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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중심은 '부모을 떠나 한 몸을 이루 부부'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하나여야먄 부모님도 자녀도 행복합니다.
가족의 중심이 자녀, 부모님.... 으로 이동하는 순간 행복의 균열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가족의 중심인 부부에게 잠시 맡겨진 보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가족의 종심인 부모를 끊임없이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배웁니다.
'아, 인생이란 저런 거구나. 사랑이란 저런 것이고, 하나님은 저런 분이구나'
이것은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땅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라는 창조주의 명을 받잡고,
아이들 안에 숨겨진 빛을 가장 찬란하게 비추도록 돕는 것이 부부의 소명임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내 소유가 아니라 잠시 맡겨진 귀한 보석임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도 부모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압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되 부모의 방식만을 강요하지 않으며.
부모인 우리 약점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흠도 많은데다 조금 유별난 부모를 만난 채윤이와 현승이가 고생이 많습니다.
텔레비젼이 없거나, 컴퓨터 게임을 아예 시켜주지 않는 것, 그 이상일 때도 있으니까요.
교회 사임을 결정하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 얘기하는 자체보다 이후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걱정이 많이 됩니다.
휴가가서 좋은 기분에, 광안리의 멋진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채윤이는 채윤이처럼 똑부러지는 논리와 말로 따집니다.
엄마 아빠의 일방적인 결정에 왜 자신이 교회를 떠나고 전학해야 하는가!
를 항변하다 펑펑 울어버립니다.
현승이는 현승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삼키려 여러 번 천장을 올려다 보면서 말합니다.
"나는.... 학교를 전학할 거면 다른 학교로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홈스쿨링 할거야. 그
리고 한영교회를 안다니면 다른 교회도 안가고 그냥 집에서 큐티하고 말씀 보고 그럴거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인지 알기에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함께 울었습니다.
목회자의 타락은 목회자 아내가 하는 '아이들 학원비 걱정'에서 온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목회가 단지 밥 벌어먹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목회가 그저 직업이어서는 안되는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닌데 목회가 그것의 수단이 될 때는 위험한 것임을 압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아이들 키우는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목회를 그만둘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지는 목회자는 진리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과 가난을 감수시키는 것은 또 정당한 일일까요?
목회자 아빠와 엄마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이를 행복하게 자라도록 돕는 부모로의 부르심과
목회자로 부르신 아빠의 소명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건가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원치 않는 이별을 안겨줘야 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무겁지만
그 무게를 지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다 내게로 와서 맡겨라 하신 그 분이 계시니가요.
길지 않은 인생길에 엄마 아빠는 경험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풀릴 것 같지 않은 삶의 실타래가 자연스레 풀리고마는 것을요...
엉킨 실타래 같은 현실 속에서 반드시 풀릴 어느 날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랍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하늘로 한껏 뛰어올라 봅니다.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온유하고, 친절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어떤 낯선 땅을 밟는다해도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가족이 함께 있는 한은
그 낯선 땅이 다시 사랑의 땅이 될 때 까지 메마른 시간을 함께 잘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아빠는 왕따일 수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아빠의 선택을 지지하고, 기쁘게 지지할 수 있도로 기도할 것입니다.
아빠의 선택 속에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의 소명이 끝내 조화로울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 아빠가 먼저 준비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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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일도, 감정도, 앎도....
우리 부부에겐 그 분의 떠남이 미완의 감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감정은 시간과 함께 정리되어 가는데 이 분의 죽음은 여전히 그 5월의 충격 그대로 남아 있나봅니다.
사진을 정리하는데 봉하에서 찍은 사진들이 다 표정이 그저 무겁기만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의 표정이 저러한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이 싯구가 마음 속에 올라오는 여러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욕되게는 살 수 없어서 벼랑 끝에 생애를 던지 한 영혼.
그의 삶과 죽음을 다시 맞닥뜨리며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안일함을 위해 자기기만의 삶을 살지는 말아야지.
많은 경우 인생의 선택에서 앞문을 연 후에 뒷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아직 앞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용기있게 뒷문을 닫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벼랑 끝에 선 느낌이지만,
믿음이 그걸 이끌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요. 늘 그랬듯 믿음의 사람인 김종필 아빠는 그의 믿음대로 앞문을 열게 될 거예요.
앞문과 뒷문 사이에 끼어있어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떠난 휴가지만 이 또한 좋은 시간이 될거예요.
이렇게....
휴가 첫 날, 우리 마음 속 대통령을 만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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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망아지가 각각 음악캠프로, 또 한 놈은... 어, 이 녀석도 결국 음악캠프를 갔네요.
챈이는 지 음악캠프, 현승이는 사촌형이 음악캠프 가서 하는 향상음악회를 보러 멀리 온양까지
고모를 따라 가고 없습니다.
