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03.23 (2)

 

 

 

 

 

엄마 잃은 지 12일이다.

 

치유 글쓰기와 여러 집단여정, 상담으로 배운 바가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라,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말의 폭력성.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에 온 사람이 그랬다. 생존자 글쓰기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고 하니,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자꾸 들춰내면 더 힘들어진다고 친구가 말렸다고. 심지어 그 자리에 온 생존자도 "몇십 년 전 일인데 뭐하러 다시 떠올려서 스스로 힘들게 하려는지 모르겠다"라고. 물론 모임이 진행될수록 그 모든 말의 폭력성을 확인하며 들춰내고 발설하는 것의 치유력을 몸으로 경험한다.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건이 남긴 정신적 외상은 '나 여기 있소'를 끝없이 외친다. 그 외침에 반응해야 한다. 애도가 필요하다. 모든 상실은 애도해야 떠나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잊어라" 해서 잊었다면 그것은 잊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나 여기 있소!'하고 돌아온다. 다양한 고통의 방식으로 돌아온다. 그때, 뒤늦게 정신과를 찾고 상담소를 찾는다. 게이버 메이트의 책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을 읽다보면 '몸'까지 나서서 아니라고 말할 때는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애도하지 못한 과거는 반드시 오늘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상실, 애도, 치유에 관해서는 글이 아니라 만남으로 배웠다. 더듬더듬 그 길을 안내도 하고 있다. 충분히 슬퍼하라고 격려한다. 되돌릴 수 없는 사건, 이미 벌어진 일이 주는 상실과 아픔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슬퍼하는 일 뿐이니 언제까지 슬퍼해도 된다고. 내게도 그렇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벌써 내가 나를 질책한다. 가족들이 지겨워하지 않을까. 오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누가 '그만 좀 해. 이제 잊어버릴 때도 됐지'라고 말하기 전에 내 안의 심판자가 먼저 손가락질을 하고 고개를 내젓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 기운 없이 앉아 있었나? 나 때문에 분위기가 무겁다. 왜 나는 내게 말해주지 못하지?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고, 울어도 된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고맙다. 슬픔의 구덩이에서 헤매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상이 쉽지 않을 텐데. 입장 바꿔 나라면 인내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각자 자기 생긴 모양대로 잘 견뎌주고 힘이 되어준다. 채윤이가 엄마를 배려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장례를 치르던 날, 아니 한 달 먼저 시작된 장례식 내내 그랬다. 엄마랑 통화하고 울고 있으면 어느 새 다가와 등 뒤에서 안아주는 품이 채윤이의 힘 있는 가슴이었다. 입관식 내내 기둥처럼 나를 붙들고 있던 남편이 영정사진을 들었을 때, 화장장에서 장지에서 내 허리를 꼭 붙들고 섰던 채윤이다. 장례식 이후에도 밀착 마크는 본능적으로 촉이 좋은 채윤이 몫이었다. 거침없이 달려와 안아주고, 붙들어주었다.

 

"엄마가 울면 가서 달래줄 수 있고, 밥을 안 먹으면 먹을 걸 챙겨줄 수도 있는데..... 잠을 못 자는 건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엄마. 그게 너무 안타까워."

 

엄마가 떠난 텅 빈 자리에 미친년처럼 앉은 엄마의 곁을 딸이 지켜준다. 그만 하라고 타박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어준다. 모처럼 친구 만나러 나갔다 들어오며 "엄마 선물 있어" 하고 쇼핑백을 풀어헤친다. 쇼핑백을 들고 귀가하면 늘 제 옷, 제 화장품이 전부였는데. 친구 집 근처 빈티지샵에 갔다 왔다며 손수건, 작은 매트, 티팟을 내놓는다. 모두 엄마 선물.  이 넉넉한 손은 넉넉한 마음이다. "엄마, 더 울어도 돼"라고 말하는 마음이다. 맘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가족들 눈치를 보는 내 곁을 지켜주는 마음이다. 나는 내게 너그럽지 못한데, 딸이 남편이 아들이 묵묵히 곁을 지켜주니 애도의 골든타임을 유보하지 않게 한다. 지금 여기의 감정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니. 고마운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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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20.03.27 15:37

    티팟이 참 곱고 이쁘다.. 생각하면서 읽었어. 채윤이가 엄마와는 또 다른 동감과 표현이 풍부한 여인이고 딸이야.
    표현이 약하고 부족한 나로서는 부러운 모습이네..
    슬픔과 눈물로 지내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그 이상이네ㅜㅜ.
    마음껏 슬퍼하되 지난 날의 자책은 많이 말고 필요한 만큼만 하셨으면 하는 마음.
    저 티팟처럼 곱고 평온한 날이 오길 기도하며..

    • BlogIcon larinari 2020.04.01 00:08 신고

      감사해요! 다시 보니 저 티팟은 mary 언니님께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희 곧 놀러 갈게요. 무슨 얘기든 다 들어주시는 두 분께 가서 막 쏟아 놓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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