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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일상

뒤늦은 고백

larinari 2009.05.29 13:30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한 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뒤늦은 사랑고백, 뒤늦은 커밍아웃을 합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즈음이었습니다.
늘 바닥으로 가서 기적을 이루어내던 저 분은 그 때도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끼니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눈이 뒤집히는 임산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선의 승리를 위해서 한 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 사진은 그 즈음, 영화배우 문성근 씨의 연설을 보면서 흘린 눈물일겁니다.
우리 부부 역시 작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함께 울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잊지못할 2002년 12월 19일 대선.
티브이로 개표결과를 보기 위해서 수민네 집에서 감격의 순간을 확인했습니다.
두 가족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밤, 24개월 된 채윤이와 겨울 그 찬바람을 맞으며
춤추 듯 걸어서 집에 돌아왔었죠. 그 밤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기뻐하니 뱃속에 있던 현승이에게도 엄청난 태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요?
탄핵, 탄핵정국 입니다. 그 날 역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그 소식을 접하고 넋을 놓고 컴 앞에 앉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4년 여의 풀타임 직장생활(음악치료사로서 풀타임으로 일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영광인줄 알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을 접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직장 내 노조에서 보여준 탄핵정국에 대한 자세였습니다. 노조가 그저 월급을 올리고, 치료수를 낮추는 일에 목숨을 걸 뿐이라는 걸 확인하고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에게 실망하고 계속 다니기가 싫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일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 중요한 영역이기에 늘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다섯 살 채윤이를 데리고 광화문의 탄핵무효 촛불 시위에 함께 했었습니다. '타낸꾸요, 민주수호' 를 외치던 채윤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어린 채윤이와 그 역사적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내 봉하마을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욕 먹고 손가락질 당해도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는 지도자를 가까이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말이죠. 몇 번 갈까 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뤘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아쉬움과 슬픔 가득했던 지난 월요일에 아이들과 서울역 분향소에 갔습니다. 굳이 서울역을 택한 것은 그 곳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시민 아저씨가 상주로 조문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뙤약볕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렸는데 낮잠시간을 지낸 현승이도 잘 기다려주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서거 소식 이후에 엄마 아빠는 말을 잃었고, 늘 거실을 메우던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끼니마다 식사도 대충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모니터 앞에 앉아서 말을 잃고 슬픔을 삭이고 있는 동안 두 아이도 말없이 놀고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현승이가 거실의 이면지에 해놓은 낙서입니다.
바보 노무현. 이렇게 바보를 앞에 붙이는 것과
이명박 바보, 라고 뒤에 붙이는 것이 참 느낌이 다릅니다.
청소를 하다가 이 낙서를 발견하고 한참을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채윤이는 채윤이대로 도통 말을 잃은 엄마 아빠에게 묻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적어서 설문지를 만들어 내밉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 설문지에 답을 하면서 헛웃음이 흘러나와 울면서 웃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바보.


영결식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차마 볼 수가 없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수영장에 갔습니다. 아주머니들수 수영은 안 하시고 열심히 수영하는 사람 진로방해 하시면 이러시대요. '조문하러 가는 미친 것들은 또 뭐야?' '오늘 김동길교수가 바른 말 또 했대. 서거는 무슨 서거냐고?' '텔레비도 짜증나 죽겠어' '지금 뭐 다들 할 말이 없어서 그러나, 노사모 미친 것들 달랠려고 그러지. 이러다가 또 촛불 들고 지랄할까봐....'
예, 저는 참여정권 내내 노무현대통령에게 하는 욕을 제게 하는 욕으로 듣고 모욕을 느꼈습니다. 오늘 수영장에서도 그랬습니다. 떨어지는 눈물을 참으면서 물을 갈랐습니다. 수영장 아주머니들의 독설, 그리고 함께 살던 시절 시아버님의 끝없는 '노무현 때문이다' 하는 욕...... 다 소화가 됩니다.

실은 대통령 취임 이후 잘못된 행보라고 지적받는 FTA, 이라크 파병... 이런 것도 저희 부부는 미워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믿고 유시민님의 말처럼 '비를 같이 맞아주는 사람' 에 심정적이 동의를 했습니다. 그 시절 생각이 같다고 여기던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비난도 정말 정말 마음 아프고 듣기 어려웠지만 ...... 다 소화가 됩니다.

