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서 밥 먹을까? (싫다는 대답을 할 기력도 없음)
지금은 안 되겠다. 다들 좀 쉬었다가 나가자. 당신은 가서 한잠 자. (가서 잠)
나가자, 뭐 먹을까?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음)
그래, 누룽지백숙 먹자.(잠결에 내가 제안한 것 같기도 하고)
와, 배부르다. 카페 갈까?
아니야, 아빠. 배 불러서 카페 못 가. 드라이브나 하자. (조수석에 실려 가는 드라이브도 할 기력이 없다고 말할 기력도 없어서 드라이브를 당함)

그리고 익숙한 퇴촌, 양평 길을 다니는 중이었다. 어머, 우리 차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야? 차창 밖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들꽃 천지, 개망초가 흐드러진 이런 환상적인 곳이라니! 습도와 온도가 함께 높아 차 밖으로 나가 걸을 날씨가 아니었고, 나는 목발도 챙기지 않아 불안정한 걸음걸이이지만 나갔다. 나가서 걸었다. 와아, 이건 선물이다!

주일 오후, 채윤이는 청년부 바자회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털린 상태였고, 나는 그런 채윤이와 청년들에게 마음이 쓰여 에너지를 막 허비했고, 3주간에 걸친 연애 강의 마지막 시간을 진행하고 난 피로였다. 주일 설교 마친 JP 목사의 피로는 말해 뭐 해?
여기에 더해 채윤이와의 시간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리움과 슬픔을 가불 해서 느끼게 되는 무거움이기도 하다. 함께 있어서 좋은데 슬프고, 먼 이국 땅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엄마로서 도울 수 있는 것이 없고, 막막하기만 한 두려움도 있고.
주일 오후, 아무 힘도 쓰지 않고 내 편에서는 그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고. 기분이 좋아졌고, 가벼워졌고, 행복해졌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인가 싶었는데... 저 멀리 원두막 아래 하모니카 부는 아저씨가 라이브로 BGM을 깔아주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또 하모니를 맞추고, 그러다 노래를 듣고... 채윤이 어릴 적 "달리는 노래방"이었던 카렌스투, 그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피곤하고 무거운 주일 오후에 불쑥 선물을 내밀며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선물이다! 채윤이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야. 뭘 더 바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도록 두어라. 오늘이 선물이야.
달리는 노래방
2004/07/04차 안에서는 늘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선곡은 언제나 채윤이 슨상님. 오늘은 슨상님께서 갑자기 지휘자가 되셨습니다. 지휘자든 슨상님이든... 여하튼 그분이 오셨습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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