아우, 이게 왠 횡재냐?
원고 마무리해서 보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뒤로 하고 데이트 나갔다구요.
둘이 오붓하게 밥 먹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냥 이대로 애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했더니...
"여태 밥 먹으면서 애들 얘기 했잖아!" 하시네요.
그러고보니, 밥 먹으며 내내 아이폰에 현승이 동영상 보고, 애들 얘기했네요 그려.
간만에 엽기사진 찍었고요.
우리 종필님 안할 것처럼 빼다가 결국 시키는 거 다 하구요.
이렇게 재밌게 놀았구요.
집안이 조용하고 참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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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전 진단을 받으신 이후 병원과 집안에만 계시던 아버님이 드디어 바람을 쐬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약속은 돼있었지만 주일날 교회 가시려 나서셨다가 기운이 없으셔서 다시 들어가셨다는
말씀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기운을 내서 나가시겠다고 하시고,
양평 쪽으로 가자고 하시고,
처음으로 고기를 드시겠다고 하셔서 반갑고도 기뻤습니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아버님의 힘겨운 발걸음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하늘이 저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아버님과 함께 있음을 즐기라'고요.
한 때는 아버지의 무등을 타기도 했을 막내아들 입니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약해지신 아버님을 마음의 무등, 영혼의 무등을 태워드릴
차례입니다. 막내아들이 사랑의 사람으로 잘 준비되었기에 아주 조금 아버님의 손을 잡아드리며
힘이 되어드릴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은 단단해졌고, 더 큰 사랑에 눈을 떠가고 있으니까요.
아버님 진단을 받으셨을 때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아득하여 깜깜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저는 이제 아버님 앞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울며 외면하지만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먼저 죽음을 손님처럼 받아들인 후에,
지금 아버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오늘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우리 넷이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푸르름 속에서 대추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는 이 좋은 시간들을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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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23) | 2011.01.24 |
어버이 날을 맞이해서 우리집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채윤이 고모가 제안을 했고, 만장일치로 손주들로 구성된 공연단이 나름대로 각자 연습,
당일 만나서 대충 맞췄지만 구색이 잘 맞은 공연입니다.
공연에 앞서 우리를 찡하게 만든 자막입니다.
어머님 표현에 의하면 몸이 힘들셔서 '진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달력을 붙여 만드신 우리 아버님표 자막.
당일 결혼식이 있어서 늦게 도착해보니 손주녀석들이 순서지도 만들어 놓고 연주회 분위기 굿입니다.
이 날의 코드는 '부끄러움'이었는데 식구들이 죄다 부끄러운 분들이라.....
어찌어찌 막내 아들인 채윤이 아빠가 사회를 보게 되어 어색한 오프닝을 합니다.
현승이가 연주하는 <미뉴엣> 반주는 김채윤이 '왜 내가 반주를 다 해야 하냐!'며 나가 떨어지셔서
부득불 엄마의 어설픈 반주 찬조가 되었습니다.
김현승이 중간에 틀린 이유는 보면대의 고정핀이 악보를 가려서 입니다.
연주를 마치고 김현승이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믿어주십쇼.
부끄러움 종결자 혜인언니의 <사계> 연주입니다.
연주회 내내 식탁 의자에 앉아서 야윈 등만 보여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슴이 뭉클하고 한 구석이 그저 묵직하고 아플 뿐입니다.
연주회가 끝나자 아버님께서 종이 한 장을 또 꺼내시더니 세로로 붙이십니다.
이 날은 김종필 아빠의 생일이기도 하였던 터.
우리 아버님 이런 분 이시죠. 손으로 뭘 만드시길 좋아하시고, 만드시되 꼭 집에 있는 걸 활용하시지요.
그리고 말 없이 세심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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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이 좋은 이유는 잊을만 하면 기념하게 만든다는데 있는 것 같다.
결혼과 사랑, 둘이 하나되는 것의 의미를 한 번 되새길 즈음이 되면 5월1일이 슬며시 다가온다.
신혼 초에는 이벤트와 선물과 어디 가서 식사를 하느냐에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하곤 했었는데,
어느 새 우리가(아니 내가) 많이 자라서 이젠 정말 되새기고 감사해야 할 것들에 마음을 쓸 줄 알게 된 것 같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날이 갈수록 '사랑의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를 마음으로 몸으로 더 배워가고 있는데...
그렇게 내가 사랑의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라는 것이 믿어질수록 내게 자유와
참된 소망의 빛이 함께 자라감을 느낀다.
이 귀한 남편이 준 사랑이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해준 남편 덕에 결혼
12년 동안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자랐고, 내 마음의 키도 자랐고, 더 자유로와지고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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