그런데, 정말 소화가 되지 않는 조롱과 욕과 비난이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빌어서 노무현대통령을 조롱하고 비하하던 제가 들은 무수한 설교입니다. 단언하건데, 제가 아는 이 땅의 개신교 지도자들 중에 노무현 대통령 만큼만 정직하고 진실하고 용기있는 분을 한 분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저는 오늘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될 자리인줄 알면서 가서 낙선하고 또 낙선하는 그 심정을 한 번이나 헤아려본 후에 그렇게 조롱들을 하는지요. 자신들이 앉은 그 지도자의 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 두려워 하는 그 두려움을 본인들만 모르고 우리는 다 아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과 한 번 쯤 비교해 보는 성찰도 없으면서요....

웬만큼 말로 하다 안되면 힘을 좀 써도 될텐데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지요' 하는 상황까지 가도록 대화를 하는 자발적으로 권위를 잃은 지도자. 코너에 몰려도 뒤로 숨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다 '말 실수가 많다'는 욕을 들어먹는 참 용기있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기독교 안에서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도 밉고, 맘에 안 들었던 노무현이 잘 죽었다. 라는 메세지가 그대로 와닿는 교계 지도자들의 발언에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입니다. 책임없이 자살을 했다고 탓하기 전에 혹시 우리 손에 묻은 타살의 혈흔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 이런 얘기는 씨도 안 먹힐테니까 그저 마음만 무너져내립니다.

뒤늦은 커밍아웃을 합니다.
정치적인 견해는 아무리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저희 부부의 소견입니다. 이미, 우리가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 만큼 받아봤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고, 존경했고, 한 번도 지지를 거두어 본 적이 없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 삶의 존재 이유인 예수님의 삶을 몰랐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에게 비친 그는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더더욱...... 눈물이 납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삶으로는 예수님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향해서 정치적이라느니, 자살이라는 최고의 죄를 지었다느니 하는 말로 조롱할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동기 강도사님 한 분이 자신의 후배이기도 하며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청년부에 있는 청년 하나가 하는 그런 식의 얘기를 듣고 그랬답니다. '야, 임마!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기독교가 싫어' 라고요.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스스로 위로가 됩니다.
최근에 청년부 주보에 인터뷰를 한 친구같은 제자가 있습니다. 어느 질문에서 강도사님과 사모님의 사는 모습이 결혼에 대해서 비관적이던 자신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해주었고, 닮고 싶은 모델이 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걸 읽고 제 자존감은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어느 영역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런 영광이 어디있겠습니다.그래서 저는 믿었던 교회와 사회의 여러 인생의 선배들에게 실망을 하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최고의 복수로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존경하지 않아' 라고요.

수많은 추모인파를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 중 하나이니.... 당신은 제가 아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대통령이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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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9.05.29 23:50 그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가 실님을 가장 걱정하더이다.
    노무현 너무 좋아하는데 하면서...
    오늘 내내 가는 길에 가서 서 있다가 왔습니다.
    그를 보낸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희망을 갖고 살아가 보렵니다.
    아, 그리고, 그때 우리 같은 자리에 있었군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5.30 10:56 신고 그 때 같은 자리에 있었고, 또...
    어제 광화문이나 서울광장에는 저의 님인 필님과 털보부인의 님이신 털보님께서 같이 계셨지요.^^
    이런 때 '같이'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언제 쯤 제 마음의 일상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어요. 이제 좀 나아졌나 싶어도 아침엔 꼭 큰 슬픔으로 눈을 뜨게되니 말이예요.
  • 프로필사진 yoom 2009.05.30 03:57 집에 와서 7시,9시 뉴스를 보는데 참 눈물이 많이 났어요.
    어깨두 들썩대구..엄마두 조금은 눈물이 나면서 넌 왜케 우니? 하셔서
    두어해전 부터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많이는 모르지만 슬프다구 했더니
    그런 말 한적 없었잖아 왜 안했어 하는 말에...왠지 아빠 눈치가 보여서...하구 목소리가 기어들어갔어요. 기냥 서로 표현하는것 자체가 상처가 된다는것 충분히 공감이 가요^^

    오늘 뉴스때문인지,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눈물이 많았던 하루 였어요...
    항상 두가지가 오버랩이 되면서..
    이번에 가게 되면서 참 많은 사랑을 받고 가서 더욱 더 그리울거 같아요
    오늘은 그 발랄한 속삭임만 들어두 눈물이 나드라고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5.30 10:58 신고 이 슬픔, 저 슬픔이 보태져서 계속 눈물이 흐르는구나.
    다음 대선 때는 꼭 들어와서 투표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고맙고 이쁜지 모르겠어.

