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어려서 시골에서 자랄 때 나는 내가 엄청나게 이쁜 줄 알았...ㅋㅋㅋㅋ
아, 진짜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교회 권사님들 모 학교 선생님들 교회 오빠들 '김자옥' 닮았다고..ㅋㅋㅋ
우리 엄마는 이런 얘기를 물어보면,
'이뻐찌이~ 얼라, 얼매나 이뻤으믄 중(스님)이 장(시장)이 가는 길이 목사사택이 들어와서 널 안아보구 갔겄냐'
하신다는...
아니, 한 30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서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일찍 서울로 전학온 편이라 잊은 친구가 대부분.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서 동창회 공고와 졸업앨범, 그리고 연락처가 메일로 온 어제.
주최하는 친구가 '야, 남자 새끼들이 다들 너 나오냐고 묻는다. 너 꼭 나와야한다' 했다. 으쓱으쓱.
친구들 여럿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니가 제일 궁금했다.
너 이뻤잖아. 몸이 약했었지?
이름도 목소리도 가물가물한 친구들이 추억을 더듬어 찾아주니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랬다. 나 동창회 아무래도 못나갈 것 같...
예쁜 초등학교 동창은 그대로 예쁜 추억으로, 로망으로 남겨둬야지 않을까?ㅋㅋㅋㅋ
저 친구들 중에는 대대적으로 나를 왕따시킨 친구도 있었다.
여자애들 중에서 나하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너도 왕따' 이런 식으로였던 것 같다.
그 중 한 친구는 나를 찾아와서 울면서 '나 너랑 이제 못 놀아. 너랑 놀면 OO가 가만히 안 둔대'
실은 그 왕따의 기억이 내게 한 구석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가 위축이나 결핍감을 낳아서 그 이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하나의 걸림돌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앨범을 받아서 보는데 채윤, 현승이가 '엄마, 그 이모 누구야? 엄마 괴롭혔던 그 이모... 내가 정말
만나서 때려주고 싶어' 아...그런데 뭐라고 불러? 그냥 'ㅇㅇㅇ 이모라고 불러? 아니면 ㅇㅇㅇ 라고?
그냥 지지배라고 할까?'했다.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기쁨과 아픔이 함께 교차하면서 조금은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봤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같이 생긴 꽃이여' 하는 싯구가 생각나면서...
아주 조금은 덤덤하게, 또 아주 조금은 여전히 설렘과 두려움으로 흔들리며 중년이 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