살아나 긴 하루의 피로가 싹 달아났다. 오징어를 굽는데 속에서 노래 한 자락이 스물 거리다 입으로 튀어나왔다.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옆에서 따라 부르면서 채윤이가 그런다. "이거 무슨 노래야? 나 왜 이 노래 알아?" 내가 네게 불러준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니가 모르면서 아는 노래, 알면서 모르는 노래가 어마무시할걸!
맛있는 걸 먹고, 셋이 재미있다가도 현승이 생각이 불쑥불쑥 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채윤이가 먼저 그런다. "아, 김현승 보고 싶다!" 채윤이 생일 축하를 하면서도 현승이 생각이 난다. 군인 월급 받아서 누나 생일 선물 사라고 돈을 보내줬다니... 짜식! 하면서 셋 모두 울컥해졌다. 현승이 없이 보낸 세 식구 3개월. 부재로 그리운 마음이 크면 클수록 오늘 함께 하는 시간에 감사하고 누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채윤이도 어딘가로 떠날 것이고, 그러면 현승이와 셋이 그리움을 섞어 맛있는 걸 먹고 놀고 할 것이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누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노래일 것이다.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제주 여행 중 셋이서 많이 걸었다. 바닷길을 걷고 숲길을 걸었다. 걷다 돌고래를 보기도, 잔뜩 먹고 배 두드리면 밤길을 걷기도 하고, 걷다 비를 쫄딱 맞기도 했다. 20여 년 전과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 우뚝 솟은 두 김씨 사이에 끼어 호빗족 내가 걷는다. 아빠 김씨가 놀린다. ”여보, 우웃~짜 해줄까? 채윤아, 니네 엄마 우웃짜 해주자.” 언제 이렇게 컸나. 아이가 크고 나는 작아진 오늘이 참 좋다. 채윤이 생일 파티를 하면서 어렸을 적 자장가로 틀어주었던 음악을 BGM으로 깔았다. 카세트 테이프로 사서 늘어지도록 틀어주었던 음반인데, 이사 다니면 잃어버렸고. 늘 그리웠는데 어느 날 유투브에서 채윤이가 찾아냈다. <Bless My Little Girl>. 아기 침대에 눕히고 조명을 어둡게 하고 끝없이 음악을 들려줬었다. 요즘은 내가 밤에 글을 쓰면서 틀어 놓게 된다. 어제는 혼자 이걸 들으며 "늙어서 침대에서 누워 지내야 할 시간에 이 음악 틀어 달래까?" 했다. 채윤이와 함께한 어제들이 내겐 선물이었고, 모든 내일들이 선물이겠으나, 가장 큰 선물은 오늘이다.
Presnt is Present!
'푸름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누굴 귀여움, 누가 누굴 걱정 (0) | 2024.04.09 |
---|---|
나마스떼 🙏 (2) | 2024.03.30 |
Sound of Silence (4) | 2024.03.04 |
삼총사 (0) | 2023.03.16 |
칭찬 (0) | 2023.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