    책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어서 카드에 잘 쓰지 못했다. 가서 푹 자고 여기 들어오면 정신 차리고 제대로 인사를 남겨 놓을께.
    에고, 또 눈물이 나네. 8월에 꼭 보기야.
  • 프로필사진 2009.05.30 16:36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5.31 16:26 소중한 만남이 그 분의 선물임에 분명합니다. 감사, 감사!
  • 프로필사진 BlogIcon 采Young 2009.05.30 20:47 신고 선생님...볼살이 너무 쏙...빠져버리셨어요..ㅠ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5.31 16:28 더 빠질 볼살이 없는데 말이다.ㅜㅜ
    보고싶었는데 학교 갔었니? 냉커피 맛있게 타갔었는데 윰도 없고, 챙도 없고...ㅜㅜ
  • 프로필사진 채영 2009.05.31 20:03 네 ㅠ 오전에 조모임갔었거등요.
    넘 늦어지는데 혼자 빠져나올 수도 없어서요.
    이제 왔어요.
    저도 오늘 예배 넘 기다렸었는데 잉 냉커피...ㅠ
    담주에 1시까지 갈께용~!!
  • 프로필사진 yoom 2009.06.01 14:22 챙아~ 너가 옆에서 열쉼히 지원 바래..^^
    아 그리고 지금 내가 7번 날개 못쓰고 있어서
    날개 녹슬거 같아..빨리와
    나 이러가 7번날개 접혀버리고 벌써 5번날개 나오면
    듁음인데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6.01 15:50 모... 듁음까지는 아닐거다.
    다만 우리가 안 놀아주겠찌. 영원히. 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채영 2009.06.01 16:23 나도 잠시 웃음 잃다가
    여기 와서 처음 간신히 미소지어본다 ㅋㅋㅋ
    어쩌면 영어로 웃기려 들다가 7번 날개가 더 발달할지도 몰라 푸후후...
  • 프로필사진 hayne 2009.05.31 08:47 정말 화가나고 소화되지 않는 그 부분, 동감이야..
    평생 믿는자임을 드러내고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 부끄러움은 처음인거 같아.
    영결식때도 그렇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5.31 16:29 순간 순간 서 있을 용기를 잃고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요.
    ㅜㅜ
  • 프로필사진 2009.06.03 16:53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6.18 12:32 신고 뒤 늦은 댓글...
    진실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임산부에게도 좋은 태교가 될 거라고 믿어. 귀여운 것! 그 이쁜 기도가 다시 맘을 울리네.ㅜㅜ
  • 프로필사진 2009.06.04 16:56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6.18 12:33 신고 때론 침묵으로 감내해야 할 때가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우리 같은 업종의 사람들은 말이죠.ㅜㅜ
  • 프로필사진 뮨진짱 2009.06.08 13:00 싸모님.. 저는 아직도 울컥울컥하네요. 정치를 전혀 모르는 제가
    얼마전 구입한 '노무현이 만난 링컨'의 서문을 들썩 거렸는데..
    기쁘게도 미국의 16대 대통령과 한국의 16대 대통령은 유사한 삶을 산 것 같으나
    슬프게도 링컨은 피살당했고 故 노 전 대통령님은 피살아닌 피살을 당한 것 같아
    마음이.. 한국의 청년인 저의 마음이.. 참 거시기합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6.18 12:35 신고 이제 댓글을 봤단다. 미안~
    내가 써놓은 글이라도 슬퍼서 다시 열어보질 못했었는데 그래서 오래된 댓글을 못 봤나봐.

    시대의 아픔에 눈 감는다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어. 부디 내 구원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나의 아픔으로 기도로 가져와 안고 사는 이 땅의 청년이 되길 기대한다. 뮨진짱!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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